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52화 (152/235)
  • 152화

    <103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

    에티가 기거하는 널찍한 광장에 도착했다.

    치지징! 나는 즉시 은폐장을 풀어버렸다.

    “어라? 얼라리??”

    익숙한 탄성. 에티는 믿음과 신뢰의 스테레오타입 반응을 보여줬다.

    이번엔 가타부타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나중에 많이 놀라고. 여기나 봐라.”

    치지징!

    투우사가 붉은 망토를 휘두르듯. 나는 힘차게 이브의 광학미채 슈트를 벗겨버렸다.

    이브의 모습이 한순간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녀를 코앞에서 목격당한 에티의 반응은, 이번에도 즉각적이었다.

    “으, 아. 으……!”

    벙쪘다가, 경악하고. 얼빠진 탄성을 연신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이내 우뚝. 그녀의 전신이 모든 행동을 멈췄다.

    “…귀머거리 토끼. 길을 잃은 까마귀. 목 잘린 붉은 용…….”

    성공이다.

    무난하게 자살로 향하는 수순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들을 한 귀로 흘려 넘기기 시작했다.

    “아저씨. 전에도… 나 본 적 있지? 엄청 많이.”

    “그래. 이젠 뭐, 거의 가족이지.”

    쌈박하게 긍정해 준 나는 터벅, 에티에게 한 걸음 전진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던전 마스터. 초인이란 뭐냐.”

    육사도에 대한 질문은 실패했었다.

    이브의 정체에 대해서도 시원찮은 헛소리만 나왔다.

    ‘그렇다면 나는 어때.’

    이번엔 나에 대한 질문을 해보겠다.

    ‘초인’의 정체를 물어보면 또 어떤 반응이 나올까. 그녀는 이 사태의 전말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에티를 모르모트 삼은, 최후의 실험실을 개장했다.

    “…헤? 벌써 초인이 뭔지도 아는구나, 아저씨.”

    에티는 특유의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일단 이번에도 에티가 반응은 해줬다. 그 점에 감사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좀 궁금해지네. 왜 내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전에 만난 네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으니까.”

    “…흐응. 전에 만난 나, 말이지?”

    “그래.”

    “궁금하네에. 이전의 나는 대체 아저씨한테, 무슨 말을 지껄였던 걸까? 전에 만난 나라……. 흐흐응?”

    에티가 내 말을 곱씹듯이 눈알을 빙글빙글 굴렸다.

    이내 처억, 그녀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곧게 편 검지가 내 미간을 가리켰다.

    “사실 아저씨가 모를 리가 없는데. 그치?”

    “그건 무슨 소리냐.”

    “초인 말이야. 아저씨잖아?”

    “…….”

    “아저씨가 아저씨 자신을 모를 리가 없잖아. 웃기는 질문이야, 그거. 푸흐흐.”

    초인은 바로 나다.

    이건 무르무르와 의지의 화신을 직접 만나본 나로선 모를 수가 없는 사실. 그래서 들어도 딱히 놀랍진 않다.

    당연히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 피상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초인이 누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초인이 뭐냐고 물었지.”

    “으응? 둘이 뭐가 다르지?”

    “네가 말하는 초인의 정의. 그게 궁금한 거다.”

    “으음, 정의라. 그건 좀 애매한데. 뭐라 말해주면 좋을지 모르겠네에…….”

    에티는 손가락도 까딱 않은 채 시커멓게 빛이 죽은 눈알만 빙글빙글 돌렸다.

    그 모습은 퍽이나 기괴했다. 흡사 목각인형이 제 혼자 중얼거리며 눈알만 생생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이브도 그렇게 느꼈는지, 바짝 쫄아선 내 뒤로 숨어버렸다.

    “아아, 그래. 주인공.”

    이내 그 생기 없는 눈알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약간 벌어진 그녀의 입술에서, 어조가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초인은 주인공이야. 아저씨.”

    “…주인공?”

    “응. 모든 이야기엔 주인공이 있잖아? 그런 주인공.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진행하고… 또, 끝내야 하는 사람. 그 사람을 초인이라고 부르지. 응.”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뭐… 그래. ‘주인공’이란 호칭은 좀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내가 멸망의 한 달에 깊은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대충 비슷한 의미로 예상하고 있긴 했다.

    다만. 이어지는 에티의 발언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근데 아저씨는 좀 특이하단 말이지. 일반적이지가 않다고 할까?”

    에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일반적이지 않다는군. 나는 미간을 대번 바짝 좁혔다.

    “전의 너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건 또 무슨 의미냐.”

    “으응? 무슨 의미랄 게 있나. 말 그대론데? 아저씨는 초인이야. 근데, 내가 아는 초인이랑 좀 달라. 그런 소리야.”

    “그러니까 그게 무슨…….”

    “어떻게 육사도면서 동시에 초인일 수가 있지? 그게 양립할 수 있는 거였나? 으음.”

    에티도 약간 신기하다는 듯이 떠벌거렸고. 내 모습을 위아래로 물끄러미 훑어봤다.

    멈추면 안 된다. 그녀가 자살을 진행하지 못하게 계속 몰아쳐야 한다.

    나는 대가리를 쥐어짜 질문을 이어나갔다.

    “초인은 기본적으로 육사도와 적대적인 관계인 거냐?”

    “일단 내가 알기로는? 아니. 상식적으로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건 왜지.”

    “왜…냐고? 왜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냥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놈들이 말하는 ‘초인’이다.

    동시에 ‘죽어버린 왕의 옥좌’… 육사도 중 하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반쯤 정신이 나간 지금의 에티에 따르면. 나같이 두 포지션이 중복되는 케이스는 이례적이라는 듯하다.

    왜 그런지는, 이어지는 에티의 말로 단박에 이해됐다.

    “육사도는 소위 말하는 빌런이야. 아저씨. 악역이라고. 주인공이 어떻게 악역을 겸할 수가 있는데?”

    “……!”

    “악당이 주인공일 수는 있어도, 주인공이 악역은 될 수 없는 거 아냐?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주인공에게 적대하면… 적어도 그 이야기에선 그놈이 악역인 법이잖아?”

    연신 의문의 탄성을 흘리는 에티였고.

    나도 그 앞에서 함께 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아하. 그런 거였구나! 나 좀 알 거 같은데?”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에티는 혼자 납득한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러면, 그러네… 마지막 선택지가 달라지는구나.”

    “…마지막, 선택지라고?”

    “으응. 아저씨, 진짜 불쌍하네. 대체 어쩌다 그런 꼴이 돼버린 거야? 전생에 나라라도 팔았어?”

    “던전 마스터. 대체 지금 무슨 말을…….”

    “진심으로 동정할게. 아저씨. 모쪼록 최대한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길 바라. 우흐흐.”

    에티가 내 의문을 모두 묵살하고, 한숨 쉬듯이 혼자 결론을 내버렸다.

    이내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피식 웃었다.

    “뭐! 하긴. 엑스트라인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닌가? 으히히.”

    스르륵.

    그녀의 관자놀이에 손가락 총이 겨누어졌다.

    최후의 실험이… 자살런이, 드디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저씨. 혹시 이게 마지막?”

    별안간 에티가 그런 걸 물어왔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즉각 알아챘다.

    거의 본능의 영역이었다.

    “그래. 끝이다.”

    에티를 찾아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가 추측한 의미는 그것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샐쭉, 처음으로 에티의 입가에… 외관에 걸맞은 천진난만한 미소가 어렸다.

    “와아. 진짜? 정말로?”

    “그래.”

    “그럼… 나, 이제 더는 심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마도.”

    “와아. 아, 하하. 실감이 잘 안 나네……?”

    에티는 얼떨떨한 얼굴로 키득거렸다.

    주르륵. 그녀의 눈가에서 뜻 모를 눈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목석같이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이, 한껏 추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고마워, 아저씨.”

    실로 인간적인. 그래서 더욱 처절한.

    울음 겸 웃음이 피어올랐다.

    “…덕분에 마지막은, 심심하진 않았어.”

    타아앙!

    용서 없이 손가락 총은 발사된다.

    에티의 지독하게 인간적인 표정이 사방으로 새빨갛게 흩어졌다.

    [제41던전 ‘장난감 왕국’의 던전 마스터, ‘심심한 에티’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게이트가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던전의 붕괴가 종식됩니다.]

    자살런의 끝을 알리는 패널이 연속으로 솟아난다.

    쿠구구구! 장난감 성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와 이브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에티의 시신 옆에 망연히 서있었다.

    [던전 마스터 ‘심심한 에티’ 사냥 보상을 획득합니다.]

    파팟!

    나는 타이밍을 맞춰 손을 뻗었고. 그 위로 새하얗고 둥글둥글한 털 뭉치가 생성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 특유의 뜨듯한 온기가 전해져온다.

    [아이템 ‘보팔의 머리’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하나의 파츠를 획득했다.

    예상대로 토끼의 머리가 나오긴 했는데… 이름이 ‘토끼 머리’가 아니고 ‘보팔의 머리’였다.

    이건 살짝 예상에서 빗나갔다.

    ‘이놈 이름이… 보팔인가?’

    그제야 토끼 대가리를 유심히 쳐다봤다.

    대충 봤을 땐 몰랐는데. 머리통 전체에 온통 흉터가 자글자글하다. 특히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상당히 깊었다.

    잠을 자고 있는 건지,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것 외의 움직임은 일절 없다.

    ‘토끼치곤, 살벌하게도 생겼구만.’

    이마 한가운데에는 유니콘 마냥 원뿔형의 뿔이 자라나 있다.

    결정적으로 토끼의 트레이드마크인 길쭉한 귀도 없다. 한쪽은 뿌리부터, 다른 한쪽은 중간쯤부터 거칠게 뜯겨나간 상태다.

    ‘이래서 귀머거리 토끼인 건가.’

    일단 그 명칭에 대한 설득력은 확실히 주는 비주얼이다.

    다만 뭐랄까. 도라X몽이 귀 하나 잘렸을 뿐인데 ‘고양이 로봇’이라는 걸 아무도 몰라보듯이. 이 대가리만 봤을 때는 ‘토끼’를 연상하기 힘들긴 했다.

    “뭐… 어쨌든.”

    나는 그쯤에서 ‘보팔의 머리’를 인벤토리에 넣었고. 시선을 슬쩍 들어올렸다.

    쿠구구구! 장난감 성의 천장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일단 나가자. 이브.”

    “으응. 알았어!”

    나는 능숙하게 이브를 안아들었고. 그대로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푸화악! 붕괴한 장난감 성의 크고 작은 잔해를 피해 나가며. 나는 전속력으로 성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 * *

    대환장 자살 쇼는 약 26번의 도전 끝에 결실을 맺었다.

    어디서 구슬픈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내 귀엔 들린다.

    베테랑 흑우 한정용의 장렬히 산화한 26회분 목숨. 그들이 내뱉는 통곡 소리일 것이다.

    “후아. 피곤하다아.”

    털퍼덕.

    집에 돌아온 뒤. 이브는 곧장 침대 위로 엎어졌다.

    세상 피곤을 혼자 다 짊어진 양, 침대에 볼을 부비며 나른한 표정을 짓는다.

    “으음, 역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니까. 집이 최고야!”

    “…….”

    “그치, 아빠? 내 말이 맞지?”

    “…틀린 말은 아니지.”

    척수 반사로 긍정해 줬다만 의아하긴 했다.

    이번엔 혈천갑으로 변신한 적도 없고, 외출 중 8할은 내 품에만 바짝 안겨서 날아다녔던 이브였다. 응원 토템 그 자체였지. 대체 어느 대목에서 피곤이 쌓일 겨를이 있었을까.

    “스읍.”

    심히 의문스럽지만, 괜히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한정용의 눈치. 여기까지 발전했다.

    “후암. 아빠, 그럼 나는 좀 잘게?”

    문득 이브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나른한 행색으로 비척비척 침대에 걸어갔다.

    우뚝, 그녀의 행동이 침대 앞에서 멈췄다.

    “어. 엄마다.”

    이브의 짤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나도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이브의 말대로다.

    침대 위에는 선객이 있었고, 그 정체는 수아였다.

    내가 이번 2차 붕괴 원정을 나가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립 스킬로 재워뒀던 게 아직도 깨지 않은 것이다.

    “…….”

    나도 모르게 입을 콱 다물었고. 얼굴이 놀랍도록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한동안 얼음장 같은 무표정을 고수한 채 수아를 내려다봤다.

    “강수아는 이미 죽었네. 도전자.”

    베르페아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수아는 지금도 내 눈앞에 있었다.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세상모르게 곤히 자는 중이다.

    인지부조화가 어느 때보다도 빡세게 찾아왔다.

    “…대체, 정체가 뭐냐.”

    “응? 아빠. 뭐라고 말했어?”

    혼잣말에 또 이브가 반응해 왔다.

    나는 고개를 휘저은 뒤. 이번에도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 그냥 좀.”

    일단 수아에게서 관심을 꺼버렸다.

    당장 어쩌지도 못할 사항에 연연하는 건… 신물이 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