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
나와 강서윤은 자연스럽게 베란다 쪽으로 나왔다.
서윤이 점프 수트 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칙, 능숙하게 불을 붙여 꼬나물고 깊게 한 입 빨아들인다.
“후우…….”
강서윤의 날숨에 허연 연기가 섞여 나왔다.
그녀의 복잡한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담배 연기였다.
“그래서.”
번득.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던 강서윤이, 어느 순간 날카롭게 벼려진 시선을 보내왔다.
나는 짐짓 놀라는 척을 해줬고, 서윤은 같잖다는 양 손사래를 쳤다.
“얘기를 하자니, 네가 보낸 문자 해명이라도 하게?”
“그 얘긴 나중에 하자. 지금은 더 중요한 사안이 있으니.”
쾅!
서윤이 베란다 난간을 신경질적으로 후려쳤다.
“야 이 X발아,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사안이 세상에 어딨는데?!”
“놀랍게도 있다, 일단 좀 들어봐.”
“조까! 난 그… 애, 애 생긴 얘기가 듣고 싶어서 온 거라고!”
퍼석!
갑자기 강서윤이 피우던 담배가 제 혼자 무참히 짓이겨졌다.
위상 능력의 폭주다. 강서윤이 제 화를 이기지 못해 멋대로 스킬이 나간 것이다.
“에이, X바. 또 지랄이네. 짜증나게!”
한두 번 겪은 게 아닌지라, 강서윤은 지겨운 듯이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쯧.”
나는 강서윤이 못 듣게 혀를 끌끌 찼다.
그녀의 위상 능력 폭주는 나 역시 한두 번 겪는 게 아니다. 당장 전전생만 하더라도 수아의 시체 앞에서 한 번 겪었었다.
‘옛날부터 저것 때문에 고생 많았지, 감응형 스킬.’
던전발 스킬은 크게 액티브와 패시브, 극히 드물게 하이브리드.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액티브는 본인이 스킬을 직접 가동해 발동. 패시브는 그냥 항시 발동. 그리고 하이브리드는, 사용자의 의지에 감응해 반자동으로 발동된다.
그 특이성 때문에 하이브리드 스킬은 ‘감응형 스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찌 보면 불쌍한 새끼라니까.’
하이브리드 스킬의 특장점은, 액티브 스킬에 비해 발동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
헌터들의 전투는 1초 이내의 세계. 찰나의 순간에 생과 사가 갈린다. 스킬의 시전 속도가 빠르다는 건, 상대를 막론하고 굉장한 이점이긴 하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대가 없는 이득이 있던가. 당연히 반대로 특단점도 있는데.
그게 바로 강서윤이 겪는 저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버리니.’
감응형 스킬의 장점을 다시 말하면, 그대로 단점이 된다.
발동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아, 아냐. 나는… 이, 이러려던 게……!”
친구나 부모.
그리고 각종 친지들에게, 아주 잠깐씩 스쳤던 나쁜 생각들.
지나고 나면 웃어넘길 정도의, 일상적인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시스템이 순식간에 읽어내 버린다.
“미, 미안해. 정용아… 정말, 미안해……!”
끝내 본인이 제어하기도 전에 스킬을 발동시켜 버릴 때가 있다. 그러면 당연히, 최악의 경우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건 그 과실치사 피해자가 직접 해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뭐, 그래도. 강서윤이 우는 얼굴 오랜만에 봤지, 그때.’
그 자존심 센 강서윤이, 죽어가는 내 앞에 주저앉아 펑펑 울며 사죄했었다.
“내, 내가 이러려던 게… 어째서, 대체… 어째서!!”
이 정도면 SSR+급 울트라 레어 표정이다.
엄청 초창기 일화라 이젠 거의 기억도 안 나긴 한다만, 전체적인 정황만큼은 지금도 생생했다.
“하, 나참. 이 새끼 또 이러네. 야! 한정용!”
퍽, 퍽!
강서윤의 기습적인 고함과 등짝 스매싱이 상념을 박살 냈다.
퍼뜩 정신 차리고 그녀를 쳐다봤다. 강서윤은 인상을 바짝 구긴 채 나를 삿대질했다.
“또 뭔 십덕 망상하고 있냐? 나랑 말하다 말고 왜 갑자기 딴생각하는데!”
“…아니, 그냥 좀.”
“너 다른 사람한테도 이러냐? 존나 무례한 짓이야, 너!”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팩트니까.
무례한 짓이라, 분명 그렇다. 수아 앞에서 자주 이랬다고 실토하면, 아마 곧장 주먹질이 날아오겠지.
결국 나는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하다. 안 그럴게.”
“뭔 X발… 돼, 됐어 새꺄. 남들한테나 그러지 말라고!”
순순히 사과하자 그건 또 멋쩍어한다.
하긴,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서로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살았다.
사과는 받는 것도 건네는 것도 어색할 수준이다.
“뭐, 그래. 좋다 이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결국, 잠시 후 강서윤이 먼저 접고 들어갔다.
그녀는 피곤에 찌든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고, 나도 그녀를 마주 보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난, 단박에 핵심을 꿰뚫었다.
“사실 난 미래에서 왔다, 서윤아.”
“아 그래? 어쩐지. 하는 짓거리가 도저히 현대의 사람 새끼 같지가 않더라니.”
“……?”
“그래서. 지랄 그만하고, 뭔 얘기가 하고 싶냐고.”
“…어…….”
너무 자연스럽게 흘려 넘겨 버리는 강서윤.
강서윤 설득 자체를 오랜만에 해봐서 그런가, 저런 반응은 좀 당황스럽다.
당황하지 말자, 어차피 이 정도 불신은 당연한 수준이니까.
‘정석 공략법대로만 가자고.’
나는 고개를 슬쩍 휘저어 심기일전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말했잖아, 난 미래에서 왔다니까.”
“아 알겠다고 병신아, 뇌절 그만해.”
“한 달 후, 세상은 무수한 게이트 붕괴로 꼼짝없이 멸망한다. 난 그걸 막기 위해 한 달 후의 미래에서 돌아왔다, 서윤아.”
이쯤 되자 강서윤의 표정도 살살 굳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노려보는 시선이 약간 험악해졌다. 질 나쁜 장난을 당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야, 너 대체 지금 무슨……!”
“그걸 설명하려고 부른 거다. 이 정도면 수아랑 내 자식보다 관심이 생기냐?”
“아 X발, 한정용! 개소리 작작 해라? 진짜 화내는 수가…….”
“장난으로 보이냐?”
강서윤의 말을 잘라먹었다.
그리고 강서윤의 눈을 직선적으로 주시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에서, 노기가 점점 사라졌다.
“…지, 진심이었냐?”
이내 강서윤은 멍하니 풀린 얼굴로 중얼거린다.
나는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다, 순도 100퍼센트.”
“허, 허허.”
강서윤의 입에서는 실성한 듯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머리를 박박 긁었고, 허공을 응시하며 제 혼자 중얼거렸다.
“하, 이 미친 십덕 새끼 이거. 그러게 내가 인마, 이상한 웹소설이랑 만화 좀 작작 쳐보랬지. 어? 개새꺄! 야, 너 진짜… 하.”
“미친 게 아냐. 난 멀쩡하다.”
“세상 X발, 어느 멀쩡한 새끼가! 그런 개소리를 하냐고!!”
강서윤은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흠칫, 본인의 성량에 놀란 그녀가 반사적으로 방 안에 시선을 뒀다.
“아.”
그리고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수아와 이브가 깜짝 놀라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방금 고함에 놀라서 쳐다보는 것이다. 베란다 문을 꽉 닫았는데도 방 안까지 들렸던 모양이다.
흠, 흐흠! 강서윤은 멋쩍은 듯이 헛기침을 했다.
“그래. 뭐, 일단 알겠어. 자칭 회귀자.”
“자칭이 아니고 난 진짜 회귀자다.”
“아 뭐든 간에 X발아! 내가 믿길 바라면 최소한 증거가 있어야지!”
“…증거.”
“그래. 증거! 양심도 없냐? 그런 개 쌉소리를 증거도 없이 어떻게 믿어!”
이 정도면 이야기의 흐름은 순조로운 편이다.
역시. 서윤이는… 말로는 단호하게 개소리라 취급하지만, 최대한 나를 믿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태도만 봐도 그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증거. 그래, 내가 지금부터… 예언을 하나 해주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회귀의 증거.
다시 말하면,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확정된 미래들.
“길게 볼 것도 없다. 당장 내일, 오후 세 시 이내의 언젠가. 용산 전자상가 주변에서 첫 번째 게이트 붕괴가 시작될 거야.”
발생 일자, 발생 장소.
그리고 발생 던전의 정체까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던전.
그 정보를 최대한 상세하게 전해줬다.
“제99던전 대격변지대. 블랙 드래곤 칼라마이트를 중심으로, 십수 마리의 비룡이 게이트를 찢고 용산의 하늘을 뒤덮는다.”
이래서 강서윤을 설득하려면 지금이 가장 효율적이다.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수준이다. 내가 미래를 보고 왔다는, 가장 유력하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 유일한 타이밍이니까.
“내가 제시할 증거는 그거다. 그 외에는 지금 검증할 방법은 없어.”
“…….”
“다만 내일이 되면, 알아서 검증될 거다.”
그래서 카일 인더스트리도, 로즈 휴스턴이나 애덤 크로스의 조사도 뒷전인 거고.
강서윤의 설득이 가장 첫 단추일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그게…….”
강서윤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내 그녀가 머리를 쥐어 싸맸다. 그리고 징글징글한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그리고 내 행색이 더없이 진지한 걸 보자, 한층 더 환장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결국, 지금 보여줄 증거는 하나도 없단 소리잖아! 이 개새꺄!”
“…그런가? 그렇게 되긴 하네.”
“수, 수아는? 수아도… 이걸, 알아? 수아한테 말했어?!”
“아니.”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고, 강서윤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이해가 안 되는지 미간을 바짝 찌푸렸다.
“어, 왜?! 왜 수아한테는 말을 안 해줘! 나보다도 먼저 수아가 이 사실을 알아야……!”
“알아도 바뀌는 게 없어.”
“…뭐?”
“내가 몇 번이나 미래를 보고 왔다고 생각하냐, 자그마치 천 번 이상이다.”
“처, 처, 천 번?!”
“수아가 알아도 소용없어. 어떤 식으로 알려줘도, 긍정적인 결과는 절대 나오지 않아.”
“…….”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는 몇 번이나 나왔었다.
호기심 혹은 동정심. 수아는 붕괴지에서 사람들을 최대한 피신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사용한다. 아니면 본인이 직접 대피를 주도하려고도 했다.
그야말로 지극히 ‘강수아다운’ 행동이지.
그런 미래가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너희 자매의 결정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이 뭔지 아냐?”
“…뭐?”
“공통점은 둘 다 착해 빠졌다는 점. 차이는, 너는 힘과 명성이 있고 수아는 없다는 점이다.”
“…….”
“내가 너한테만 회귀를 밝히는 것도 이것 때문이야.”
강서윤은 내 말을 반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표정만 봐도 그것이 훤히 보인다.
상관없다. 지금 건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혼잣말에 가까운 푸념이다.
“힘없는 선함은 그냥 위선이다. 대부분 최악의 결과를 내지.”
당연히 대피는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아무도 일반인 나부랭이인 수아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가 수아의 예언대로 붕괴가 차례차례 일어나고 나면, 그제야 수아의 말을 믿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제 슈레더의 표적이 되는 건… 사양하고 싶네.”
“…뭐?”
슈레더.
그 단어가 나오자 강서윤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아니. 잠깐만… 슈, 뭐? 허?”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슬슬 저었고.
이내 당황에 찬 목소리를 흘렸다.
“너. 그, 그걸, 그건 대체. 어떻게……?”
당황스럽겠지.
헌터 협회 암부. <슈레더>는 오버 랭커급의 초고위 헌터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특급 중에서도 특급 기밀이다. 이세라조차 모른다.
단순 보안 레벨로만 쳐도 국정원 그 이상이다.
“어떻게는. 놈들한테 쫓겨본 적도 있고, 협업해본 적도 있다. 직접 고문도 당해봤어.”
“거, 거짓말… 그, 그, 그럴 수가……!”
“구성원도 전부 말해줘야 믿겠냐. 부장 장수혁, 그 아래 차장급의 김강원, 육도훈, 나은희. 그리고…….”
“그, 그만! 알겠어! 알겠다고!”
강서윤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빽 소리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강서윤이 얼굴을 확 쳐들더니, 억울하다는 듯이 하소연을 했다.
“그 얘기를 처음부터 해야지, 병신아! 그러면 새꺄! 네 말을 훨씬 쉽게 믿었을 거 아냐!!”
강서윤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팡팡 후려친다.
그녀의 곡소리가 베란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오오! 이 개빡통 새끼, 진짜!!”
스트레스로 위장에 구멍 뚫려 뒤질 것 같은 행색. 개비스콘 할아버지가 옆에서 속 쓰려 하다 머쓱해질 수준이다.
다만 나는 그녀의 행동이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근데. 그건 딱히 회귀자만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니잖아.”
“…뭐가 어쨌다고?”
“슈레더의 조직 구성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야, 이미 일어나 있는 사건이지. 그걸 내가 알고 있는 게 회귀자라는 증명이 되냐?”
“아무튼, 네가 절대 알 리가 없는 사실을 아는 거잖아! 그러면 당연히 신빙성이 올라가지!”
그런 건가?
얘기가 그렇게 되나?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오.”
“오는 X발!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 빡대가리야!”
오늘 중요한 정보를 획득했다.
강서윤에게 회귀를 믿게 만들 때 꿀팁. 헌터 협회 암부를 들먹이면, 굳이 1차 붕괴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직빵으로 먹힌다.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