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
결국, 회귀자 커밍아웃은 신뢰 반, 불신 반의 애매모호한 상태로 끝났다.
어쨌든 내 용건은 이걸로 끝났으니, 이젠 강서윤의 용건을 들어줄 차례였다.
“소개하지, 이름은 이브라고 한다.”
나는 수아와 재잘재잘 놀고 있던 이브를 서윤에게 소개해줬다.
그녀는 어느새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게. 너랑 수아 애라고?”
서윤이는 이브를 가리키며 물었고, 연신 헛숨을 들이켰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시다시피.”
“X발, 얘는 딱 봐도 한국인도 아니구만. 뭔 개 같은 소리야!”
“못 믿겠냐.”
“못 믿고 나발이고 불가능하잖아! 유전자가 좃으로 보여?!”
“증거를 보여줄게.”
“즈, 증거?”
“그래, 증거.”
짝짝. 박수를 쳐서 이브의 주목을 모은다.
이브가 멀뚱히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이브.”
“우엥?”
“나는 누구냐.”
“으응……? 아빠는 아빠지?”
“그래, 나는 네 아빠다.”
후욱, 후욱.
방독면 숨소리를 따라 하며 다스베이더 흉내를 냈다.
곧장 강서윤의 고까운 시선이 날아든다. 시답잖은 개짓거리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면 이브.”
어쨌든 이번엔, 척.
내 옆에 엉거주춤 서있던 수아를 가리키며 물어봤다.
“얘는 누구냐.”
“으응? 엄마는 엄마잖아?”
“누구 엄마.”
“우리 엄마!”
“옳지. 그렇겠지.”
“히히. 아빠는 엄마가 누군지도 몰라? 아빠 바보구나? 바아보!”
이브가 해맑게 헤실거리며 바보, 바보를 연발했다.
놀림을 받든 말든, 나는 그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의기양양한 시선을 서윤에게 보냈다.
“봤냐.”
“뭔데 방금? 꽁트 하냐?”
“뭐긴, 이브가 나와 수아의 애라는 부동의 증거…….”
“잠깐! 다시 나 좀 따라와!!”
그대로 강서윤에게 멱살을 쥐어 채여, 베란다로 질질 끌려나갔다.
드르륵, 탁! 거칠게 베란다 문을 닫는 강서윤. 닫자마자 내게 얼굴을 한껏 들이밀었다.
“야. 너 진짜 솔직하게 말해! 저거 흰머리 애새끼 뭐야! 누군데?! 어디서 온 애며, 왜 너랑 수아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냐고!”
“하나씩 질문해라, 하나씩. 내 입은 하나야.”
나는 우선 격분한 강서윤을 진정시켰다.
무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자, 강서윤의 흥분도 점점 알아서 사그라든다.
결국, 그녀는 틀어쥐었던 내 멱살을 신경질적으로 놔 버렸다.
“…그래, 미안. 하도 어이가 없어서 좀 당황했네.”
“미안할 건 없고, 혼란스러운 건 이해한다.”
흐트러진 웃옷 매무새를 태연하게 정돈했다.
그리고 나는 아까도 그랬듯이, 단박에 핵심부터 쑤셔 박았다.
“그 애는 던전의 생물이다.”
퍼뜩!
강서윤의 부릅뜬 눈이 순식간에 날 올려다본다.
미간을 꿰뚫을 듯, 강렬한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내가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추측하고 있는 사실들까지.
이브에 대한 웬만한 것들을 최대한 상세히 강서윤에게 전해줬다.
“그, 그럴… 수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강서윤의 시선을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모, 모든 스킬에 면역이라고? 그게 말이 돼?”
강서윤이 입을 틀어막고 혼란스럽게 중얼거린다.
눈동자가 바쁘게 허공을 좇는다. 뭔가 깊은 상념에 빠진 눈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 그녀의 의문에 대답해주지 못했다.
“몰라, 나도 직접 보고 들은 걸 전달해 줬을 뿐이다. 저 던전 생물… 이브의 정확한 구조나 메커니즘을 알지는 못해.”
나 역시 회귀를 천 번 넘게 했어도, 이브 같은 생물은 생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곧 강서윤의 눈빛이 서늘한 예광을 머금는다. 살기등등한 시선이 천천히 방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까드득. 그녀가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어쨌든 던전의 무언가면, 죽여야 하는 거 아냐?”
이 반응은 익숙하다.
같은 S급 헌터였던 이세라가 절로 떠오른다.
그녀도 이브의 정체를 들었을 때. 딱 이런 반응을 했었다.
‘던전발 생물은 반드시, 예외 없이 사살한다… 였던가.’
모든 고위 헌터가 가지고 있는 강박적인 금제. 일종의 기아스다.
S급 헌터가 되려면 그 정도 집착은 있어야 한다. 던전에 뿌리 깊은 증오를 갖지 않고선, S급 칭호를 딸만 한 피나는 노력은 할 수 없다.
‘강서윤이 가진 증오의 원천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서윤과 수아의 어머니다.
던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파장에 의해, 극히 드물게 발병하는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 그것 때문에 지금도 종로의 한 병원에 누워계실 거다.
하루하루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어가면서.
목숨만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시간이 돌아왔으니, 아직 그분도 살아있겠군.’
잡생각은 거기까지만 했다. 바로 직전에 강서윤한테 훈계를 들은 참이니까.
한 번 더 등짝 스매싱은 사절한다.
“이브를 죽이는 건 일단 보류다.”
어쨌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쾅! 강서윤이 베란다 벽을 후려치며 곧장 언성을 높인다.
“왜?! 던전발 생물이야! 위험하다고! 정체도 모를 괴물 새끼가, 수아 옆에서 시시덕대고 있는데! 넌 불안하지도 않아?!”
“불안 요소는 분명히 있지.”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장 없애버리자고!! 아무리 스킬이 안 먹혀도, 아무 힘도 없는 애새끼쯤이야 발로 짓이겨서라도 조져버리면……!”
“조져버리면, 그 뒤론 어떻게 되지?”
열변을 토하는 와중, 틈을 파고들어 반격했다.
그러자 덜컥, 서윤의 고함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녀가 살짝 위축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뭐, 뭐?”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지금도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해 보고 있어. 실제로 죽이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그, 그럼, 그냥 생각한 대로 해버리면……!”
“하지만 깨달았지. 이브를 살려놓을 때 생기는 불안 요소만큼, 이브를 죽일 때 발생할 불안 요소도 만만찮게 크다는 걸.”
강서윤은 입을 몇 번 뻐끔거렸고, 이내 완전히 다물었다.
반박할 말을 끝내 찾지 못한 것이다.
“이브가 정말 순순히 죽어줄지는 차치하고. 이브를 죽였을 때… 예상치도 못하게 수아의 신변에 위협이 갈 가능성. 없다고 확신할 수 있냐?”
“…그, 그, 그건.”
가슴속에만 품고 있던 의문점들을 늘어놓았다.
그렇다. 그걸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이브를 살려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브는 수아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냥 임의로 붙인 호칭이 아니야. 이브는 확실하게, 이브를 자기 엄마로 인식하는 중이다.”
“…그, 그렇구나.”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야. 왠지는 몰라도… 이브는 수아와 뭔가, 뭔가가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게다가…….”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이브는 거대한 바위다.
잔잔했던 영원회귀의 수면에 거대한 파란을 일으키는, 아주 거대한 바위. 다른 말로는 폭풍의 핵.
‘다음에도 뭔가 루프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건 분명, 이브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그러니 함부로 죽일 수가 없다.
이브가 인류의 멸망을 막는 데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내 영원회귀의 연쇄를 끊는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열쇠일 가능성이 있다.
“이브는…….”
그런 이유로 죽일 수 없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끝내 입 밖으론 내지 않았다.
아직 강서윤은 내 회귀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안 들릴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래도 이브를 무조건 죽이는 게 맞다고 보냐?”
“…모, 몰라. 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고, 새꺄!”
“그래. 결국 그게 제일 문제인 거야.”
마침 좋은 기회다. 강서윤에게 슬슬 본론을 꺼냈다.
멍하게 풀린 강서윤의 얼굴에 퍼뜩 삿대질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지.”
면전에서 지목당하자, 강서윤이 다시금 표정에 힘을 바짝 넣는다.
나는 목소리를 한층 침중하게 낮췄다.
“지금부터 너한테 부탁할 것도,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다.”
“…부탁?”
“이브의 신체를 분석할 능력이 될 만한 사람, 그러면서 입도 아주 무거운 사람. 한 번 알아봐 줘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의 시선은 방 안의 이브에게 향했다.
이브도 마침 우리 쪽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브는 베란다 유리문 안에서 방실거리며 인사를 해왔다.
“……!”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 소리친다. 물론 베란다 문에 가로막혀서 들리지는 않았다.
그쯤에서 다시 강서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을 알아봐 달라니. 내가 뭘 어떻게?”
서윤은 그새 한층 심각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도 한층 표정을 무겁게 굳혔다.
“넌 서열 8위의 오버 랭커잖아. 헌터 협회에 좋든 싫든 깊게 연관이 돼있겠지.”
“그건, 그렇긴 한데.”
“그만큼 협회 사정에 해박할 거고, 인맥도 여러모로 넓잖아. 아니냐?”
“그야. 마, 만년 말단인 너보다는 뭐…….”
강서윤이 시선을 피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래. 그 해박한 업계 사정 중엔, 극비 중의 극비인 ‘슈레더’도 있다. 강서윤은 그 점이 켕겨서 저렇게 주저하는 것일 테다.
어쨌든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네 말대로야, 나는 한낱 D급짜리 말단 헌터라고. 협회에선 인맥도 없고 발언권도 없어. 그냥 발에 채는 엑스트라 1에 불과하니까.”
사실 발언권이 있었어도 딱히 상종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협회와 관련한 문제는, 이제 웬만하면 강서윤에게 전적으로 맡길 생각이었다.
강서윤은 괜히 S급 오버 랭커가 아니다.
일 하난 시켜놓으면 기깔나게 잘하니, 실패할 걱정도 할 필요 없다.
“…수아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치트키를 좀 섞었다.
흠칫. 수아 얘기가 나오자, 서윤이 곧장 눈을 부릅떴다. 반응이 지금까지와는 천양지차였다.
역시 치트키야, 성능 확실하구만.
“그리고 이건, 오버 랭커인 너한테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이 세상에서 너한테만 부탁할 수 있는 일이야.”
“으, 으으…….”
“수아의 안전을 위해서. 해줄 수 있겠냐?”
강서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행색이었고,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살살 저었다.
“저 던전 생물… 이브랬나? 쟤가 수아의 목숨을 위협할 가능성은?”
“이브는 수아한테 아주 순종적이야. 자칭 딸내미라고. 위해를 끼칠 만한 행동은, 전생 통틀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흐음. 그건 확실한 거 맞아?”
“지금까지 내가 본 바로는.”
“아… 미치겠네, 진짜.”
강서윤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미간에 골을 깊게 패고 연신 신음을 흘린다.
그렇게 심사숙고하길 잠시. 결국, 그녀는 호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알겠어! 해주면 되잖아! 내가 함 알아볼게! X바!”
“그래, 고맙다.”
“하아… 존나 피곤해, 진짜로.”
강서윤은 머리를 싸매더니, 결국 그 자리에 무너지듯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바닥을 쳐다보며 혼자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친구 새끼는 갑자기 미래인이라 그러지, 여동생한테 외계인 애새끼 생겼다 그러지. 일하다 말고 갑자기 끌려와서, 이게 뭔 날벼락이냐. 진짜…….”
어지간히도 자기가 처한 상황이 어이가 없는 듯하다.
거, 혼란스러운 와중에 미안한데. 내 요구는 아직 하나가 남아있다.
“이브의 연구원을 찾아볼 때 말이야, 겸사겸사 좀 부탁할 게 있는데.”
“뭐! 또 뭐! 여기서 또 뭐!!”
고개를 치켜들고 바락바락 소리치는 서윤.
살벌하구만. 3일 굶은 길냥이 마냥 앙칼지기 짝이 없다.
행여나 물리지 않게 조심하며 계속 말했다.
“어려운 건 아니야. 옛날에 협회에 돌았던 소문을 하나 알고 싶다.”
“…소문? 무슨 소문?”
뜬금없는 부탁에 눈을 끔벅이는 강서윤.
나는 그녀를 진지하게 내려다보며, 뇌리에 각인된 두 이름을 읊조렸다.
“로즈 휴스턴, 애덤 크로스.”
주사위는 던졌다.
이번 생은 과연 몇의 눈금이 나올까.
이번에야말로, 내 상식을 박살 내고 7이 나와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면 지나친 욕심인가?
“카일 인더스트리라는 회사 소속의… 두 연구원에 대한 소문이다.”
내가 던진 주사위인데, 결괏값을 스스로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약간은 긴장도 된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좋아. 그러니, 꼭 알아봐 줘. 부탁이다.”
그리고.
약간의 긴장과는 비견할 수도 없을 정도로. 벅찬 기대감이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세차게 맥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