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1)>
에티는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테이블로 돌아가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황금빛 코인이 들려있었다.
“좋아, 좋았어! 바로 시작하자, 예이!”
팅!
에티가 곧장 코인을 하늘 높이 튕겼다.
코인이 회전하며 일정 높이까지 내려온 순간. 가볍게 낚아채 테이블에 내려찍었다.
“선택권은 양보할게?”
에티가 선뜻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웃음기 가득한 눈썹을 슬쩍 튕겼다.
“코인엔 여신의 그림이랑 사신의 그림이 있는데. 어느 쪽?”
전생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프레이즈였다.
그리고 나는 수십 번이나 반복된 그녀의 호의를, 절대 거부하지 않는다.
“사신으로 하지.”
“응, 그래! 그럼 나는 자동으로 여신이네!”
에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장 기대에 찬 얼굴로 손바닥을 치웠다.
한쪽 눈은 울고, 한쪽 눈은 웃는 기괴한 여인의 그림이 등장했다.
“여신이다! 내가 이겼어!”
에티가 방방 뛰며 기뻐한다.
혹시나 내가 의심할 거라 생각한 것인가. 그녀는 기뻐하던 와중에 코인의 반대편 그림도 보여줬다.
“자, 봐! 사신은 이거야! 정 못 믿겠으면 아저씨가 직접 해도 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낫을 든 해골 그림.
누가 봐도 그쪽이 사신 맞다.
‘이번엔 졌군.’
코인토스는 무작위의 산물. 신이 굴린 주사위다.
누가 처음에 고르든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수십 번 반복한 나조차 모른다.
전생에서 이 코인토스의 결과? 질 때와 이길 때가 거의 반반이었다.
‘사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에티도 선뜻 나한테 순번을 양보한 거다.’
에티는 보기보다 엄청, 승부욕과 자존심이 세다. 저렇게 헤실거리는 것도 자기가 유리한 상황일 때뿐이다.
저년 면상은 곧 악귀 나찰처럼 일그러질 예정이다.
“그럼 첫 게임은 내가 골라도 되는 거지?!”
“그래라.”
“으음. 고민되네? 뭐로 할까아…….”
턱을 쓰다듬으면 한참을 고민하던 에티.
나는 에티가 무슨 게임을 고를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딱히 아무런 기대도, 걱정도 하지 않은 채 결정의 순간만 기다렸다.
그녀가 이내 아, 하는 짧은 탄성을 흘렸다.
“그냥 가위바위보 할까? 삼세판으로.”
역시. 이번에도 똑같았다.
처음에 에티가 고르는 게임은 무조건 가위바위보. 그렇게 정해져 있다.
30번 가까이 에티와 게임을 해봤고. 그중 20번 정도를 그녀가 먼저 게임을 골랐다.
예외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좋다. 그렇게 해라.”
“으응! 좋아 좋아! 첫 게임이니까, 좀 쉽고 간단한 걸로 하고 싶었거든!”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치?! 여윽시 독심술사! 뭘 좀 아네, 아저씨!”
아무렴. 내가 뭘 좀 알지.
너무 많이 알아서 너한텐 문제일 정도다. 새꺄.
‘일단 1승. 가볍게 챙기고.’
가위바위보는 코인토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완전히 무작위가 지배하는 게임이 아니다.
가위. 바위. 보. 세 가지 중 하나를, 참가자가 직접 골라서 내야 하는 게임이지.
‘사람이. 에티가 직접 고른다.’
다른 부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회귀자인 나한테는 그 부분이 중요하다.
‘그러니 이번 생의 너도,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거야.’
에티의 확실한 의지가 깃든 행동.
거기에 내가 약간의 트리거를 섞어, 전생과 똑같이 반복한다.
그러면 그때부턴 필연의 영역이 된다.
필연. 운명은. 아무리 회귀가 반복돼도… 절대 변하지 않지.
[자자! 그러면, 관중 여러분! 누가 이길지 베팅 시작해 주세요!!]
에티가 신나서 목청을 높인다.
철컥. 전광판에 내 면상이 사라지고, 대신 대문짝만한 숫자가 표시됐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의 앞에 동시에 패널이 하나 떠올랐다.
[남은 시간: 1분]
[남은 시간: 0분, 59초]
[남은 시간: 0분, 58초]
…….
…….
베팅 시간제한의 표시이다.
나름 목숨이 달린 문제였지만. 깊게 고민할 틈도 주지 않는 에티였다.
1분. 짤막한 생명의 도화선이 순식간에 타들어 간다.
[시간 다 될 때까지 안 고른 사람은, 그냥 포기하는 걸로 칠게?]
째깍째깍째깍.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초침 소리가 적막을 강타한다.
이 베팅에서 ‘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내 주변에 널브러진 무수한 시체가, 이미 몸으로 말해주는 중이었다.
“이, 이런, X발!”
“하… X발, X발X발!! 몰라, 나도! 이제 모르겠다……!!”
“살 수 있다… 자, 잘만 맞추면… 제발! 제발! X발, 제발!!”
다들 패닉에 빠져 웅성대는 한편. 눈을 질끈 감으며 패널의 어딘가를 꾹 눌렀다.
삐―익! 곧 전광판에서 긴 경고음이 들렸다.
[끝! 거기까지! 베팅 종료!!]
에티가 손날을 내려치며 확성기로 외친다.
순간 여기저기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는 한편. 전광판에 새로운 숫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베팅 결과]
투표 결과의 표시였다.
[생존한 관객 수: 1만 1,204명]
[투표한 관객 수: 9,938명]
[플레이어의 득표수: 4,667명]
[나의 득표수: 5,271명]
결과는 에티의 간소한 우세.
놀랍게도 같은 인간인 내가 졌다.
나로선 딱히 놀라울 거 없는 결과다. 정확한 수는 항상 달랐지만, 관객들은 언제나 자기 목숨 앞에선 한없이 냉정했으니까.
‘나 같아도 첫 게임은 던전 마스터한테 걸겠다.’
여기는 에티의 홈그라운드.
가위바위보를 제안한 것도 에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에티가 뭔가 필승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국뽕 베팅… 아니, 인간뽕 베팅이 어디 있냐.
‘근데 그런 거 없다. 얘들아.’
에티는 딱히 자기가 유리해서 가위바위보를 고른 게 아니다.
저년은 잔인하고 유치할지언정 솔직하다. 아까 본인이 직접 밝힌 ‘첫 게임이니까 쉽고 간단한 걸 골랐다.’ 이게 진짜 이유다.
그러니까… 에티 코인 탄 너희들. 줄 잘못 섰다.
이 여자 화성 못 간다. 너희 이제 몇 분 후에 다 뒤져.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으음. 천 명이 넘게 안 골랐네?]
에티는 적잖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기권표가 많았기 때문이겠지. 평범한 게임 마스터라면 여기서 재베팅의 기회를 주겠지만, 에티는 그런 게 없다.
[이제 재밌어지는 참인데. 시작부터 많이 줄어서 아쉽다. 그치?]
번쩍. 에티가 통보를 마치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 특유의 제스처. 전에도 그녀가 손날을 내리치자 사람이 터져 죽었다.
지켜보던 관중들도 그 정돈 알고 있었다.
“자, 잠깐! 잠깐만!!”
“고, 고민하느라 늦었어! 한 번만! 1초만 더 기회를……!”
모든 항의는 묵살된다.
에티는 자비 없이 손날을 내리쳤다.
푸화아악!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피 분수. 1천 명이 넘는 인간이 동시에, 휑해진 목에서 핏줄기를 뿜어냈다.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악! 이, 이, 이게 뭐야아아아!!”
아비규환. 비명이 광장에 가득 찬다.
핏방울이 사방에 자욱해진다. 핏빛의 안개가 스멀스멀 낄 정도다.
지옥도였다.
“자. 베팅도 끝났겠다!”
손바닥을 탁탁 털어낸 에티가 중얼거렸고. 다시 테이블에 다소곳이 앉았다.
특유의 잔인한 미소를 틔운 그녀가 주먹을 흔들거렸다.
“이제 시작할까? 가위바위보.”
그때까지. 나는 눈썹 하나 까딱 않은 채 이브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가 이 제안을 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 빠지겠다. 빨리 시작하자.”
나의 동의가 떨어진 그 순간.
땡땡땡! 복싱의 공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전광판에서 울려 퍼졌다.
[양측 참가자 모두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게임.
에티와의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다는 통보였다.
* * *
이렇다 할 심리전은 없다.
에티는 솔직한 만큼 직선적이다. 그리고 시원시원하다.
곧바로 가위바위보 본편이 시작됐다.
“안 내면 진 거!”
에티는 주먹을 치켜들고 우렁차게 목청을 높였다.
나는 나른하게 반쯤 뜬 눈으로,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가만히 주시했다.
“가위바위…….”
한껏 당긴 에티의 주먹이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한참 전부터 생각해 놨던 대로, 손 모양을 만들었다.
“보!”
처척.
나와 에티가 동시에 손을 뻗었다.
에티는 보. 그리고 나는… 가위였다.
“어.”
에티가 멍하니 자기 손을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내 얼굴도 쳐다본다.
이내 배시시, 멋쩍게 웃으며 손을 물렸다.
“아우, 져버렸다! 아저씨가 이겼어!”
“그렇군. 운이 좋았다.”
“아이, 진짜! 어쩐지 가위가 나올 것 같더라니!”
에티는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진짜 많이 아쉬워하는 행색이었다.
길게 시간 끌 필요 있나. 나는 곧장 주먹을 쥐고 그녀의 앞에 흔들었다.
“바로 다음 판 가지.”
“아, 응! 잠깐만.”
에티가 팔을 배배 꼰 채로 두 손을 깍지 끼더니. 깍지 끼운 손안을 들여다본다.
이내 그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였어! 이번엔 분명해!”
보이긴 뭐가 보여. 네가 개처발리는 미래라도 보이더냐.
에티의 같잖은 미신 흉내에 헛웃음을 잠깐 흘렸다.
“자, 간다! 가위바위…보!”
첫판보다도 뜸을 안 들였다. 우리는 곧장 손을 뻗었다.
에티는 가위. 그리고 나는, 똑같은 가위였다.
“어, 비겼네?”
에티가 손으로 만든 가위를 까딱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나는 괜히 그녀의 행색을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겼군. 다음엔 이겨주마.”
“누가 할 소리를! 바로 가자고! 가위바위…보!”
처척. 다시 한번 손을 뻗는다.
나는 이번에도 또 한 번 가위. 그리고 에티는… 주먹이었다.
졌다. 나의 패배였다.
“…이겼다.”
에티가 냈던 주먹을 회수하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겼음에도 그리 기쁜 눈치가 아니다. 그녀는 의아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아저씨?”
“왜.”
“왜 계속… 가위만 내는 거야?”
“…….”
어느새 분위기가 급변해 있었다.
에티는, 어느 때보다도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이게 장난 같아? 내가. 우스워?”
뿌드득, 우드득!!
엄청난 압박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흡사 이 배리어 안쪽만, 중력이 수십 배는 강해진 듯하다.
콰드득! 압력을 견디지 못한 테이블이 가장 먼저 산산조각 났다.
‘…역시. 장난 아니군.’
테이블 다음은 내 차례일 테다.
지금도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른팔은 그새 어깨부터 뼈가 죄다 으스러졌는지, 흉하게 찌그러져 흐느적거렸다.
‘존나 아프다. X발.’
입을 꾹 닫고 에티를 마주 봤다.
입 닫은 이유는 별게 아니다. 입 열면 곧장 소녀틱한 튀어나올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나는 이 악물고 평정을 가장했고. 여전히 나른하게 뜬 눈으로 에티를 쳐다봤다.
“나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가위바위보에… 임하고 있다.”
“…뭐가 어째?”
스르륵. 압박하던 무형의 기운이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박살 난 몸을 리스토레이션으로 수복했다.
‘이브는…….’
뒤늦게 이브에게 생각이 미쳤다. 퍼뜩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채기 하나 없는 이브가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응? 아빠, 왜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맞네. 얘 모든 스킬 면역이었지. 걱정해 줘서 손해 봤다.
어쨌든 지금은 에티의 화를 풀어줘야 한다. 나는 천천히 해명하기 시작했다.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하는데. 나는 지금 누구보다 진지하다.”
“근데 왜 계속 가위만……!”
“너한테 저주를 거는 중이지.”
“…뭐어? 저어주우?”
“그래. 저주.”
사실 저주라기 보단 간단한 심리전이다.
나는 방금 따끈따끈하게 수복한 오른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구부려 가위를 만들어, 에티 앞에 까딱거렸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가위만 낼 거다.”
“뭣……?!”
“하지만 넌. 나에게 결국 지게 될 거다. 이 점을 꼭 명심해라.”
“그,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음에 뭐 낼지 미리 말하기.
비단 목숨을 건 가위바위보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가위바위보에서 많이들 쓰이는, 그런 심리전이다.
나는 입매를 비틀어, 혀로 땀을 훔쳤다.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
지금까진 나도 에티가 무엇을 낼지 알 수 없었다.
가위만 줄창 내는 동안 3연패를 해버리는 최악의 상황만 면하면 됐는데. 솔직히 약간의 운빨이 따라주긴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운이 아닐 거다. 던전 마스터.’
세 번 연속 같은 모양을 낸다.
내가 3연패를 해서 게임이 터지지 않는 이상, 에티는 무조건 격분한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같은 모양을 내겠다고 선언한다.
“넌 이미 저주에 걸렸다.”
방금 내 발언으로 완성되었다.
에티의 행동을 조종하는 트리거.
이젠 그냥 기억하는 대로만 움직이면… 첫 번째 게임은 승리 확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