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9)>
자기 직전의 일이었다.
오늘따라 잠이 안 와서, 테이블 위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멀찍이 소파에 누워있던 이세라가 말을 걸어왔다.
“…정용 씨. 자요?”
“잔다.”
잤으면 대답을 못 하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묻는 거냐.
뭐 이런 심오한 뜻을 함축한 대답이었다.
“안 자잖아요. 비꼬는 거예요?”
너무 한심하다는 듯이 대답했나. 이세라가 퉁명스럽게 꿍얼거렸다.
나는 괜히 뒤척이며 화제를 돌렸다.
“용건이 뭐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근데 자는 중이면 못 물어보겠네요.”
“잠꼬대로 대답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날씨가 맑을까요?”
이세라가 대뜸, 별안간 그런 것을 물어왔다.
갑자기 분위기 기상청. 정작 진짜 기상청도 망해버린 마당에 이게 뭔 짓거리일까.
의문은 들지만. 일단 성심껏 대답은 해줬다.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미래시 스킬한테 물어봐라.”
“그게… 어째선지 보이지가 않아서요.”
“안 보인다고?”
“네. 저도 그래서, 의아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내일의 날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나는 나름 이세라와 길게 교류를 해왔다. 그녀가 미래를 못 보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허.”
그렇구나.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내일 날씨에 이브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됐다거나. 아니면…….”
나머지 한 가지 가정을 말하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뒤는 이세라가 이어서 말했다.
“제가 모종의 이유로 죽거나. 그렇죠?”
“…그렇지. 너는, 네가 죽는 미래는 읽지 못하니까.”
“저, 내일 죽는 걸까요?”
그건 곤란하다.
아주 심각하게 곤란했다.
“그럴 리가…….”
현재 바깥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이세라다. 그녀가 강수아처럼 생각 없이 털레털레 싸돌아다니다 뒤질 일은 없다.
그렇다는 말은 그녀가 가만히 있어도, 이 지하 술집 쉘터가 누군가에게 침입을 받는다는 소리가 된다.
“정용 씨. 이 가게에 배리어를 둘러놓으셨다 그랬죠?”
“그랬지. 지금도 둘러져 있다.”
“그 배리어는… 접근하는 모든 생물을 막아주나요?”
“그렇진 않아. 모든 던전발 몬스터의 접근과 공격만 막는다.”
‘인간’까지 막아버리면 수아 본인도 그 배척대상에 포함된다. 그래서 인간의 출입까진 막을 수가 없다.
‘그래. 그랬었지.’
그러니 만약 이곳이 누군가에게 뚫리게 된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인간. 혹은 인간들.
그것도 이세라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인간들일 것이다.
“…레드 스컬.”
나는 홀린 듯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놈들이 분명했다.
이세라를 죽일 정도의 강력한 폭도 세력은, 1천 개 전생을 죄다 뒤져봐도 그놈들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곳을 알고 있는 것도 그렇지.’
이곳은 이세라가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비밀리에 운영하는 칵테일 바.
나 같은 일반 시정잡배는 평생 존재도 모르고 살아갈 공간이다.
‘하지만 레드 스컬이라면……!’
다른 데는 몰라도 그 단체는 이곳을 알 수도 있다. 아니. 알아야 정상이다.
잠이 확 달아났다. 나는 테이블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지금 바로 이동한다. 수아와 이브를 깨워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야…….”
“그러지 마요. 정용 씨.”
내 부산스러운 행동을 이세라가 저지한다.
어느새 그녀도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상태. 가게 한복판에서 우왕좌왕하던 나를 빤히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가 측은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냥 자게 내버려 둬요. 깨우실 필요 없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저한테 묘안이 생각났어요. 그러니까 괜찮을 거예요.”
“…묘안?”
“네. 이대로만 하면 분명… 아앗!”
이세라가 말하다 말고 아찔한 탄성을 흘렸다.
안대를 쥐어 싸맨 채 한동안 신음하더니. 그녀의 얼굴이 대번 화색이 되었다.
“아아, 보여요! 이제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뭐가 말이냐.”
“바뀌었어요! 제가 떠올린 해결책 덕분에, 미래가 바뀌었나 봐요!”
“…진짜냐?”
“그럼요! 후우, 엄청 쫄았네. 꼼짝없이 죽어야 될 줄 알았어요!”
이세라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멍하니 머릿속에 입력했고. 과장스럽게 기뻐하는 이세라를 지그시 쳐다봤다.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가.”
전생에서 이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는 회귀자지 예언자가 아니다.
나로선 진짜 예언자인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든 믿지 않든 어차피 검증할 방법이 없다.
“정말로, 괜찮아진 거냐……?”
“네! 진짜라니까요! 속고만 사셨나?”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 형편 좋은 묘안이 있다면, 굳이 나한테 상담할 것도 없이 그대로 행하면 될 텐데. 이세라는 난데없이 자다 말고, 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지.
나는 생각이 짧은 병신이니까. 이제나저제나.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이세라가 이죽거리며 목청을 높였다.
과장스러운 확신이 깃든 호언장담이다.
“예언자인 내 말이니까, 안심하고 믿으세요!”
최소한의 보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맨 처음 이세라가 던졌던 질문에 대답해 주기로 했다.
전생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추측한, 한파고(?)의 일기예보였다.
“내일은, 아마 쨍쨍할 거다.”
결과 먼저 말하겠다.
우리가 호언장담 내뱉었던 예언들. 뭐 하나 맞은 게 없었다.
회귀자와 예언자 명패가 무색할 수준이다.
* * *
다음 날 저녁 7시 반쯤. 9차 붕괴가 일어난다.
나는 그 시간이 올 때까지 수아와 이브, 이세라와 함께 적당히 노가리나 깠고. 7시쯤 되어서 느지막하게 출근을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굵은 비가 쏟아졌다.
“후에에. 아빠아. 건물, 짱 커!”
“그래. 그렇구나.”
“창문이 엄청 많아! 아빠, 저거 다 집이야?”
“그래. 다 집이다. 사람은 많이 없어졌다만.”
“헤에…….”
중랑구의 중랑구청 주변, 평범한 아파트 단지였다.
랜드마크가 아니라 실망했나? 이 시기쯤 되면 당연히 웬만한 랜드마크엔 사람이 잘 모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랜드마크들의 마력 잔향도 많이 옅어지게 된다.
‘9차 붕괴쯤부턴, 이런 느낌도 꽤 있었지.’
아파트 단지 같은 상주인구 밀집 지역에 붕괴가 일어나기도 한다.
수많은 목숨이 서울에서 죽어나가고 탈출했건만. 지금까지 축적된 인간의 잔향이 워낙 짙다 보니, 지방보다 서울에서 계속 게이트가 터지는 거다.
‘뭐, 오히려 좋아.’
내 입장에선 땡큐긴 하다. 멀리 갈 일이 없으니까.
2차의 월미도도 그렇고 3차의 천안도 그렇고. 지방 출장 간다고 장거리 비행하거나 텔레포트 하는 거,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다.
“…온다.”
잡생각 좀 하고 있자니.
마침 시간이 되었다.
―파지지지직!!
이젠 지겨울 정도인 게이트 붕괴. 시작되었다.
허공이 찢겨지며 발생하는 스파크와 굉음. 엄청난 충격파와 새파란 마력 파동이 사방을 향해 퍼져나간다.
불쑥. 무언가가 공간의 균열 속에서 빼꼼 튀어나왔고, 순식간에 팽창한다.
“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폭연이 터졌다.
그 안에서 어른거리는 실루엣이 얼핏 보인다. 나는 단박에 그것의 정체를 가늠해 냈다.
‘골치 아픈 거 나왔네.’
거대한 장난감 성이었다.
알록달록한 블록으로 짜 맞춘 듯한 장난감 성. 아기자기한 외관이 무색하게, 규모는 아파트 단지 전체보다 거대했다.
처음에 들린 폭음은, 장난감 성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일거에 깔아뭉개는 소리였다.
“헤에, 이뻐어…….”
이브가 장난감 성을 보고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왜 또 있지도 않을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고 그러냐. 빌어먹을 외계인 꼬마야.
“이브. 정신 차려라. 지지다. 지지.”
“으, 아응!”
내가 등을 토닥거리자, 그제야 이브의 붉은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안고 있던 이브를 바닥에 사뿐히 내려놨다. 그리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오면서 나눴던 거래는 아직 기억하냐?”
“으응. 1시간, 핑크 맘마 네 개?”
“그거 없던 일로 하자.”
“아응?! 어, 왜애~?!”
“왜냐면…….”
우르르릉!
문득 거대한 땅울림이 일었다.
장난감 성 방향이었다. 나와 이브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나는 하던 말을 끝맺었다.
“…여기 주인은, 힘써서 죽이는 부류가 아니라서.”
땅울림의 정체는 장난감 성의 거대한 성문이었다.
성문이 어느새 힘차게 열려있었다. 그 안에 도열해 있던 무수한 병정들이, 일제히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장난감 병정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색의 병정들. 아니, 병정 장난감들.
―진격! 돌격하라!
방금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온몸에서 반질반질 윤이 나고, 꼬나쥔 플라스틱 소총은 소름 돋도록 정교했으며. 온몸에선 생동감이 넘친다.
―여왕님을 위하여!!
아니. 생동감 넘치는 거야 당연하겠군.
크기가 인간만 한 장난감 병정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으니.
“히이이! 아빠! 메론 맛 사람! 대따 많아!!”
바글거리는 장난감 병정의 공세에 이브가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플라스틱 장난감 군대는 시작에 불과했다. 쿠구구궁! 묵직한 굉음과 함께 무언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올랐다.
―방해자는 섬멸. 생명체는 최대한 생포.
―명령을 이행한다. 여왕님을 위하여.
한마디로 표현하면 간담이었다.
간담 프라모델을 수십, 수백 배 늘여놓은 듯한 이족 보행형 로봇들.
등에 달린 날개에서 푸른 입자를 쏘아 하늘을 날고, 양손에 광선검과 거대한 입자포를 달고 있다.
―퀘에에에엑!
그 외에도 관절이 삐거덕거리는 거대한 플라스틱 공룡이라든가.
―끼에에에엑!
누덕누덕 기워 붙인 키메라 동물 인형 부대.
―히히히힝!
―히하아―!
리볼버와 올가미를 든 카우보이 인형 부대까지.
별의별 거대 장난감 새끼들이 다 튀어나왔다.
―우오오오오!
―여왕님을 위하여!!
놈들이 성난 쥐 떼처럼 전방으로 달려나가며 일제히 외친다. 여왕님을 위한다고.
그 ‘여왕님’이 나의 타깃. 오늘의 던전 마스터 되시겠다.
“이런.”
슬슬 놈들의 공격 범위에 내가 들어오려고 한다.
나는 즉각 판단을 마쳤다.
“일단 숨자. 이브.”
“으엣?”
나는 이브에게 서둘러 광학 미채 슈트를 입혔고. 나 또한 은폐장 스킬을 사용했다.
치지직. 우리의 신형이 동시에 홀연히 사라졌다.
‘이건 다행이군. 예상대로다.’
투명화된 이브의 신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이브가 무효화 시키는 건 스킬뿐인 듯하다. 광학 미채 슈트의 효과는 이브한테 직접 적용되는 게 아니라 그런가. 제대로 투명화가 먹혔다.
“조금 위로 가서 기다리자.”
“으햐우!”
나는 이브를 안아 든 채 하늘로 솟구쳤다.
이브는 갑자기 몸이 붕 뜨자, 어김없이 즐거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공겨어어억!
쿠르르!
발아래로 무수한 장난감 군사가 스쳐 지나간다.
놈들의 일사불란한 군홧발 소리가 들려온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렸다.
―파괴해라! 건물에서 인간들을 꺼내!!
콰콰콰콰쾅!!
놈들은 일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장난감 병정들이 꼬나쥔 소총을 갈기고, 바주카를 쏘고, 야포(野砲)를 발사한다.
“꺄아아아악!”
“끄아악! 흐아아아악!!”
거대로봇이 입자포를 쏠 때마다 빌딩이 하나씩 무너져 내렸고.
그걸 피해 혼비백산 도망가는 사람들을, 누더기 동물 인형과 플라스틱 공룡들이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히이하아아!
―캬하하하핫!
카우보이 인형들은 올가미로 사람 목을 조인 채, 장난감 말을 타고 사방을 달렸다.
다들 생긴 건 동심 그 자체이건만. 동심의 ㄷ자도 찾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빠아. 사람들 아파해.”
문득 내 품에서 관망하던 이브가 중얼거렸다.
스륵. 그녀는 눈살을 찡그리며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아빠, 구해주지 않을 거야?”
“어. 안 구할 거다.”
“아빠아. 힘 세잖아. 왜 안 구해줘?”
“힘 센 사람의 의무를 다해야 하니까.”
“…으응?”
이브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구태여 설명해 줄 생각은 없다. 마침 모든 공격대가 빠져나가고, 장난감 성에는 최소한의 수비 병력만 남았다.
바로 지금. 이 타이밍을 기다렸다.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 이브.”
1회차 때나 1천회차 때나. 내 일은 사람들 지키는 것이 아니다.
던전의 신속한 폐쇄. 던전 마스터를 한시라도 빨리 죽이는 게, 곧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되는 법이다.
“아빠는 일하러 간다.”
투하악!
투명화를 풀지 않은 채 비행을 속행한다.
곧장 일직선으로. 장난감 성의 성문을 향해 주파한다.
“흐응. 아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히히.”
이브는 그 와중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
비행하다 말고 그녀를 흘깃 눈에 담았다. 나를 올려다보며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흐.”
피식.
덩달아 헛웃음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