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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7화 (37/235)

37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3)>

“뭐야. 이, 이 X발. 정신 나간 강함은……!”

“내, 내가 알던 묘지기 광대가 아니야. 저건……!”

혹자는 묘지기 광대의 정신 나간 강함에 그런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이 옳다.

‘실제로 강해졌지. 엄청.’

이 던전 <유령의 축제>는 영원회귀 이전에도 세계 도처에서 빈번하게 붕괴했던 던전이었다. 그리고 당시엔 몬스터들이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심지어 영원회귀 시작 후에도, 초창기에 붕괴하면 저 정도로 강하진 않다.

[몬스터 정보]

[명칭: 묘지기 광대]

[체력: 27 마력: 33]

[힘: 21 민첩: 22 지능: 7]

원래의 묘지기 광대 스테이터스는 이렇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쏟아져 나온 묘지기 광대는, 대충 이렇다.

[몬스터 정보]

[명칭: 묘지기 광대]

[체력: 58 마력: 74]

[힘: 43 민첩: 37 지능: 12]

믿기지 않는 수준의 스펙 업.

지금 묘지기 광대는 한 놈 한 놈이 1차 붕괴의 드래곤 급이고. S급 헌터와 맞먹거나 초월하는 무력을 가졌다.

그렇기에 다들 절망하기 바빴지만.

“그나마 8차 붕괴 이후로 안 나온 게 다행이군.”

나는 그 와중에 안도하고 있었다.

영원회귀 속에서 붕괴되는 던전들은 뒤로 갈수록 강화가 된다. 정확히는 특정 경계를 기점으로 한꺼번에 스펙 업이 된다.

5차. 8차. 그리고 12차 붕괴.

이 경계를 기점으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몬스터라 해도 좋을 정도로, 던전 내부의 모든 몬스터가 지나치게 강화되어 등장한다.

‘역시 다른 것보다도. 다구리가 제일 무섭단 말이야.’

<유령의 축제>는 잡몹의 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이런 게 후반 붕괴에서 등장하면 아주 곤란하다. 내가 한 번에 살해할 수 있는 개체 수는 한계가 있으니까. 잡몹들의 민간인 학살을 막을 수가 없다.

후반 붕괴에는, 던전 유형에 따라 피해 규모가 백만 명 단위로 차이 날 정도다.

“끄아아아악!! 씨, X발!”

“도망! 8대대! 모두 도망쳐!! 일단 거리를 벌려라!!!”

그래서 수많은 헌터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하는 동안.

우리의 영웅, 레드 저거너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구경만 한 거 아니다.

당연히 나도 붕괴한 던전을 닫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중이었다.

“대체 어디로 갔냐. 빌어먹을 나무토막 년.”

던전 마스터.

묘지기 광대의 컨트롤 타워인 ‘꼭두각시 소녀’를 찾고 있었다.

아수라 지옥도가 되어가는 경복궁 상공. 나는 혈천갑을 두른 채 사방을 빠르게 살폈다.

‘현자의 눈.’

던전이 강화됨에 따라 스펙이 상승하는 건 비단 잡몹뿐만이 아니다. 던전 마스터는 오히려 잡몹들보다도 가파르게 능력치가 상승한다.

꼭두각시 소녀의 경우 능력치가 눈에 띄게 올라가진 않는다.

대신 신형을 은엄폐하고 순간이동을 하는 등. 귀찮은 특수 기능이 추가된다.

“…찾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팟! 나는 눈을 번득이며 순간이동을 영창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격변했고. 반파되어 무너져 내린 경복궁 지붕 위에서 다시 등장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쉬리리릭!

사복검을 변형시켜 채찍처럼 길게 휘둘렀다.

덜컥. 보이지 않는 뭔가가 늘어진 칼날 끝에 걸렸다.

“인형 새끼가 대가리 굴려봤자지.”

여기에 있을 줄 알았다.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손목을 꺾어, 채찍의 궤도를 순식간에 틀었다.

촤르륵!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채찍이 마구 휘감기 시작했다.

―아, 윽.

그리고 튀어나오는 나직한 신음성.

치지직, 치직. 사복검이 휘감은 무언가가 거슬리는 노이즈를 흘린다. 이내 공간이 일그러지며 감춰졌던 형상이 서서히 드러났다.

한계 이상의 충격으로 은폐장이 와해된 것이다.

―어, 어떻, 게?

드러난 형상은 풍성한 금발의 여성형 목각 인형.

이 던전의 던전 마스터, 꼭두각시 소녀였다.

―위장. 완벽…했는데.

꼭두각시 소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끼기긱, 끼긱. 소녀는 사복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이미 반파돼 있었다.

―아, 파. 놔… 놔줘. 너무, 아파요.

온몸의 관절은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면상은 움푹 함몰된 데다 눈알 한쪽이 덜렁 튀어나왔다.

―당신. 강한… 사람? 나보다, 강한, 사람?

꼭두각시 소녀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표정한 목각 인형임에도, 어조와 표정에서 공포가 읽혔다.

―무서워. 당신, 은, 너무, 무서워.

“어쩔.”

뿌드드득!

사복검을 잡아당겨 더욱 세게 조였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불쾌한 소리만 지껄여대긴. 빌어처먹을 인형 년이.

―아, 으… 그악.

콰장창!

한계까지 조여든 사복검이 꼭두각시 소녀를 산산조각 냈다.

와해된 인형의 잔해가 무너진 경복궁 위로 흩어진다.

[제53던전 ‘유령의 축제’의 던전 마스터, ‘꼭두각시 소녀’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던전 마스터는 사망했다.

나는 코웃음을 한 번 쳐준 후. 사복검을 다시 원래 형태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 아아아……!”

“축제가, 끝났다… 끝나버렸어어…….”

묘지기 광대들이 학살을 멈췄다.

그들은 새빨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일제히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꼭두각시 소녀가 죽어버린 경복궁 지붕 위. 바로 그 자리였다.

“아아. 아가씨… 이제 우릴 위해, 춤춰주지 않는 거냐?”

한 광대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끼기긱. 끼기기긱. 모든 묘지기 광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발작을 시작했다.

시작됐다. 놈들이 준비한 마지막 피날레가 벌어지려 한다.

‘이건 나도 맞으면 치명적이다.’

전생과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넉넉잡아 전술핵에 맞먹는 위력이 나오겠지.

곧바로 탈출 준비를 개시했다.

‘강서윤은… 됐다.’

지금 이 전장엔 강서윤도 있다.

하지만 강서윤은 어차피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든.

그녀를 어떻게든 피신시켜 보려다 나까지 죽은 적이 얼마나 많던가. 이젠 그냥 포기해 버렸다.

“이번 생은 작별이구나. 서윤아.”

민간인 대피를 위해 잠깐 이탈하는 거면 모를까. 강서윤은 절대 이 전장을 이탈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가씨. 우리 귀여운 아가씨.”

“이것이 마지막이다.”

“함께 피날레를 맞이하자.”

우지직, 뿌드득!

광대들은 곧 자기 머리통을 제 손으로 뽑아버렸고. 뽑아낸 머리를 하늘 위로 힘껏 던졌다.

수백 개의 광대머리가 핏줄기를 흩뿌리며 허공에 수놓인 순간.

‘텔레포트.’

쉬쉭.

나는 곧장 혈천갑을 해제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의 빛에 휩싸여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찔해지는 시야와 정신.

“카하하하하!”

“아카카카카칵!!”

그 사이로 광대들의 머리통이 찢어지는 광소를 쏟아냈다.

“최후의,”

“불꽃놀이다!!”

놈들의 고함 소리가 귓가에 닿았을 땐, 이미 텔레포트가 완료된 상태였다.

나는 우리 집 거실 한복판에 도착해 있었다.

“어? 오, 오빠?”

갑자기 허공에서 솟아난 나를 보고 수아가 엄청나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쿠구구구!!

멀찍이 서쪽 방향에서 심상치 않은 굉음이 발생한다.

나와 수아가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아가 아연실색한 나머지 더듬거렸다.

“저, 저… 저, 저게, 대체?”

눈이 멀 것만 같은 빛의 폭발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그 장소. 경복궁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폭발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곳으로 즉각 텔레포트를 했냐면.

“숙여라. 수아야.”

“어, 방금 뭐라고… 꺗?!”

저 폭발의 여파가 이 집까지도 닿기 때문이다.

수아를 부둥켜안고 마룻바닥에 바짝 엎드린 그 순간.

―콰콰콰콰쾅!

가공할 충격파. 섬광이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방 전체가 육중하고 격렬하게 진동한다. 진동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아니. 실제로 빌라 전체가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꺄아아악! 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아앗!”

수아는 영문 모를 사태에 고래고래 비명만 질러댔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은 가슴 앞에 꽉 모은다. 마치 신에게 기도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끝났나.”

격렬한 진동이 멎었다.

섬광에 뒤덮였던 시야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수아를 놔주고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베란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워우.

반사적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장난 없군.”

거신병 때와 풍경이 비슷했다.

시야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이었던 것. 사람이었던 것. 그리고 도시였던 것의 황량한 잔해.

그것들만이 도처에 산재했을 뿐이다.

“…세, 세상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수아도 그것을 본 듯했다.

그녀는 터질 듯이 부릅뜬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다. 파들파들 떨리는 눈이 거기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일단 나가자. 수아야.”

넋이 반쯤 나간 수아를 부축하고 집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을 제외한 빌라의 나머지 부분은 무너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 소멸해 버린 수준이었다.

덕분에 집을 나오자 바로 지상층이 반겼다.

“…….”

수아도 나도 한동안 침묵을 지킨 채 사방을 둘러봤다.

뺨에 느껴지는 황량한 바람. 도처에서 진동하는 죽음의 냄새.

창 너머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생생한 현실감이 온몸으로 엄습한다.

“…이건.”

문득 수아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고.

핑글. 그대로 눈알이 휙 돌며 신형이 휘청거렸다.

“꿈이야…….”

덥석.

수아가 쓰러지기 직전에 내가 붙잡았다.

미안하지만 꿈이 아니다. 말해주고 싶어도 기절해 버렸으니, 다음 기회로 미뤄둬야겠다.

나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지.”

청와대를 비롯한 서울시 종로구. 그리고 성북구와 동대문구 서쪽 일대.

어김없이 오늘부로 지도에서 사라진다.

2만 8천 명에 이르는 한국 최정예 헌터 병력과 함께.

* * *

시간은 용서 없이 흐른다.

서울의 구 단위가 일거에 소멸하는 대사건이 있든 말든. 수많은 사람들이 비탄과 공포, 혼란에 잠기든 말든.

어김없이 해는 졌고, 또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오, 오빠.”

느지막한 정오쯤에 수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절박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이내 혼란스러운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여기, 어디예요?”

그럴 수밖에.

여기는 수아가 전에 와본 적이 없는 장소다. 전생에는 꽤 많이 와봤지만.

부엌에서 고깃국을 끓이던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

“오, 오빠네, 집이요?”

“그래.”

“어, 하지만. 제가 알던 오빠 집이 아닌데……?”

“고향 집. 여기 서울이 아니야.”

“…아.”

여기는 충남 예산군의 어느 깡촌 산골 마을에 자리한 단독주택. 서울은 고사하고 현대문명과도 꽤 동떨어진 곳이었다.

수아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계속 물어왔다.

“오빠. 서울 토박이 아니었군요……?”

“아니다. 초등학교 때 올라왔지.”

“여기는 그럼,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건가요?”

“나 혼자.”

“예? 부, 부모님은 그럼?”

“옛날에 죽었어. 둘 다.”

“…아, 아아.”

유년 시절 어머니가 먼저 암으로 죽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쯤 됐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영원회귀가 일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이다.

한 달 전으로 시간이 돌아가도, 둘 다 살아나는 일은 없다.

“모, 몰랐어요. 오빠, 평소에 자기 얘길 잘 안 하니까… 죄송해요.”

“말을 안 하는데 몰라야지. 신경 쓰지 마라.”

퍼뜩 고개를 숙이는 수아에게 손사래를 쳐줬다.

신기한 눈초리로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하는 수아.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아버지가 똥고집을 부려서 이 집을 팔지 않았거든.”

요즘 시대에 통화도 제대로 안 터지는 레전드 촌구석인데.

그래도 부지는 좀 넓으니 팔아 치워서 서울에 전셋집 구하자고 내가 사정사정해도, 어머니와의 추억 운운하면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이성은 팔아 치워서 쓸만한 전셋집 구하자고 사정사정하는데. 내 감성이 아버지와의 추억 운운하면, 팔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낡아빠진 채로 15년 가까이 방치된 집이다.

“덕분에 살았지. 세상이 이 지경이 됐으니.”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미리 준비해 놨던 리모컨을 조작했다.

삐빅. 거실에 방치된 낡고 먼지 쌓인 TV가 켜졌다.

[국립 게이트 재난 대책 위원회에서 전달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훈련 상황이 아닙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건조한 여성 아나운서 목소리. 그리고 거슬리는 라디오 노이즈.

수아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쪽에 갔다.

[2031년 12월 9일, 오전 04시 30분부로 대한민국은 미증유의 국가적 재난 사태와 직면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동년 동월 동일 동시각,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어느 채널을 틀어도 마찬가지다.

창백한 화면에 선명하게 흘러가는 검은 글씨의 향연.

“뭐, 뭐야. 오빠. 저게, 대체…….”

국가 재난 방송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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