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4)>
“뭐, 뭐야. 오빠, 저게, 대체……?”
수아의 가녀린 몸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한다.
“설마. 이거. 아직도 꿈……? 꿈이죠?”
현실 부정이 현재진행형이었군.
나는 한숨을 슬쩍 내쉬었고. 고개를 단호하게 저어 부정했다.
“꿈 아니다. 수아야.”
“아, 아?”
“꿈이 아니다. 이게 현실이다. 한국은 지금 게이트 붕괴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야.”
“그, 그럴, 수가.”
“한국뿐만이 아니지. 전 세계다. 세계 전체가 쏟아지는 게이트 몬스터로 휘청거리는 중이다.”
“…….”
“어제만 세계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알아? 5천3백만 명이다. 한국 인구만 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죽어버렸다고.”
수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저 반응까지도 모두 예상했던 대로다.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
여기가 나의 승부처다.
온몸에 긴장을 바짝 채워 넣었다. 이번 회차에서, 어떤 던전 마스터를 상대할 때도 지금만큼 긴장한 적이 없었다.
“수아야.”
“아. 네?”
나는 목소리를 한층 낮게 깔고, 수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떨리는 수아의 눈을 직면했다.
“넌 날 믿냐?”
“…예? 가, 갑자기요?”
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무 성급했나? 아니. 아니야. 다회차로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분명 지금이 대화를 나누기엔 최적의 타이밍이다.
‘정확히는 지금 아니면 타이밍이 안 온다.’
이대로 놔두면 수아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리니까.
그러지 못하도록 단숨에 몰아붙여야 한다.
“갑자기라 미안한데. 어쨌든, 넌 날 믿냐?”
“그야, 믿죠? 웬만하면요.”
“그럼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리고 믿어줬으면 한다.”
“으응??”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는 수아.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시 한번 재생해 본다.
좋아. 전번 회차들에서 실수하거나 오류가 났던 부분도 전량 수정했다.
일단 지금의 뇌 내 계획상으론 완벽한 시나리오다.
‘어떻게든, 수아를 여기에 정착시켜버려야 한다.’
정해진 운명을 향한 나의 발악.
최고 위험지역인 서울에서 수아를 빼내기 위한 도전.
이번 생에야말로. 그걸 반드시 성공해 보겠다.
* * *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나는 지금부터 약 20일 뒤. 12월 27일의 미래에서 왔다. 수아야.”
단도직입.
내 정체부터 들이밀었다.
전처럼 용궁선녀니 뭐니 장난을 치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굳은 얼굴로 그것을 어필했다.
“오, 오빠. 지금 무슨 소릴……?”
내 진심을 수아도 느꼈음인가.
허탈하게 웃던 수아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다만 곧이곧대로 믿어서 저러는 건 아닌 것 같고. 나를 걱정하는 눈치가 더 컸다.
“오빠. 오빠 정말로 괜찮아요?”
뭐지? 이 새끼 진심인가?
진심이면 좀 위험한 거 아냐?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 거 같은데? 딱 그런 표정이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아무래도 좋다.
‘그대로 강행 돌파다.’
여기서 구구절절 증거를 제시해 봤자 역효과다. 측은한 눈초리만 한층 강해지지.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서울은 지금 한국의 어디보다도 위험하다.”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는 목적부터 말했다.
두괄식으로 설명할 거다. 결론이 먼저고 이유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오, 오… 오빠.”
당연히 수아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이해를 못해도 괜찮다. 일단 지금은 들어줘.”
“하, 하지만!”
“나를 믿는다고 했지. 수아야.”
“…네. 그렇긴 하죠.”
“잠깐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우선은 내 얘기를 들어줘. 부탁한다.”
“…….”
수아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고. 이내 마뜩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의미로 꾸벅 묵례를 했다.
“12월 27일까지.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루걸러 한 번씩, 게이트가 연속으로 붕괴할 거다.”
“이틀에 한 번씩, 게, 게이트가……?”
“그래. 그것도 전부 서울을 중심으로다.”
아직도 얼떨떨한 수아에게 진실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서울은 지금 그야말로 생지옥이 됐다. 근데 날이면 날마다 더한 지옥이 될 예정이야.”
지금부터 어떻게 한국이란 나라가 붕괴해 가는지.
그것을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일. 혹은 3일 후. 게이트가 한두 번 더 붕괴된 후, 본격적으로 전국에서 전기가 끊긴다. 당연한 수순으로 단수도 되고. 도시가스는 말할 것도 없겠지.”
7차 붕괴 직후.
혹은 그 이틀 후인 8차 붕괴 때 일어날 일이다.
사회 인프라가 풍비박산 나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다. 관리할 인력들도 제 살길 찾아 뿔뿔이 도망치기 바쁘다.
정부는 민생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게이트 관련 사태 수습만 해도 벅차다.
그나마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다.
“하루쯤 더 지나면 폭도들이 사방에서 들끓을 거고, 규칙과 질서가 완전히 붕괴한다. 보란 듯이 길거리에서 살인, 방화, 강간이 일어난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지.”
이건 8차 붕괴가 일어난 후의 일이다.
4차 붕괴 때 이미 여의도에서 국회의사당이 무너졌고. 6차 붕괴 때 종로구에서 게이트 붕괴로 청와대가 박살 났다.
이때 이미 수많은 국회의원 및 정부 요직들이 갈려나간 상태다.
“대통령이 항상 이맘때쯤 죽는다. 전용기째로 산산조각 나서 서울 상공에 흩뿌려지지.”
7차, 8차 붕괴는 무너져가던 한국 정부에 마침표를 찍는다.
압도적인 죽음 앞에서는 권력도 돈도 무의미하다. 뒤져서 피떡된 모습을 보니, 대통령도 나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5일 뒤면. 완전히 무법천지에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생으로 돌아갈 거다.”
마침내 9차 붕괴 이후.
한국의 정부라는 개념은 완전히 소산(消散)한다.
대신 온갖 임시정부들이 각 지방권에 세력을 잡고, 꼴같잖은 춘추전국시대를 연출한다.
전부 자기들이 진짜 정통 정부라고 주장하는데. 뭐, 60년 정통 원조 할매국밥 같은 거다.
증명해 줄 사람이 다 뒈져서 없어. 그러니 개나 소나 자기들이 원조라고 우기는 거지.
“게이트 붕괴의 중심지인 서울은, 완전히 버려진 불모의 땅이 돼버려.”
이맘때쯤 헌터 협회는 어떨까?
이미 쓸 만한 헌터는 죄다 죽거나 탈주하여, 진작에 망해버린 상태가 된다.
그리고 잔존 계엄군과 잔존 헌터 세력 사이에서도 여러 파가 갈린다.
세상이 요지경인 와중에도, 아등바등 권력을 차지해 보려는 국소적 전쟁이 밥 처먹듯이 일어난다.
“피난 갈 돈도 용기도 없고, 타이밍을 놓친 패배자들만이 서울에 남았고. 그런 와중에 여러 파벌이 제들 멋대로 날뛰는 무법 도시가 되지.”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 문제의 던전교가 도탄에 빠진 서울 시민들을 홀린다.
바야흐로 종교 승리의 순간이다.
“서울에 갇힌 사람들은 구원을 부르짖기 시작한다.”
실체도 없는 던전의 절대적인 무언가를 향해서.
살려달라고. 복종할 테니까 자길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굴종한다.
“그러다가 하나씩. 전부 죽어나가. 앞으로 17일 안에.”
이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었던 운명. 신이 마련한 미래의 대략적인 윤곽이다.
엄청 많이 축약했지만 일단 골자는 다 담았다.
“…….”
수아는 한동안 말이 없다.
이 반응은 너무 익숙하다. 그녀는 곧 쥐어 짜내듯이 웃으며 말하겠지.
그게 뭐예요. 오빠. 망상도 그 정도면 병이에요.
“그게 뭐예요. 오빠. 망상도 그 정도면 병이에요.”
거 봐라.
다음에 나올 대사들도 줄줄이 읊어줄 수 있다만. 나는 수아의 말을 자르는 대신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아냐. 다 거짓말이야.”
수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고. 이내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그쵸? 미, 미래에서 왔다니. 사람들이 다 죽을 거라느니.”
“수아야.”
“오빠, 평소에도 좀 재미없는 사람이긴 했는데. 오늘 농담은 특히 재미없다. 그, 그런 농담하면요. 여자한테 인기 없어요. 알겠어요?”
인기 없는 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당연한 소리를 뭐 저리 정성스레 할까.
어느 순간, 우뚝. 수아가 눈을 부릅뜨며 모든 행동을 정지했다.
“…엄마.”
퍼뜩!
수아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절박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가 내 어깨를 움켜쥐고 마구 뒤흔들었다.
“어, 엄마. 벼, 병원에 엄마가 입원해 있었는데! 엄마는 어떻게 됐어요?! 네?!”
고비가 등장했군.
이럴 줄 알았다. 무슨 수를 써도 결국은 이렇게 얘기가 흘러가 버린단 말이지.
나로서는 곤란한 전개가 아닐 수 없다.
“후우.”
대답 대신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가. 수아의 표정이 한층 해쓱해졌다.
“어, 언니도! 오빠. 그러고 보니. 우리 언니는요? 제가 이렇게 멀리서 외박하는 걸, 걱정 많은 언니가 가만히 보고 있었을 리가 없는데.”
“…….”
“오빠… 대체. 어제 게이트 붕괴 후로, 언니랑 엄마는… 어떻게, 됐어요……?”
수아의 말끝이 점점 흐려지고 떨려온다.
내가 수아의 심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꿰고 있진 않다만. 아마 그런 거 아닐까?
입으론 질문하면서도 속으론 대충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나한테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를 말이다.
“수아야. 서윤이는…….”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마요!!”
아니나 다를까.
내가 흔쾌히 대답을 해주려는 순간. 수아가 나서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새 그녀의 양 뺨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오빠. 지, 지금은. 거짓말만 하니까. 나한테… 흐흑, 재미없는 농담만 할 게 뻔하니까……!”
수아가 양쪽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안 믿어요.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거라고요!!”
여기서 나는 선택해야 한다.
더 밀어붙이냐. 아니면 잠깐 그녀에게 시간을 주느냐.
혹시나 잘못 선택하면. 수아의 멘탈이 그대로 박살 나버릴 수도 있다.
그건 최악의 전개다. 혹시나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리셋을 고민해 봐야 한다.
‘아직은 괜찮을 거야. 아마도.’
반복됐던 전생의 통계를 바탕으로 결단을 내렸다.
나는 수아의 양쪽 팔목을 붙들었고. 귀를 막고 있던 손을 억지로 들춰냈다.
“꺄읏……!”
아찔한 탄성을 흘리는 수아.
나는 수아에게 얼굴을 한껏 밀착했다. 그녀는 히익, 숨을 들이키고 그대로 내뱉지 못했다.
그녀의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린다.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려올 정도다.
“어제 종로구에서 일어난 던전 붕괴. 거기서 교전 중이던 헌터들은 몰살을 당했다. 나 빼고 예외 없이. 전부.”
무방비해진 강수아의 귀로 현실을 쏟아부었다.
우뚝. 수아의 미약한 저항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그리고 강서윤은, 교전에 참여한 헌터 중 하나였다. 수아야.”
수아의 얼굴에 점점 먹구름이 짙어진다. 눈동자에서 초점이 빠르게 사라진다.
그녀는 낮은 신음을 질질 흘렸다.
“아, 아아… 아아아……!”
도리도리도리.
현실을 부정하듯 그녀가 고개를 빠르게 가로로 저었다.
“그, 그만. 그만해요. 오빠……!”
“너희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제부로 종로라는 구획 자체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어. 너희 어머니가 입원한 게이트 재해 전문병원도 분명 종로에 소재했었지. 그러니까…….”
“아니야아아!!”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강수아. 전에 없이 이성이 붕괴한 모습이다.
저건 몇 번을 봤어도 보고 있기가 괴롭다. 인상이 절로 찌그러졌다.
“거짓말! 다 거짓말이라고! 그, 그래!! 어, 언니는 텔레포트 능력자니까! 분명, 엄마를 데리고 텔레포트로 살아서……!!”
“아무리 강서윤이라도 구 단위의 거리를 한 번에 텔레포트하는 건 못 해. 강서윤의 텔레포트 최대 사정거리는, 내 기억으로 5킬로가 조금 안 된다.”
“없잖아요! 증거가!! 어, 언니가 죽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냐구요!!!”
나를 향해 부릅뜬 눈은 절박함을 넘어서, 광기까지 느껴졌다.
수아는 이내 미친 사람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그리고 나를 향해 히죽거렸다.
“그쵸? 증거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해요!! 언니가 주, 죽었다면! 죽었다는 증거를 가져와 보라고요!!”
터무니없는 궤변의 연속이다.
그 무지막지한 폭발에 휘말리고 시신을 남길 수 있을 리가. 손톱 쪼가리,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발견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내가 전생에 찾아봐서 아니까 하는 소리다.
‘애초에 수아도 그걸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전생의 교훈을 떠올려라, 한정용.
여기까지다. 더 이상 현실을 우악스럽게 들이밀었다간, 수아의 멘탈이 위험해진다.
“일단 좀 쉬어라. 수아야.”
나는 눈물을 줄줄 쏟는 수아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양옆으로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배고프면 이거 먹고.”
덜컹.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진득하게 끓여놨던 고깃국을 그릇에 소분했고. 갓 지은 밥을 밥그릇에 퍼 담았다.
그것들을 곁가지 반찬 몇 개와 함께, 수아 앞의 앉은뱅이책상에 가져다 놨다.
“나름대로 정리가 되면. 그때 다시 나한테 말을 걸어라.”
그렇게 통보한 뒤. 나는 거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혼자서 손장난 치며 잘 놀던 이브가 있었다.
“우엥? 아빠아.”
인기척을 느낀 이브가 금세 나를 올려다봤고. 반가운 듯이 헤실거렸다.
나는 그녀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브.”
“우응.”
“나 힘들다.”
“우엥?”
“위로해줘.”
“…응애?”
“응애.”
“우갸앗? 왜, 왜 그래애. 무, 무서워, 아빠아…….”
뭣 모르는 갓난애한테 개추하게 징징대기 시작했다.
…왜.
…뭐.
“우응. 아빠. 힘들지 마아.”
이브가 뒤뚱뒤뚱 기어와, 조막만 한 손으로 내 종아리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마구 부볐다.
딴에는 나를 위로해 주려는 모양이다.
‘이걸 진짜 해주네.’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한층 비참해져서 바로 그만두게 했다.
대신 기특한 이브에게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이브. 피라도 빨 테냐?”
“우웅. 시러. 맘마. 삥크 맘마. 조.”
“그래. 딸기우유 줄게.”
“갸우우!”
“500ml로.”
“끼야우!!”
만면에 함박웃음을 띄우는 이브.
수아가 다시 말을 걸 때까지, 이브와 놀아주기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