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6화 (36/235)

36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2)>

“그륵, 으르르륵……!”

한동안 격렬하게 경련하던 우장선의 온몸.

이내 추욱, 놈의 전신이 늘어졌다. 완전히 사망해 버린 것이다.

“후우.”

쑤욱. 사복검을 뽑아냈다.

우장선은 죽었다. 더 이상 이곳에 용건은 없다.

“텔레포트.”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파팟!

곧장 시야가 격변했고.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내가 사는 빌라의 복도. 우리 집 문 앞이었다.

스르륵. 곧 혈천갑의 변신이 풀렸다.

“갸우… 끄으응!”

이브가 나른한 얼굴로 내 품에서 바동거렸다.

졸린 기색이 역력하다. 그녀도 힘을 쓴 반동으로 피로를 느끼는 듯하다.

“우응. 아바아. 졸려어.”

“고생했다. 이브.”

“으응. 헤헤…….”

나도 약간의 탈력감이 있었다.

그래서 곧장 문을 따고 들어가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음냐.”

침대엔 선객이 있었다. 강수아였다.

수아가 헤벌쭉한 얼굴로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우음. 헤헤. 오빠아… 히히.”

가끔씩 나를 부르면서 잠꼬대를 하는데. 대체 무슨 꿈을 꾸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가.

알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모르는 게 약일 것 같다.

‘시간은… 아직 7시 반.’

잠들기에는 이른 저녁 시간대다.

아마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기절하듯이 잠들었을 테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곤히 잠든 수아를 보고 약간 심란해진다.

‘원래는, 이렇게 잠이 많지 않을 텐데.’

지금 수아는 내가 스킬로 재운 게 아니다.

강서윤의 권유에 따라 우리 집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스스로 잠든 거다.

그래. 내가 재운 건 확실히 아니지만.

내 영향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마력 중독 증세가 벌써부터 나타나는군.’

원래의 수아는 불면증을 걱정할 정도로 잠이 없는 편이다.

배부른 고양이처럼 픽픽 쓰러져 자는 지금의 사태. 내가 며칠에 걸쳐 걸어댔던 ‘슬립’ 스킬의 영향이 크다.

“…전조가 왔다.”

수아의 몸이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슬립 스킬은 위험하다.

그나마 오늘 수아와 대화가 잘 풀린 게 천만다행이다. 앞으론 마법 스킬로 재우지 않아도, 그녀는 어느 정도 나를 신뢰해 줄 것이다.

‘수아가 확정적으로 돌발 행동을 하는 구간만 조심하면 되겠어.’

몇몇 골치 아픈 구간. 속으로 여러 경우의 수를 끊임없이 계산한다.

평범한 내 지능으로는 굵직한 사건들 몇을 기억해 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만 복기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악덕 교주 꿈나무도 처리했고.”

던전교가 본격적으로 창립되고, 활개를 치기 시작하는 건 6차에서 7차 붕괴 이후.

그 전에 가장 큰 싹을 끊어버렸다.

“…이걸로, 이틀 정도는 더 벌었겠지.”

양손으로 이마를 싸매고 중얼거렸다.

미래의 던전교 교주를 죽였다. 이젠 지긋지긋한 던전교 새끼들이, 이번 회차에서 완전히 무대 뒤로 퇴장됐을까?

‘아니. 천만에.’

수많은 교주 후보 중 하나가 죽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벌었을 뿐이다.

던전교 놈들은 끈질기다. 잘 숨는다.

그리고 바글바글하다.

‘그야말로 바퀴벌레지.’

이렇게 한 세력의 근원지를 찾아내 싸그리 박멸을 해도. 어느샌가 다른 세력이 알을 까고, 세를 불려, 정신 차려보면 집 안 전체를 장악해 있지.

정말 뼛속까지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다.

“알아. 알고 있지.”

내가 벌였던 행위는 하등 소용이 없다.

던전교가 탄생하는 건 확정성 미래. 운명이다. 무슨 짓을 해도 사전에 막을 수 없었다.

‘시대의 당연한 요구…인가.’

극한에 몰린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종교. 그래서 문제인 거다.

우장선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교주가 분명히 등장할 거다. 이름이 던전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비슷한 억지를 펼치는 종교가 세기말에 반드시 등장한다.

‘지금까지도 항상 그래왔다.’

그런데도 나는 굳이 이런 짓을 한다.

몇 번을 돌아와도. 항상 이 의미가 없는 학살을 반복했다.

“다 알아도. 너희들만은 용서를 할 수가 없어. X발새끼들아.”

뿌드득.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어 피가 줄줄 샌다.

리스토레이션.

즉각 수복 마법으로 상처를 메웠다.

“갸우. 아바. 아빠아! 아파, 아파아!”

문득, 품에 안겨있던 이브가 앓는 소리를 냈다.

퍼뜩 온몸에서 힘을 풀었다. 오른손뿐만 아니라 이브를 안고 있던 왼손까지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으에엥. 숨 막혀어. 힘드러, 아빠아…….”

“미안하다. 이브.”

다시 이브를 부드럽게 안아 들고 가볍게 사죄했다.

괴로워하던 이브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아바아.”

문득 이브가 날 부른다.

나는 시선을 내려 그녀와 눈을 맞췄다.

“왜 그러냐. 이브.”

“아바. 힘드러? 슬퍼?”

이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냐. 이브.”

“아빠아. 울 것 같아.”

“…무슨.”

“울지 마. 아바가 울면, 나도 슬퍼. 우으으.”

이브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난데없이 울상을 지으며 나보고 울지 말라고 호소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운다. 걱정하지 마라.”

“…진짜아?”

“그래. 이젠 딱히 슬프지도 힘들지도 않아.”

“정말로오?”

“정말이다.”

영원회귀 초심자 시절.

사람이 죽는 것만 봐도 토하고, 3일을 내리 굶고, 환각과 환청을 보던 나라면.

작금의 현실이 슬프거나 힘들 수도 있겠지.

“전부 익숙해졌어. 이제… 울고 싶어도 못 운다.”

하지만 1001번째 회귀한 D급 헌터 한정용은,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에 슬픔도 괴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죽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빠아. 괜찮아?”

“괜찮다.”

“정말 정말로, 괜찮아?”

“정말 정말로 괜찮다.”

처음엔 한 명.

다음은 열 명. 그 뒤엔 백. 그리고 천. 만…….

수아를 살리기 위해 행할 수 있는 살육의 바운더리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만 해도 난, 방금 용설 그룹 사옥에서 538명을 죽이고 왔다.

감상은 딱히 없다. 굳이 있다면 체력 소모에 따른 약간의 노곤함. 그리고 일말의 불쾌함 정도.

‘피 냄새가 뭣보다도 문제지.’

지금도 온몸에서 진동하는 피 냄새.

이 역겨운 냄새는 좀 씻고 싶다. 한시라도 빨리 샤워를 하고 싶을 뿐이다.

“아빠아.”

“왜 그러냐.”

“거짓말, 싫어.”

“…….”

“아빠. 거짓말쟁이야. 우응!”

눈을 넘어, 뇌를 직접 헤집는 듯한 붉은 시선이 꽂힌다.

입을 콱 다물었다. 그리고 아무 반박도 꺼내지 못했다.

“…거짓말?”

곧 이브는 곯아떨어졌고. 나는 혼자 샤워를 하기 위해 욕탕에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다.

오른손 손바닥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제야 아까의 기억이 스쳤다.

‘상처 때문에. 리스토레이션을 사용했구나.’

리스토레이션은 단순한 상처 회복이 아니다. 전신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스킬.

몸에 범벅이 됐던 살점과 뼛조각, 굳은 피딱지들은 이미 스킬로 옛날에 씻겨 내려간 상태였다.

나는 멍하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으.”

손등을 코에 갖다 대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

여전히 피 냄새가 난다.

혹시나 해서 샤워를 몇 번 해봤지만. 냄새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진한 혈향이다.

* * *

6차, 7차 붕괴가 일어난 12월 8일에서 10일까지. 총 사흘간.

내 입장에선 전 회차에서 지겹게 반복됐던 일들만 한가득 일어났다.

“전투계는 이쪽입니다! 비전투계는 3번 막사로 가시면 됩니다!”

6차 붕괴가 시작되는 12월 8일.

군과 헌터 협회가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 소속, 회사 소속 할 것 없이 모든 헌터가 상비군 체제가 되어 군에 편입되었다.

각기 능력과 랭킹에 따른 계급을 부여받았고. 특수부대의 형식으로 편제가 개편되었다.

“X발. 이게 말이 되냐고. 이건 그냥 사실상 재입대잖아!”

“내가 헌터 생활 하는 동안, 설마설마 했던 상황이 진짜 터지네. X창, 인생 개X발…….”

예비군들이 전시상황 되어 현역병으로 다시 끌려온 형국이었다.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법전에 그런 조항이 기재돼 있던 것을.

자기가 선택한 직업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헌터 선배님들! 오와 열 맞춰서 이동해 주십쇼!!”

“밀지 않습니다! 함부로 능력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헌터들이 위기 때만 소집되는 비상전력일 때와 상비군인 지금.

가장 큰 차이는 신속한 위기 대처 능력에서 온다.

“역시! 붕괴다! 게이트 붕괴가 터졌다!!”

군과 정부도 병신이 아니다.

재편한 헌터 부대는 게이트 붕괴가 일어나기 쉬운 스팟들에 미리 주둔되었고. 실제로 6차 붕괴는 그중 하나에서 일어났다.

“전담 부대 신속히 이동!!”

“게이트 포위해! 계획대로 E 대형이다! 움직여!!”

6차 붕괴의 장소는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한복판이었다.

“타지역 헌터 부대에 바로 무전 때려!!”

수많은 S급 헌터들을 필두로, 무수한 헌터 부대의 병력들이 게이트를 꼼꼼히 포위한 채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회차에 붕괴한 6번째 던전은 바로.

“아아! 축제! 즐거운 축제다! 축제를 일으키자!”

제53던전. 던전명 <유령의 축제>.

전생에선 2차 때 월미도에서 붕괴했던 바로 그 던전이었다.

기괴하고 거슬리는 광소가 사방을 메워온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학!!”

게이트에서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묘지기 광대들.

귀밑까지 찢어진 미소가 걸린 창백한 얼굴들이 수백, 아니 수천 마리. 근정전을 가득 채울 정도로 바글바글 쏟아진다.

전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숫자였다.

“니, 니X럴. 씨, X발……!”

“도, 도, 돌격! 돌격해! X발!!”

투투투투! 파바바박!

농담 하나 안 섞고, 대한민국의 명운을 건 헌터와 던전 몬스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으아아아!!”

“하아아아앗!!”

헌터들은 궁지에 몰린 쥐 떼들처럼 달려들었고. 묘지기 광대들은 그런 헌터들과의 전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씨, X바아아알!!”

“미, 미쳤어, X발! 저, 저딴 괴물을 어떻게 죽이냐고!!”

전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일방적인 학살. C급이나 D급은 둘째 치고, B급과 A급 헌터도 묘지기 광대들에게 장난감처럼 유린을 당했다.

“즐겁다! 재밌다! 신나게 놀자!”

광대들은 헌터들을 가볍게 찢어 죽였다.

뜯어낸 헌터들의 머리로 저글링을 했다. 헌터의 장검을 빼앗아 사람들의 배에 깊숙이 박고, 접시처럼 빙빙 돌리며 묘기를 부린다.

“키키킥! 랄랄라~ 흐흐흥!”

그리고 한층 즐겁게 웃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어디선가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울렸다.

“꺄아아악! 이, 이거 놔! 이, 이런… 개, 개 같은… 새끼들이!!”

S급 헌터 김가희.

제6 헌터 부대의 대대장을 맡고 있던 자였다.

언제나 당당한 말투와 표정. 그리고 몬스터를 잔인하게 해체해 놓는 쇼맨십이 트레이드마크로 정평 난 그녀였지만.

“하, 하지 마… 미, 미안해! 잘못했어요! 사, 살려줘요! 제발!!”

지금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줄줄 쏟고 있을 뿐.

자기를 둘러싼 수많은 묘지기 광대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였다.

“끄, 아악……! 사, 살려… 살려줘어어어!!!”

뿌드드득!

김가희의 팔, 다리, 그리고 목을 하나씩 붙잡은 다섯 명의 묘지기 광대는, 그녀의 오체를 일제히 몸통에서 뜯어내 버렸다.

“불꽃놀이! 아아! 새빨간 불꽃놀이야!!”

“하하하하학!”

푸화악!

갈 곳 잃은 김가희의 몸뚱이가 피를 흩뿌리며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오체분시.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묘지기 광대들이 선호하는 살해 방식이다.

“아, 안 돼……! 오, 오지 마!!”

“끄악, 아아아아악!!”

뿌득, 푸드드득!

도처에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체분시 된다.

S급부터 D급까지 아무런 차별 없이. 모든 헌터들이 순식간에 분쇄되어 팔다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 이런… X발.”

그렇게 사지가 뽑혀나가는 사람들 중엔, 익숙한 사람도 보였다.

“…여기까진가?”

박현우.

그의 체념한 얼굴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경복궁 전체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으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지금부터 내가 해줄 이야기.

이건 대한민국 헌터들의 눈물겨운 투쟁 끝에, 역경을 극복하는 감동 스토리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한국이란 나라가, 고작 5일 남짓 만에 멸망 직전까지 갈 수 있었는가.

그걸 말해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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