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7)>
내가 소속된 D급 헌터 부대 중대장의 정체는 무려 박현우였다.
분명 저번 회차의 3차 붕괴에서도 내 부대장이었지.
‘오크족장 케샤쿠에게 인정받았던, 상남자 양반.’
기억 속 전생의 박현우는 그런 이미지다.
경험상 제3차 붕괴 때 만나는 중대장은 날이면 날마다 바뀌었는데, 대장이 중복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나.’
솔직히 좀 반가웠다. 저런 엑스트라가 내 기억에 남았다. 이것 자체가 정말 많이 반갑다는 방증이다.
“흐드드드. X이팔. 존나 춥네. 진짜.”
박현우는 양팔을 비비며 욕지거리를 주워섬겼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관에게 귓속말로 뭔가 명령하고 있었다.
“……! ……?!”
부관은 박현우의 말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뭔 얘기가 오가고 있는 거지. 좀 궁금해졌다.
‘사운드 캐치.’
귓가에 마력을 불어넣고 스킬을 영창했다.
피잉! 날카로운 금속음이 귓가를 간질인다.
[스킬 발동: 사운드 캐치]
사운드 캐치. C급의 흔한 스킬.
청력을 전체적으로 증폭시키는 한편. 내가 포커스를 맞춘 곳의 소리를 집중적으로 잘 들리게 해주는 유틸성 스킬이다.
“…러면, 전 마스터를… 로 하지… 습니까!”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마력량을 조절했다. 이내 둘의 대화가 귓속말처럼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중대장님! 상부에서 즉각 돌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부관의 격앙된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려온다.
“우리만 이렇게 문밖에서 농성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부대한테 고자질이라도 당하면! 그땐 X되는 겁니다, 진짜로!!”
토론보단 하극상에 가깝도록 열변을 토하는 부관.
박현우와 달리 이쪽은 초면이다. 아무래도 전생과는 다른 사람이 배정된 듯한데… 박현우와 좀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 십새야. 그러니까 우선, 붕괴한 던전 데이터를 받으면 돌격한다잖아. 이 새끼 아까부터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들어. 씨X넘이 뒤지고 싶나.”
“그러니까 그걸 기다릴 틈이 없다는 소립니다! 다른 출입구의 헌터 부대들과 양동을 펼쳐야 할 것 아닙니까! 다른 데는 이미 출격했다고 아까 무전 왔습니다!”
“양동은 X발. 어제 급조한 당나라 군대가 퍽이나 잘 되겠다.”
“중대장님!”
박현우의 반응은 시종일관 냉소적이었다. 부관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명색이 정부 소속 헌터가 명령 불복종이 말이 됩니까! 중대장님이야말로 왜 제 말을 못 알아들으십니까! 답답하십니다 진짜!”
“답답한 게 누군데. X발아.”
거기서 박현우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흠칫. 부관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박현우의 살벌한 시선을 마주쳤기 때문이겠지.
“너. 아까 X발 눈 감고 있었냐?”
“그, 그게 무슨……?”
“지금 아무 대비도 없이 백화점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순식간에 얼음 마네킹이 되잖아, 개새꺄.”
“…….”
부관은 차마 항변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백화점 내부에 원인 불명의 한파가 몰아닥치는 순간을 다 같이 목격했으니까.
“사람이 X발 3초 만에 얼어붙는데. 저길 털레털레 들어가라고?”
게이트 붕괴의 혼란이 종식되는 데 걸린 시간.
단 3초였다. 비명을 지르고 혼비백산 도망치던 백화점 내부 시민들이, 순식간에 죄다 얼어붙어 버렸거든.
현재 백화점 내부에 생명 반응은 0. 몰살당했다. 3초 만에, 살아있던 인간 전원이 동사한 것이다.
“야. X발 그럼 너부터 들어가.”
“어… 자, 잘 못 들었슴다?”
“너부터 대가리 들이밀라고, 개새꺄.”
“…….”
부관은 말이 없다. 그저 공포가 서린 눈으로,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백화점 안을 쳐다볼 뿐이다.
“네가 저 정신 나간 추위에서 30초만 버텨도 인정한다. 네가 부대장 해. 개X발 네가 명령하면 나도 들어가서 빨가벗고 탭댄스 춰줄라니까. 씨X년아.”
박현우는 차갑게 일소하며 쏘아붙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박현우의 압박은 그걸로 시작이었다.
“지미 X발 개쓰레기 같은 지휘부 X발련들. 지휘관이라는 새끼들이 현장을 뭐 한 번이나 와 봤어야지. 지들이야 돌격, 하고 띡 명령해 놓으면 끝이야. 뒤지는 건? 너. 나. 우리. 우리라고, 우리! X발.”
“…그, 음.”
“무조건 대기다. 내가 요청한 붕괴 던전의 데이터가 올 때까지. 최소한 저 정신 나간 한파의 정체를 알기 전까진, 내 부대원 한 명도 못 죽일 줄 알아라.”
박현우의 서슬 퍼런 시선이 부관에게 쏟아진다.
확고한 의지와 살기등등한 기세가 멀리 있는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그, 쓰읍… 하아.”
부관은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했고. 이내 한숨을 팩 내쉬었다. 놈의 눈가에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헌터 협회 직속 지휘관의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셨습니다. 이, 이 일은… 제가 잊지 않고 상부에 보고할 겁니다. 중대장님.”
“보고하십쇼. X발 철새 같은 새끼. 벌도 X발 살아있어야 받지.”
박현우는 같잖은 협박에 코웃음으로 응수한다. 그쯤 되자 부관의 시선에도 약간의 오기가 들어찼다.
“중대장님. 아무리 그저께 급하게 임명됐다지만. 지휘관으로서 책임감도 없습니까?”
“내가 책임질 건 내 명령 때문에 뒤져나갈 부대원들 목숨뿐이다. 얘네들을 최대한 살리는 게 내 책임이지. 중대장이 별거냐? X발아.”
그리고 거기까지.
그들의 대화를 멀리서 전부 듣고 있던 나는…….
‘브라보.’
박현우한테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뭐랄까.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벅차는 감정을 느꼈다.
‘저건 진짜 존나 멋진 새끼네. 남자가 봐도 반하겠군.’
정확한 판단. 훌륭한 지휘관의 표본이었다.
원인 불명의 한파로 백화점 전역이 얼어붙었다. 인간이 3초 내에 동사하다 못해 얼음 동상처럼 쩍쩍 얼어붙는 상황.
그런데 정작 상황을 전해들은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은, ‘각 부대 일제 돌격’.
놀랍게도 진짜 돌격이었다. 헌터협회 지휘부의 경이로운 무능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쟤는 전생 때도, 부대원들 목숨 부지하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했었지.’
박현우는 그래서 명령을 대놓고 거부했다.
대신에 현재 붕괴한 던전의 데이터를 요구했다. 위상 데이터나 마력 파장의 패턴을 분석해, 최소한 한파에 대항할 작전이라도 구상하고 진입하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원래 성격 자체가 저런가 보군.’
전형적인 아랫것들이 좋아하고 윗대가리는 싫어할 현장지휘관이다.
윗대가리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도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까라면 까는 놈이 A급 부하일 뿐이다.
어쨌든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일단 나부터가 부대 소속상, 박현우의 아랫것이기도 하니까.
‘다른 부대는…….’
나는 현자의 눈을 발동했고. 마력을 한계까지 불어넣었다.
키이잉! 오감과 육감이 한계까지 확장한다. 주변 삼라만상이 한눈에 잡힐 것처럼 훤해진다.
백화점 북문, 동문, 그리고 남문. 차례로 마력 파장을 흘려보낸다. 다른 헌터 부대의 생명 반응을 일거에 탐색한다.
“…으음.”
이내 모든 정보가 파악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력을 거뒀다.
‘그새 전멸했군. 모든 부대가.’
돌격 명령을 거부한 현장 지휘관은 박현우뿐이었다. 다른 D급 부대는 전멸. 자아 없는 도구를 지휘관으로 둔 죄로, 죄다 동사해 버렸다.
‘걔들도 뭐, 나름의 생각 정돈 있었을 테지.’
헌터부대엔 기본적으로 마법사 편대가 소속돼 있다.
저 한파는 볼 것도 없이 몬스터가 펼쳐낸 필드 마법. 그러니 마법 저항의 배리어를 둘러치면 한파를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판단은 하고 진입을 결정했으리라.
‘안일했어.’
이치는 옳다. 다만 저 한파가 평범한 몬스터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저건 이 던전의 던전 마스터가 내뿜는 한파. 한낱 D급 부대 소속의 마법사가 막아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광역 군중제어 스킬이다.
‘슬슬 시작되는군.’
나는 시선을 조금 들었고. 곧장 스킬을 하나 영창했다.
[스킬 발동: 히팅 바디]
내 주변으로 따스한 기운이 스며든다.
스으으. 동시에 헌터들의 입가로 하얀 입김이 부서진다.
“야, 야. 추, 추, 춥지 않아?”
“그, 그러게……?”
“뭔가, 아, 아까보다, 조, 존나 추운 듯한……?”
더 이상 백화점 건물이 한기의 확산을 막아주지 못한다. 마력의 한파가, 서서히 건물 외부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야, X발! 빠져!”
박현우가 빛살같이 상황을 파악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 촉도 남다르군.
“전 병력! 튀어! 백화점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라고! X발!!”
부대원들이 상황 파악 못하고 얼을 타고 있으니, 박현우가 솔선수범을 했다.
타탁! 부관의 멱살을 붙잡고 빠르게 백화점과 멀어지는 박현우. 부대원들도 그제야 허겁지겁 박현우의 뒤를 따라 후방으로 후퇴했다.
“끄, 아… 으아아악!!”
“모, 몸이… 사, 살려줘!!”
반응이 늦었던 몇몇 부대원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부대원들은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아연실색했다.
“끄, 으극……!”
“아아아악!”
꾸드득, 뿌드드득.
넓어진 한파 영역에 휘말린 부대원들이, 하나씩 통째로 얼어붙고 있었다.
“사, 사… 살려, 살려……!”
“추, 추워. 차가워……!”
얼굴에 새하얀 성에가 끼고 혈색이 시시각각 죽어간다. 얼어붙은 사지가 움직임을 멈추고, 얼굴에 줄줄 흐르던 눈물도 얼음조각으로 변한다.
이내 냉동된 동태처럼.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 ……!!”
“…….”
몇 초가 지나자 놀랍도록 조용해진다. 비명을 지르던 입술조차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부대원들이 패닉에 빠져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미, 미친… X발!”
“뭐야. 이게 X발, 뭐냐고!!”
방금까지 살아있던, 같이 대화하고 작전을 수행하던 동료가 순식간에 얼음 동상이 됐다. 일면식도 없는 시민이 얼어붙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겠지.
“이 X발! 전 병력! 한파에 닿지 마라! 거리 더 벌려!!”
박현우도 식겁하며 명령했다.
그에 따르지 않는 부하는 하나도 없었다. 박현우와 반목하던 부관조차도, 지금은 입을 꾹 닫고 얌전히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이쯤인가.’
적당한 희생자 수. 미지의 적과 맞닥뜨린 부대원들의 절망에 찬 표정.
영웅 출현의 타이밍을 감지했다.
‘은폐장 발동.’
[스킬 발동: 중마력 은폐장]
치지지징!
주변의 시선이 온통 한파에 향해 있는 사이. 내 신형은 허공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푸직! 하트 기어를 심장에 박아 넣었다.
“소비 생명력 최대까지.”
우드드득!
심장에서 쏟아진 핏줄기가 전신을 타고 흘러, 갑옷의 형태로 굳어졌다.
[생명력의 50%를 갑주에 환원합니다.]
푸화악!
무사히 혈천갑을 두른 나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적당히 시계(視界)를 확보한 뒤 은폐장을 풀어버렸다.
자. 도탄에 빠진 너희들을 구원할 영웅. 레드 저거너트의 등장이다.
“…엇?”
내가 워낙 눈에 띄기 좋은 곳에 떠있어서 그런가.
부대원들은 금세 나의 존재를 알아챘다.
“저, 저거!! 하늘에!”
다들 부릅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삿대질한다. 그것은 박현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붉은 갑옷 남자. 설마… 레드 저거너트?”
이 친구는 리액션조차 마음에 드는군. 투구 안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스킬 발동: 확성(擴聲)]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스킬을 발동했다.
전의 경험으로, 내가 아가리 길게 열어봤자 좋을 일 없다는 사실은 숙지했다. 그러니 좌중을 내려다보며 짤막하게 말했다.
[최대한 붕괴지에서 멀리 도망쳐라. 뒤는 내가 처리한다.]
용건만 간단히. 신속정확하게.
설마 이 짧은 두 마디에서 오해가 빚어질 여지는 없겠지. 나는 그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백화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던전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다.’
투구 안에서 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순식간에 사람을 죽여 버리는 한파. 그것을 봤을 때부터 이미 던전 마스터의 정체는 짐작하고 있었다.
‘속전속결이 중요.’
어느 때보다 빠른 제압이 필요하다.
한파의 확산은 어떤 의미에선 오크 군대의 진격보다 무섭다. 내가 물리적으로 막을 수단이 아예 없으니까.
‘바로 던전 마스터를 처리한다.’
심호흡을 잠시 하고, 블러드 스트림의 분사 속도를 한층 강화했다. 푸화악! 공중에서 탄력을 받은 내 신형이 유성처럼 쏘아져 나간다.
‘아마도, 던전 마스터가 있을 곳은…….’
콰콰쾅!
기세를 담아 그대로 백화점 벽을 들이받았다.
백화점 최고층이었다. 두터운 콘크리트 벽은 속절없이 박살 났고, 나는 뒤늦게 속도를 줄여 바닥에 안착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최고층의 중앙. 그곳에 내가 예상하던 던전 마스터가 등장했다. 갑옷에 잔뜩 묻은 돌가루를 털어낸 뒤. 나는 그녀를 향해 중얼거렸다.
“여전히 높은 곳을 좋아하는구나.”
설녀(雪女). 그렇게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형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처럼 새하얀 여자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