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0화 (20/235)

20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6)>

흐흠.

우선 헛기침을 해서 주목을 모았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짚고 들어가자.”

멀리서 보는 일반인들은 게이트=던전이라는 공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하면. 둘은 완전 다른 개념이다.

“게이트는 이세계와 지구를 이어주는 통로야. 이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리고 세간이 흔히 칭하는 ‘던전’.

각종 마력 재화와 보물, 각양각색의 외계 생물체가 도사린… 게이트 내부의 위험천만한 마경(魔境). 여기가 진짜 이세계다.

“헤에. 그런 거였군요? 게이트는 말 그대로, 허공에 열려있는 균열만 말하는 거구나!”

“그래. 그런 거지.”

어떤 순서로, 어떻게 설명해 줘야 수아가 가장 빨리 이해하는지 이미 다 안다.

그래서 그 순서대로 던전의 정보들을 줄줄 읊어줬다.

“이세계와 이어지는 게이트가 왜 지구에 주기적으로 열리게 됐는지는… 솔직히 잘 몰라.”

“아. 그건 오빠도 모르시나요?”

“나뿐만이 아니야. 이 세상 아무도 몰라.”

“아? 그, 그래요?”

“어. 아직 밝혀진 게 전혀 없어.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아항. 그렇구나…….”

수아가 탄성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린다.

눈빛이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럴 때의 수아는 좀 귀여운 면이 있다.

수아가 반응이라도 좋으니 그나마 할 맛이 난다. 강서윤 데리고 설명하라 그러면, 100번쯤 반복했을 때 때려치웠겠지. 말 나오는 순간 싸대기부터 날아갔을 거다.

“어쨌든 그래서… 게이트가 열려버린 던전을 제압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뭐랑 뭔데요?”

“두 세계를 잇고 있는 게이트를 폐쇄하거나. 게이트에 이어진 던전… 이세계의 모든 생물을 말살하거나.”

좀 살벌한 얘기라 그런가.

가만히 듣던 수아가 힉, 하고 숨을 삼켰다.

“마, 말살이요?”

“안에 있는 놈들을 다 죽여 버리면. 게이트가 열려있어도 넘어올 걱정이 없잖아.”

“그, 그야. 이론상으로야 그렇죠……?”

수아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약간의 공포가 담겨있다. 나는 그녀가 오해하지 않도록 곧바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후자는 투자 대비 손실이 막대해서 잘 안 하고. 보통은 전자의 방법을 사용하지.”

“아… 나, 난 또.”

“근데 이 게이트를 닫는 조건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워.”

우선 게이트 안에 진입해 던전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그 던전의 주인인 ‘던전 마스터’를 척살한다. 끝.

“보통 그 던전 마스터가… 게이트 개폐의 전권을 쥐고 있거든.”

그래서 던전 마스터를 죽이면 수십 초 내에 게이트가 닫히고. 해당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그것이 통상적인 게이트 폐쇄의 FM 처리법이다.

“이 과정에서 이제 헌터들이 필요한 거고. 유일하게 활약하는 순간이지.”

동시에 헌터들 입장에선 한탕 크게 잡을 기회. 동시에 좀 더 강해질 기회이기도 하다.

던전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지닌 재물들과 마력 아티팩트. 그리고 몬스터가 토해내는 강력한 스킬과 아이템. 신체 능력치의 강화.

그것들을 자유롭게 노략하고 약탈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게이트 폐쇄가 어려우면서도 간단하다고 한 이유는. 그 이세계의 모든 생물들이, 기본적으로 던전 마스터를 지키려고 개발악을 해서 그렇다.”

“아… 그래요? 왜 그렇죠?”

우뚝.

청산유수처럼 내뱉던 말을 잠깐 멈췄다.

항상 이 대목이 문제였다. 500번을 반복해도 이 순간은 살짝 주저하는군.

“알고 있으니까.”

“네?”

“던전 마스터가 살해당하면 그쪽 세계 전체가 소멸한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나도 죽는다. 그걸 던전 내부의 모든 생물들도, 알고 있다고.”

“아. 아아…….”

“그래서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야. 그놈들도 우리처럼, 당연히 살고 싶을 테니까.”

그러니 사실… ‘전원 몰살’ 방법도 완전히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던전 마스터를 죽이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세계에 기거하는 대부분의 생물을 몰살하게 된다.

“그, 그렇… 군요. 좀, 슬픈 얘기네요…….”

거기까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수아 표정이 죽상이 됐으니까.

수아는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의 피가 흐른다. 그래서 이런 잔혹한 이야기를 극도로 꺼리는 편이다.

‘뭘 죽이네 마네 하는 얘기는, 최대한 안 하는 게 낫겠지.’

솔직히 가끔은 대가리에 개나리꽃밭만 잔뜩 펼쳐졌나 싶을 정도다.

수아는 너무 세상을 이상적으로 본다고 할까. 덕분에 주변인이 좀 피곤해지는 경향이 있다.

“뭐… 여기까진 우리가 흔히 아는 던전 공략 얘기였고.”

근데 이거 어쩌나.

진짜 잔혹한 얘기는 지금부터다.

“우리가 저쪽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저쪽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케이스가 있지.”

흠칫. 수아가 어깨를 떨었다.

수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TV로 갔다. 마침 월미도 사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뉴스 패널들이 비치고 있었다.

“게이트 붕괴. 던전 역류. 던전 붕괴… 뭐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상황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너도 잘 알지.”

“네… 알죠. 당연히 알아요.”

수아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질색하면 나도 기분이 영 편치 않다. 설명하던 나도 덩달아 표정이 좀 굳었다.

“우리만 일방통행으로 이용하던 게이트가 어째서 양방통행으로 일그러지는지. 그것도 아직 밝혀진 게 거의 없어.”

“…그럴 수가. 첫 게이트가 열린 지 10년이나 지났는데요? 게이트도 전 세계에서 수백 번이나 붕괴됐었잖아요!”

“그래. 내 말이.”

수아의 말대로다.

서울 상공에 세계 최초의 게이트가 발생한 지도 벌써 10년. 나름 긴 세월이 지난 것치곤, 게이트와 던전은 아직도 지나치게 베일에 싸여있다.

“물론 유일하게 밝혀진 법칙이 하나 있긴 하다.”

“유일하게……? 뭐, 뭔가요.”

“시간의 흐름.”

“시간?”

“게이트가 열린 채로 너무 오래 방치되면, 그때 게이트가 붕괴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방통행이었던 게이트가 양방통행으로 바뀐다는 거지.”

“…아아.”

지금까지는 이것만이 유일하게 불변의 법칙이었다.

그래서 각국의 정부와 헌터 협회는 이 붕괴의 리미트 법칙성을 필사적으로 연구했다. 그 한계 시간까지 최대한, 던전이 열린 채로 유지시키려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한계시간의 정확한 법칙성은 알아내지 못했다.”

첫 게이트 발생부터 10년.

세계에서 지금까지 열린 게이트 수가 무려 12,328번.

그중 열렸던 게이트가 붕괴까지 치달았던 적은, 내가 알기로 500번이 조금 넘는 걸로 안다.

“게이트 붕괴의 리미트는… 어떤 수학적인 법칙이 없었어.”

어떤 게이트는 일주일 만에 갑자기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는가 하면. 어떤 게이트는 6개월이 지나도 문제없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최소 기간 7일. 최대기간 6개월.

2031년 11월 27일까지는, 그것이 게이트 유지 기간의 최소, 최대 기록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전 세계가 이런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했다.”

우선 헌터들을 투입시켜서 철저하게 던전을 파헤친다. 그리고 일주일 안에 던전을 당장 폐쇄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은 다음. 던전 마스터는 일부러 일주일을 채울 때까지 목숨만 살려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해당 던전에서 최대한 뽑아먹을 거 다 뽑고 나면, 그때 던전 마스터를 척살한다.

“근데 지금. 10년 동안 이어졌던 그 법칙이 깨져버린 거지.”

일주일은 무슨.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붕괴했다.

대비할 틈도 없이 몬스터가 우장창 쏟아져 나왔다. 힘없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찢고, 무참하게 뜯어먹는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하루걸러 연속으로.”

용산. 그리고 월미도.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천안과 마포대교… 그 외 서울의 다양한 장소들.

무려 15번이나 연속으로. 계속해서 던전이 붕괴한다. 언제까지?

‘인류가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계속.’

지금 매스컴과 인터넷이 공포와 혼돈으로 달아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처음 겪는 일. 미지에서 오는 공포다. 첫 게이트 발생 때를 방불케 하는, 유례없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정말… 너무 무섭네요. 대체, 그놈의 게이트가 뭐길래……!”

수아가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건 계획에 없던 발언이긴 한데.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처음부터 그걸 궁금해 했어야지.”

“…네? 뭐, 뭐가요?”

“모두 던전의 재화와 부가가치에 정신이 팔릴 게 아니라. 던전 자체를 좀 더 궁금해 했어야 됐다고.”

“아아…….”

역시 수아는 똑똑하다. 이 모호한 설명만 듣고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덧붙였다.

“철저하게 의심을 했어야지. 대체 이세계와 이어지는 통로 따위가 왜 갑자기 생기기 시작했는지. 누가 발생시키는지. 목적성은 있는지. 궁금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잖아.”

“…네. 그렇죠. 그렇네요.”

“하지만 사람들은 좀 더 열심히 궁금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나라에 던전이 많이 열려주길 기도하기까지 했어.”

“…….”

“던전은 열려있는 편이, 빈부와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이득이니까. 심지어 나한테도 이득이었지. 그래서 돈 좀 만져보겠다고 일찌감치 헌터가 됐잖아.”

던전과 게이트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무리들은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어떤 단체든 진척이 굉장히 더뎠다.

왜? 당장 큰돈이 안 되니까.

사업성과 수익성이 적으니 스폰서나 지원사업이 들어오질 않고. 스폰서가 없으니 돈도 없다. 돈이 없으니 제대로 조사 작업을 착수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다들 던전을 파헤치기보단, 헌터 육성에만 바빴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헌터들의 던전 노획품은, 기본적으로 회사 소유가 된다. 헌터들은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과 수수료를 떼먹는 방식이다.

“개나 소나 헌터 사업에 뛰어들었잖냐.”

심지어 정부까지 헌터 육성 지원사업을 펼쳤다.

던전이 가진 비밀을 주도적으로 파헤쳐도 모자랄 판에. 그쪽 예산은 명분상으로 쥐꼬리만큼 투입하고, 대신 억만금을 들여 헌터 협회를 건립했다.

자본 논리에 의한 급격한 헌터 시장 팽창. 바야흐로 헌터 전성시대의 도래.

그 결과가 작금의 사태다.

“그 안일함의 대가를 이제야 받는다. 솔직히 그뿐이지.”

내가 반복하는 한 달의 이전.

첫 게이트가 열렸던 2021년 겨울부터, 2031년 11월 27일까지.

그때부터 게이트를 열심히 조사했다면… 그래서 게이트와 던전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냈다면. 어쩌면 인류의 엔딩이 12월 27일로 확정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발악하는 나한테도, 뭔가 희망이 더 보였을지도 모르고.’

의미가 없는 건 안다. 지금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정이다.

하지만 인류 멸망 시나리오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1천 번이나 반복한 나다. 그런 희망편의 가정을 멈출 수가 없다.

많이 원망스럽다. 안일하고 욕심 많았던 과거의 인류가. 솔직히 다 뒤지는 게 싸다고 생각할 때도, 꽤 많다.

“…….”

수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혼자 골똘히 상념에 빠져 있다.

“…호기심이 좀 해결 됐다면 좋겠네.”

한마디 내뱉고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고 물을 틀었다. 수돗물을 손에 받아 얼굴에 한 번 끼얹었다.

차갑다. 정신이 번쩍 든다.

* * *

다음 날.

어김없이 천안, 구세계 백화점에서 3차 게이트 붕괴가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어김없이 급조된 D급 헌터 부대에 소속되었고. 수많은 부대원들과 함께 백화점 앞을 틀어막은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번엔 서문(西門)이다.

내가 속한 부대는 D급 헌터 제08부대로, 백화점 서쪽 구역 일대를 담당하게 되었다.

“…….”

“…….‘

적막이 가득하다.

게이트 붕괴의 현장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적막. 흉가에서나 느껴질 법한 을씨년스러운 침묵이 백화점 전역에 감돌았다.

“X발…….”

“저게, 뭐야.”

주변의 부대원들조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한 눈으로, 잠깐 사이 몰라보게 변모해 버린 백화점을 쳐다본다. 그리고 가끔씩 경악의 탄성을 터뜨릴 뿐이다.

“…….”

나도 백화점 내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우우우! 살짝 열린 문틈으로 폐까지 얼릴 듯한 한파가 쏟아진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에 팔을 슬쩍 부볐다.

“스읍.”

온통 새하얀 서리와 빙판. 그리고 고드름이 가득한 얼음 천지. 수많은 시민들이 마네킹처럼 백화점 도처에서 하얗게 얼어붙어 있다.

때 아닌 겨울왕국이 백화점에 펼쳐져 있었다.

“야 정보조! 붕괴된 던전 데이터 아직이냐?! 뭐 X바 이렇게 느려!!”

문득 우리 부대의 선두에 서있던 남자가 목청을 높였다. 우리 부대의 지휘관이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놈을 빤히 주시했다.

‘이렇게 또 만나네. 박현우 씨.’

부대장의 정체는, 무려 박현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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