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51장 초월로 가는 길(1)
콰앙! 쾅!
폭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마력 광선이 지면을 강타할 때마다 수백 명 이상의 병력이 증발했다.
“블레스!”
S급 보조계 헌터, 이선우의 목소리가 요란한 폭음을 뚫고 울려 퍼지자 일대에 강화 버프가 작용했다.
버프를 받은 헌터들이 공중의 비행선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1척을 더 격추시켰지만, 여전히 하늘을 점령하고 있는 비행선의 수는 많았다.
“공군이 전멸했습니다!”
“방공 부대가 완전히 무력화되었습니다!”
“적 병력이 상륙을 시작합니다!”
전황은 한국군에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마력 광선은 쉴 새 없이 쏟아졌고 착륙한 상륙선들에서 수만 명이 넘는 솔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 지원을 요청한다! 아군 부대 궤멸 직전!”
통신병이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수십 번을 무전기에 대고 말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지원을 요청한다! 제발 응답해 달라!”
주변 부대도 공격받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응답이 없나? 싶은 마음. 절망감에 물들어 무전기를 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여기는 레비앙. 공중항모가 한국군 지원 요청에 응합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지원군이 찾아왔다.
“지, 지원군이다!”
누군가 외쳤다. 검게 물든 밤하늘을 뚫고 공중항모가 나타났다. 레비앙이 공중항모를 강화하면서 붉은색으로 도색을 새로 해서 그런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레이스 길드의 공중항모다!”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단숨에 속력을 높여 거리를 좁힌 공중항모가 사방으로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일격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분산시켜서 적들의 시야를 교란하는 용도였다.
밤하늘을 가르며 뻗어 나간 수십의 마력 광선이 침략사령부 비행선들의 선체를 두들겼다.
레비앙이 검은 마정석까지 사용하여 전력을 다해 강화한 공중항모다. 마력 광선의 위력이 이전과는 달랐다.
“적 비행선들의 진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관의 말에 연대장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튀어나와 마력 광선을 난사하는 공중항모 때문인지 침략사령부의 비행선 진형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혼란이 가중되었다 싶은 순간, 공중항모에서 하나의 비행체가 사출되었다.
“용……?”
확신이 없었기에 연대장은 말끝을 흐렸다. 흑염룡, 플레임을 타고 공중항모에서 쏘아진 현준이 지상으로 몸을 던졌다.
바람을 뚫고 빠르게 낙하하며 그는 가호를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번뜩이고 화염의 마력으로 엮은 마법책이 생성되었다.
“인페르노.”
3배 강화와 화염 지배의 가호까지 사용했다. 하늘에서는 불이 떨어지고 지상에서는 용암이 솟구쳤다.
그 범위가 전장을 모두 뒤덮을 정도로 넓었다. 소모되는 마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마력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지상은 불지옥.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현준은 태식과 선우가 있는 곳에 사뿐히 착지했다.
“가, 강현준 씨…….”
태식이 조금 놀란 것 같은 목소리로 현준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있는 선우는 지쳐 보였다.
급히 집결한 1천여 명의 헌터들에게 수준 높은 버프를 걸고 유지 중이었으니 지칠 만했다.
“퇴각하세요.”
“더 물러나면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현준의 말에 태식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예상했던 대로였기 때문에 현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차분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휴전선 밑으로 물러나서 후속 병력과 합류하세요. 장기적으로 볼 때는 그게 더 좋을 겁니다. 제가 시간을 벌 동안 군을 재정비하세요.”
“하, 하지만…….”
“잠시 동안, 여기는 UN 위원회와 특수 기관에서 맡을 겁니다.”
하늘 위로 수백 기의 수송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 위원회와 특수 기관이 나선 겁니까?”
“급하게 소집하느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잠깐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겁니다.”
대답과 함께 고개를 돌려 적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3배 강화한 인페르노에 화염 지배까지 사용하여 범위를 확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뚫고 달려오는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선봉에는 인베이더들이 있었다.
“물러나세요.”
“알겠습니다…… 부디…….”
“쉿. 그 이상은 사망 플래그에요.”
장난스러움이 섞여 나오는 목소리. 현준은 차분하게 지옥참마도를 뽑아 들었고 태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과 헌터들에게 후퇴를 명했다.
“적의 수는?”
-너무 많아서 정확히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S급 이상은?”
-1백이 넘는다고 말하면 믿을 건가?
“많이도 몰려 왔네.”
지옥참마도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현준은 피식 웃으며 검자루를 고쳐 잡았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가호의 사용. 동시에 땅을 박찼다. 소닉붐과 함께 단숨에 음속을 돌파한 현준은 인베이더들의 진형에 난입하여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신기에 가까운 검무가 시작되고 인베이더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10명이 넘는 이들이 시체가 되었다. 잘린 팔과 다리가 차가운 땅에 나뒹굴었다.
-주군. 다수의 적이 접근 중입니다.
무전기와 연결된 이어폰에서 레비앙의 목소리가 흘려 들어왔다.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지금도 주위가 인베이더들 천지인데 더 온다고?
-마력 광선으로 엄호하고 싶지만 적 비행선이 너무 많습니다.
강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하늘 위에는 침략사령부의 비행선이 너무 많았다.
“제기랄!”
욕설이 튀어나왔다. 슬슬 마력이 한계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경고.
-주인아! 온다!
지옥참마도까지 경고했다. 현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조금 늦었다. 위협을 느끼고 몸을 비틀려는 순간에 이미 검은 창이 복부에 꽂혀 있었다.
“쿨럭!”
제기랄! 고통의 저주까지 걸려 있다. 입 밖으로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간섭합니다. 잠깐 동안 통감이 마비됩니다.
강제 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모된 마력은 적었다. 한순간 마력이 터져 나오며 고통이 약해졌다.
‘통감을 죽였는데 이 정도라고?’
그래도 여전히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마력을 일으키며 검은 창을 뽑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5m 정도 되는 상공에 누군가 부유하고 있었다. 은발에 검은 제복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남자였다.
“인베이더…….”
느껴지는 기세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다.
-주인…… 조심해라. 최소 SSS급 최상위다.
지옥참마도가 경고했다. 은발의 남자가 천천히 착지했다. 다른 인베이더들은 50m쯤 뒤로 물러났다.
“제 13침략군 281번 침략부대 소속 ‘대전사’……. 5급 인베이더 티링거다. 적격자여, 만나서 반갑다.”
소개를 마치며 티링거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렸다. 깔보는 듯한 기분 나쁜 미소였다.
‘5급이 이 정도라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1급과 2급은 얼마나 강하다는 것일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적격자여, 그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네게 경의를 표한다.”
티링거가 잠시 말을 멈췄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2개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난 순간.
사라졌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기랄!”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왼팔에 오러 실드가 생겨났다. 일순간 희미한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방어 자세를 취했고 2개의 단검이 오러 실드를 강타했다.
콰앙!
“큭!”
굉음이 터져 나올 정도의 일격이었지만 현준은 짧은 신음을 흘릴 뿐, 방어 자세에 흔들림은 없었다.
“나쁘지 않군.”
“그래? 그럼 이건 어떠냐.”
반격의 시간이다.
-카르타고의 수호가 정의로운 반격을 전개합니다. 흔들림 없는 방패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당신의 적을 노립니다.
오러 실드가 충격파를 토해냈다. 날카로운 오러의 파편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중심에 티링거가 있었다.
“반격인가?”
평온한 목소리. 칠흑의 오러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오러 파편은 그의 아머를 뚫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황급히 벌렸다. 일반적으로 오러 아머는 오러 실드보다 소모되는 마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방어력이 낮아서 비효율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런 오러 아머로 카르타고의 반격을 방어했다고?
“이거 거짓말이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네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정작 티링거는 현준의 반응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며 단검을 들어 올렸다.
“유감이지만 나는 마법보다는 육체파라서 말이지.”
티링거의 기세가 변했다. 조금 전과 비교했을 때 2배 정도 더 매섭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자세를 정비했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최근 이어진 전투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기에, 이런 과한 긴장은 낯설었다.
-형님!
플레임의 목소리. 멀리서 빠르게 날아오는 검은 용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돌린 티링거의 시선도 플레임에게 닿았다.
“오지 마!”
늦었다. 티링거의 시선이 닿은 순간 이미 플레임의 몸에서 피가 터졌다.
“플레임!”
밤하늘에 붉은 선을 그으며 플레임이 추락했다. 죽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치명상이 분명했다.
현준은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집어삼키며 지옥참마도를 고쳐 쥐었다.
마력을 일으켰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지만 티링거의 몸에서 붉은 점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취약점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폭풍처럼.’
다량의 마력을 소모하여 신체를 강화했다.
‘몰아붙인다.’
그러면 취약점이 보이겠지.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빛의 군마와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었다. 전격의 랜스가 티링거의 목을 노렸으나.
“기어라.”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컥!”
감당할 수 없는 위압이 전신을 짓눌렀다. 라이키리의 가호가 박살 나고 현준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쓰러진 그의 앞으로 티링거가 다가왔다.
“제압의 권능은 처음 보나? 하긴…… 이건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티링거의 손에 들린 단검은 창이 되었다.
“잘 가라, 적격자. 나쁘지 않은 전투였다.”
“아직 끝이 아냐.”
“틀렸어. 이건 끝이다.”
푸욱.
검은 창이 현준의 심장을 꿰뚫었으나, 마지막으로 그가 가호를 발동한 것을. 티링거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