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50장 전면전이다(4)
“커, 커허억…….”
인베이더가 비명과 함께 복부에서 피를 쏟아냈다. 그는 잠시 비틀거리더니 이내, 힘없이 쓰러졌다. 이걸로 SS급 인베이더 넷을 처리했다.
현준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서 사혈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금 전에 전투가 끝난 것인지 특유의 열기가 공기 중에 녹아 있었고 주위로 피가 낭자했다.
S급 인베이더 2명은 땅에 쓰러져 있었지만, 사혈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피투성이였다.
적의 피가 대부분이었지만 스스로가 흘린 피도 다량 섞여 있는 것인지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가 보였다.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황제 폐하.”
현준의 물음에 사혈이 고개를 숙였다. 신체를 개조 받았다고는 하지만 S급 최하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동급의 인베이더 둘을 상대하는 게 조금 벅찼을 것이다.
‘레비앙에게 친위대의 강화에 대해서 물어봐야겠어.’
얼마 전에 비슷한 내용을 레비앙으로부터 듣기는 했지만,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필요성이 느껴졌다.
“은폐 술식이 유지되고 있나……?”
습격해 온 인베이더들을 모두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폐 술식이 해제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걸 유지하는 마력이 희미하게나마 감지되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질드레의 가호.
-질드레의 음흉한 시선이 숨어 있는 마력을 찾아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찾았다.’
현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다량의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은폐 술식이 파괴되었다. 동시에 주위가 녹아내리듯 변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보급부대인가?”
수송 용도로 보이는 다수의 장갑 차량과 호위 역을 맡은 걸로 보이는 수천의 솔저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현준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정찰을 위해 흩어진 친위대가 집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군단을 부를 차례다.’
다른 손으로는 검은 마정석 1개를 꺼내 들었다. 인베이더들은 모두 제거했고 솔저들의 수는 수천 정도였으니, 검은 마정석을 굳이 많이 소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콘이 위대한 명령으로 차원 관문을 개방합니다. 무한의 군단을 호출합니다.
검은 마정석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면서 차원 관문이 열렸다.
-군단, 철갑무장 기병대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특수전 경보병 여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화력 저격수 여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무한의 군단이 소환에 응하고 차원 관문에서 무장한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는 약 2천 정도였다.
솔저급들의 수가 4천 정도라서 수적 차이는 열세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군단의 앞에는 현준이 있다는 것이었다.
“돌격!”
현준이 큰소리로 외쳤다.
“전진하라!”
“군단 소환사님을 따르라!”
총알처럼 땅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현준의 뒤로 군단의 병력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막아라!”
“방진을 구축해라!”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 사수해야 한다!”
지휘관들이 외쳤다. 솔저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머리 위로 불덩이와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준은 가장 먼저 돌파했다. 그리고 솔저들의 진형으로 파고들어 지옥참마도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여기저기서 붉은 핏줄기가 솟구치고 솔저들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순식간에 방진이 무너졌고 밀집된 병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아아악!”
“커헉!”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방진이 무너졌다!”
솔저 지휘관이 다급한 외침과 함께 예비대가 움직였지만 이미 군단 소속의 보병들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제, 제기랄…….”
누군가의 욕설. 그리고 양 진영이 충돌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군단 보병과 솔저 수십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방에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전방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현준은 사혈과 함께 적진의 후방으로 이동하여 마법 화력 지원을 차단했다.
“마법 지원이 차단되었다!”
현준이 침투하고 10분이 지나기 전에 후방이 완전히 전멸했다. 솔저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반면에 군단의 사기는 올랐다.
“화력 저격수! 사격 개시!”
“쏴라!”
군단 측에서도 본격적인 화력 지원이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불의 빗줄기에 솔저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지만.
“어딜 도망가?”
뒤에는 후방을 전멸시킨 현준이 있었다.
“제, 제기랄…….”
누군가 욕설을 흘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준은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일순간에 코앞까지 접근한 그는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정면을 절단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그 순간 뻗어 나간 오러 블레이드가 분열하여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수백의 솔저들이 그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제 남은 이들은 100여 명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항복할 생각은 없나?”
현준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솔저 지휘관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위대한 침략사령부의 선봉, 영광스러운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들이다! 물러서지 않으며! 항복하지 않는다!”
“그게 대답이라면 존중해 주마.”
무심한 듯 지옥참마도를 휘두르며.
“폭풍검.”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이 지나간 곳에는 더 이상 살아남아 있는 이들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준은 말없이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고는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소환된 군단이 돌아가고 현준은 베히모스의 가호를 사용하여 그들의 마력을 흡수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 집결한 친위대를 시켜서 수송 차량을 수색하게 했다. 그 결과 마정석 14개와 여러 무기와 장비들을 노획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러시아에서 수만 명의 솔저를 격파하고 얻은 걸 생각해보면 수천 명을 죽이고 14개를 얻은 건 상당히 효율이 좋았다.
“주군.”
공중항모의 함교에서 노획한 검은 마정석을 어떻게 사용할지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는 현준에게 레비앙이 다가왔다.
현준이 고개를 들었다. 레비앙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곳, 러시아에서 전투를 하는 동안, 중국에 있던 침략사령부의 병력이 한반도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비행선을 타고 이동 중인가?”
“예. 벌써 백두산에서 북한군과 교전에 돌입했다는 것 같습니다.”
인베이더나 솔저 같은 침략사령부의 정예 병력을 상대로 북한군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건 레비앙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현준의 상식으로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 강력한 헌터 병력을 보유한 중국이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그리고 러시아도 내가 없었으면 같은 수순이었겠지.’
북한의 전 지역이 점령될 때까지.
‘하루가 걸리지 않을 거야.’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중항모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무너지고 있는 북한으로 가서 저항 전선에 합류해야 하나? 아니면 대한민국으로 먼저 가서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다.’
현준은 두 눈을 차갑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레비앙. 우리는 한국으로 간다.”
-게슈타인과 구국의 의지가 함께합니다. 구국의 이름 하에 잔혹한 수단이 묵인될 것입니다.
-동조율에 따른 현재 해방도는 1단계입니다. 당신의 결정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겠지만, 대중은 어쩔 수 없었던 결정이라고 생각해 줄 것입니다.
게슈타인의 가호가 발동되었다. 현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세계 여론의 반발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이런 타이밍에 가호가 발동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항로를 재설정하겠습니다.”
레비앙도 군말 없이 따랐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술식 조정을 시작했고 공중항모는 서서히 속력을 높였다.
한국에 도착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중항모가 한국의 영공에 진입했을 때 북한은 이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북한군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와해되는 중이었고 침략사령부는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점령지 장악을 시작했다.
북한군이 생각보다 빨리 무너지면서 침략사령부의 병력 일부가 휴전선으로 접근했다.
주력부대가 이동하지는 않았고 솔저급 5천 정도의 선봉대였다. 아마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한국군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한 위력 정찰일 것이다.
“누구를 보내야 합니까?”
대한민국 수뇌부에서는 논의가 한창이었다.
“헌터들에게 요청을 보내봤지만 쉽게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몸값을 올리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헌터들을 강제로 동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 헌터 기관인 특수 경찰국의 수준이 타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대담한 짓을 벌이는 것이다.
“특수 경찰국은 보내는 수밖에 없나…….”
누군가 말했다. 그의 어깨에는 별이 세 개 붙어 있었다.
“당장은 송태식 헌터와 이선우 헌터를 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강현준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헌터들이었다.
이선우가 흔치 않은 S급 보조계 헌터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의실에 있던 이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연락을 했고 곧 군의 이동 명령이 하달되었다.
송태식과 이선우는 한국군, 그리고 정부의 요청에 응한 헌터들과 함께 휴전선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휴전선에 위치한 산맥에 숨어 적들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적이다!”
어두운 하늘, 10척이 넘는 칠흑의 비행선들이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태식의 옆에 있던 영관급 장교가 통신병을 재촉했다. 통신이 연결되기 무섭게 그는 무전기를 뺏어 들었다.
“전투기 편대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윽고 설치된 대공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검게만 느껴졌던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시끄러운 소음과 찬란한 불빛이 반짝였다.
“전탄 퍼부어!”
“전투기 편대가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정말 공군이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았다. 1분 동안 막대한 양의 탄약을 쏟아부었지만 격추한 비행선은 고작 상륙선 1척이었다.
“오, 온다…….”
누군가 입을 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순간 하늘에서 검붉은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콰앙!
마력 광선이 지면을 강타했다. 불기둥이 솟구쳤다.
“피해 상황 보고해!”
영관급 장교 한 명이 악을 쓰듯 외쳤다. 그러자 위관급 장교과 황급히 달려왔다.
“뭐야! 너 왜 그래!”
영관급 장교는 굳어 있는 부하 장교의 얼굴에서 불안감을 읽었다. 괜히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그, 그게…….”
“빨리 피해 보고해!”
“방공 대대 하나가 날아갔습니다.”
일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