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38장 선봉지휘부(3)
오러 블레이드가 두꺼운 철문을 조각냈다.
“오, 온다!”
강철 조각이 땅에 닿기도 전에 현준의 몸이 총탄처럼 날렵하게 파고 들어왔다.
선두에 있던 선임 기사의 흉부에 어느새 인가 지옥참마도가 꽂혀 있었다.
“커헉……?”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선임 기사의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그의 의식이 끊어졌다.
“흑염이여!”
“불타올라라!”
아르센 주교의 곁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집행관이 흑염을 끌어 올렸고 선임 기사 셋은 크리처로 변했다.
-그아아앗!
크리처로 변하면서 신체 능력과 마력이 강화된 선임 기사 셋이 현준을 포위했다. 집행관 둘이 소환한 흑염 또한 현준을 노렸다.
-이 새끼들이? 동료가 휘말려도 상관 없다는 건가!
다가오는 흑염을 보며 지옥참마도가 분노했다. 그들의 동료인 크리처 셋이 현준의 근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염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현준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교묘하게 움직였다.
-그아아앗!
흑염을 미처 피하지 못한 크리처 셋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타올랐다.
‘저건 그냥 놔둬도 죽는다.’
그렇다면?
‘저 고위 간부를 친다!’
집행관 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르센 주교의 차림은 누가 봐도 ‘나, 고위 간부요!’라고 어필하는 듯했다. 현준은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내며 땅을 박찼다.
“허어억!”
“사라졌다!”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나?”
당황하는 두 집행관과는 다르게 아르센 주교의 눈에는 현준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물러나라.”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몸이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칫, 결계인가?”
벽에 처박힌 현준이 시멘트 조각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단순한 마법 결계가 아니다. 네 놈의 그 술식 파괴로도 어찌할 수 없는 지엄한 그분들의 권능이지.”
-주인. 30초 남았다.
“설명 고맙다.”
살기를 머금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한 마디 내뱉고는 마력을 일으켰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짙은 청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박살 낸다!”
“이건 그분들의 권능을 빌려온 것이다! 네놈 따위가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르센 주교는 마력을 끌어 올려 역장을 더욱 강화했고 집행관들은 흑염을 일으켰다.
그리고 현준은 한 줄기 빛처럼 역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력 특유의 저항감이 느껴지는 순간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듀렌달의 가호로 강화된 오러 블레이드는 강력한 역장을 찢고 들어가 아르센의 상체를 깊숙이 베었다.
핏물이 튀는 것과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아르센의 얼굴이 보였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SS급 헌터도 쉽게 뚫지 못하는…….”
‘벌써 SSS급의 경지에 다가서고 있다는 말인가?’라는 뒷말은 내뱉지 못하고 입 안에서 고요히 사라졌다.
“이기어검!”
“컥!”
“끄르르륵!”
도살자 단검이 춤을 추었다. A급 헌터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던 하급 집행관 2명은 아르센 주교의 시체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절명했다.
현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의 감각에 느껴지는 마력이나 생체 반응은 없었고 지옥참마도도 조용한 걸 보니 생존자는 없는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해 지상으로 달려나가면서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착륙정을 준비하세요. 지금 밖으로 나갑니다. 제가 합류하면 공중항모는 수원으로 갑니다.”
* * *
“알자스 경. 생각보다 적의 저항이 강합니다. 솔저들을 지금 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정중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앞에는 마찬가지로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피부가 소름 끼칠 정도로 창백했고 눈동자는 붉었다.
“이지크 경.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적의 방어 병력을 조금 더 소모하게 한 후에 우리 귀중한 솔저들을 투입해도 되지 않겠나?”
지금 그들은 수원의 레이스 길드 사무소 단지를 공격하고 있었고 선봉에는 혈맹 남한 교구에서 긁어모은 잔존 병력이 모두 동원되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알자스는 그런 충직한 부하들을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보고 있었다.
“역시 알자스 경이십니다.”
“그래도 우리 솔저들에게 대기 명령은 내려두게나. 때가 되면 바로 투입해야 하니까 말이네.”
알자스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가 말한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레이스 길드의 방어선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공격에 투입된 혈맹의 병력 대부분이 전멸해버린 것이다.
“솔저들을 투입하겠습니다.”
이지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대기하고 있던 솔저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침략사령부에 의해 선별된 ‘마수’들로 간부 계급이라고 볼 수 있는 ‘인베이더’들의 지휘를 받는다.
특히 이번에 알자스와 이지크가 데려온 솔저들은 대부분이 ‘뱀파이어’라서 지금과 같은 야간전에서 뛰어난 전투력을 보이는 마수들이었다.
“돌격하라!”
“다 죽여 버려라!”
솔저들은 침략사령부에 의해 선별되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수’들이다. 그들이 전장에 투입되자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무인 방어 시스템까지 가동되었지만, 방어선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솔저로 선별되는 이들은 대부분 A급 이상의 마수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합류하자 방어선에서 버티고 있는 병력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방어선이 무너졌다!”
“전진하라!”
방어선은 솔저들이 투입되면서 10분을 더 버티지 못했다. 승리를 확신하고 방어선을 넘어 길드 사무소 단지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어둠의 불꽃에 휩싸여 죽어라!
검붉은 흑염이 솔저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20이 넘는 솔저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크하하하! 이 몸 등장이다!
하늘에서 거대한 흑염룡이 날개를 펼쳤다. 한때 반역을 꾀했다가 현재는 현준의 충직한 소환수가 된 플레임이었다.
그는 흑염을 내뿜으며 전장을 휩쓸었다. 방어선을 넘어 전진하던 솔저들의 발이 묶였다.
그 모습을 본 알자스는 마력을 끌어 올려 오른손에 뇌전의 창을 생성했다.
손끝에 모인 전격 속성의 마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SS급 대마법 정도면 충분하겠지.”
알자스는 짧은 중얼거림과 함게 뇌전의 창을 던졌다. 솔저들을 휩쓸고 있던 플레임은 뇌전의 창이 날아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SS급 마력 반응?’
그가 마력을 감지했을 땐 피하기에는 늦고 말았다.
-크아아악!
복부에 뇌전의 창이 꽂혔다. 플레임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방심한 탓인지 일격에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남은 솔저들의 수는?”
“이제 겨우 수십 정도가 남았을 뿐입니다.”
마력을 거두며 묻는 알자스. 이지크는 남은 전력을 보고했다. 현재 완전하지 못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임은 SS급의 실력자다.
한순간에 A급 마수 20마리 이상을 증발시키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솔저 지휘관에게 알려서 병력을 전진시키게나. 우리는 저 흑염룡을 처리하도록 하지.”
조금 전의 일격으로 죽을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었으니까. 하고 뒷말을 삼키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알자스. 이지크 또한 아공간에서 대검을 꺼내 들고 뒤따랐다.
“크으윽…….”
추락지에서 플레임은 어느새 인간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알자스와 이지크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50m 정도의 거리를 앞두고 있을 때, 두 인베이더의 앞에 수십 자루의 단검이 날아와 꽂혔다.
“웬 놈이냐!”
이지크가 앞으로 달려 나와 대검을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그의 양옆에서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사혈과 태민이었다.
사혈은 언제라도 소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동행할 필요 없이 본관 건물에 대기 중이었고 태민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이지크 경. 침략사령부에 경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기회라네. 마침 비슷한 수준의 상대로 보이니, 홀로 척살하게.”
“알겠습니다!”
알자스의 지시에 자신만만하게 대검을 들어 올리는 이지크. 그를 보며 사혈과 태민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강자다. S급 헌터의 경지에 오른 두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협공합시다.”
태민의 말에 사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뒤의 적을 경계하십시오. 언제 개입할지 모릅니다.”
사혈이 말했다. 당장은 이지크를 시험해본다고 개입하지 않는 것을 선언했지만 언제 태도들 바꿀지 모르는 일.
그전에 빠르게 눈앞의 적을 처치해야 했다.
“오너라! 적격자의 하수인들이여! 나, 281번 침략부대의 이지크가 상대해주마!”
친절한 자기소개.
“위로 갑니다. 사혈 씨는 오른쪽을.”
“확인했습니다.”
두 S급 헌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교환하더니 땅을 박찼다. 태민의 몸이 위로 솟구쳤고 사혈은 오른쪽에서 이지크에게 파고들었다.
“양동인가?”
이지크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두 방향에서 거의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지만 그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쉽게 읽어 내고는 대검으로 방어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나는 태민과 사혈을 향해 이지크가 거리를 좁히며 대검을 휘둘렀다.
검은 마력으로 형성된 참격이 조각나더니 날카로운 파편의 폭풍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쳤다.
“큭!”
간신히 회피한 사혈과 달리 태민의 왼팔에 검은 파편이 여럿 박혔다.
“크아아아아악!”
웬만한 고통은 참을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검은 파편이 마력을 내뿜자 찾아온 극심한 통증은 도저히 인간의 인내심으로는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고통의 저주다. 적격자 한 명을 도살하고 분석해서 알아낸 권능이지. 물론 그 적격자 수준의 효율은 나오지 않지만 견디기 쉽지 않을 거다.”
친절한 설명.
“큐어!”
맑은 목소리와 함께 하얀 빛이 태민의 몸에 깃들었다. 왼팔에서부터 퍼져나가던 고통의 물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마력은 익숙하다. 태민은 뒤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한소진 씨! 나오시면 안 됩니다!”
“저도 싸울게요.”
예상대로 그곳에는 소진이 있었다. 힘이 없다면 그녀의 이런 행동은 민폐이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회복계이긴 하지만 전투 능력의 특수 능력을 2개나 가진 S급 헌터. 분명 도움이 된다.
“진짜, 싸우는 건 싫은데…….”
태희도 나타났다. 불평하면서도 굳은 얼굴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들을 보며 이지크는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쳤다.
그가 S급 상위의 실력자고 상대가 중견 이하의 헌터들이라고는 하지만 동급을 4명이나 상대하는 건 조금 버거웠다.
“중견 이하라고는 하지만 S급이 4명이라…… 이렇게 되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군.”
11급 인베이더, SS급 하위의 경지에 속하는 알자스가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