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27화 (127/217)

# 127

38장 선봉지휘부(2)

늦은 밤. 현준은 길드 사무소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산을 찾았다.

소환수의 목줄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둡고 깊은 산속이었지만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SS급 헌터인 현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환.”

작은 목소리로 시동어를 내뱉자 왼손에 순수한 마력으로 구성된 목줄이 생성되었다. 그 순간, 현준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다람쥐가 보였다. 왼손을 휘둘러 목줄을 던졌다. 푸른 빛을 내뿜으며 날아간 목줄은 다람쥐에게 닿은 순간 소멸했다.

“동물한테는 통하지 않는 건가?”

소환수한테만 효과가 있는 모양. 현준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산에서 내려와 도착한 주차장에서는 충직한 부관, 태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은 끝나셨습니까?”

“예, 나쁘지는 않네요.”

현준은 말을 마치며 대기하고 있는 차량의 뒷좌석에 탑승했다. 태민까지 조수석에 탑승하자 운전을 맡은 집행부 헌터가 차량을 출발시켰다.

“길드장님께서 실험을 진행하시는 동안 스미스 요원이 지휘하는 UN 특수 기관 요원들이 혈맹, 남한 교구의 최대 은신처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위치가 어떻게 되지요?”

현준이 반색하며 물었다.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주도 동쪽 해상에 위치한 인공섬입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 결계가 약화되어 탐지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지금까지 탐지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한반도에 파견된 스미스와 다른 요원들은 지금까지 한반도만 감시했으니 제주도 인근에 있는 인공섬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집행부 병력을 준비합니까?”

“많은 인원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공격의 주력은 우리가 담당할 필요가 없어요.”

냉정하게 대답했다. 다른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를 선봉에 내세워 전력을 깎아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중요 지점을 타격할 정도의 병력만 소집해 두겠습니다.”

태민은 이해가 빨랐다. 현준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원용 단말기로 한국군에 포위 및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신처의 결계가 약해졌다는 것을 그들 또한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탈출이나 방어 태세를 갖추기 전에 포위를 하고 공격을 시작해야 했다. 방위연합위원회에 소속된 위원의 권한은 언제나 현준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의 말 한마디에 해군 함대가 포위를 위해 움직였고 전략폭격을 위해 대한민국 공군과 주한미군의 폭격기 편대가 발진했다.

“병력 준비가 끝났다는 집행부장의 보고입니다.”

차량으로 이동을 시작한 지 정확히 10분 만에 태민이 규환의 보고를 전달했다.

집행부에는 언제나 명령이 하달되면 즉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교대로 대기 중이라고는 하지만 빠른 반응이었다.

“지휘부는 제주도에 세워졌습니다. 제주도까지 이동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태민이 물었다. 레이스 길드가 헬기 편대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제주도까지 신속하게 이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현준은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으니 대한민국 공군의 수송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재밌는 생각이 있는 것인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길드 비행장에 공중항모, 지금 대기 중이죠?”

“예, 길드장님께서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 정비해두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사시에 공중항모를 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는 지시를 내린 기억이 있었다. 그때 지시를 내리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태민은 충직한 오른팔답게 착실하게 준비를 해온 모양.

“승무원들도 모두 뽑아서 기초 훈련까지 끝낸 상태입니다.”

마법 술식의 도움을 받으면 혼자서도 공중항모를 운용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마력 소모가 심하고 여러 면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승무원은 갖추는 게 좋았다.

“대기 중인 집행부 헌터들한테 공중항모 탑승 명령을 내려두세요. 제주도까지 공중항모를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차량의 속도를 올렸다.

* * *

“약진! 앞으로!”

공군과 해군의 화력 지원을 받으며 지상 병력이 인공섬에 상륙했다.

혈맹원들이 부두 사수를 지하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C급 이상의 헌터들이었다.

“사격 개시!”

“아직 아군 헌터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접근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훈련받은 군인들이라고 해도 C급 이상의 헌터들과 접근전이 벌어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학살을 막으려면 총기로 화력망을 형성하여 접근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뿐이다.

기관총이 총알을 쏟아냈다. 군인들도 연신 방아쇠를 당겼고 함포가 불을 뿜었다. 하늘에서는 공격 헬기 편대가 미사일을 쏘았다.

“실드!”

혈맹원 몇 명이 화력 공격에 휩쓸렸지만 남은 이들은 방어 마법 뒤에 숨어서 천천히 전진했다. 군인들이 총격을 퍼부었지만, 속도를 크게 늦추지 못했다.

“라이트닝 스톰!”

전격의 폭풍이 선봉을 휩쓸었다.

“크아아악!”

“사, 살려…… 으아아악!”

훈련받은 이들이었지만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혈맹원들이 해병대 진형에 난입하자 공군과 해군도 화력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군까지 휩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상륙부대를 엄호하라!”

뒤늦게 헌터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포상금을 타기 위해 움직이는 헌터들이었다.

세계 각국 정부에 의해 혈맹의 존재가 공식화되고 토벌령이 떨어지면서 그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헌터들이 등장했다.

혈맹을 사냥해서 정부에 제출하면 그만큼 보상이 있기 때문. 그들의 중심에는 특수 경찰국의 간부인 이선우도 있었다.

“블레스!”

마력이 헌터 진형을 훑고 지나가면서 버프를 부여했다.

헌터들의 몸에서 한순간 선명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S급 보조계 헌터의 버프에 힘입어 단숨에 부두에 형성된 혈맹의 1차 방어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기사들과 집행관들이 나서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선우의 버프를 받고 호기롭게 전진하던 헌터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전멸했고 인공섬에서 출격한 무인 전투기들에 의해 제공권도 장악당했다.

“반격이다! 모두 죽여라!”

반격이 시작되었다. 제공권을 장악당하면서 군함 역시 혈맹의 공격 범위에 들어갔고 지상 병력은 고립되었다.

“아르센 주교님. 보고 드립니다. 상륙한 지상 병력 절반을 격퇴했으며 남은 절반도 고립되어서 빠르게 소모되고 있습니다. 또한, 제공권을 확보했고 해상의 군함들 역시 3분의 1을 격침시켰습니다.”

기사 계급 혈맹원의 보고에 아르센 주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맹원 일부가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공섬을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침입자들을 성공적으로 격퇴 중에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군. 이대로라면 그 ‘계획’도 무리 없이 성공하겠어.”

아르센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의 눈에 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상륙한 군인들과 헌터들의 몸이 터져나가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포로는 어떻게 처분합니까?”

“우리의 계획에는 산 제물이 많이 필요하다. 일단 생포하면 당장 죽이지는 말도록.”

“알겠습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쾅!

갑작스럽게 밖에서 터져 나온 굉음은 모든 걸 뒤바꿔 놓았다. 이윽고 인공섬 전역에 마력 광선이 비처럼 쏟아졌다.

콰콰쾅!

푸른 마력 광선에 닿은 혈맹원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무슨 일이야!”

“사, 상공에 공중항모 출현! 일본 교구가 보유했었던 아카기입니다!”

“이런 제기랄! 공중항모가 왜 나와!”

창밖의 하늘에 진홍빛으로 새롭게 도색한 공중항모가 거대한 선체를 드러냈다. 아르센 주교와 집행관이 당황하는 사이, 공중항모는 또다시 푸른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한편, 공중항모에서는 현준이 총지휘를 하고 있었다. 통제단 주변에는 공중항모를 조종하는 마법 술식이 어지럽게 부유하고 있었다.

“마력 광선에 의한 4차 전술 폭격을 실시하겠습니다.”

통제단 보조석에 앉은 규환이 말했다. 그는 마법계 헌터라서 공중항모 통제에 있어서 현준을 보조할 수 있었다. 폭발이 터지고 피가 솟구치는 밖과는 달리 함교는 고요했다.

“전술 폭격 종료. 적 대공 포대와 중무장 차량 9할 이상이 파괴되었습니다.”

규환이 건조한 목소리로 보고를 이었다. 중무장 차량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헌터 병력의 피해를 확신하기 힘들었다. 그들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륙뿐인가.”

지상의 적을 섬멸하기 가장 좋은 방법. 현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통제단에서 내려왔다.

“길드장님?”

“집행부 준비시키세요. 상륙합니다.”

“알겠습니다.”

규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륙 부대도 공중항모의 전술 폭격 덕분에 고립에서 벗어났고 추가 상륙을 위해 수송정 여러 척이 부두로 접근 중이었다.

“착륙정을 준비하겠습니다.”

규환이 마법 술식을 조작하는 동안 현준은 격납고로 이동했다.

“착륙정 출발합니다.”

공중항모에서 사출된 착륙정이 인공섬으로 향했다. 대공 화력이 전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착륙할 때까지 그 어떤 저항도 없었다.

혈맹의 주요 시설은 지하에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남은 이들 역시 지하에서 항전을 결심한 것인지 지상에서는 적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지하에서 시간을 끌 생각인가?”

노리는 게 있는 모양.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을 끄는 걸 보면 원군이 있을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

-지하에서 시간을 끌면 귀찮아진다. 주인, 이런 경우에는 지휘부부터 박살 내는 게 좋다.

지옥참마도가 병법의 기본을 말했다.

-머리가 없는 몸은 의미 없으니까. 크큭.

뒷말을 덧붙였지만 흘려도 좋은 이야기. 현준은 지하로 가는 입구를 찾기 위해 마력을 흩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확을 거뒀다. 인공섬에서 가장 큰 건물 안에서 지하로 향하는 거대한 통로를 발견한 것.

-바로 아래에서 마력 반응이 다수. A급만 열다섯이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A급 헌터 열다섯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전력이지만 지금의 현준에게는 손을 슬쩍 흔들면 사라질 하루살이들이다.

카르타고와 시든밀러의 가호를 사용한 채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사가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마력의 빛이 번쩍이더니 전후좌우에서 공격 마법이 쏟아졌다.

“사라져라.”

상위 마법은 지옥참마도의 마법 저항을 뚫지 못했고 고위 마법은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하자 손짓 한 번에 허공에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괴, 괴물……!”

“이게 SS급 헌터라는 말인가!”

“두려움은 잊어라! 혈맹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혈맹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죽임을 당할 게 뻔한 상황이었지만 끊임없이 달려드는 그 모습은 광신도와도 같았다.

-전방에 강력한 마력 반응이 확인된다.

“이 인공섬의 보스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군. 크큭.

지옥참마도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서 두꺼운 철문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겨눈 순간이었다.

-길드장님. 긴급 상황입니다.

무전기에서 태민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현준은 행동을 중단하고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무슨 일이죠?”

-길드 사무소 단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서 무전기를 박살 낼 뻔했다. 혈맹 놈들이 믿는 게 이거였나? 오냐, 그렇다면.

“1분.”

-예?

“1분 안에 여길 정리할게요.”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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