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10화 (110/217)

# 110

32장 영원한 공허(2)

생성과 동시에 던전 아웃의 징후가 포착된 경우는 최초.

던전 관리국에서는 이런 유형의 던전이 추가 생성되었을 경우 확실한 분류를 위해 ‘돌연변이 던전’이라고 명명했다.

“나, 나온다!”

“던전을 클리어했어!”

굳게 닫혀 있던 게이트가 열리고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돌연변이 던전의 경우 최초 발견이었고, 대형에다가 난이도도 S급 최상위였기 때문에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대부분은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 한진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나온 사람 누구야?”

“초신성 강현준! 그리고 레이스 길드다!”

“한진우는?”

“안 보입니다!”

레이스 길드원들이 다 빠져나오고 게이트가 닫혔다. 진우나 아수라 길드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던전 안에서 현준이 친위대를 역소환했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뭐야, 왜 아수라 길드는 한 명도 안 보여?”

“이거 설마…….”

서로 시선을 교환한 기자들은 뭔가를 떠올리고는 현준을 향해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태민을 비롯한 집행부 헌터들이 기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강현준 씨! 아수라 길드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한진우 씨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질문이 쏟아졌다. 현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진우 씨와 아수라 길드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소란스럽던 주변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현준에게 집중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지만 던전에서 나온 그가 확정 짓기를 원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인원은 저희가 전부입니다.”

대답을 마친 현준은 발걸음을 옮겼고 레이스 길드원들이 뒤따랐다.

남겨진 기자들은 추가적인 질문을 할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현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대한민국 최강이 죽었다고?”

진우는 성격이 극악이었고, 평소 행동도 좋지 않아서 여론은 안 좋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S급 헌터였다.

그의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고, 다음 날 기사가 쏟아졌다.

[한진우 헌터, 던전 공략 중에 사망.]

[던전 내 분쟁?]

[대한민국 최강이 바뀌다.]

[강현준 헌터, 그는 누구인가?]

처음에는 한진우의 죽음에 대해 조명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대중은 새로운 태양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냈고, 기자들은 강현준에 대한 내용의 기사를 썼다.

대중의 이목이 현준에게 집중되었다. 상황이 이 정도로 흘러가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현준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한 경쟁이 붙었다.

“던전 관리국에서 길드장님의 위치 때문에 조사를 보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의문이 해결된 건 아닙니다. 인터뷰해서 여론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태민이 말했다. 진우는 생전에 깽판을 치고 다녔지만,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현 아수라 길드장은 그런 세력을 규합하여 현준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외치고 있었다.

“인터뷰할 기자를 고를 때 신중하셔야 합니다. 영향력 있고 저희한테 유리한 내용의 기사를 써줄 기자를 찾아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현준은 고민했다. 아무 말 없이 5분 정도 고민했을까? 현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

“꼭 기자여야 합니까?”

“설마…….”

“그 설마입니다. 지금 당장 손태희 씨를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현준이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태민은 군말 없이 행동했다. 그는 즉시 태희에게 연락했다.

“레이스 부길드장 김태민입니다.”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죠? 어디서 뿌리고 다닌 기억은 없는데…….

서슬 퍼런 살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전해졌다.

‘이게 S급 헌터의 살기인가?’

직접 마주한 것도 아니었는데 숨이 턱 막혀 올 정도였다.

만약 A급 헌터 시절이었다면 호흡곤란까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이스 길드장을 맡고 계시는 강현준 님으로부터 전화번호를 전달받고 연락드립니다.”

-강현준? 그런 사람도 있었나?

“모르는 척하지 마십시오. 손태희 씨께서 저희 길드장님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은 현재 대한민국 최강이자 유일의 SS급 헌터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장난이야. 너무 진지하게 그러지 마.

“길드장님에 대한 발언에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준에 대한 광적인 충성심으로 무장한 이가 바로 태민이었다.

현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게 말하는 걸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듣고 넘길 리가 없었다.

-장난이라고 했지! 아무튼, 본론부터 말해. 나 많이 바쁘니까.

태민은 용건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설명했다.

-내가 얻게 되는 게 뭔데?

“현 대한민국 최강과의 인터뷰입니다.”

-그게 왜 나한테 이득이 되는 거야?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밀고 당기기를 할 생각이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유일의 SS급 헌터가 되어버린 현준이다. 그와의 독점 인터뷰를 한다면 태희의 구독자 수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 그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닌 척해도 태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다소 불쾌하다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알았어. 그건 내가 사과할게. 언제 찾아가면 돼?

“빠를수록 좋습니다.”

-조만간에 갈게. 자세한 일정은 천천히 의논하자.

“좋습니다.”

태민의 대답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그녀의 연락이 다시 오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일정을 잡자는 연락이 왔고, 3일 만에 그녀가 레이스 길드 사무소 단지를 방문했다.

“와아, 엄청 커.”

레이스 길드에서 축구장만 한 넓은 부지를 매입하고 길드 사무소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지나가는 인터넷 뉴스를 봐서 알고 있었다.

12월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공사는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그래서 태희는 레이스 길드 사무소 단지의 웅장한 모습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손태희 씨?”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까 그곳에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남자가 서 있었다.

쉐이드의 지휘관이자 친위대장인 사혈이었다.

“길드장님께서 제게 손태희 씨의 안내역을 맡기셨습니다. 단지가 넓어서 제 안내가 필요할 겁니다.”

사혈은 차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태희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스 길드의 2인자는 김태민 아니었어? 이 괴물 같은 애는 또 뭐야?’

태희는 S급 헌터다. 그래서 사혈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그는 A급 최상위의 실력자였지만, 친위대장 각인을 받으면서 S급 최하위로 승격되었다.

기존에 품고 있던 살기까지 있으니 태희의 눈에는 괴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길드장님의 말씀대로다.’

그녀의 반응을 지켜본 사혈은 속으로 감탄했다. 현준은 이 모든 걸 설계했던 것이었다.

사혈은 곧 시작될지도 모르는 아수라 길드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레이스 길드의 무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중 나온 것이었다.

입이 가벼운 태희는 사혈의 존재를 사방에 전파할 것이고, 그것은 곧 아수라 길드에도 닿을 것이다.

한진우와 강진명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의 움직임에 다소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혈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태희가 뒤따랐다. 곧 두 사람은 앞에 정차한 검은 세단에 탑승했다.

‘우와, 진짜 넓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예전에 방문했던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보다 압도적이었다.

‘이게 플래티넘 티어의 길드 소유라고? 대체, 강현준은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태희를 태운 세단이 길드 사무소 단지를 가로지를수록 그녀는 색다른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사혈이 먼저 내렸고, 태희도 뒤따라 내렸다.

“여기가 본관 건물입니다.”

10층 높이의 건물이 눈앞에 있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이들이 로비로 향하는 현관을 지키고 있었다.

“길드장 집무실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사혈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승강기를 타고 길드장 집무실이 있는 10층까지 올라갔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도에는 안내를 맡은 사혈과 비슷한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길드장 집무실 문이 열렸다. 태희는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자 창가에 서 있는 현준의 모습이 보였다.

“본론부터 들어갈까요?”

“나도 그게 좋아.”

태희는 현준의 말에 짧게 대답하며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독점 인터뷰를 허락해 주는 조건으로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원하는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직설적인 질문에 현준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동과 날조.”

* * *

“의원님. 한진우와 강진명이 당했습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집행부장이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한진우가 당했다고?”

“그게 정말인가?”

의원이라고 불린 이는 물론이고, 예전에 회장이라고 불렸던 남자도 벌떡 일어나 집행부장을 향해 확인 질문을 했다.

“예, 처음 기사가 나오고 확인을 위해 정보부를 운용한 결과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말도 안 돼…….”

의원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졌다. SS급 헌터 한진우와 아수라 길드는 ‘이너서클’에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기짝이었다.

큰맘 먹고 꺼낸 비장의 카드가 박살 났다. 희미한 조명 아래로 보이는 의원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강현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말이냐…….”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먼저 SS급에 오른 진우와 최정예 집행부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아수라 길드가 던전 안의 전투에서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패배를 예상하지 못했고 이 결과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행부장.”

시립한 집행부장에게 의원은 질문을 던졌다. 이너서클의 고위 간부라고는 하지만 헌터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게 많았다.

그래서 의원은 신중하게 행동하기 위해 집행부장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다.

“최정예들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아수라 길드가 남아 있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아수라 길드마저 잃으면 강현준을 저지할 무력 수단은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SS급 헌터의 경지에 오른 현준이 대한민국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엄청난 수준이기 때문에 정치적 압박은 통하지 않았다.

“아수라 길드장 역시 한진우와 강진명의 복수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수라 길드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유사시에는 특수 경찰과 한국군을 비밀리에 협조하게 해야 합니다. 뒷일을 두려워하시면 안 되고 우선은 강현준을 죽이고 레이스 길드를 제압해야 합니다.”

집행부장의 말에 의원과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는데, 현시점에서 특수 경찰과 군부대 명령의 우선순위는 위원회 소속인 현준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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