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74화 (74/217)
  • # 74

    21장 마도학자의 은신처(4)

    “강현준 이 개자시이이익!”

    밤하늘 길드장이자 S급 하위 헌터, 이시연이 욕설과 함께 절규를 토해냈다.

    분명, 현준이 마법 함정을 해제했다고 했고, 부하 녀석도 마법 함정이 없다고 확신했지만, 보스방에 들어오기 무섭게 그녀와 길드원들을 반긴 건 사방에서 발동되는 마법 함정이었다.

    “으아악!”

    짐꾼으로 데려온 B급 헌터가 가장 먼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실드!”

    시연이 상위급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마법 함정의 화력을 버티지 못하고 처참하게 박살 났다.

    하늘에서는 전격이 쏟아졌고, 전방에서는 바람의 칼날이 날아왔으며, 양쪽 측면에서는 저주를 머금은 화살이 발사되었다.

    출입구 쪽에서는 불기둥이 솟구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아아악!”

    “커헉!”

    고생해서 영입한 집행부 소속의 A급 헌터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고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 이게 S급 던전…….”

    그녀도 S급 던전은 공략 경험이 없었다.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들어온 자신이 한심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기, 길드장님!”

    길드원들의 절규와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

    “힐! 힐!”

    한 명밖에 데려오지 않은 A급 회복계 헌터가 쉬지 않고 힐을 외쳤지만 죽은 이들까지 살릴 수는 없었다.

    “컥!”

    회복계 헌터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5분이 지난 시점에서 대부분이 죽고 시연과 다른 A급 전투계 헌터 한 명만//이// 남았다.

    시연은 그나마 괜찮아 보였지만 A급 전투계 헌터는 왼팔이 없었고, 피투성이였다.

    독에 중독된 것인지 얼굴에 보라색 반점이 피어 있었다.

    “사, 살려…….”

    남은 A급 헌터도 1분을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시연도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모든 원망은 현준에게 향했다. 반드시 이 지옥에서 살아나가 강현준을 죽이리라. 그렇게 다짐한 순간이었다.

    “꺄악!”

    뭔가가 허벅지에 꽂혔다. 확인해 보니 화살이었다.

    “도, 독……!”

    체내에 독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마비독이다. 시연은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독이 퍼지는 속도를 늦추려 했지만, 꽤 상급의 독인지 몸이 빠르게 마비되어 오는 게 느껴졌다.

    “아흑!”

    마비 탓에 몸이 느려진 틈에 바람의 칼날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튀었다. 마비독 화살에 맞고 1분이 지나기도 전에 그녀의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하아, 하아.”

    시야가 흐릿해지고 몸이 무거웠다. 그래도 S급 헌터답게 순식간에 A급 헌터를 전멸시킨 마법 함정의 밭에서 꽤 오래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마법 함정이 정지했다. 그리고…….

    “괜찮아요?”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레이스 길드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있는 현준의 얼굴을 본 순간 시연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에 사로 잡혔다.

    현준은 웃고 있었다.

    “힐!”

    소진이 힐을 사용했지만 현준은 말리지 않았다.

    조금 전에 마법 함정의 술식을 분석하고 해체하면서 화살이 머금고 있는 독이 평범한 ‘힐’로는 치유할 수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차도가 없네요. 힐로는 치유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규환 씨, 마수들은 어때요?”

    현준이 살살 밑밥을 깔며 규환에게 질문했다. 마법 함정은 모두 해제했지만 여기는 보스방이었다.

    당장 어둠 속에서 마수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머지 분들은 전방 경계를 부탁할게요. 저는 이시연 씨의 독을 해독해 볼게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특히, 진아는 현준에게 강한 신뢰를 담은 시선을 보냈는데 정신 오염에서 그녀를 구출한 게 현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안 돼…….”

    시연은 절망했다. 그나마 착해 보이던 회복계 헌터가 힐을 해주는 모습을 보일 때만 해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악마 같은 놈이 다가오는 걸 보니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항하기 위해 창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마비독 때문에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시연 씨, 제가 해독하겠습니다.”

    얼핏 보면 도와주는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시연의 눈에 비친 현준의 모습은 악마였다.

    지금 현준은 너무나 즐겁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는 시연의 복부에 손을 올린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무, 무슨 짓을…….”

    “독을 자극해서 체내에 퍼지는 속도를 빠르게 했어.”

    진리를 보았던 마도학자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준에게 이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 그아아…….”

    “이제 목소리도 슬슬 안 나오지? 마비독이 전신에 퍼진 거야.”

    “으아아…….”

    시연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마치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현준은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대로 조용히 죽으렴.”

    마지막 가는 길을 조롱하며 배웅하는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그아아아…….”

    시연이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려 현준의 외투를 붙잡았다.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어, 어히혀 후터…….”

    “어디서부터 잘못됐냐고?”

    웃음이 사라졌다.

    “네가 날 죽이려고 한 순간부터 잘못된 거야. 동정을 바라지는 마라. 날 죽이려고 한 사람한테 자비를 베풀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거든.”

    이윽고 시연의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 현준은 공략팀 헌터들과 합류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규환이 물었다. 현준은 짐짓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죽었습니다. 독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어쩔 수 없죠. 길드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수도 동조했다.

    “형님, 선제공격을 하는 게 좋을까요?”

    시연의 죽음은 3분 만에 잊혀졌다. 애초에 그녀는 동료도 아니었고, 오히려 칼날을 들이댄 쪽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마법 함정은 없는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진입할 때 다수의 마법 함정을 질드레의 가호로 해제하느라 마력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거리를 좁히자 시야가 확보되면서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 학자의 모습이 보였다.

    녹색 로브를 입고 있었고, 둥근 안경을 끼고 있었다.

    100m 정도 거리를 남겨두었을까? 가만히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현준과 공략팀 헌터들은 일제히 방어 태세를 갖췄고, 그 모습을 보며 보스는 싸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나의 은신처에 온 걸 환영한다. 실험체 제군들! 나는 마도학자 로도스만이라고 한다!”

    인간형이라고는 하지만 마수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헌터 커뮤니티 등에서 S급 던전부터는 상식이 통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많았지만, 설마 다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당황하지 마세요! 바로 갑니다!”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현준이 땅을 박차고 로도스만과의 거리를 좁혔다. 한수와 규환이 뒤따랐고, 진아와 한석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무의미하다!”

    “컥!”

    로도스만이 마력을 일으킨 손을 휘젓자 한석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진아도 다소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다.

    “힐!”

    두 사람에게 소진이 힐을 사용했다. 한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내상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렸던 진아 역시 표정이 좋아졌다.

    “감히, 마법으로 나를 대적하려고 하다니! 어리석도다!”

    동조율이 올라가면서 깨어난 질드레의 지식에 의하면 조금 전 로도스만이 보인 기술은 ‘캐스팅 강제 파괴’였다.

    술식을 작동시켜 캐스팅을 강제로 파괴한 것이다. 주로 상대방을 모든 면에서 압도할 때 가능한 기술이었는데 로도스만의 마력은 진아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어딘가에 각인된 술식이 있다.’

    마도학자들은 음흉한 족속이라서 은신처나 공방에는 수십 가지 술식이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그들의 공간에서 그들과 맞설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술식을 찾아야 해.’

    마법 함정을 제거할 때 탐지하지 못한 걸 보면 꽤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와라! 버러지들아! 위대한 진리의 이름으로 처단해 주마!”

    로도스만이 두 팔을 벌리자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푸른 마법진에서 수십 개의 전격이 쏟아졌다.

    “큭!”

    한수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나는 게 보였다.

    방패로 전격을 방어했지만, 충격을 모두 흘리지는 못한 것이다.

    한수를 뒤로 밀어보낸 전격의 폭풍은 이제 현준을 노렸으나 그의 몸에 닿는 순간 전격 줄기는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이럴 수가! 상위 마법을 무효로 할 정도의 마법 저항력이라고?”

    지옥참마도의 마법 저항력 증가 옵션 덕분이었다. 현준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로도스만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 이런!”

    당황한 로도스만이 마력을 담은 손을 휘젓자 또 다른 마법 술식이 작동했다.

    현준은 마력의 흐름을 감지하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그가 있던 곳에 불기둥이 솟구쳤다.

    마력을 보아하니 고위 마법이었다. 뒤로 빠지지 않았다면 불에 타버렸을 것이다.

    ‘제기랄! 질드레의 가호를 한 번 더 써야 하나!’

    하지만 가호를 한 번 더 쓰면 오러를 유지할 마력조차 남아나지 않게 된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크큭! 마력이 부족하나?

    “보면 모르냐?”

    현준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피만 있으면 마력으로 변환할 수 있어.

    “미안하지만 저 미친 마도학자 놈한테 접근하는 게 쉽지가 않아.”

    상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로도스만은 고위 마법을 저장한 술식을 계속해서 발동시키는 것으로 현준의 접근을 막았다.

    한수와 규환의 상황도 마찬가지였고 석현과 한석은 특수한 술식 때문에 마법 캐스팅 단계에서 계속해서 견제당했다.

    -굳이 저놈의 피를 쓸 필요는 없다고…… 크큭.

    “설마…….”

    -크큭. 그 설마다. 주인의 피도 마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는 거지.

    “가져가라. 내가 죽지 않을 만큼만.”

    망설임은 없었다. 현준의 대답에 지옥참마도는 그의 피를 게걸스럽게 탐했다.

    “큭!”

    아찔한 통증과 함께 일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가 진정되었다. 이 미친 중2병 놈이 진짜 죽기 직전까지 피를 뽑아간 모양이다.

    -마력이다.

    다량의 마력이 흘러들어 왔다. 현준은 즉시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했다.

    -질드레의 어두운 지식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마법 술식의 분석을 시작합니다.

    캐스팅을 파괴하는 술식이 각인된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술식이 파괴되었다.

    “이런 망할!”

    로도스만이 욕설을 흘렸다.

    “진아 씨! 한석 씨!”

    “표식 부여! 고통의 주박!”

    “라이트닝 스톰!”

    진아와 한석의 고위 마법이 완성되었다.

    “소용없다!”

    로도스만이 발동한 무효 술식이 고통의 주박과 라이트닝 스톰을 무효화했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았지만, 로도스만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무효 술식을 급하게 발동하느라 많은 마력을 소모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준은 이걸 노리고 있었다.

    “이기어검!”

    “커헉!”

    총탄처럼 쏘아져 나간 도살자 단검이 로도스만의 복부에 꽂혔다. 그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살자 단검이 복부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간 것이었다.

    “크아아아악!”

    그가 고통에 미쳐 날뛰는 동안 어느새 현준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잘 가라.”

    휘둘러진 지옥참마도에 의해 로도스만의 목이 날아갔다. 그의 죽음으로 밖으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가 활성화되고, 동시에 바닥이 열리고 보상함이 위로 올라왔다.

    한석이 마정석을 루팅 하는 동안 현준은 소진과 함께 보상함을 열었다.

    “이게 다 마정석이야?”

    소진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보상함 안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순도 높아 보이는 마정석이 가득했다.

    현준은 죽은 짐꾼의 시체에서 가방을 가지고 와서 마정석을 모조리 담았다. 아공간 주머니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

    “현준아, 이건 뭐야?”

    마정석을 다 챙기자 바닥에 있던 낡은 책 한 권이 드러났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냥 일기장 같은 게 아닐까요?”

    진아가 말했다. 마력이 부여되지 않은 건 장비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준은 뭔가 끌리는 느낌을 받았고, 손을 뻗어서 낡은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멸망을 속삭이는 붉은 마법사, 이스텔의 마지막을 담은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질드레의 어두운 진리가 숨어 있던 술식을 찾아내 분석하고 발동시킵니다.

    -적격자 확인 완료. 재능의 강제 각성을 시작합니다.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불쾌한 통증이 뇌를 관통했다.

    “무, 무슨…….”

    -당신은 마법의 재능을 각성했습니다. 멸망을 속삭이는 붉은 마법사, 이스텔이 관심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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