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75화 (75/217)

# 75

22장 공포를 느껴라(1)

S급 던전의 공략 성공은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가져왔다. S급 던전의 공략을 성공시킨 길드는 골드 티어 이상에서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스 길드는 더욱 돋보이게 되었고, 길드에 가입 신청을 넣는 헌터들의 수가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길드에 가입 신청을 넣은 사람 중에는 A급 헌터들도 있었다. 숫자도 10명 이상으로 적지 않았다.

현준은 시험과 면접을 통해 그들을 철저하게 점검한 뒤, 가입 신청을 승인했다.

이것으로 레이스 길드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인 ‘A급 헌터 부족’이 해결되었다.

“골드 티어 승격에 필요한 최소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A급 헌터들의 가입 신청을 승인하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서가 뒤따르며 보고했다.

“벌써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최대한 빨리 골드 티어로 승격하기 위해 길드원 영입과 규모 확장에 자금을 아끼지 말고 투자하라는 지시를 내려두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투자 상태가 좋아서 길드원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S급 던전을 공략하면서 확보한 자금도 효율적으로 활용 중이고요. 현재, 길드 공략팀도 6개를 운용할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실적은요?”

“S급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신 덕분에 승격에 필요한 공략 실적이 단번에 채워졌습니다. 거기다가 A급 헌터들이 추가 유입되면서 길드원 실적도 확보된 상태라…… 공문만 보내면 바로 승격될 것 같습니다.”

종서의 보고에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바로 공문 보내세요.”

고민은 없었다. 골드 티어로 승격되면 길드가 가지는 영향력도 더욱 확대될 것이니 피할 이유가 없었다.

길드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행히 현준은 특수 경찰국과의 거래로 길드세가 면제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상관없는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골드 티어 승격 절차를 요청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종서가 물러나고 현준은 길드장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업무를 보기 전에 잠시 휴식하려는 생각이었지만, 곧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태민으로 인해 방해받고 말았다.

“길드장님, 오늘 S급 던전에서 이시연의 사망 때문에 던전 관리국에서 조사관이 오기로 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몇 시쯤에 온다고 했었죠?”

사실은 잊고 있었지만, 현준은 태연하게 질문했다. 태민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1시간 정도 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던전 내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조사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도 형식적인 약식 조사인 것 같으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다른 보고할 내용은 없나요?”

“이번에 유입된 A급 헌터 중 일부가 집행부로 들어오길 원하더군요. 종서가 조사를 해봤지만, 문제 될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집행부는 정규 길드원 중에서도 가장 대우가 좋은 부서였기 때문에 위험한 임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많은 편이었다.

물론, 비밀스러운 임무도 수행하기 때문에 선발 기준이 까다롭고 뽑힌다고 하더라도 처음에는 중요한 일에 투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부분은 집행부장에게 전권을 부여할게요.”

“감사합니다.”

태민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뒤, 길드장 집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약 1시간의 시간이 흘렀고, 전달받은 대로 던전 관리국에서 보낸 조사관이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이쪽에 앉으시죠.”

현준이 먼저 소파에 앉자 조사관도 앞자리에 앉았다.

태민은 약식 조사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었지만 조사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난 시점에서 현준은 조사관이 작정하고 달려들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표적 수사 수준인데?’

불쾌할 정도의 조사였다.

“조사관님, 조사가 길어질 것 같은데 메시지 한 통만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 정도까지는 봐 드리죠.”

현준을 대하는 조사관의 태도는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마치 자기가 갑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대놓고 도발하고 있었다.

‘그래, 누가 갑인지 보자.’

현준은 메시지를 전송하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이제, 곧 반응이 올 것이다.

“30분만 쉴까요?”

“계속 강도 높은 조사를 해야 하니……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시간 끌기를 위한 제안이었지만, 다행히 조사관은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30분이 흐르고 조사가 다시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특수 경찰 제복을 입은 송태식이 걸어 들어왔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금 조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조사는 끝났으니까 돌아가세요. 지금부터는 특수 경찰국 관할입니다.”

“그게 무슨…….”

조사관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럽게 특수 경찰국의 고위 간부가 개입해 왔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관련 사항이 이미 특수 경찰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조사관께서는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태식이 단호하게 말했다. 조사관은 닭 쫓던 개 지붕 보는 심정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현준이 냉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어서 가보세요. 조사관님, 일 끝났잖아요.”

쐐기를 박았다. 이게 인맥이라는 거다.

“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사관은 별말 없이 얌전히 물러났다. 특수 경찰국에서 고위 간부직을 맡고 있는 S급 헌터와 대립할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조사관이 떠나고 태식의 시선이 현준에게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정보가 들어왔나 보네요.”

“예, 아주 흥미로운 정보가 들어왔지요. 강현준 씨도 재밌어할 만한 내용입니다. 그나저나 앉아도 되겠습니까?”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식은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소파에 앉았다.

“도청 결과, 누군가 경기도 외곽에서 레이드 상황을 강제로 발생시키려는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레이드를 강제로 발생시켜요? 그게 가능합니까?”

일반적인 상식에서 레이드는 던전과 달리 외부에서 열리는 차원 균열을 의미한다.

차원에 간섭하는 건 아주 높은 수준의 마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영국의 SSS급 헌터인 드레이크조차 불가능하다는 게 공식적인 정보였다.

“정보가 한정되어 있어서 저희도 정확한 파악은 힘들지만, 그 ‘검은 마정석’이라는 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여기까지가 태식이 말할 수 있는 한계였다.

검은 마정석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특수 경찰국에서 몇 개를 확보해서 연구 중이긴 했지만 분석이 쉽지 않았다.

“정보가 없다는 거죠?”

현준이 물었다. 따져 묻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모양새였다.

하지만 태식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검은 마정석의 원리가 흑마법과 비슷하다는 것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레이스 상황을 발생시키고 인명 피해를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치는 정확하게 파악했습니까?”

“현재로서는 경기도 외곽이라는 것 정도까지. 정확한 위치는 정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전 설명은 충분했다. 현준은 어서 본론을 말하라는 투로 손을 휘저었다.

다행히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한 태식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재, 비밀 작전 때문에 저와 특수 경찰국의 주력을 다른 곳에 배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강현준 씨와 이진아 씨가 레이드가 발생하기 전에 검은 마정석을 사용하는 이들을 제압해 주셨으면 합니다.”

“움직일 수 없다는 특수 경찰국의 주력에 감문위의 ‘시위대’가 포함되어 있는 겁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한국 육위 중 하나인 감문위, 이선우는 S급 보조계 헌터로 개인의 무력은 다른 이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그걸 해결하기 위해 특수 경찰국에서 일하는 걸 조건으로 개인 무력 집단인 ‘시위대’를 조직했다.

태식처럼 특수 경찰국에 정식 소속되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고용된 용병에 가까웠다.

“이선우 씨와 ‘시위대’도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가 보네요.”

현준의 물음에 태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엉덩이 무거운 시위대가 움직일 정도라면 특수 경찰국의 가용 병력은 모두 동원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늦게 되어서 레이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됩니까? 길드 병력을 동원할 생각인데, 이 경우에는 우선권이 없는 상태에서의 길드 차원의 개입이 될 수도 있어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광범위한 탐색 및 제압 작전에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집행부 몇 명과 함께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레이드가 발생할 경우, 길드 차원의 개입으로 고소가 들어온다면 우선권이 없고, 담당 특구가 아닌 레이스 길드가 패소하게 될 것이다.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측에서 해결할 테니까요.”

“우선권 수입은요? 그것도 주는 겁니까?”

공짜로 마수를 사냥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산금 우대가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에 현준은 과감하게 요구했다.

“물론입니다. 우선권 정산 비율을 적용시켜 드리겠습니다.”

반쯤은 기대 없이 말해본 것이었지만 태식은 예상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특수 경찰국이 급한 것 같은데?’

이선우와 시위대까지 움직였다는 것만 봐도 대충은 알 수 있었지만, 우선권 요구를 받아들이는 걸로 확실해졌다.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현준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욕심을 떨쳐냈다. 그는 인명을 가지고 협상을 할 정도로 타락한 인간은 아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행이다.’

태식은 안도했다. 현재 특수 경찰국의 병력 사정이 좋지 않아서 현준이 더한 조건을 내걸어도 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질하지 않는 현준의 모습에 태식은 더욱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현준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 사람, 아니, 칼이 하나 있었다.

-의외로군. 주인이라면 생명을 인질로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낼 줄 알았는데…….

전달을 끝마친 태식은 다시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집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현준은 지옥참마도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실망했냐?”

-아니, 싫지 않아.

“그렇다면 다행이네.”

지옥참마도의 대답에 현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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