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70화 (70/217)

# 70

20장 피를 부르는 검(3)

결국, 지옥참마도는 현준의 것이 되었다. 스스로 맹세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 의식의 영향까지 있으니 통제되지 않을 우려는 없었다.

충성을 다하는 걸 대가로 지옥참마도가 요구한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공간 주머니에 장비를 넣고 다니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무기 정도는 휴대하고 다니는 헌터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다소 귀찮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문제없었다.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위해 사소한 귀찮음을 감수하기로 했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현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길드장 집무실 소파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집행부장이라는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이 밤새 현재 상황과 주변 인물 관계에 대해 설명한 덕분에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상식 정도는 갖추게 되었다.

그래도 부족해서 지금도 스마트폰을 지옥참마도 앞에 가져다 놓고 인터넷 뉴스 채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등급 재심사를 보러 갔거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것과 함께 뉴스 채널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는 정치 뉴스였지만, 이번에는 헌터 뉴스를 주로 다루는 방송 채널이었다.

-옛날부터 그랬지. 필멸자들은 스스로의 강함에 등급을 부여해서 다른 이와 차별화하는 걸 좋아하더군. 심지어 나한테까지 등급을 부여할 줄이야.

지옥참마도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현준은 말없이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집행부장 김태민입니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태민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모습을 본 현준은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태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잔뜩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네요.”

“예, 길드장님. 이번 재심사로 A급 하위 헌터로 승급했습니다.”

현준의 물음에 태민은 터져 나오려는 기쁜 마음을 참아내며 말했다.

A급 헌터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태민이 꿈꿔왔던 일이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 현준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들뜨고 기쁘게 만들었다.

“축하합니다. 집행부장.”

진심을 담아서 축하해주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겠지만, 이규환과 같은 정예들이 유입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이제 그는 A급 헌터로 승급했으니 고민의 대부분이 해결되었을 터였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민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들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그와 대화를 시작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소진이 걸어 들어왔다.

“현준아, 커피 마시면서 해.”

“누나, 조금 쉬면서 해요.”

지난, 며칠과는 달리 여유가 생겨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현준은 소진에게 휴식을 권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괜…… 찮…….”

말을 끝맺지 못했다. 소진은 크게 휘청이더니 이내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누나!”

“한소진 씨!”

소진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현준이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나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당장, 차량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태민이 황급히 지하의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현준은 의식을 잃은 소진을 업었다. 1층으로 내려가니 태민이 도로에 차량을 주차시켜 둔 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세 사람을 태운 차량이 출발했다. 태민은 모든 신호를 무시한 채 미친 듯이 달렸다.

A급 헌터의 반사 신경 덕분에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짧은 순간 영혼이 이탈하는 듯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병원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과로입니다. 던전 피로도 많이 누적되어 있고…… 상태가 조금 심각할 정도네요.”

의사의 진단이었다. ‘던전 피로’라는 게 존재한다. 주로 충분한 휴식 없이 연속으로 던전을 돌 때 생기는 후유증 같은 건데, 쉽게 풀어 말하면 만성 마력 고갈 현상이다.

던전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더 무리하게 되면 신체 능력이 우수한 헌터들도 과로로 쓰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집행부장, 설명을 부탁합니다.”

현준의 시선이 태민에게 향했다.

“길드 확장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건 길드장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로 인해 업무가 과중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쉬지 않고 실적을 위해 연속해서 던전을 공략했던 모양입니다.”

태민의 대답에 현준은 한소리 하려다가 참았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소진의 성격상 태민이 곁에서 말려도 묵묵히 던전을 공략했거나 아니면 힘든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긴 제가 있을 테니까, 업무로 복귀하세요.”

“알겠습니다.”

비자금과 레이드 독점권의 성공 덕분에 풍족해진 재정을 바탕으로 길드의 확장은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권한을 가진 이가 1명 정도는 길드 사무소를 지켜야 했다.

소진은 쓰러졌고, 현준은 간호를 위해 남아야 하니, 태민이 그 몫을 수행할 때였다.

의사와 태민이 물러나고 현준은 2시간 정도 소진의 곁을 지켰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현준은 잠들어 있는 소진을 향해 차분한 시선을 보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길을 느낀 것일까? 소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현준이? 여긴…….”

그녀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병실의 풍경에 자신이 현준의 앞에서 힘없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해야 하는데…… 나…… 얼마나 잤어?”

“일 얘기, 하지 마요. 지금은 누워서 쉬어요.”

일어나려는 소진을 현준이 다시 눕혔다. 그러자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나 휴가야? 헤헤.”

장난스럽게 말했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현준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네. 휴가예요. 길드장 권한으로 특별 휴가 줄게요.”

“정말?”

“네,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요!”

현준은 특정 부분을 유난히 강조했다. 소진이라면 쉬면서도 틈틈이 몰래 길드 업무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야! 내가 휴가 중에도 일할 것 같니?”

아니나 다를까, 소진은 비밀스러운 계획은 들킨 사람처럼 손사래를 쳤다.

“그럴 것 같았어요.”

“치이, 너무해.”

소진이 볼을 부풀렸다. 그 모습을 보며 현준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애교가 많아졌다고 느꼈는데 착각이 아닌가 보다.

“있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거야?”

“들어보고요.”

무신경한 대답에 소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행동이 철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표정을 고쳤다.

“우리, 놀러가자.”

매몰차게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 * *

가을바람을 머금은 바닷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하지만 지금 소진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에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애꿎은 모래만 발로 툭툭 차고 있었다.

“하하…… 미안해요.”

현준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사과했다. 소진이 둘이서만 가자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꺼낸 줄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이 커질 줄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아. 같이 와줬으니까. 헤헤.”

실망한 기색을 완전히 감추는 건 힘들었지만, 소진은 현준이 미안해하는 걸 원치 않았기에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현준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보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이걸로 된 거야…….”

소진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얕은 바닷물에서 고아원 동생들이 물장난을 치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태민이 집행부 헌터들과 함께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모래사장 쪽에서는 한석이 손으로 수박을 박살 내고 있었다.

“하하하! 수박 먹어라!”

“와아!”

“수박이다!”

한석의 외침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워낙 친화력이 좋은 한석이었기 때문에 애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동생들이 수박을 들고 먹는 모습을 보며 소진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여기까지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였다면…….

“현준 씨. 아이스크림 먹어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의 여인은 이진아였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현준에게는 은근히 친근하게 구는 모습에 소진은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 불여우 같은 년이 따라온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쉬니까, 좋네요.”

소진의 속은 모르는 것인지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 현준이었다. 오랜만의 휴식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강현준 헌터님! S급으로 승급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포르테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저와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루모티스 길드 영입 과장입니다! 저희가 좋은 조건을 준비했습니다!”

S급 승급 소식을 접한 기자들과 길드 관계자들이 인터뷰와 영입을 위해 몰려온 것이다.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목소리에 날이 섰다. 휴가 중이었는데 이렇게 방해를 받을 줄이야.

현준은 소진과 진아 등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자들과 길드 관계자들을 으슥한 곳으로 이끌었다.

“우선, 저는 레이스 길드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자분들에게도 할 말이 없고요.”

처음에는 좋게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들이 특히 극성이었다. 거듭 조용히 말로 해결하려 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결국, 현준은 답답한 마음에 살기를 아주 조금 흘렸다.

“허, 허억!”

“컥!”

아주 조금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공포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죄,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기자들이 물러가고 남은 이는 길드 관계자들 중에서도 헌터로 각성한 이들이었다.

저들에게도 통할 정도로 살기를 쏟아낼 자신은 있었지만, 굳이 길드 관계자들과는 심하게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미래를 위해서도 현명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레이스 길드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계속 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저와 레이스를 적대할 생각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그 길드에 들어가는 경우의 수는 완전히 사라지겠죠. 오히려 적대 길드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날카로운 말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진정하게. 우리 중 그 누구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자네와 적대할 생각이 없네.”

“초신성과 맞설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의 실례는 잊어주시길.”

“죄송했습니다. 저희가 휴가를 망쳤으니,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사죄하겠습니다.”

길드 관계자들이 물러났다. 그리고.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사신이 경고했다.

“나와라.”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하자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솟구쳤다.

“너…… 어떻게 알았냐?”

그림자가 벗겨지자 충격과 공포로 물든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현준도 알고 있는 헌터였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인터넷에서 사진을 본 적 있었다.

“강진명…….”

S급 최상위 헌터. 아수라 부길드장.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강한 헌터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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