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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69화 (69/217)

# 69

20장 피를 부르는 검(2)

“하하하! 형님!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저 마검이 말이라도 했습니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한 게 분명하다.

“지옥참마도의 마력이 약해졌습니다. 현준 씨한테 귀속된 것 같네요.”

진아가 말했다. 그녀는 S급 장비를 귀속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옥참마도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챘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 지금 지옥참마도가 현준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건 몰랐다.

-이 몸을 깨운 게 네놈인지 물었다.

지배 의식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귀속되었을 텐데, 지옥참마도는 예의가 없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현준도 에고 소드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통상적인 것인지 파악이 힘들었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헌터로 지내면서 여러 커뮤니티를 이용했지만 에고 소드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는 건…….

‘숨겨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지.’

분명, 에고 소드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없다는 건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희귀하거나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나도 숨겨야지.’

현준도 지옥참마도가 에고 소드라는 사실을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넣었다.

-크큭. 말하는 검을 보는 건 처음인가? 당황한 모양이군. 이 몸이 특별하긴 하지.

지옥참마도가 뭐라고 떠드는 것 같았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행정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행정관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S급 헌터 3명이 실패한 지옥참마도를 S급이 된 지 한 달도 안 된 헌터가 귀속에 성공했다고? 이건 대체…….’

광휘의 안현지를 포함한 3명의 S급 헌터가 실패한 이력이 있었다.

한국 육위에서도 술식을 분석하는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호위, 광기의 학자 조성준은 지옥참마도가 S급 장비치고 저항이 강해서 SS급 헌터가 아니면 지배 의식에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행정관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내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지시에 반대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그가 반대했다면 현준에게 S급 장비가 양도되는 시점이 조금 늦춰졌을 것이다.

“이제 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정문까지 배웅해드리겠습니다.”

“자, 잠깐…….”

태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행정관은 더러운 뭔가를 씹은 표정으로 현준을 붙잡았다.

“왜요? 용건 있어요?”

“아, 아닙니다.”

차가운 시선과 함께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행정관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승강기까지 안내하겠습니다.”

보안팀장이 말을 마치며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행정관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홀로 그곳에 남았다.

승강기를 타고 1층에 내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검은 세단과 승합차 여럿이 정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진아의 수행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당황한 표정인 걸로 보아 석현이 부른 것 같았다.

‘이진아 쪽은 안전하겠군.’

수행원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수준도 높아 보였다. 제일 그룹이 길드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으니 비밀리에 모은 헌터 전력일 것이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 공식 길드가 만들어지면 집행부로 활약할 인재들로 보였다.

“또, 볼 수 있을까요?”

석현과 함께 수행원들을 향하던 진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현준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예전과는 달리 현준에게 닿는 목소리가 다정했다. 그 변화를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며 현준이 입을 열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진아 씨는 송태식 씨를 돕고 있고, 저도 특수 경찰국의 거래를 받아들였으니 당분간은 싫어도 계속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준의 대답에 진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머리카락의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계속 만날 수 있다는 현준의 말을 들은 순간, 진아는 안심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가 그녀도 혼란스러웠다.

“가, 가볼게요.”

재촉당하는 사람처럼 서둘러 석현과 함께 세단으로 뛰어갔다. 그녀가 탑승한 것을 확인한 수행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차에 탔고, 곧 차량 행렬이 출발했다.

“강현준 씨. 호송 병력을 지원해드릴까요?”

태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격해 온 습격자 대부분을 단신으로 처리한 현준이었다.

호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에 제안했다. 생색도 낼 수 있고 말이다. 하지만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멀리서 검은 세단과 승합차 몇 대가 달려오더니 이내 특수 경찰국의 정문 앞에 일렬로 멈춰 섰다.

동시에 차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이들이 하차했다. 모두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헌터가 분명했다.

“제 ‘부하’들이 도착했으니까요.”

그들의 가슴에는 레이스의 흉장이 달려 있었다.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계단에서 내려갔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이들 중에서 유난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집행부장 김태민이었다.

“길드장님!”

황급히 달려오는 태민의 몸에서 다량의 마력이 느껴졌다.

최근 며칠 동안 일이 바빠서 제대로 마주 본 적이 없었는데, 뭔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집행부장 왔습니까?”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현준은 반갑게 맞이했다. 태민도 반가운 표정으로 응답하는 것과 동시에 현준의 몸 상태를 살폈다.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괜찮다는 현준의 말에 태민은 안도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그것’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면 연락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태식이 대답했다. 자신도 S급 헌터였지만, 현준이 함께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정되고 든든했다.

“그럼, 이만.”

“또, 뵙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먼저 세단에 탑승했다.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보니 잊은 게 생각났다.

한석이 생각난 것이다. 창밖으로 멀뚱멀뚱 서 있는 한석이 보였다.

집행부가 있는 길드와 달리 정규 공략팀은 수장에 대한 조직원들의 충성도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사적으로 부리는 게 쉽지 않았다.

“한석 씨도 같이 가시죠.”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타요.”

현준의 제안에 한석은 감동한 표정으로 바로 달려와 조수석에 탑승했다. 태민은 운전석을 맡았다.

“오늘은 레이스 길드 사무소에서 자고 가세요.”

괴인들의 습격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2차 공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늦은 시간이었다.

한밤중이라고는 해도 도심에서 로켓탄을 퍼부을 정도의 미친 집단이지만,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길로 이동하면 2차 습격을 시도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형님.”

차량 행렬이 출발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저는, 형님을 따를 겁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한석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처음 형님이라고 부를 때만 해도 비즈니스적인 관계에서 조금 발전한 정도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S급 헌터에게 잘 보이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지독한 정신 오염에서 자신을 구해준 게 현준이라는 걸 한석은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현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석도 검은 마정석과 관련된 일에 휩쓸렸으니 현준이나 특수 경찰국과 함께 행동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도착했습니다.”

길드 사무소에 도착했다. 태민이 차를 멈춰 세우자 한석은 현준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하며 내렸다.

안내와 추가 경비를 위해 집행부 헌터 3명이 따라붙었다.

“자택으로 모시겠습니다.”

태민이 다시 차를 움직였다.

“소진이 누나는요?”

“밀린 업무 때문에 길드 사무소에 계십니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잘했습니다.”

현준은 이번 습격을, 아니 검은 마정석과 관련된 일을 소진이 몰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녀가 걱정과 불안해하는 걸 현준은 원치 않았다. 아직 에코 길드와 겪었던 일도 기억에 남아 있을 텐데, 괜히 더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잠시 소진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에 차가 멈췄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니 익숙한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차고에 이 녀석을 주차해두고 당분간 1층에서 지내겠습니다.”

“내일 재심사 받아보세요.”

“길드장님?”

현준은 대답 대신 차에서 내렸다. 태민이 품고 있는 마력이 며칠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심사를 받는다면 무리 없이 A급 판정을 받을 것 같았다.

-네놈!

방에 들어와 아공간 주머니에서 지옥참마도를 꺼내기 무섭게 항의하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뇌를 헤집었다.

-감히, 이 몸을 어둡고 공허한 공간에 처박아? 대가를 치를 각오는 되어 있는 것이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서 보관했던 게 불만인 모양이다.

‘자아’가 있는 에고 소드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는 건 ‘실례’를 넘어서 ‘고문’에 가까운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불만 있냐?”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옥참마도가 주종 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배 의식을 치렀다고는 하지만 자아가 있는 에고 소드라서 그런지 영향이 크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경우 다시 한번 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불만 있냐고.”

-끄아아아아악!

농도 짙은 마력을 주입하자 지옥참마도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지배 의식의 영향 탓인지 마력을 일으켜 저항하지 못했다.

-부, 불만 없다! 이놈아! 그마아아아안!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더 심하게 하면 반발이 심할 것 같았기에 현준은 마력을 거두었다.

-크, 크큭…… 이제야 이 몸의 위대함을 깨달은 것인가? 필멸자여…….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으니……. 한 번 더 간다?”

-크큭! 마음대로 하거라! 이 몸을 고통으로 굴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야!

머리통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현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지옥참마도의 태도로 볼 때 고통으로 굴복시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현준은 짧은 고민 끝에 어떤 방법을 하나 떠올렸고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크큭…….”

-뭐지? 필멸자여…… 미친 것이냐.

현준이 갑자기 괴기스럽게 웃자 지옥참마도는 당황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너를 영원의 어둠 속에 봉인할 수밖에…….”

-뭐, 뭐라고? 설마 방금 전 그 아공간에 나를 영원히 가둘 생각이냐? 나는 쓸모 있는 검이다! 나를 제대로 사용하면 지금 네놈의 마력로의 한계가 2배가 될 뿐만 아니라 회복률도 2배 빨라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적의 피를 흡수하면 마력을 회복할 수 있고, 상위 마법 정도는 내가 무효화할 수 있다! 어떤가? 이 정도면…….

지옥참마도가 열심히 스스로를 어필했다. S급 장비답게 붙어 있는 옵션들이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지만 현준의 반응은 차가웠다.

“난, 통제되지 않는 무기는 쓰지 않아.”

차가운 목소리가 지옥참마도를 불안하게 했다.

-크윽. 어쩔 수 없군. 이제부터 너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결국 항복 선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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