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21장 마도학자의 은신처(1)
강진명은 A급 헌터로 시작해서 5년 만에 S급 최상위에, 한국 육위 중 3번째 무력 순위까지 올라간 천재였다.
특히, S급으로 승급하면서 각성한 특수능력인 ‘완전 은신’은 알아채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S급 최상위인 마법계 헌터 조성준조차 진명이 마음먹고, 은신 상태가 되면 찾지 못할 정도였다.
‘내 완전 은신을 간파할 헌터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진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감각…… 익숙해…….’
진명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진우에게 완전 은신을 간파당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우의 경우에는 SS급 헌터가 되고 난 이후에서야 진명의 은신을 간파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현준은 갓 S급 헌터가 된 신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차 각성자라고 하지만 너무하잖아…… 어디서 이런 괴물 새끼가 튀어나온 거지?’
스스로에게 물었으니 대답이 들려올 리 없었다.
‘죽일까? 지금이라면 가능해.’
소매에 숨긴 단검을 던지면 일격에 즉사시킬 자신이 있었다. 단검이 슬쩍 삐져나온 순간이었다. 소름 끼치는 살기가 엄습해 왔다.
“너, 그거 뽑으면 죽는다.”
현준의 손에는 이미 지옥참마도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명은 깜짝 놀랐다.
S급 최상위의 헌터이며 기척 감지의 달인이기도 한 그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현준은 임전의 태세를 갖춘 것이다.
-맞서 싸울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주인은 ‘아직’ 저놈을 이기기 힘들어.
지옥참마도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의 말이 옳았다. 전생의 방에서의 수련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대한민국 넘버 3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S급 최상위의 헌터였다.
쉽게 이기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이런 긴장은 오랜만이군.’
숨 막히는 대치 상황에서 진명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고, 현준은 마력을 살짝 끌어올려 로마노프의 가호를 사용했다.
[강진명 : 심연에서 보는 자.]
완전 은신을 가지고 있는 암살자다운 ‘진명’이었다.
“안 오냐?”
이런 경우 선공은 불리하다는 걸 전생의 방에서 깨우쳤다.
그래서 가벼운 도발로 선공을 유도하려고 했으나 진명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 무기를 뽑아 들지 않았다.
“오해하지 마라.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진명은 노선을 바꿨다.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는 전투력이 크게 줄어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크게 소란을 피워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경고를 하러 온 거다.”
현준의 물음에 진명이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고’라는 불쾌한 단어에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경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묻자 진명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경고.”
“한번 들어나 보자. 말해봐.”
“요즘 많이 설치고 다니더군. 오래 살고 싶으면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다.
목소리에서 살기가 묻어 나왔다. 경고를 무시하면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었다.
“그럼, 나도 경고하지. 편안하게 죽고 싶다면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고 가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날카로운 위협에도 불구하고 현준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한 경고로 맞서는 모습에 진명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재밌는 친구로군. 그래, 그렇게 계속 설치고 다녀라.”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진명은 천천히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림자에 숨는 것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군. 크큭!
“어차피 죽을 놈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마치 이길 수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지옥참마도.”
현준은 차갑게 내뱉으며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해변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 * *
휴가가 끝나고 현준은 업무로 복귀했다. 소진도 다시 출근하려고 했지만, 현준은 그녀에게 강제로 휴가를 더 부여했다.
“완전체가 되어서 돌아오세요.”
“와, 완전체……? 그게 뭐야?”
“푹 쉬다가 오라는 말이에요.”
그렇게 소진은 3일의 휴가를 더 얻었고, 현준은 길드 사무소로 출근했다.
소진의 휴가 동안 그녀의 업무는 태민이 맡게 되었다.
그로 인해 태민의 업무 과중이 심해졌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일했다.
“길드장님, 홍상균 국회 의원이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태민이 보고했다. 휴가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현준이 S급 하위 헌터로 승급했다는 소문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줄을 대려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다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권력의 중심에 가까운 이들이었지만, 현준에게는 날파리에 불과했다.
“이번이 몇 번째죠?”
“국회 의원의 경우만 보면 11번째입니다.”
지난 이틀간 현준에게 접근한 국회 의원이 11명이라는 말이었다.
“비공식적인 루트입니까?”
“예, 거절하셔도 뒤탈이 없을 겁니다.”
헌터들에게 줄을 대려는 경우는 흔했다. 그래서 거절당하더라도 대부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줄을 대려는 시도를 해서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 현준의 가치는 그 정도였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의 수는 30명이 조금 넘었다.
인구수를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줄을 대기 위해서 국회 의원이 움직일 정도는 되지만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매달릴 상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거절하세요.”
“길드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핑계를 대는 게 모양새가 좋았다. 홍상균 국회 의원 측에서도 이해해 줄 것이리라.
“S급 던전 예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S급 던전 일정 확보는 현준이 승급한 직후, 바로 내린 지시였다.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지 태민의 표정을 밝지 않았다.
“어제 아수라 길드가 상위 입찰을 계속 걸어오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태민의 보고에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아수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수라 쪽에서 얼마에 입찰해 간 겁니까?”
현준의 물음에 태민은 최종 입찰된 보증금의 액수를 말해주었다.
S급 던전 같은 경우에는 공략 실패가 거듭되어 던전 아웃이 시작될 경우 최소 수천 명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막대한 액수의 보증금을 걸어둔다.
보증금은 공략 실패 시 군 병력과 헌터 대응팀을 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아수라에서 입찰한 보증금 액수는 통상 4배였다. 이 정도면 악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 새끼들이 죽으려고 이딴 식으로 상위 입찰질을 해?’
화가 났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제,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예상하기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현준이 물었다. 태민은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S급은 자주 생성되는 던전이 아니었다. 이제 얼마나 기다려야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태민은 현준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괜찮습니다. 집행부장.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급한 일도 아니잖아요.”
최악의 경우 반년까지 예상했지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부산에 S급 던전의 생성을 확인했습니다. 세부 난이도는 최하위입니다.”
늦은 오후, 혼자 던전 공략을 끝내고 길드장 집무실로 돌아오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면서 태민이 달려와 보고했다.
“입찰은 언제 진행한대요?”
“30분 뒤에 시작합니다.”
“빠르네요.”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정 시간 동안 공략이 안 된 던전이 방치되면 던전 아웃을 일으킨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빨랐다.
“미약하지만, 던전 아웃의 조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던전 관리국에서 입찰을 서두르는 모양입니다.”
“준비하세요. 이번에는 저도 갑니다.”
“모시겠습니다.”
준비된 차를 타고 던전 관리국으로 이동했다. 보증금 입찰은 던전 관리국 건물의 경매장에서 이루어진다.
거리가 먼 경우 지부에서 원격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태민이 과속을 한 덕분에 수원 지부에 예정보다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스피드 레이서의 기질이 있어…….’
저번에 소진을 병원에 데려갈 때도 그렇고, 태민은 레이서의 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사무원의 안내를 받아 경매장에 들어섰다. 서울 지부에서 열리는 경매에 다른 지부에서 원격으로 참여하는 거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현준은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그러자 서울 지부 경매장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수가 많지 않았다. 그건 곧 경쟁자가 적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S급 던전, ‘마도 학자의 은신처’의 경매를 진행하겠습니다.
시작됐다.
‘누구보다 빠르게!’
현준의 손이 한줄기 섬광처럼 움직였다. 가장 먼저 입찰 버튼을 누르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매의 막이 올랐다.
-23번 참가자님께서 상위 입찰하셨습니다.
경매가 진행될수록 금액은 빠르게 올랐다. 하나둘씩 입찰 경쟁에서 물러나는 이들이 생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3명 정도만 남게 되었다.
둘 다 서울 지부에서 직접 참여하고 있었고, 노트북의 카메라 시야에 닿는 곳이었다.
한 명은 여자였고, 다른 하나는 남자였는데 쉬지 않고 입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되면 돈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현준도 입찰 버튼을 계속 눌렀다.
보증금 입찰이 통상의 3배가 되자 남자 쪽은 더 이상 상위 입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보증금은 돌려받는다고는 하지만 수수료도 있었고, 무엇보다 실패할 경우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을 감당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여자의 옆모습이 보였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한계를 보이는 듯했다.
돌려받는다고는 하지만 일단 보증금으로 맡겨둬야 하니 운용 자금을 초과해서 입찰할 수는 없다.
‘저쪽은 슬슬 한계다.’
하지만 현준은 아니었다. 독점 레이드와 최나영의 비자금 덕분에 당장 유동 가능한 현금이 아주 많았다.
여자 쪽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입찰 버튼을 눌렀지만, 현준은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낙찰되었습니다.
결국, 승리했다. 통상 4배의 가격에.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반드시 공략에 성공할 테니까.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노트북을 덮었다.
태민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옆에 서 있던 던전 관리국 사무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곧, 계약서가 도착할 겁니다. 응접실로 가서 기다리시죠.”
사무원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팩스가 도착했습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다른 직원이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명찰을 보니까 과장 직급의 간부였다.
그는 2개의 계약서에 각각 도장을 찍고 현준에게 건넸다.
“서명을 하시고 입금까지 끝내면 S급 던전, ‘마도 학자의 은신처’에 대한 임시 소유권이 발효됩니다.”
서명하는 순간,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면 천억에 가까운 금액이 날아간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현준은 거침없이 서명을 끝내고 직원과 계약서를 나눠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