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68화 (68/217)

# 68

20장 피를 부르는 검(1)

“S급 장비요?”

“네, S급 장비요. 대한민국 정부에서 몇 개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높은 등급의 장비를 부르고 싶었지만, SS급 이상의 장비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리하에 있는 게 없었다.

아수라 길드에서 SS급 장비를 하나 보유하고 있지만, 그건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의 SS급 헌터, 한진우가 쓰고 있다. 이미 귀속되었으니 죽지 않는 한 가져올 수 없다.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상부에 다시 연락해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급한 건 제가 아니니까. 편한 대로 하세요.”

현준은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말했다. 상부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여러 근거가 있었고, 무엇보다 ‘직감’이 그랬다.

잠시 후, 태식이 돌아왔다. 교섭을 위해 자리를 비운 지 30분 만이었다.

“잘 해결되었습니까?”

형식상의 질문에 가까웠다. 던전 레이드 시대 초기부터 특수 경찰국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정부 기관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잘 나가는 헌터들은 던전 레이드 사업만으로 큰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와 일할 생각이 없었다.

특수 경찰국에 소속되더라도 개인의 던전 및 레이드 공략을 어느 정도 허가해 주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그나마, 헌터들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정은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정부 기관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으면 어떨까?’

지금처럼 도시 한복판에서 로켓포 세례를 받을 정도다. 그게 특수 경찰국의 현재 위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방패가 없다면 무력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은 더 악화될 거다.’

단 2명밖에 없는 국가 소속의 S급 헌터 중 한 명인 송태식이 소식을 듣기 무섭게 달려온 것만 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다급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현준은 ‘가치’를 증명했다.

제한적인 상황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헌터 6명, ‘육위’ 중 한 명인 금오위 송태식보다 강한 무력을 보여준 것이다.

단순 마력량은 S급 하위지만, 실전에서는 S급 상위인 태식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거기다가 정신 오염까지 해제했으니 국가에서 탐을 내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다.

“상부에서 강현준 씨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S급 장비 하나가 지급되고, 레이스 길드에 대한 길드세가 면제될 겁니다.”

“계약서는 언제 작성해요?”

“계, 계약서요?”

“네. 국가와의 거래라고는 하지만, 제가 의심이 많아서요.”

현준의 직설적인 말에 태식은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계약서를 준비하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태식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1시간 정도 지났을까? 휴게실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계약서 2장이 들어 있었다.

“읽어보고 서명하시죠.”

남자가 말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 한 장을 받아 들었다. 그때 최한석이 불쑥 다가왔다.

“형님! 제가 조금 읽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법대 출신입니다. 계약서에 이상 없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석의 말에 현준은 계약서를 빠르게 훑었다.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전문가의 시선은 또 다를 것 같아서 그에게 흔쾌히 건네주었다.

“계, 계약서를…….”

“한석 씨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뭔가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한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문제되는 조항이 몇 개 있습니다.”

한석은 계약서 조항을 짚어 가면서 현준에게 설명해 주었다. 덕분에 이해가 빨랐다.

그의 말대로 그냥 넘어갔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조항이 몇 개 있었다.

“고쳐서 오세요.”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니까, 빨리 고쳐오세요.”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수정된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이번에도 현준은 한석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문제없습니다.”

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검토다.’

계약서를 한 번 더 읽어봤지만, 한석의 말대로 문제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방금 전의 계약서로 인해 화가 난 현준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소소한 혜택 몇 가지가 더 붙어 있었다.

무려 대한민국 정부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현준은 흔쾌히 서명을 끝내고 태식과 계약서를 1부씩 나눠 가졌다.

“이제 S급 장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죠.”

계약이 끝났으니 계약금을 받을 차례였다.

“강현준 씨한테 지급할 S급 장비는 마침 이곳에 보관 중입니다.”

말을 마치며 태식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현준은 그의 뒤로 따라붙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연의 일치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태식이 휴게실 문을 연 순간이었다.

“형님!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한석이 잽싸게 달려왔다.

“S급 장비를 실제로 보고 싶습니다!”

“저,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얌전히 앉아 있던 진아도 나섰다. 그녀가 합류한다면 석현도 데려가야 할 터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현준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같이 가도 되지 않을까요?”

“하아…… 알겠습니다. 강현준 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다 같이 가도록 하죠.”

태식은 지하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승강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제복을 입은 특수 경찰관들이 보였다.

모두 C급 이상의 헌터인 것인지 총기류의 무장은 전혀 없었다. 아마 그들의 무기는 보이지 않는 아공간 주머니 속에 있을 것이다.

애초에 C급 이상의 헌터들은 총기보다 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냉병기를 사용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실장 님 오셨습니까?”

보안팀장 명찰을 달고 있는 여자가 태식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A급이네.’

어깨에 달린 계급장은 젊어 보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은 경감 계급장이었다.

특수 경찰국 내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A급 헌터였다. 그것도 중견급 이상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S급 장비가 보관된 곳답게 주요 전력을 배치한 모양이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경감이라…… 헌터가 좋긴 하네.’

현준은 티 나지 않게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참고로 극비 수사실장을 맡고 있는 송태식의 계급은 경무관이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상부의 지시는 전달받았습니다. S급 장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보안팀장이 대답과 함께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현준은 그녀의 뒤를 따르면서 가슴이 미약하게 뛰는 걸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F급 헌터였는데 이제는 S급 장비를 거래로 받을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다.

‘출세했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도착했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보안팀장이 걸음을 멈췄다. 두꺼워 보이는 철문이 열리고 내부가 드러났다.

벽은 콘크리트였고, 중앙에는 붉은색의 검이 꽂혀 있었다.

-당신의 전생, 저주받은 광전사, 에든버러가 사용했던 장비를 발견했습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퍼의 도살자 단검의 경우와는 달랐다. 전생과의 동조율이 올라가면서 생긴 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지옥참마도입니다. 귀속된 적이 없어서 옵션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태식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S급 장비니까 최고의 옵션이 붙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배 의식에 실패하면 저희가 양도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거 아시지요? 지배 의식과 관련해서는 저희가 지원해 줄 수 없습니다.”

S급 이상의 장비를 사용하려면 지배 의식을 치러서 귀속시켜야 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은근히 현준이 지배 의식에 실패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저 사람, 누굽니까?”

현준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태식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특수 경찰국 소속 행정관입니다. 이미 상부에서 결정이 났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꼬장 부리는 겁니다.”

태식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도 행정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묘한 권력 관계에 현준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중앙에 꽂혀 있는 티르빙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시작할 생각입니까? S급 장비의 지배 의식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겁을 줘서 S급 장비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행정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현준은 티르빙을 향해 손을 뻗었다. 최악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다.

S급 장비의 지배 의식 도중에 목숨을 잃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만, SS급 장비의 경우 지배 의식의 실패로 목숨을 잃은 경우가 미국과 러시아에서 몇 번 있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손가락이 티르빙에 닿았다. 접촉과 동시에 티르빙에서 불길한 기운을 머금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이건 내 거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배 의식에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마력을 일으켜 티르빙의 마력에 맞섰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개의 마력이 충돌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이게 S급 장비의…….”

한석이 두 눈을 반짝였다. 지배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태식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인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S급 장비를 하나를 가지고 있는 진아와 지배 의식 과정을 지켜보는 석현은 차분했다.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마력의 농도가 짙어졌다. 티르빙 역시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티르빙에서 폭발하듯 마력이 터져 나왔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세네?’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불쾌한 시선이 느껴져서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행정관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슬슬 재밌어진다고 생각되려는 순간이었다.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개입합니다. 신격의 권능이 티르빙의 저항을 파괴하고, 강제 귀속을 진행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항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티르빙의 주위를 보호하듯 둘러쌌던 마력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지금이다!’

현준은 지배 의식을 마무리하기 위해 티르빙을 잡고 마력을 밀어 넣었다.

나머지는 손쉬운 일이었다. 현준의 마력이 티르빙에 파고들어 귀속 각인을 시작했고, 그 과정은 5분이 걸리지 않아서 결과를 만들어냈다.

티르빙이 굴복했다.

-이 몸을 깨운 건 네놈이냐?

그리고 티르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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