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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67화 (67/217)

# 67

19장 변화의 바람이 분다(3)

현준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정신 오염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소량의 마력을 움직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다행히 질드레의 가호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마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질드레의 어두운 지식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마법 술식의 분석을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정신 오염을 진행시키고 있는 생화학 무기 같은 마법의 술식이 눈앞에 펼쳐졌다.

질드레의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눈앞의 술식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준은 다시 한번 마력을 일으켰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큭!”

현준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던 검은 마정석의 마력이 단번에 박살 났다. 하지만 시야가 흐릿해졌다.

마력의 소모가 큰 탓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그제야 현준은 뒤늦게 마법 파괴에 소모되는 마력은 마법의 위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눈에 들어온 광경은 쓰러져 있는 진아를 향해 손도끼를 내려찍으려는 복면인의 모습이었다.

“이기어검!”

땅에 꽂혀 있는 도살자 단검이 위로 솟구쳤다. 이내 짧은 칼날의 끝은 손도끼를 든 복면인에게 향했다.

현준이 마력을 담아 손짓을 하자 단검이 총탄처럼 날아갔다.

복면인은 기습을 눈치채고 방어를 시도했지만, 도살자 단검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손도끼를 피해 목에 꽂혔다.

“커헉!”

“저, 놈이다!”

“어떻게 정신 오염에서 멀쩡한 거지?”

“일단, 공격해!”

복면인이 짧은 비명과 함께 고꾸라지자 다른 복면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현준을 향해 달려들며 검과 창을 휘두르고 찔렀지만, 괴인과 달리 주력 전투원이 아닌 것인지 실력이 형편없었다.

“으아아악!”

“커헉!”

“끄르르륵!”

한 번 휘둘러진 검에 복면인 셋이 쓰러질 정도의 신묘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아직 마법 공격을 펼치던 복면인들이 남아 있었다.

현준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흑염!”

“흑검!”

시동어와 함께 공격 마법이 완성되었다. 현준은 피하지 않고, 땅을 박차며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본 복면인은 경악했다.

“피하지 않는다고?”

그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해지는 고위 마법, 흑염과 상위 마법 흑검이 동시에 노리고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거리를 좁힌다?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질드레의 어두운 지식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마법 술식의 분석을 시작합니다.

분석이 끝났다. 그리고.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마법이 파괴되었다. 상위 마법은 물론이고, 고위 마법도 질드레의 가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마, 마법 파괴 술식?”

“전투계 헌터가 이런 고등 술식을 알고 있다고?”

“정신 차려! 바로 앞에 있다!”

복면인들이 당황하는 사이 현준은 이미 그들 바로 앞까지 접근한 뒤였다.

“제, 제기…… 끄아아아악!”

잘린 팔이 바닥에 툭 떨어지며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리더로 보이는 자가 일격에 당하자 복면인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으, 으아아!”

도망가는 자.

“블링크!”

그리고 재정비하여 맞서는 자.

“이기어검.”

현준은 도망치는 자부터 처리했다. 날아간 도살자 단검이 머리통에 꽂히자 복면인은 힘없이 쓰러졌다.

“다크 애로우!”

블링크로 거리를 벌린 복면인이 캐스팅을 마쳤다. 칠흑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현준을 노렸다.

이건 굳이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현준은 검으로 다크 애로우를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복면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뭐, 뭐가 이렇게 빨라! 블링…… 끄르륵!”

시동어를 끝맺지 못했다. 어느새 휘둘러진 검에 목을 베였으니까.

“끝났군.”

주위에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적의나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로써 상황이 정리된 것이다. 현준은 아공간 주머니에 검과 방패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진아에게 다가갔다. 정신 오염을 일으키는 마력의 안개는 물러갔지만, 그녀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흐윽…….”

괴로운 표정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현준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마력을 운용했다. 분석은 끝냈으니 마법 파괴만 남았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땐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뭐냐고…….”

진아는 제일 그룹 차녀이자 S급 헌터다.

웬만한 상황에는 놀라지 않을 거라고 늘 자신했지만, 이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홀로 갇히게 되니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두려움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 아무도…….”

분명 입을 열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귓가로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불안이 되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두려움을 자극했다.

“아무도 없어요……?”

조용한 외침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라, 라이트!”

조명 마법의 시동어를 외쳐 보았지만 기대했던 빛은 생성되지 않았다.

진아는 더 강한 불안감에 휩쓸렸다. 마력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위험을 방어할 수단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제바아아알!”

달리고 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친 듯이 달렸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니, 흐른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지금 그녀의 정신은 피폐해져서 위태로운 모래성처럼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순간이었다.

쩌적.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빛이 새어 나왔다.

“아!”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제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진아는 새어 나오는 빛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보았다.

현준의 얼굴을.

* * *

“정신이 듭니까?”

언제나 그렇듯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는 그 모습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진아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전투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아서 주변은 살벌했지만, 빛이 있고 소리가 들리며 손끝에서는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도, 돌아왔어…….”

눈동자에 이슬에 맺혔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이 입을 열었다.

“왜 눈에서 땀을 흘리고 그러십니까.”

누가 봐도 긴장을 풀어 주려는 농담이었다.

“강현준 씨가 날 구해준 거죠?”

빛에 닿은 순간 느꼈던 포근한 기운은 현준의 마력이었다. 아직 몸 안에 현준의 마력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게 느껴졌다.

“네,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 손을 좀 썼죠.”

사실이기도 했고, 그녀에게 빚을 만들어 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다음에 밥이라도 사요.”

“꼭…… 그렇게 할게요.”

진아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 나왔다. 현실의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신 오염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공포와 마주했었다.

그 어두운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한 줄기 빛이 현준이었다. 고마워하지 않으면 이상했다.

“잠시, 쉬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구해줘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옷깃을 잡아끄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진아 씨?”

진아가 현준의 소매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마법계 라고는 하지만 그녀도 헌터다. 이렇게 붙잡고 있으면 현준도 힘을 쓰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기 힘들다.

“진아 씨, 다른 사람들도 구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다들 힘들 텐데…….”

“죄, 죄송해요.”

현준의 말에 그제야 진아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현준의 소매를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졌다. 그녀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현준은 말없이 희미한 미소를 남긴 채 태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으허억!”

이마에 손을 얹고 질드레의 가호를 발현하자 태식이 괴성을 지르며 깨어났다.

“여, 여긴 지옥입니까?”

태식이 물었다. 현준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지옥보다 더한 곳이죠.”

“한국인가 보네요. 다행입니다.”

가벼운 농담에 태식은 힘겹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정신 오염을 일으키는 마법 술식을 파괴했지만, 후유증이 남아 있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적이 2차 공격을 감행한다면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현준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두를 지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수 경찰 병력의 지원 요청하세요.”

“알겠습니다.”

검은 마정석이 적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판명 났으니, 2차 공격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태식이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가는 걸 확인한 현준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길에 괴인이 쓰러져 있는 곳에 시선을 훑으니 예상대로 시체는 사라지고 검은 마정석이 남아 있었다.

‘다 죽었군.’

쓰러져 있는 다른 이들은 최한석을 제외하고 모두 견디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C급 이하의 헌터들이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한 정신 오염이었다. 현준은 마지막 한 명의 생사까지 확인한 뒤,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태식에게 전했다.

“그렇군요……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태식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직접 부하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원 지부로 자리를 옮겼다.

“상부에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현준과 진아는 간부 휴게실에서 대기했다. 안정을 되찾은 태식과 달리 진아는 여전히 현준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했다.

뒤늦게 측근인 박석현이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죄, 죄송해요.”

진아는 고개를 숙였다. 폐가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예전과 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는 진아를 보며 현준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훈훈한 분위기가 피어나는 가운데, 석현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담배를 태운다는 핑계로 잠시 휴게실을 떠났다.

그리고 거의 바로 문이 열리더니 태식이 걸어 들어왔다.

“강현준 씨. 특수 경찰국,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과 거래를 하지 않겠습니까?”

“거래 내용이 뭡니까?”

“검은 마정석의 추적과 이걸 사용하는 모든 세력의 처단입니다. 더 자세한 건 함께한다는 약속을 해주시면 알려주겠습니다.”

“흐음.”

현준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태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A급 장비로 전신 무장을 시켜드리죠. 그리고 길드세도 절반으로 내려드리겠습니다.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닐 겁니다. 대 악마 길드랑 트러블이 있다고 하셨죠? 그들 또한 ‘검은 그림자’ 사용 세력으로 의심받는 중입니다. 공권력에 방해되는 이들을 치울 기회죠.”

대 악마 길드가 관련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정부 기관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좋은 거래인 것 같기도 했지만.

‘내 몸값치고는 너무 저렴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저쪽에서는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현준은 2차 각성자에다가 S급 헌터였다. 게다가 오늘의 전투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태식의 목소리에서도 간절함이 묻어 나왔다. 협상에 필요한 모든 상황이 현준에게 유리했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S급 장비 하나랑 길드세 면제.”

협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협상가, 베리스가 당신의 기행에 거듭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효과는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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