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Ep14. 포항엔 석유가 없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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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엔 석유가 없다.
제국익문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곳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은 고작 3.7%였다.
하지만 포항에 또아리를 튼 어느 사업가가 국방부장관 김종규를 찾아와 열변을 토했다. 그가 제시한 13페이지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삼국유사에서 말하길 경주 일대에 3일에 걸쳐 불기둥이 솟았다는 기록이 있더랜다.
어느 여름날, 보좌관들과 함께 국방부 인근의 냉면집을 찾아 식사중이던 김종규의 옆자리에 앉은 사업가의 열변.
"불기둥이 뭐겠습니까? 땅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던 석유에 운나쁘게 불이 딱! 붙은거 아니겠습니까? 이건 분명 석유입니다. 석유에요!"
"그럼 경주에서 채굴해야지. 그리고 말이야. 삼국유사의 기록을 온전히 믿기는 좀···."
사업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포항에 석유가 나온다는 증거가 더 있습니다. 여기 10페이지를 잘 읽어보시면 제가 정리한게 있지요? 포항일대의 지질을 분석한 국립광물질연구소의 63년도 연구자료를 스크랩한건데 이곳만 유독 제3기층이란겁니다."
"제3기층?"
"석유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죠! 이런 좋은 연구자료를 두고서 아직도 캐지 않고 있다니 이 나라에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김종규 장관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진작에 조사했을건데···."
"당장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안 나오면 그만 아닙니까? 나오면 그걸로 대박인거구요! 작년에 석유파동으로 고생한거 생각하면 이건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딱 한번만! 한번만 총리님께 말씀드려주십시오. 후배 좋다는 게 뭡니까? 장관님!"
반쯤은 약팔이 같은 느낌이지만 손해볼 건 없었다. 그의 말처럼 나오면 좋고 안나와도 그만인 사업이었다. 포항 지층에 구멍한번 뚫어보는 게 고작인 거였으니 밑져야 본전.
그래서 결국 포항의 석유 조사 사업이 김종규 장관을 거쳐 이범석 총리에게 올라가니, 집무실에 앉아있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허술하기 짝이없는 보고서인데?"
"하지만 각하.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하지만 이범석 총리의 집무실 책상은 200페이지에 달하는 또 다른 보고서가 올라와있었다. 제국익문사에서 올린 보고서로 지질학자들의 전문적인 조언을 받은 분석자료였다.
"이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포항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은 고작 3.7%라 하는군. 밑져야 본전이라도 너무 낮은 가능성 아니겠나?"
"제국익문사는 첩보기관이지 지질조사기관이 아닙니다. 폐하의 칙명을 받아 보고서를 쓰긴 했지만 이 작자들이 75%에 달한다며 점찍어놓은 이북지역도 죄다 허탕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랬다. 제국익문사가 보고서로 말하길 이북지역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서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들여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구멍을 뚫고 있었는데 2,753회에 달하는 탐사작업이 모두 허탕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기름 한방울 안 나오는 절망적인 조선반도였다.
"이 나라는 정말··· 저주받은 땅에 살고 있는듯 하이···."
"도대체 단군할아버지는 왜 이런곳에 터를 잡으셨답니까? 조선반도에 살던 공룡들은 뭘 했구요?"
그러자 이범석 총리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단군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은 만주벌판이야 이 사람아. 엄밀히 말해서 우리 후손들이 그걸 못지킨게지."
"......"
보통 산유국 하면 중동을 떠올릴테다. 사막 한가운데 무수히 늘어선 석유시추시설은 가히 세계 최대규모라 할 수 있으니까. 도대체 석유가 얼마나 많았으면 그걸 무기화해서 서방국가들을 협박했을까?
석유로 굴러가는 현대사회. 석유는 곧 돈이었고 석유가 많은 중동은 부자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시아에도 산유국이 있었다. 땅덩어리가 엄청나게 넓은 중국이었다. 만주벌판에 위치한 다칭유전은 1963년부터 석유를 채굴했는데 연간생산량이 600만 톤으로 시작하더니 지금은 5,000만 톤을 넘었다. 2차대전기 일본이 이곳을 알았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만 행운의 여신은 중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외에도 중국 산둥성에도 콸콸콸 석유가 나왔으니 중국인들이 얼마나 기뻤으면 이름도 성리유전(胜利油田, 승리유전)이라 지었다.
그리고 고조선 부터 고구려, 발해까지 조선인들의 영토였던 요동반도. 지금은 랴오닝반도라고 불리우는 그곳에도 석유가 나오기 시작하니 베이징 앞바다 발해만 전체가 기름위에 둥둥떠있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석유파동 내내 몽당연필까지 아끼며 필사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을 벌인 조선인들 입장에선 배가 아플 일.
<젠장, 우리도 석유가 나왔으면!>
<코앞에선 석유가 나오는데 조선반도에선 안 나오는 이유가 뭐야!>
<석유! 석유! 그놈의 석유!!! 이 빌어먹을 놈의 석유!>
국방부장관 김종규도, 내각총리대신 이범석도, 황제 이연조차도 눈물이 마를날이 없는 그놈의 참 애절한 석유였다. 단군할아버지가 이걸 보셨다면 혀를 차셨겠지. 바보같은 놈들. 난 좋은땅을 물려줬어. 못 지킨건 네녀석들이야.
그리고 1975년 12월 3일. 단군할아버지가 굽어살피기라도 하셨는지 이변이 일어났다.
포항에서 석유가 나온 것이다.
***
사건의 발단은 12월 3일 새벽이었다. 달빛조차 어두워 인공적인 조명에 의존하고 있는 영일만의 시추현장에서 우뚝 솟은 거대한 드릴이 땅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겨울 새벽 추위에 잠도 못자고 일을 하던 인부들이 하품을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니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이고 참··· 이런 곳에서 무슨 놈의 석유가 나온다고."
"그러게.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있잖아?"
"모르긴 몰라도 여기만큼은 진짜 안 나온다. 내가 장담하는데 여기서 석유가 나오면 내가 장을 지져 장을!"
"너 그러다 진짜로 나오면 큰일난다?"
"장이라도 지져줄테니까 제발 나오라 그래!"
그런데 바로 그 시각. 드릴을 조종하던 인부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으니 그의 눈앞엔 땅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 기름이 눈에 아른거린 것이다.
"어? 어? 야 저거 석유 아니야? 잠깐만 타임!!! 야 이 씨발 다 모여!"
그러자 하품을 하던 인부들이 허둥지둥 달려오기 시작했으니 그들의 눈에도 분명 기름이 보였다. 땅 속에서 기름이 나오면 석유겠지. 석유. 정말 석유였다.
"석유야? 진짜 석유가 나왔어?"
"야 이 새끼 장 지져!"
인부는 무릎꿇고 눈물을 흘렸다. 힘겨웠던 작년 겨울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난방에 쓸 기름을 구하지 못해 주유소 앞에서 줄을 서야했던 시간들. 돈이 있어도 기름을 살 수 없고, 돈을 구해도 그 이상으로 올라가버리는 기름 가격에 절망했던 서민경제.
"이런 씨발··· 다 지지라그래! 석유가 나왔는데 내 장이 대수야? 석유라고! 석유란 말이야! 우리도 드디어 산유국이 됐어!!! 영미야! 오빠가 석유찾았다!!!!"
이런 소식은 8월 총선을 통해 건설부장관으로 돌아온 김신을 통해 내각 전체에 알려졌다.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답니다!"
"뭐야?!"
집무실에서 이범석 총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석유라는 단 하나의 단어에 70 중반의 노인이 20대 청춘마냥 일어나 기쁜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거기서 정말 석유가 나왔어? 이건 말도안돼···."
"여기 샘플도 있습니다. 포항에서부터 공수해온 따끈따끈한 석유입니다!"
비커에 담겨있는 검은 액체를 받아든 이범석 총리는 차를 음미하듯 석유 냄새를 맡았다.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기름 냄새가 과연 석유임이 분명해보였다.
"우리도 산유국이 된거야··· 내 살아생전에 이런 걸 보게 되다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만···."
이렇게 들린 석유 샘플이 보좌관의 손에 고이들려 신주단지 모시듯 덕수궁으로 향하니 국방부장관 김종규와 건설부장관 김신, 내각총리대신 이범석까지 옹기종기 모여 황제의 집무실에서 보고를 올린 것이다.
그러자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학교를 다녔다는 대한제국 황제 이연은 감동어린 표정을 지으며 샘플을 받아들었다.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기름냄새가 무척이나 향기로웠다.
"그래 역시 그랬어. 포항은 조선의 텍사스였던거야. 석유가 쏟아지는 노다지같은 땅이지."
그렇게 가슴깊이 석유 비커를 끌어안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려던 찰나 황제의 집무실을 벌컥들어오는 여자가 모두에게 말했다.
"잠시 샘플좀 볼 수 있을까요?"
덕수궁의 비선실세. 제국익문사를 쥐락펴락하는 중정요원 출신의 이화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석유비커를 받아들곤 말했다.
"죄송한데 찬물을 좀 끼얹어드리죠."
"응? 찬물이라니? 석유에 물이라도 부을···."
이화는 집무실 한켠에 석유비커를 세워놓고, 종이에 라이터 불을 붙여다 비커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이런 무모한 행동에 모두가 경악을 해버리니 이연이 전쟁이라도 난 것마냥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짓이야! 덕수궁을 불태우기라도 할···."
그런데 이상한 모습이 연출된다. 불이 붙은 석유는 활활 타오르긴 커녕 붙은건지 만건지 양초마냥 조심스레 타들어가고 있으니 아니꼬운듯 내려보는 이화의 표정엔 하찮은 미소가 피어오른 것이다.
"훗, 역시···."
뭔가 낌새를 챈듯 이범석 총리가 물었다.
"자넨 뭔가 알고있나보구만? 비커에 담긴거 석유가 아닌겐가?"
"예, 포항에서 나온건 석유가 아닙니다."
"그걸 어찌 알고···."
"포항엔 석유가 없으니까요."
이화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집무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국익문사에서 보고서를 올렸을겁니다. 포항에 석유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구요. 총리님께 올라간 13페이지짜리 보고서도 전달받아 읽어봤는데 신생대 제3기층을 언급하더군요."
"헌데?"
"포항의 3기층은 너무 얇습니다. 석유가 나오기엔 터무니 없이 얇죠. 3.7%도 후하게 준거고 그냥 0%라 보시는게 좋을겁니다. 이런점을 망각하고 썼으니 순 엉터리 보고서였죠."
"그래서?"
"여기 있는 샘플이 원유였다면 불이 붙은 순간 활활 타올랐을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게 타들어간다는 건 다른 무언가란 뜻이구요."
"아무리 봐도 기름 냄새였는데···.'
"어디선가 윤활유나 경유가 샜을겁니다. 그걸 석유라며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러자 이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모하게 불을 붙이면 어떡하나?"
"죄송합니다. 폐하. 워낙 오랜만에 보는 화학물질이라."
"오랜만?"
"부전공이 화학이라."
싱긋 웃어버리는 이화의 표정은 들떴다기보단 조롱적이었다. '너희들은 이것도 모르지?' 이런거 같은 오만한 표정. 하지만 냉정하게 부정해버린 그녀의 판단은 틀림이 없었고, 포항에서 발견된 석유는 고작 드럼통 한개 분량으로 끝났다.
문제의 기름은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화의 추측대로 경유로 밝혀졌는데, 어디서 샜길래 드럼통 분량으로 나온건지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았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1975년은 포항으로 인해 허무만 남긴채 막을 내렸다.
하지만 1976년 1월 15일 모두에게 희망 고문을 선사하듯 다시금 석유가 나오니 이번엔 이북지역 평양 인근이었다. 이제는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버린 황태녀는 귀신이라도 홀린듯 중장비를 끌고가 지하수를 뚫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기름은 진짜 석유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