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19화 (119/131)
  • 〈 119화 〉 Ep12. 배신자의 밤 (9)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안전가옥이라 부르는 CIA의 비밀 거점은 서울시 성북동에 있다. 경복궁 뒤쪽으로 북악산을 끼고 있는데 조선의 베버리힐즈라 부를 정도의 부촌이다. 이해가 잘 안된다면 이곳의 아침풍경을 살펴보자.

    아침에 전자회사 회장님이 일어나 애완견을 끌고 산책나오면 맞은편에서 산책중인 상공부장관님을 만나 안부를 나눈다. 하하호호 덕담이 오가고 산책을 계속하다보면 사저에서 나와 출근을 준비중인 미국 대사 슈나이더를 만나 하이 헬로우를 할 수 있다. 맞은편 카페에선 일본대사가 차를 마시며 스미마셍을 하고 있고, 그 앞에선 프랑스 대사가 봉쥬르 하며 손을 흔드는 성북동이란 권력자들의 철옹성. 고작 신도시에 불과한 강남의 부자들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성층권 꼭대기였던 셈이다.

    이곳이 이렇게 된건 교통 때문인데, 황궁인 덕수궁을 시작으로 중앙청이나 정부청사, 국방부, 각국 대사관까지 어디든지 빠르게 출퇴근 할 수 있던 것이 강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권력자들이 모여들었고 부촌이 됐다.

    CIA의 안전가옥이 덕수궁 코앞에 숨어있다는 게 이상할 법하지만,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면 어지간한 고위관료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친분을 쌓고 교류를 틀고 아군으로 끌어들여서 미국의 정보망을 확대하는데 더없이 좋은 위치다. 백인 남성들이 수상하게 돌아다녀도 성북동에 널린게 외교관이고, 흑색의 미니밴이 오고간다 해봤자 도처에 널려있는게 외제차였으니 그야말로 숲 속에 나무를 숨긴 셈이었다. 거기에 등잔밑이 어두운건 덤.

    평범한 부잣집으로보이는 CIA의 안전가옥은 총과 탄약을 보관하는 무기고가 있었고, 장거리 보안 통신이 가능한 장비가 숨겨져있었고, 치료시설이나 취조실도 마련되어 있어 조선땅에서 암약하는 미국 요원들에게 전진기지가 되어주었다. 김진혁 중령이 납치된 곳은 이 건물의 지하 1층 어두컴컴한 취조실이었다.

    "김진혁씨?"

    진희의 부름에 아무런 대답도 없다. 간만에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다고해봐야 깜깜한 취조실에서 의자에 묶인 채 꾸벅꾸벅 조는 것이지만, 진희는 이 남자를 재울 생각이 없어 얼굴에 냉수를 들이부었다.

    "일어나세요. 김진혁씨."

    "으윽···."

    "핵시설, 냉동창고에 있다고 하셨죠?"

    약에 취한건지 잠에 취한건지 김진혁 중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충혈된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하지만 진희는 여전히 이 남자를 재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한번 더 들이부었다.

    "잠좀··· 자게··· 해주시죠···."

    "전 당신을 재울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난번에 했던 증언 다시 말씀해보세요. 자백제 효과도 슬슬 풀릴때니까. 맨정신으로."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아실텐데요?"

    "말씀해보세요. 당신이 했던 말.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남자가 바라보는 충혈된 눈빛은 살기를 띄고 있었다. 자신이 약에 취해 말했던 것을 후회하는 감정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복수를 꿈꾸는 전사의 눈빛이 깃들어 있었다. CIA 요원 박진희는 눈동자만 봐도 그것들을 알아채고만다.

    "죽여버릴겁니다. 당신···."

    진희가 비웃듯 말했다.

    "어떻게 죽일거죠? 이렇게 손발이 묶여서 구속되어 있는데요?"

    "넌 내 손에 죽어. 여기서 나가면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이 배신자···."

    그러자 진희는 다시한번 테이블에 놓여있던 주사기를 들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된 김진혁 중령이 발악을 하듯 외쳤다.

    "여긴 대한제국이야! 외국 정보 기관이 남의 나라 군인을 납치해 고문을 한다고? 미쳤어?!"

    "그래봐야 자백제에요."

    "말해봐 박진희. 내가 지금 몇 시간을 못 잔거지?"

    "아마··· 180시간은 넘었겠죠?"

    "그래놓고 자백제를 놔? 이건 고문이야! 넌 법적으로 따져봐도 죽을거고 물리적으로 따져봐도 죽을거야. 왜? 내가 죽일거거든!"

    "그럼 말해봐요. 핵시설 어디에 있죠?"

    "그건 이미 말했을텐데?"

    "자백제 말고 맨정신으로 말해봐요. 어차피 말했던거 다시 한번 말해보라구요. 핵시설 어디에 있죠?"

    "개마고원에 있겠지. 이미 다 들어놓고선 뭘 더 물어보는거야?"

    "개마고원이라··· 황제가 오늘 거기에 갔어요. 냉동창고는 없었지만 냉동창고처럼 추운 동굴은 있었죠."

    "냉동창고가 없다고?"

    "핵 시설이 냉동창고에 있을리가 없잖아요. 암호명 아닌가요?"

    발버둥치던 김진혁 중령이 잠잠해졌다. 뭔가 고심하더니 이윽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신, 표정이 바뀌었는데··· 뭔가 알고 있는게 있군요."

    "......"

    남자의 침묵이 길어졌다. 여자는 이상함을 느꼈다. 둘간에 가까워지는 거리는 이제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근접해있다. 박진희는 김진혁 중령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눈빛이 말해주고 있어... 김진혁 중령, 뭘 알고 있는건가요?"

    "난 아무것도 몰라."

    "아니야, 사람 눈빛은 거짓말을 안해. 당신은 분명 뭔가 알고 있어. 냉동창고가 없다고 하니까 눈빛이 돌변하면서 잠잠해지던데···."

    "묵비권을 행사하지."

    그러자 박진희는 주사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때 김진혁이 외친다.

    "그걸 놓으면! 혀 깨물어 죽어버릴거야. 죽는 한이 있어도 이것 만큼은!"

    "그럼 말해봐요. 냉동창고. 뭘 뜻하는 암호명인지."

    "자백제가 말했잖아? 핵시설은 거깄는 게 맞아. 냉동창고란 개마고원을 뜻하는 암호인거고 너도 그렇게 생각해서 작전을 진행한 거잖아?"

    "아니, 당신 눈빛이 바뀌었어. 거짓을 말하는 눈동자. 핵시설, 실은 개마고원이 아닌거지?"

    "자백제는 거짓말을 못해. 그걸 2방이나 맞고 나온 진술이지. 개마고원. 핵시설은 개마고원에 있는게 맞아."

    "아냐··· 자백제도 한계가 있거든···."

    진희는 설마하는 마음을 담아 자백하듯 털어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CIA가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그 약물의 커다란 문제점.

    "김진혁씨, 당신도 핵시설이 어딨는지 모르죠?"

    자백해야할 사람이 진실을 모르면 약물도 무용지물이다. 자백제란 단지 말을 더 많이 하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더더욱 끔찍한 함정도 예상해볼 수 있다.

    "개마고원이라는 거 우릴 속이기 위해 학습한 가짜 정보였어···."

    자백해야 할 사람이 가짜정보를 사실로 믿고 있다. 핵시설에 대한 진짜 정보는 이 남자의 머리속에 없을 것이다. 오로지 '개마고원'이라던가 '냉동창고' 따위를 진실로 믿으면서 그걸 약물 효과에 의해 자백해버리는 것이다.

    "말해봐요. 핵시설 어디에 있나요?"

    "개마고원."

    "개마고원 말고!"

    그러자 김진혁 중령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진희에게 말했다.

    "그럼 냉동창고겠네. 잘 찾아보라고. 배신자."

    "젠장···."

    진희는 문을 박차며 취조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피곤한 몸을 소파에 뉘이며 쉬고 있는 백인 남성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왜 그러냐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니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미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지부장님 연결해! 당장!"

    그러자 전화 속 사무원이 답했다.

    [지부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계십···.]

    "긴급사항이다! 작전 취소시켜! 당장!"

    [무슨 작전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밀작전이니까 당장 지부장님 아니면 장관님···."

    그러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뒷걸음질 치며 고개젓는 박진희는 중대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암살 작전은 기밀이야. 대사관 애들은 커녕 CIA 애들조차도 극히 일부만 아는건데···."

    지금 이 순간에도 CIA의 비밀 특수부대는 헬기를 타고 개마고원으로 가고 있었다. 김진혁이 말한 진술과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확신을 갖고 출동한 작전이지만 그것이 함정일 가능성은 생각치 못하고 있었다.

    진희는 소파에 앉아있는 백인 남성 요원에게 물었다.

    "헤이, 지미. 작전 나간 부대원을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글쎄? 이미 늦었을걸? 헬기 타고 나간지가 몇시간인데. 이미 뭐··· 황제 목이라도 땄겠지."

    "그럼, 우리가 진거네."

    "졌다고? 왜?"

    "우리 지금 역정보에 걸렸거든···."

    헬기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안전가옥의 유리 창문들이 일제히 깨지니, 레펠을 타고 내려온 검은 전투복의 특수부대가 총구를 겨누며 요원들을 제압했다. 진희한테 수갑이 채워졌다. 어깨에 붙어있는 부대마크는 이화꽃. 황실을 상징하는 그 문양은 친위대 소속 특임대가 달고다니는 심볼이었다.

    'CIA 잡겠다고 자기 사위까지 미끼로 던져서 역정보를 흘려? 정말 지긋지긋한 나라네···.'

    바닥에 무릎꿇려 눕혀진 진희는 눈을 감은 채 속으로 외쳤다.

    대한제국 망해라.

    ***

    그 시각 태스크포스 75의 요원들은 동굴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처음엔 탄광처럼 보였던 동굴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매끈하게 다져진 콘크리트 벙커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멀리서 보이는 입구엔 두꺼운 철문까지 달려있으니 분명 핵시설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꺼운 강철의 문은 하나의 벽처럼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어 핵폭탄을 맞아도 멀쩡할 것처럼 생겼는데, 그 앞엔 여러대의 자동차가 배치되어 있었고, 황제가 타고 왔을 리무진도 서있었다.

    "정말 멍청한 작자군. 여기까지 리무진을 타고 온건가? 위장이란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야."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던 부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프차를 타고왔다고 들었는데요···."

    "지프차? 황제가?"

    "비밀시설이잖습니까? 오늘 백두산으로 시찰을 간다고 했습니다. 장군들이 거기 우글우글했을테니까 지프차 한 대 빌려서 위장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텐데···."

    "헌데 여기 멀쩡히 리무진이 있잖나? 어쨌건 이걸 타고 온게 분명해. 지프차는 장군이 타고 왔겠지. 적이 많을테니 모두 주의하게."

    그러다 팀장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가던길을 멈추어 경계 자세를 취했다. 작전중 팀장님이 손을 든다는 건 여기 적이 있거나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투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뭔 소리가 들려···."

    강철의 벽 너머엔 사내들의 대화가 들렸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지라 정확한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황제가 맞는 거 같았다. 뉴스에서 자주 들어본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길잡이로 서있던 동양 남성 한 명이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뭔가 있나? 길잡이? 통역좀 해주지."

    "당장 철수해야해요!"

    "뭔데 왜?"

    "여긴 핵시설이 아니에요! 아니, 핵시설이 맞긴 한데··· 아무튼 설명할 시간 없어요. 여긴 당신들이 찾는 곳이 아니니 당장 철수를···."

    하지만 팀장은 길잡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튼 황제가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더니 연막탄을 품에서 꺼냈다.

    "안돼요! 멈추세요!"

    "황제를 죽이라고 명받았어. 그렇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임무를 완수해야지."

    충성스러운 팀장은 조국을 위해 싸우기로 했다. 자신이 죽을 지언정 맡은 임무는 반드시 완수한다. 그것이 태스크포스 75니까. 그래서 팀장은 품속에서 꺼낸 연막탄을 까넣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작전 개시!"

    길잡이는 명령을 듣지 않은채 몸을 돌렸다.

    "젠장, 난 도망갈거야!"

    겁쟁이가 동굴 밖으로 도망치는 동안 용맹한 대원들이 연막 속으로 뛰어들었다. 적의 숫자가 많아도 기습공격이라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황제다. 타겟이 철문 너머에 있었다. 총 한방이면 죽을 수 있는 가까운 위치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작전대로라면 연막탄을 던지는 즉시 요원들이 달려들어가 친위대들을 제압하고 황제를 죽여야 하는데 문 속으로 들어가선 멀뚱멀뚱 서있으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연막 속에서 부하 한 명이 말했다.

    "팀장님, 아무래도 이건···."

    "뭐야? 다들 왜 그래?"

    부하들을 들여보낸 팀장이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굳건히 서있는 강철의 문 뒤로 펼쳐진 거대한 공간. 핵공격을 당해도 멀쩡히 버틸 거 같은 이 공간은 덤프트럭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고, 노란색 드럼통들이 한가득 세워져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곳에 중국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콜록콜록··· 누구야? 누가 감히 여기서 연막탄을···."

    검은 정장을 잘 빼입은 중국남성은 주한대만대사. 조선땅에 활동하던 외교관이 겁에질린 표정으로 손을 들며 외쳤다.

    "히익!! 소련군!? 쏘지마라! 난 중화민국의 외교관이다! 국제법에 의거하여 정당한 보호를 요청한다!"

    이곳에 대한제국 황제만 있었다면 거리낌 없이 총을 난사했을테다. 하지만 외교관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남의 나라 외교관을 죽이라는 지령은 받은 적이 없으니까. 제 아무리 전쟁터만 누벼온 군인이라도 외교관을 죽여선 안된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이곳은 그들이 생각했던 핵시설이 아니었다. 벙커 안의 사람들은 평범한 기술자들 뿐. 노란 안전모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지게차를 몰며 분주하게 드럼통을 실어 나르니, 그것을 크레인이 들어다 콘크리트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멍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고 있던 팀장이 아무 생각없이 말했다.

    "저흰 미합중국 소속으로 대한제국의 불법 핵시설을 확인하러 이곳에···."

    "미국? 미국이라고?"

    대만의 외교관이 경악하듯 말했다.

    "이게 지금 불법핵시설로 보여? 여긴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곳이잖아!"

    "핵폐기물?"

    요원들 눈에 들어온 핵폐기물이란, 노란색 드럼통에 일렬번호가 적혀있고 붉은색으로 방사능 마크가 찍혀있는 거였는데,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에 대해 대만 대사가 얼굴을 붉힌 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 노란 드럼통 안에 뭐가 있는 줄 알아? 작업복! 장갑! 필터! 휴지! 저준위방사성폐기물이라고! 원전에서 쓰고 남은 쓰레기! 이게 지금 불법으로 보여?!"

    "그렇긴 합니다만···."

    "그걸 아는 놈들이 지금 어딜 와서 총질이야!"

    그 때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동양 남성이 말했다. 대사 옆에 서있던 그 남자는 뉴스에서도 익숙하게 보았던 대한제국의 황제. 하지만 실소어린 표정이 마치 '넌 함정에 빠졌다'는 암시를 하는 거 같아 등골을 서늘케했다.

    "핵시설이 수상했다면 IAEA에서 왔어야지 소련군으로 위장한 특수부대가 왜 여기로 온건가? 무장상태도 그렇고 다짜고짜 연막탄을 터트린 것도 그렇고 감찰보단 암살에 가까워보이는데. 혹시 날 죽이러 왔나?"

    그러자 팀장이 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 그럴리가요 아닙니다 절대. 저흰 그저···."

    "나는 지금 우방국 대사님께 대한제국의 원자력 발전 기술을 소개드리고 있었어. 공식적인 외교 일정이었지. 그런데 이런 곳까지 찾아와서 날 죽이려 하다니··· 누구 지시를 받았나? 대통령인가? 아니면 국무부장관이겠군?"

    "......"

    "남의 나라 국가원수의 일정은 어떻게 알아내서 온건가?"

    "......"

    그러자 이연이 고개를 돌려 대만 대사에게 물었다.

    "대사님, 혹시 오늘 일정을 외부에 발설하신 곳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절대로 없습니다! 폐하께서 진행하시는 일정을 함부로 말하다니요! 그건 결례지 않습니까?"

    "그럼 모든게 분명해졌군요. 미국이 동맹국 국가원수를 감시한 것도 모자라 암살까지 시도한 거 같습니다. 증인도 있겠다 증거만 확보하면 되겠군."

    그리곤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자들을 모두 체포해라!"

    딱 한방. 한방의 총만 쏠 수 있다면 대한제국 황제를 죽일 수 있었다. 죽이라고 명령받았고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 외국의 외교관이 껴있는 상황이 그의 판단력을 극도로 떨어뜨렸다.

    결국 쏘지 못했다.

    이등병 조무래기에게 몸수색을 당하며 실탄 가득한 탄창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고, 총은 장전상태로 빼앗겨 사진을 찍혔고, 수류탄도 연막탄도 모조리 빼앗기니 증거품이 되어버렸다.

    다음 날 6월 7일. 주한미국대사 슈나이더가 이곳을 찾았을 땐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자기가 본 시설이 아니었다. IAEA 관계자들이 찾아와 감찰을 벌였을 때도 이곳은 평범한 저장고일뿐. 방사능 수치도 콘크리트 격납고에 안전히 밀폐되어 안전수치를 맴도는 수준이라 터치할 건덕지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소식을 대사관에서 접한 키신저 국무부장관이 노발대발하며 화이트 지부장을 다그쳤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거야!"

    오만가지 악몽이 아른거렸다.

    외교가에서 '미국이 동맹국 국가원수를 암살하려 했다'는 소문이 알려졌다간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테다. 안 그래도 전임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도청사건으로 하야한 마당에 또 다시 도청이 들켰고, 그보다 더 심한 암살까지 들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증거가 없다. 미국의 행동을 정당화할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고, 대한제국의 핵개발이 어디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못하는 상태였다. 이래서야 '핵개발을 막으려 했을 뿐이다!'라는 변명조차 할 수가 없다.

    증거가 없다. 대한제국은 어디서 핵을 만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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