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20화 (120/131)

〈 120화 〉 Ep12. 배신자의 밤 (10)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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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외교관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느 때처럼 출근을 앞두고 있는 아침. 성북동에 자리잡은 서양식 고급 카페에서 일본 대사가 프랑스 대사를 만나 말했다.

"그거 들었습니까? 어제 저기 길건너 옆집에 친위대가 들이닥쳤잖습니까? 그 이유를 알아낸 거 같습니다."

"누굽니까? 잡혀간 녀석들?"

"미국 CIA 요원들이랍니다."

"CIA요?"

"제가 대만 친구들한테서 들은건데 같은 날 이북 지역에서 CIA가 황제를 암살하려 했다는군요. 불법 핵시설을 기습한거라는데 헛다리를 짚은 것도 모자라 체포까지 당했답니다."

"푸하하하! 천하의 미국이? 이런 멍청한 놈들!"

"예, 같은 날 이루어진 거 보면 제국익문사가 파놓은 함정에 딱 걸린 모양이지요."

"우리 조선 친구들이 꽤 많이 컸구만. 미국 놈들도 속일 줄 알고."

"그래서 말입니다. 진짜로 핵개발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러자 프랑스 대사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미 핵보유국일지도 모르죠.”

“에? 설마요? 조선인들이 무슨 기술이 있다고 농담도 참 하하하···.”

“세상사 모르는 겁니다. 후후후후···.”

이런식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소문 속에서 사저를 나오는 슈나이더 대사가 보이니, 지나가는 고위 인사마다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동맹국 국가원수를 암살하려던 것도 경멸스럽지만, 성북동 한복판에 스파이 아지트를 차려놓고 공작질을 했다는 게 그들에겐 더욱 큰 충격이었다.

그 남자의 오른손에는 구겨진 편지 한장이 들려 있었으니 제국익문사 장관 김재필로부터 넘어온 회신이었다.

<체포된 요원들은 모두 중국 연변에서 넘어온 적군파(북한군 잔당)로 조선반도의 공산화를 위해 테러를 시도한 간첩들이었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길 예정이며 이에 대한 어떠한 내정간섭도 거부함.>

CIA요원들을 북한군 잔당으로 취급해버리는 제국익문사의 답신에 속이 뒤집어질 거 같았다. 미국 대사관에 눌러 앉아있던 키신저 미국 국무부장관이 얼굴을 붉히며 덕수궁에 쳐들어오니 다시한번 황제와의 밀담을 청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이연은 이번에도 커피를 마셨다. 협박당하며 마시는 커피는 역시 감미로웠다. 이상하게도 꼭 이런 자리의 커피는 달달하더라. 신기한듯 미소지으며 여유로이 답한다.

"재필이가 말했잖나? 북한군 잔당을 처벌한다고."

"노스 코리아? 그들은 미국인입니다! CIA 소속이란 말입니다!"

"황제를 암살하려 했어. 국가원수의 집무실엔 도청장치까지 설치했지. 근데 그게 미국 짓이란 말인가?"

"예?"

이연이 가소로운듯 냉소적인 표정으로 키신저 장관에게 말했다.

"체면을 지켜주는거야. 미국의 체면. 이번 사건을 북한군 잔당 소행으로 몰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지."

"지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백인 남성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군 잔당이 된단 말입니까?"

"북한은 이미 망한 나라야. 지금은 잔당 일부만 중국으로 도주해서 테러집단이 되었지. 영토, 주권, 국민이 모두 없는 불법 무장 단체인데 까짓거 글로벌한 테러조직으로 변모했다 해도 이상할 거 없지 않나? 소련 사람이라도 넘어왔다 치면 되겠지."

"대체 뭘 위해서···."

마시던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숨을 한번 내쉬고 의자에 기대어 거만하고도 오만한 자세로 황제는 말했다.

"고민을 해봤어. 날 죽이려고 했던거, 내 사위를 고문했던거, 그리고 도청장치를 설치했던거. 네놈들 야당에게 넘겨주면 어떨까 싶었지. 닉슨도 도청 때문에 물러난 마당에 또 도청을 했으니 미국 민주당이 아주 재미있어하겠다 싶었거든."

"폐하께선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나? 민주당을 설득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증거. 슈나이더 대사의 목격담만 있는데 그건 우리가 부정하면 그만이야. 재밌겠지? 닉슨이 하야하고 포드는 탄핵되고 그 다음엔 누가 대통령이 될까?"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함정을 파셨군요."

"그래, 자네들이 눈 뒤집힌 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도발을 해봤지. 도청장치가 책상 밑에 설치되있는걸 알고 있었지만, 대만에 핵을 공유할거라느니 일본에도 무상으로 넘기자느니 그런 연기를 해본거야. 네 놈들 들으라고."

그러더니 비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설마 내가 미쳤다고 일본에 핵을 공유하겠나? 말하면서도 속이 뒤집히더군."

"결국 암살도 폐하가 의도하신 겁니다. 우린 속았을 뿐이죠."

"네놈들이 속은게 그것 뿐일까?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슈나이더가 본 핵시설은 진짜일까? 프로젝트 이름이 고슴도치인건 너무 적나라하잖아? 인도와 협력해서 개발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애초에 우리가 진짜 핵무기를 만들긴 했을까? 이 중 어느것이 진짜고 어느것이 거짓일지 네 녀석들이 분간할 수 있겠냐고."

"......"

"하나도 없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민주당엔 뭐라 변명할거야? 두번째 도청에 실망해버린 국민들은 어떻게 설득할거고?"

"그건···."

"없던 일로 해주지. 암살, 도청, 납치, 고문 모두 없던걸로 쳐줄테니까 요원들은 포기해."

키신저 국무부장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부정하여 말했다.

"전 그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포드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지키려면 놈들 입을 막아야 해. 내 선에서 깔끔히 처리해줄테니까 잠자코 있어. 북한군 잔당으로 몰아서 죽이면 해결될 문제니까 말이야."

"그들 모두 백인입니다. 어떻게 봐도 미국인인데 어찌 북한군으로 몬단 말입니까?"

"말했잖아? 그들은 이제 적군파야.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서 국제적인 테러집단으로 변모했다 치면 돼. 백인 남자들이 있어도 이상할 거 없지 않나? 동독 사람도 있고 러시아 사람도 있을건데 말이야."

"하지만 폐하!"

"미국과 대한제국 사이를 이간질한거야. 그렇게 포장하면 자네도 살고 포드 대통령도 살아. 미국 체면도 지킬 수 있는데 왜 고집을 부려? 흑색요원들의 최후는 원래 이런거잖아? 죽을 때 죽더라도 조국에 해가 없게 죽어야지."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시나리오입니다."

"어째서?"

"그들은 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연이 실소를 하며 경멸적으로 말했다.

"배신은 밥먹듯이 하던 놈이 미국인은 못 버리겠다? 그정도 의리면 월남부터 지켜주지 그랬나? 자네의 외교 철학.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한다는 거였어. 약간의 미국인만 버리면 국익을 지킬 수 있지. 월남 배신하던 거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하지만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부장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국익을 우선시한다는 건 미국인들을 위해서입니다. 예! 우리는 월남을 배신했죠. 그들은 부패했고 무능했으며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켜줄 가치가 없는 나라를 위해 미국인이 죽어야 하는건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버린겁니다."

"그리곤 날 암살하려했어."

"핵확산을 막는 것이 미국을 위한 국익입니다. 저는 단지 미국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것이고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렇게 부추긴 건 폐하셨으니까요."

그래서 키신저 장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책임은 저와 대통령 각하가 지겠습니다. 그들은 단지 저희들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모든걸 인정하고 물러나겠다? 두 사람만의 책임으론 끝나지 않을거야. 다음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할 수도 있어."

"미국인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하지만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지."

"미국인을 지키는 게 미국의 국익입니다. 그것이 저의 외교 철학이었고 각하의 국정철학이시며 우리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국민이기 전에 요원이었어. 잡혀서 신분이 들통나면 국익에 큰 위협이 되는 블랙요원이지. 버려야 할 땐 버려야 하는거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첩보전에서 이길 수 없으니까."

하지만 키신저 장관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미국의 국무부장관이었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싸우겠다고 공언한 사람이었으며, 황제의 암살을 지시했던 총책임자였다.

"구할 수 있다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리더의 도리입니다. 노력 한번 안해보고 포기하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죠."

그리곤 품에서 사진 3장을 꺼내어 황제에게 내밀었다. 거기엔 황제의 외동딸인 이은서가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흑장미를 꽃아넣는 사진이 한 장, 고아원에서 쌀배달 하는 사진이 한 장, 남베트남 사이공에서 찍힌 강소령의 사진이 한 장이었다.

그것은 모두 실미도 요원에 대한 첩보자료였다.

"정말 지긋지긋한 놈들이군. 설득으로 안되니까 협박이라도 해보겠다는 건가? 안 들어주면? 우리 요원들 신분이라도 폭로하려고? 아니면 소련에 고자질이라도 하려는 건가? 대한제국이 김일성을 암살했다 이런식으로!"

"협박이 아니라 존경을 하는겁니다."

"존경?"

"대한제국도 저희들처럼 비밀부대를 운영하고 계셨지요? 흑색작전을 위한 전담부대로 한국전쟁의 전범을 처단하셨다 들었습니다. 목숨 걸고 조국을 위해 싸운 그들은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처지임에도,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시는 모습. 그걸 본받고 있는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건가?"

키신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45도 숙인 그의 예의에서 미국인들의 무사 석방을 위한 다른 제안이 나왔다.

"저희 요원들을 풀어주시면 핵개발을 묵인해드리죠. 어떠십니까?"

"진심인가?"

"공짜는 아닙니다. 핵개발을 묵인해드리는 만큼 대가를 주십시오."

"무슨 대가?"

"Imperial Press(제국익문사)는 중국땅에 잠입해서 VIP를 암살하고 돌아왔습니다. 중국은 커녕 소련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는데 이 정도 작전 능력이면 미국의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될겁니다."

"그래서, 제국익문사가 알고 있는 정보를 CIA한테도 공유해달라 그 말인가?"

"대한제국의 주적은 중국과 소련이지요? 두 나라에 스파이를 보내서 군사 동향을 감시하고 계실겁니다. 그 중에서 저흰 소련의 태평양 함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하고 있을건데 그 정도 정보는 공유 받아야 밸런스가 맞을테죠."

말인 즉 아는거 모조리 내놓으란 소리. 자길 암살하려 했던 CIA와 동맹을 맺는다는 소리가 영 꺼림직해서 이연은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지금은 공화당이 집권중이지만 다음 선거는 민주당이 될지도 모르죠. 그들한테도 핵개발을 묵인 받으려면 인정받을만한 선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브 앤 테이크."

진절머리 나는 능구렁이. 협박이 협상으로 바뀌고 협상이 유혹으로 바뀌더니 이젠 정반대로 협박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미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국무부장관의 협상 능력에 이 놈들은 갑의 위치로 돌아왔고 우리는 을의 위치로 돌아오고 만다.

<핵개발 묵인해줄테니 정보 동맹을 맺고 우리의 첩자질을 도와라>

망할것.

"핵개발을 묵인해준다는 건 공개하지 말라는 뜻이군."

"대한제국의 핵무기가 세계 전역에 알려지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따라 제재가 부과될겁니다. 그것까지 커버쳐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몸 사리십시오. 대한제국은 IAEA와 NPT 조약의 가맹국입니다."

"그래서?"

키신저 장관은 협박을 하듯 경고의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척 해드릴 테니 없는 것처럼 행동하십시오. 이스라엘처럼 쥐죽은듯이 하란 말입니다. 도대체 IAEA 감시를 피해서 어떻게 만든 건진 모르겠지만···."

거기에 키신저 장관이 협박 하나를 더 얹었다. 대한제국의 핵개발 정보를 모두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어디서 얼마나 얼만큼 저질렀는지 털어놓으라는 협박이지만 이연은 다른 선물로 키신저 장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날 대한제국의 국방부는 공식성명으로 암살이야기에 대한 발표를 했다. 외교가에 퍼지던 소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사전에 차단하는 전략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암살당하실 뻔했다는 소문은 사실 무근입니다. 간첩의 침투에 대비하기 위해 진행했던 국지도발훈련이 오해를 일으킨 것이며, 내달부터 진행될 한미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양국은···.>

그런 공식성명이 발표되는 동안 CIA 소속 요원들과 특수부대는 주한미군기지를 거쳐 전원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딱 한명. 자신을 덕수궁의 비서관이라 주장하고있는 배신자는 제국익문사에 납치되어 실종상태.

높으신 분 전원이 배제됨으로서 남은 것은 학교 옥상에서 김진혁 중령에게 얻어맞았던 양아치들이다.

<너 핵무기에 대해 알고 있지? 그거 불고 나랑 같이 작업 하나만 치자>

<왜? 놀랐냐? 내가 신분에 걸맞지 않은 충격적인 정보를 알고있나? 전개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막 대가리가 안 굴러가? 말했잖아~ 우릴 고용한 높으신 분이 계시다고~>

CIA의 보호가 사라진 이들은 제국익문사의 추적을 당해 남산의 지하실로 끌려왔고 일주일간의 조사를 받았다.

그 뒤로 그들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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