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Ep9. 중앙정보부 (1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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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대한제국의 전승기념일 행사가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번 행사는 경제여건을 고려하여 열병식 대신 실내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정부 요인과 귀족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가 되었다.
비서실장 이화의 인도 아래 황제 이연과 황태녀 이은서가 당당하게 극장 안으로 입성하여 단상 위로 올라가니 모두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제29회 전승기념일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제일 먼저 있었던 건 국기에 대한 맹세였다. 단상 위에 한 면을 통째로 장식하고 있는 태극기를 향해 모두가 기립하여 반주에 맞춰 맹세를 읊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뒤이어 애국가가 연주되면 엄숙했던 분위기가 돌변한다. 대한제국에서 사용하는 애국가는 독립군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들이 부른 군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군악대가 연주하는 당찬 애국가는 총리가 된 이범석 장군과 야당인사가 된 장준호, 상원의장 안수진까지 모든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과 애국심을 끓어 오르게 했다.
자신의 민족적 고향인 대한제국에 와서 애국가를 들어본 문세광은 주저하고 말았다.
‘이것이 애국인가?’
문세광은 깨달았다. 자신이 앉아있는 이곳은 결코 ‘대한민국’ 따위가 아니다. 제국이다.
자신들을 짖밟고 주권을 빼앗아간 일본제국에 맞서 당당하게 독립을 쟁취한 이들이 복구한 제국이며, 외세에 의해 분단된 아픔을 딛고 통일을 쟁취한 제국이다. 그리고 가난한 조국에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어 빛나는 경제 강국을 세우고 있는 제국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자유시장경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는 아시아의 용이다.
그러면서도 민족의 배신자 ‘친일파’들을 단죄하여 과거사를 완전히 씻어버린 독립운동가들의 제국이다.
피끓는 결의의 애국가를 따라부르며 문세광은 깨닫고 말았다.
‘이건 광복절이 아니야.’
독립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다. ‘독립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조선땅에 서서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이들 모두 피해자가 아니라 승리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세광은 깨닫고 말았다. 자신이 참석하고 있는 8월 15일 국립중앙극장에서의 행사 이름
대일전승기념일(對日戰勝紀念日)
Victory-over-Japan Day
대한제국 망명정부가 일본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겨 국토를 수복한 날 8월 15일. 그날을 기념하는 행사임을 마음 속 깊이 깨달아버린 조선인 문세광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망설이고 말았다.
‘나도 조선인이야··· 나에게도 애국심이 있다고! 도저히, 도저히··· 총을 꺼낼 수가 없어···.’
품속에서 느껴지는 권총의 싸늘한 촉감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해요 오진수씨, 난 마음을 바꿔야겠어···.”
하지만 그 때 오진수씨의 말이 떠올랐다. 누누히 몇 일이고 강조했던 그 남자의 논리는 항상 이렇게 귀결됐다.
<영웅이 뿜어내는 찬란한 후광에 대한제국 사람들은 눈이 멀어버리겠지.>
남자의 한스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문세광이 단상을 바라보았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아 어둠에 잠겨있는 독립운동가들과 다르게 황제는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단상위에서 만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연설을 준비중인 그 남자. 대한제국 황제 이연.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서울진공작전을 성공시킨 자주독립의 영웅, 한국전쟁에 뛰어들어 북진통일을 달성한 영웅, 경제를 발전시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영웅.
조선땅의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광개토대왕 만큼 존경받는 전쟁군주. 이순신 장군보다 뛰어나다고 칭송받는 천재적인 전쟁영웅.
살아 숨쉬는 영웅에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 그의 목소리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마이크와 방송사의 카메라들. 모든 영광을 한몸에 받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며 문세광은 떠올렸다.
그 혁명가 오진수의 대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황제 폐하 만세! 모두가 그렇게 눈이 멀어 박수만 쳐대는 대한제국이 되겠지!>
<정작 그 나라를 일으키고 발전시킨 건 자기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인데 말이야.>
문세광은 상상했다. 지금 이 순간. 황제를 향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있는 대한제국 사람들의 미래를. 이범석도 장준호도 안수진도 사라진 그 날의 사회상.
40년 쯤 지나면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들의 노고를 기억해줄까?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연의 초상화 앞에서 이렇게 만세를 부를 것이다.
<조선총독부에 태극기를 꽂아 독립을 선물한 황제 폐하 만세!>
40년 쯤 지나면 사람들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노고를 기억해줄까? 이것 역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연의 동상 앞에 서서 이렇게 만세를 부를 것이다.
<전지전능한 솜씨로 한국전쟁조차 승리로 이끄시고, 민족의 숙원 통일을 선물해주신 황제 폐하 만세!>
40년 쯤 지나면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고생을 인정해줄까? 아닐 것이다. 그들은 황실의 프로파간다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어 부유한 조국을 선물해주신 황제 폐하 만세!>
그들은 결론내릴 것이다.
<역시 민주주의 같은건 필요 없어! 황제 폐하의 완벽한 통치면 대한제국은 언제나 발전할거야! 의회를 폐지하고 선거를 중지하자! 모든 권력을 황제에게!>
그렇게 40여년 뒤 대한제국은 모든 선거가 중단될 것이다. 조선민족의 영웅인 이연 밑으로 대대손손 나라를 통치하는 3대 세습의 독재국가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세광은 오진수의 대의를 다시금 깨닫는다.
<정작 그 나라를 일으키고 발전시킨 건 자기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인데 말이야.>
독립운동도, 조국통일도, 경제발전도 그것의 공로는 한 명의 영웅이 아닌 조선의 인민 모두가 가져야 한다고. 한 명의 영웅은 지휘를 했을 뿐이지만 그것을 실현시킨 건 조선 인민의 피와 땀 눈물이 아니었냐고.
그래서 문세광은 결론을 내렸다.
‘오진수씨. 당신의 혁명은 잘못됐어요.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 될지 조선인민공화국이 될지는 인민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해요.’
그래서 총을 꺼내어 말했다.
‘난 애국자가 되겠어요.’
총구는 전방, 한치의 오발도 없는 완벽한 조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가다듬는 3초의 시간. 황제의 이마를 정확히 노리는 문세광의 선언적인 한 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대한제국의 독재자를 처단한다!”
그 때 단상의 뒷편에 앉아있던 비서실장 이화가 외쳤다.
"폐하!!!!!"
연설중인 황제의 극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문세광의 첫번째 총알은 빗나갔다. 객석의 맨 뒤에서 단상까지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그래서 문세광은 자리에서 뛰쳐나와 권총의 유효사거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쏴야해!’
문세광이 다시한번 총을 쐈다. 이번엔 확실히 가깝다. 한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격발된 문세광의 총알은 독재자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친위대!!!"
친위대에 각성을 촉구하는 비서실장 이화의 외침이 극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지켜볼 생각은 없다. 몸을 던져서라도 지켜주고 싶었던 소중한 이연씨가 눈 앞에 있었다.
<죽어도 내가 죽어야 해!>
이화의 결의가 발끝에 깃들었다. 단상 위 황제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비서실장의 몸뚱아리가 황제를 덮쳤다.
“으아악!”
총알이 이화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 노력으로 황제는 두 번째 총알을 피했다. 바닥에 쓰러져 피 흘리는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이연이 외쳤다.
“연희야!!!”
"그 이름은···."
자신의 숨겨왔던 예쁜 이름을 들으며 이화는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요···.”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 통증이 사라져갔다. 흥건하게 피를 흘리는 덕수궁의 비서실장은 속으로 걱정했다. 아직 총성은 두 번뿐이다. 리볼버의 총알은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최소한 다섯발 이상이다. 아직 세발이나 남은 것이다.
‘제발··· 폐하를 지켜줘···.’
그녀의 바램이 배신당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지연 대장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어 단상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했다.
<최고의 경호란 선제 타격으로 완성되는거야! 이 총으로 저격범을 쏴죽이면 모든게!!!!>
단상 앞에서 권총을 파지한 차지연 대장은 경호보다 사살에 집중했다. 그것이 최고의 경호라고 믿고 있었다. 저격할 사람이 없으면 안전도 보장되겠지.
하지만 성사될 수 없었다.
'쏠수가 없어?!'
수 많은 군중이 비명을 지르는 극장은 총을 쏘기에 대단히 불리한 환경이었다.
극장의 모든 조명이 황제에게 집중된 탓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문세광의 실루엣은 군중들과 섞여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그 상태에서 극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소리가 판단력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잘못 쐈다간 객석의 군중들이 맞을지도 몰라!'
차지연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문세광은 세번째 총알을 발사하기 위해 표적을 확인했다. 친위대원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어서 빨리 세번째 총알을 쏴야 했다.
‘마지막 기회인가?’
문세광은 황제를 바라봤다. 하지만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피를 철철 쏟아내는 와중에도 황제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육탄방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나무로 짜여진 연설대가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 저격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문세광은 다른 타겟을 찾아나섰다. 오진수가 알려준 플랜B가 있었다. 지난 날 오사카에서 훈련을 받으며 그에게 들은 완벽한 차선책이다.
<대한제국은 의친왕계의 후손들만 황족으로 인정하고 있어. 영친왕이고 덕혜옹주고 지금은 평민일 뿐이지.>
<왜 그런거죠?>
<대한제국이 부활한건 ‘조선을 복원한다’는 개념이 아니야. 독립운동을 이끈 망명정부의 수장이 의친왕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국이 된거지. 그는 독립운동가들의 대부였으니까.>
의친왕에겐 자식이 두 명밖에 없었다. 독립운동에 집중하느라 사생활이 없다시피 해서 의친왕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둘이 전부다. 하지만 여기서 한 명은 제거된다.
<경친왕 이열과 그 아들이 계승권에서 탈락한 지금.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위 계승권자는 이은서. 독재자의 딸 뿐이야. 독립운동가 황실의 유일한 적통인거지.>
그래서 오진수가 제안한 플랜B
<이은서를 죽여>
독재자를 죽일 수 없다면 독재자의 딸을 죽인다. 그것으로 대한제국 황실을 영구적으로 단절시키면 혁명도 성공할 수 있다.
“그래 황태녀만 죽이면 돼. 황태녀 이은서를 죽이면 조선 인민들은 주권을 되찾을 수 있어!”
조선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대한민국이 되거나 조선인민공화국이 되거나.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선택권이 인민들에게 주어지니까.
“죽어라! 독재자의 딸!”
하지만 죽일 수 없었다. 은서는 단상에서 사라져있었다.
모든 타겟을 상실한 문세광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고, 친위대에 제압된 그는 총을 빼앗기고 말았다.
'미안해요. 오진수씨···.'
청산가리 캡슐은 삼키지 못했다.
'그래도 죽고 싶진 않아···.'
***
은서가 사라진건 첫번째 총성이 울린 직후였다.
한 명의 사내가 단상 아래에서 뛰쳐 올라와 황태녀를 품에 안았다.
대한제국 친위대 김진혁 중령.
은서의 전담경호원, 서북방위사령관의 부관, 늘 각목같이 서서 모두를 답답하게 만든 고자새끼는 총성이 들리자마자 단상위로 뛰쳐 올라와 은서를 덮쳐버린 것이다.
그리곤 사심을 담아 이렇게 속삭였다.
“잠시만 이렇게 있어주실래요?”
헐떡이는 숨소리와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남자의 품속에서 은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이렇게 덮쳐버리면···.”
“누군가가 총을 쐈어요. 여기 이렇게 엎드려 계시면 제가 지켜드릴테니···.”
그러자 은서가 행복하게 말했다.
“진작에 이렇게 안아주지.”
“예?”
“너 말이야. 말투까지 바뀐거 알아? 딱딱하게 군대식 말투만 쓰던 애가 말이야.”
“......?”
“진작에 이렇게 해주지··· 왜 그동안 각목처럼 서있었담? 내 말도 제대로 안 들어주고.”
“비서실장님이 시키셨으니까요.”
진혁이의 미소에 자부심이 차있었다. 비서실장님의 분부를 멋지게 이행한 청년의 미소.
“총을 쏠 시간이 있으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라. 전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게 제가 받은 명령이었으니까.”
“이렇게 안아주는 것도 명령이 있어야 가능한거야?”
진혁이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무서웠거든요.”
“뭐가?”
“공주님은 대한제국 황실의 유일한 계승권자니까요.”
“내가?”
“이 나라는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면 황족으로 인정도 못 받는 나라에요. 그리고··· 그 황족의 유일한 후계자가 공주님이셨죠.”
“혜조 대제의 유일한 계승자가 나라는거야?”
“황태녀 전하가 돌아가시면 대한제국 황실은 영구적으로 단절이에요. 그러니 지켜드려야죠. 제가.”
진혁의 품에 안겨있는 은서가 어처구니 없는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데이트 하는 동안에도 경호만 하고 있었다고?”
진혁이를 끌어안으며 은서가 말했다.
“어이구 멍청아··· 부대찌개 먹을때도, 놀이기구 탈 때도, 뱃놀이 할 때도, 옷구경 할 때도, 다방에서 음악 들을 때도 넌 경호만 하고 있었구나.”
“......”
“그러니 계속 각목처럼 서서 건성건성 대답만했던 거였어. 순 멍청이···.”
세번째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세광이 은서를 놓쳐 그대로 제압당한 탓이다. 그 뒤로 한동안 극장에는 웅성거리는 관객들의 소리만 들렸을 뿐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때 경호실 차장의 목소리가 들렸고 부하들의 대답이 들렸다.
"전체 상황 보고해!"
"폐하는 무사하십니다!"
"비서실장님이 다치셨습니다!"
의료진들이 달려와 이화를 구급차로 실어날랐다. 의식을 잃어버린 비서실장을 걱정하는 부하들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울려퍼졌다.
"전하는? 전하는 무사하신가!? 다른 부상자는!"
그러자 진혁이 은서를 꼬옥 끌어안고 외쳤다.
"황태녀 전하도 무사하십니다!"
장내 방송이 울렸다.
<모두들 앉아주십시오! 모두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그 때 다시 한 번 총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의문의 총성에 진혁은 황태녀 전하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품속에 꼬옥 안겨있는 공주님은 여전히 건강해보인다. 연설대 뒤에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황제 폐하도 이상이 없어보인다. 그러는 사이 어느 경호원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범인이 죽었습니다!”
총에 맞은건 문세광이었다. 즉사해버린 그를 보며 경호실 차장이 외쳤다.
“아직 저격수가 더 있다! 폐하와 전하를 보호하라!”
진혁은 주위를 둘러봤다. 도망치는 관객들과 질서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경찰들, 이범석 총리 밑으로 주요 인사들은 친위대의 이중 삼중 철통 호위를 받으며 어딘가에서 저격중인 두번째 범인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누구지? 어디에 저격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극장엔 오로지 같은 편만 있을 뿐이다. 수상한 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수상하다 해도 극장 밖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 그 때 은서가 진혁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두려운듯 물었다.
"진혁아. 저기···.”
은서가 가리킨 곳은 단상 위의 장막 끝자락. 창고와 대기실로 이어지는 통로의 어둠 속이었다.
“같은 편인데 우리한테 총을 겨누고 있어···.”
검정 양복의 경호원. 분명··· 친위대원인데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배신자라고?! 말도안돼!!!’
위기의 순간, 진혁이 총을 꺼내려 허리에 손을 갖다대던 찰나. 누군가가 먼저 총을 쏴서 배신자의 손을 날려버렸다.
“배신자다! 놈을 잡아! 자살하지 못하게 해!”
목소리의 주인공은 황제 폐하였다. 연설대의 뒤에서 흑색 리볼버를 쏜 황제의 한 발이 자신의 외동딸과 사위를 구해냈다.
친위대원들이 달려와 정체불명의 남자를 제압했다. 손이 날아가버린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태는 그렇게 끝났다. 연설이고 전승기념일이고 모든게 망가져버린 8월 15일이었다.
죽은건 문세광이었다.
실패한 혁명가가 누군가에게 입막음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