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31화 (31/131)
  • 〈 31화 〉 Ep4. 덕수궁 비서실장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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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진혁은 공주에게 불려가 멱살을 잡혔다. 그렇게 멱살 잡힌 채로 질질 끌려간 곳은 덕수궁 내에 위치한 중화전이었다.

    “김훈 소령!!!”

    덕수궁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외친 은서의 부름에 덕수궁 945 경비대 참모장 김훈 소령이 부리나케 달려와 말했다.

    “... 예 공주님.”

    처음엔 평소처럼 반말을 쓰려다가 분위기를 눈치채고 존댓말을 쓰는 김훈. 그런 그에게 대한제국 공주 이은서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친위대 병력 데리고 중화전 반경 15m이내를 모두 포위합니다. 누구도! 쥐새끼 한마리도 얼씬 못하게. 황제조차 접근 못하도록 막으세요. 그리고 여기에 도청장치 같은거 있나 없나 확인 좀 해주고.”

    “대체 무슨 일이시길래···.”

    은서가 광기어린 시선으로 답했다.

    “아버지 몰래 대화좀 하죠. 덕수궁 내에서 아버지 몰래 대화할만한 곳이 없으니까. 이 공간이라도 텅 비워보자구요.”

    “예···.”

    김훈 소령은 순순히 따랐다. 친위대 병력을 동원하여 중화전 내에 도청장치가 없는지 한참을 수색하더니 이후 반경 15m 거리를 겹겹이 포위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문제의 김진혁. 다짜고짜 은서에게 싸대기를 맞는다.

    “......”

    싸대기를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는 은서가 말했다.

    “넌 씨발, 감히 대한제국의 공주를 도청해?”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내 바닥에 던져버린다. 진혁한테서 빼앗은 녹음기의 내용물이었다. 바닥에 던져지고 발로 밟혀 부서지는 그것을 보며 진혁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내 옆에 붙어있던거야?”

    진혁이 무거운 마음으로 답했다.

    “며칠 전 가출하셨을 때부터···.”

    그리고 한대 더 맞았다. 후끈 거리다 못해 머리가 핑 돌만큼 특전사 출신 공주의 손맛이 무척이나 매웠다.

    "어떻게 사람이 이래?"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해?”

    "폐하께서 직접 부탁하신 일입니다.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뭘 바라는지. 듣고 싶은 것도 해주고 싶은것도 많은 아버지신데. 대화는 커녕 밥 한끼조차 같이 못하시죠. 필요할 때 아니면 딸의 목소리 조차 못 듣는 미움받는 아버지시니까.”

    “그래서 도청을 했다고? 너를 시켜서?”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하시겠습니까?"

    "되도 않는 변명 집어 치워!"

    그리고 또 한대 맞았다. 정말 징하게 때린다.

    "난 네가 같은 편인줄 알았어. 아버지가 감시하라고 붙이긴 했어도, 진심으로 날 위해주고, 생각해주고, 지켜주고. 어떤 대화를 하건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은서가 울먹이며 말했다.

    "어제 있었던 대화도 녹음한거야? 그렇게 녹음해서 아버지한테 보고한거야? 그 사람이 반역자다. 그 사람이 공주를 현혹하려고 했다.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그 물음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실을 털어놓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폐하의 권력을 지키는 게··· 공주님을 위해서니까···."

    "난 독재가 싫어!!!"

    "공주님은 폐하의 따님이십니다!"

    은서가 나지막이 눈물을 떨궜다. 분하고 슬프고 배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눈물이었다.

    "독재는 나쁜거잖아···."

    “독재가 나쁜겁니까?”

    “민주주의가 좋은거잖아!”

    “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은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기초적인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독재의 뜻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 그런거라면 역사에도 무궁무진하게 많았죠."

    “그게 무슨···.”

    "세종대왕이 왜 성군이었는지 아십니까?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익히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을 만들어 선물해주셨죠. "

    "그게 독재랑 무슨 상관인데?"

    "기득권의 반대를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아버지 태종이 모든 반대파를 숙청해서 물려준 완벽한 왕권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 왕권도 현대적인 관점에서 따져보면 독재였겠죠."

    "......"

    "독재자의 특징 중엔 부당한 인사권 행사도 있었죠? 낙하산 인사. 선조 대왕님이 독재권력으로 뭘 하셨는지 아시나요?"

    눈물섞인 분노로 자신을 노려보는 공주에게 진혁이 확신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변방의 말단 장수인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죠. 요즘 시대로 치면 해군참모총장인데 도대체 몇 단계를 건너 뛴 낙하산 인사일까요?

    그렇게 낙하산 인사를 앉히니 어땠습니까? 임진왜란 터지니까 23전 23승 무패. 13척 함선밖에 없어도 300척에 달하는 일본 해군을 무찌른 영웅이 됐죠.”

    "그건 선조대왕님이 아니라 유능한 신하들이 추천을···."

    "그 추천을 받아 실행에 옮긴게 조선왕조의 강력한 왕권이었으니까! 그 시기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이름난 장수 대부분이 왕권의 이름 아래 임명된 파격 인사였는데 그래도 독재가 마냥 나쁜겁니까?"

    "중세시대 이야기 가져와서 억지 부리지 마!"

    "전 지금 사람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민주주의든 독재정치든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구요! 중요한 건 그거 아닌가요?"

    진혁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요, 학창시절에 자살하려고 했어요. 왜? 학교폭력에 시달리는게 너무너무 힘들었으니까. 집나간 어머니가 그립고,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사는게 너무 힘들었으니까.

    근데 당신 아버지요. 이 나라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서 권력을 사용해서 절 구해주셨어요. 복수를 해주고, 집나간 어머니를 모셔오고, 알콜중독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치료해주시고. 절 유학까지 보내주시며 최고의 엘리트로 키워주셨죠.

    허구한날 싸우던 두분이 화목한 부부로 지내시고, 장성한 아들의 대견한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시는데, 못했던 효도를 하는 기분이라 행복해 미치겠거든요.”

    소년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학창시절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던 소년이 장성한 청년이 되고 성공한 삶을 살면서 공주의 눈앞에 당당히 서있었다. 그것은 분명 똑같은 김진혁이었고 황제의 ‘작품’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준 게 황제 폐하라구요. 공주님이 독재자라 비난하시는 분. 그분이 독재자랍시고 하신게 이 사회에 만연한 학교폭력의 완전한 근절, 교육과 연계된 부정부패 일소.”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

    “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정치적인 목적이든 진심어린 목적이든, 위대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있는데.”

    진혁은 확신을 갖고 은서를 몰아붙였다. 단 한마디로.

    "신에게 민주주의는 필요 없잖아요."

    ***

    그 시각 중앙청엔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가 있었다. 터벅버벅 계단을 올라가는 빛에 결전의 각오가 서려있었다.

    “공주님이 신민당 설득에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덕수궁 정무수석비서관의 말이었다. 이름은 최원철. 덕수궁 황실과 입법부를 오가며 관계를 조율하는 참모 역할이었다.

    “어차피 예견된 일이었어요.”

    “하지만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지 않았습니까? 강경파 설득이 어려운 이상 황실과 입법부의 관계가···.”

    이화는 중앙청 2층에 위치한 하원 운영위원회의장 앞에 서서 말했다.

    “파탄나기전에 끝을 봐야죠. 우리 손으로.”

    결전의 각오로 들어간 대한제국 국회 하원 운영위원회. 이곳에선 현재 대한제국 조선황실법 개정을 위해 각 당의 상임위원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었다.

    청문회에 심문을 당하는 사람마냥 앉아있는 이화에게 한독당 강경파 의원이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대한제국의 공주님을 월남전에 보내신 이유가 뭡니까?”

    그 말에 이화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 월남전 파병했을 때 황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제국 공주님은 간호사관학교로 가신다고. 근데 정작 가신곳은 육군사관학교였죠. 이거 새빨간 거짓말 아닙니까? 국민 기만입니다!”

    “경호상 문제로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특전사로 파병가셨다고 발표했다간 무수히 많은 적이 공주님을 노릴테니까요.”

    그러자 다른 강경파 의원이 서북방언으로 물었다.

    “공주님을 월남전에 보내신게 계승을 염두해둔 업적 쌓기용 아닙네까? 모범이 아니라 훈장을 위해서디요!”

    그러자 이화가 강경하게 말했다.

    “업적 쌓기를 위해서라면 친위대의 정예 요원들을 붙여 함께 싸웠을겁니다. 공주님은 평범한 장교의 신분으로 특전사에 가셨고, 여기에 황실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공은 공주님 스스로 달성하신겁니다.”

    “말돌리지 마시라요! 결국은 계승법 개정을 염두하고 보낸거잖습네까!”

    그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한독당 온건파 의원이 말했다.

    “계승법 개정은 공주님이 태어나셨을 때부터 염두하셨겠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신데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자 이화가 거들어 말했다.

    “공주님이 황태녀가 되신다면 대한제국 최초의 여제가 되실겁니다. 이는 황실의 오랜 숙원이고 조선 여인 모두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의원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여자는 황제가 되면 안되는겁니까?”

    그 말에 모두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공주님은 영웅의 딸이지만 그 자체로 영웅이십니다. 월남전에서 공을 세우신 전쟁 영웅이며, 뛰어난 지혜로 영어, 프랑스어, 베트남어까지 섭렵하신 4개 국어 능력자입니다. 뛰어난 지혜로 앞으로 많은 것을 배우실 수 있을겁니다."

    이화는 왼쪽에 앉아있는 신민당 상임위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품도 훌륭하십니다. 대한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계시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성군의 자질이죠. 이런 인재가 단지 여자란 이유로 황제가 될 수 없다면 비극이 아닐런지요?"

    그녀의 말에 한독당 강경파 의원이 답했다.

    “이 문제를 남녀 문제로 끌고가지 마시라요!”

    “그럼 무슨 문제인지 여쭙지요. 의원님.”

    그 말에 강경파벌의 의원이 3.7초정도 망설이다 말한다.

    “다음 황제로 누가 좋을지. 누가 대한제국을 훌륭하게 이끌지에 대한 문제입네다.”

    “그게 누구일까요?”

    “다음 황제는···.”

    참다 못한 옆자리 의원이 일어나 말했다.

    “다음 황제는 서북방위사령관 경친왕 전하께서 되셔야 합니다!”

    그러자 한독당 강경파 의원 전원이 기립하여 외쳤다.

    “이북지역에 조선땅을 노리는 중공군만 수백만이오!”

    "황실은 이북의 인민을 수호하라! 대한제국 만세!”

    상임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외친다.

    “정숙하시오! 정숙! 의원분들은 체통을 지키시오!”

    강경파 의원들의 난동에 온건파 의원들이 부끄러워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런 모습을 신민당 의원들이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게 바라봤다. 주도권을 잡으려던 이화는 사태가 이념논쟁으로  빠지자 다음 전략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 때 친위대 장교 한 명이 국회 하원 운영위원회장 문을 박차고 들어와 외쳤다.

    “큰일났습니다!”

    “무슨 소란인가!”

    의장의 물음에 친위대 장교가 답했다.

    “국방대신으로부터 연락입니다. 현재시간 16시 30분부로 전군에 데프콘 3를 발령한답니다!”

    그러자 이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물었다.

    “데프콘 3라뇨! 들은 바 없습니다! 누가 황실의 허락없이 군사준비태세를 발령합니까!”

    난입한 군인이 절망적으로 외쳤다.

    “백두산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했답니다. 사상자 37명. 지금도 총격전이 계속되어 계속···.”

    “말도 안 돼! 하필 이런 때···.”

    “아무튼 황명이오니 비서실장님도 빨리 복귀하셔야합니다.”

    이화는 이북지역 출신의 한독당 강경파 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쾌재를 부르겠지. 안보위기로 몰고가 계승법 개정을 짓뭉개버릴 절호의 기회다. 그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마음속 깊숙히 잠식해나가는 공포의 바이러스가 강경파 의원들 사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이북땅엔 그들의 가족이 있었다.

    중앙정보부 요원 출신의 이화가 보기에도 그들의 공포는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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