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30화 (30/131)
  • 〈 30화 〉 Ep4. 덕수궁 비서실장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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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뒤 은서는 대한제국 공주의 자격으로 신민당 당사를 방문했다.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친위대의 경호를 받으며 등장한 대한제국의 공주 이은서 앞에는 수 많은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진을 치고 있었다.

    신민당.

    종로구 관훈동에 당사를 틀고 있는 이 정당은 정치 이념에 상관없이 민주주의자면 모두가 모여있는 일종의 연합정당이었다.

    황제의 친위정당인 한국독립당이 185석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전제군주제 개헌을 추진하고 있어, 신민당의 95석과 소수의 무소속 의원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헌법이 보장하는 독재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공주의 신민당 방문을 충격적으로 여겼다. 독재자의 딸이 민주주의자들 앞에 나타났으니까.

    “공주님이 야당을 방문하시다니! 이는 입헌군주제를 유지해주겠다는 황제 폐하의 뜻이 아닌가!?”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신민당 내 우파와

    “무언가 속셈이 있을 것이다. 달콤한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지 말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는 좌파의 미묘한 시선차가 눈에 띄었다.

    특히 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겁다. 신민당의 좌파. 공화국을 꿈꾸는 그들이 공주를 바라보는 시선에 적개심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고, 이를 의식한 경호원들이 공주의 반경 10m 선에서 인의장벽을 치고 있었다.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보지?”

    은서의 물음에 진혁이 답했다.

    “공화국을 지지하는 놈들일겁니다. 황제를 폐위하고 대통령을 뽑자.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고치자. 그런 것들이죠.”

    "......"

    “따지고 보면 반역죄라 중앙정보부가 벼르고 있는걸로 압니다. 자기들도 그걸 아는지 겉으로 내색은 안하고 있죠.”

    진혁의 말에 은서가 굳은 각오로 말했다.

    “내 시대는 다를거야. 민주국가는 정적의 말도 들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 미덕이거든."

    은서는 그렇게 말하며 10m 밖에 떨어진 좌파세력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친구보듯 반가운 미소를 건네는 공주와 적을 바라보는 좌파들의 표정이 엇갈렸다.

    ***

    “어서오십시오 공주님! 신민당 총재 김영현이라고 합니다!”

    “이은서에요. 반가워요!”

    신민당 총재 김영현과 대한제국 공주 이은서의 악수 장면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겨진다. 무수히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공주의 모습, 그런 그녀와 영광의 악수를 나누고 있는 신민당 내 우파 세력의 대표.

    둘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다음날 신문 1면에 실리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상상하며 은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 분위기야! 진작에 이렇게 할걸. 이 분위기면 계승법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을거라고!’

    김영현 총재의 옆자리에 서있는 부총재 김대정의 표정이 영찝찝했지만 은서는 굳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표정 보니까 김영현 총재가 온건파고, 김대정 부총재가 당내 강경파인가? 뭐 아무렴 어때? 총재 의견이 장땡이지!’

    이렇게 얼렁뚱땅 생각해 넘겨 버리며 은서는 신민당 지도부와 1시간동안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대화내용을 꼼꼼히 받아적는 기자들이 내일자 신문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 은서는 만족스러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

    기자들을 물린 후 신민당 근처의 식당에서 열린 지도부와의 만찬. 호화롭진 않지만 ‘공주님과의 식사’라는 점에 입각한 노력이 보이는 딱 그정도 수준이었다.

    황실에서 전속요리사의 수라상을 받아 먹는 은서 입장에선 ‘소소한 서민의 식사’ 정도밖에 안되는 수준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비즈니스인걸. 이럴 땐 뭐든지 맛있고 무엇이든 웃어재끼는 것이다. 환하게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30kg의 진심을 담아서.

    “그럼, 기자들도 없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조선황실법 개정안을 지지해주세요.”

    그 말에 김영현 총재를 포함한 지도부 다섯이 일제히 고심에 잠겼다.

    ‘뭐야··· 분위기 왜이래? 아까 기자들 앞이랑 완전히 다른데?’

    긴장어린 눈초리로 상황을 살피는 은서에게 김영현 총재가 말했다.

    “그게 사실은... 저희 당은 이번에 조선황실법 개정안에 기권하기로 했습니다.”

    “예? 아니 아까 전에 기자들 앞에선 분명··· 황실과 협의해나가신다고···.”

    “협의랑 협조는 다르니까요. 정계에서 부르는 관용적인 표현이지요.”

    쩔쩔매는 김영현 총재를 뒤로하고 김대정 부총재가 냉정함을 담아 공주에게 말했다.

    “지난 연설에서 공주님이 말씀하셨지요? 황제 폐하는 독재자라고.”

    “그래서 협조를 부탁드리는 거예요. 제가 황태녀가 되어야 아버지를 설득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저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공주님이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고 계시지만 결국은 독재자의 따님이시죠.”

    김대정 부총재의 말에 은서 뒤에 서있는 진혁이 살기어린 시선을 보냈다. 대한제국 황제를 독재자라 표현하는 것. 공주는 그분의 딸이니 허락되지만, 황제의 백성인 김대정 부총재에겐 허락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김영현 총재가 김대정 부총재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고 있었다.

    "저희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의의 손으로 뽑히지 않은 황제 폐하께서 친정을 선포하시고 나라를 직접 통치하시는 이상, 그분의 따님이신 공주님과는 동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정 부총재가 김영현 총재의 손을 뿌리치고 냉정히. 하지만 결심의 각오를 담아 공주에게 진언을 올렸다.

    “제 목숨을 걸고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공화국을 꿈꿉니다. 황제 대신 대통령을 뽑아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정치인이죠.”

    “이봐요 김동지! 거 참 말을 좀 가려서 하라니까!”

    애가타는 심정으로 만류하는 김영현 총재를 뿌리치고 김대정 부총재가 은서에게 계속 진언을 올렸다.

    “이 나라는 저같은 사람을 반역자로 취급하고 있지요. 매일같이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는 몸이구요. 그뿐입니까? 당장 여기 공주님을 지키겠다며 따라온 친위대 장교조차 저를 노려보며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김대정 부총재가 가리킨 친위대 장교는 은서 뒤에 서있던 김진혁 대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부총재 입에서 ‘독재자’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계속 머리속에 반역죄를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은서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 진혁의 표정을 확인했다. 긴장감어린 군인의 시선이 김대정 부총재를 쏘아붙이고 있었다.

    “뭐야? 너 왜그래?”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뻔뻔히 말하며 진혁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으니까. 진혁은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머리속에 반역죄를 떠올리며 망설였을 뿐이다. 이 자리에서 체포해야 할지. 폐하께 보고를 올려야 할지. 아직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뿐.

    “이 나라 국민 대부분이 공화국 하면 저렇게 반응합니다. 영웅의 후광에 눈이 멀어 황제 없는 민주주의에 거부감을 느끼고, 야당 의원이 황제를 견제하면 장애물로 취급하니, 공주님의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동지들이 많지요.”

    “아니 그 정도까진···.”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권력이 없는 공주님은 민주주의자로 이 자리에 존재하시지만, 황위를 물려받으신 공주님은 분명 다를겁니다. 권력은 그런거니까.”

    김대정 부총재의 말에 은서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저는 변하지 않을거에요.”

    “공주님은 분명 변하실겁니다.”

    은서가 간곡히 말했다.

    “저요. 월남전에 강제로 보내진거에요. 사관학교에서 조교들에게 몽둥이로 두드려 맞으며 컸고, 전쟁터 뛰는 내내 편지 한통도 못받았어요.

    1년 전 부하들을 모두 잃은 충격으로 밥 한끼 제대로 못먹는 날이 대부분이었죠.

    몇일전에 서울 시내에 헬기랑 군경들이 돌아다녔죠? 그거 저 때문이었어요. 가출했거든요. 아버지가 싫어서 공주 자리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려고. 제가 그정도까지 아버지를 미워하는데 어떻게 아버지랑 같은 사상을···.”

    억울해하는 은서에게 김대정 부총재는 묵묵히 말했다.

    “방금 공주님이 말씀해주신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는 언론의 자유도 없어서 나쁜 소식은 보도되지 않으니까요.”

    “그럴리가···.”

    “신문기사엔 월남전에서 영웅적으로 활약한 공주님의 모습이 가득했고, 황실에 대한 소식도 화기애애한 부녀간의 모습뿐이니 저를 포함한 국민 모두가 어찌 알겠습니까?”

    김대정 총재는 애끓는 심정 반, 공주의 고충을 불쌍히 여기는 표정 반을 섞어 다정하게 말했다.

    “공주님, 이 나라는 공주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엄하고 무서운 나라입니다.”

    “......”

    “황궁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시는 공주님은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언제 어디서 괴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할지도 모르고, 암살을 당해 길거리에 시체로 발견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말하며 대정은 공주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니, 나중에 다시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정치적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공주에게 김대정 부총재가 말한다.

    “언젠가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시고, 지금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다시 찾아와주십시오. 그 때는 공주님과 함께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는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부총재의 말을 한참이나 듣고 있던 김영현 총재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그 때 저희가 없다면 저희의 의지를 잇는 후배를 찾으셔야겠지요. 입헌군주제든 공화국이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겁니다.”

    그들의 말을 듣던 진혁이 중얼거린다.

    ‘어차피 다음 선거면 패배해 사라질 자들이겠지만.’

    그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등돌려 돌아가는 은서를 보며 신민당 지도부는 씁쓸하게 고개를 젓는다.

    “우리가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 나라 국민들은 황제의 후광에 눈이 멀어버렸는걸. 틀렸어···.”

    “공주님이 황제가 되실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힘없이 중얼거리는 신민당 지도부들을 뒤로한 채 은서는 황궁으로 돌아가는 리무진에 올랐다. 어두운 밤 가로등이 반짝이는 적막한 리무진 속에서 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야, 김진혁.”

    “예 공주님.”

    “너 아까 좀 무섭더라?”

    은서의 물음에 진혁이 담담하게 답했다.

    “공화국은 반역입니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황제폐하의 통치를 인정하는 헌법의 테두리에서만 제한적으로 허락되는 이야기죠.”

    그 말에 은서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진혁에게 말했다.

    “이거 참,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네.”

    “세상은 원래부터 이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경고 하나만 할까?”

    가로등 불빛이 넘실거리는 어둠 속의 리무진에서 은서는 살기어린 눈동자로 진혁에게 말한다.

    “오늘 대화. 머리속에서 지우는게 좋을거야. 공화국이니 어쩌니 하는 것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서 저 사람들에게 화가 닥치면, 넌 내 손에 죽어.”

    “공주님이 절 죽이겠다구요?”

    “못할 거 같지? 덕수궁의 안락한 새장 속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니 만만해보이나본데, 나 대한제국 특전사야. 월남에서 홀로 빨갱이 특수부대 때려잡은 이은서 대위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며 은서는 진혁에게 썩은 미소에 살기를 섞어 보냈다.

    “니까짓거 젓가락 하나로도 죽여버릴 수 있어. 그러니까 오늘 대화는 없던걸로 해.”

    공주의 경고에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죽여버릴 기세로 노려보고 있어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월남땅에서 자살 소동을 벌일 때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지금 당장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전사의 눈빛이 대한제국 공주 이은서의 눈에 서려있었다.

    그래서 진혁은 품속의 녹음기를 몰래 끈다. 돌아가던 테이프가 조용히 멈추었고 그날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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