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신곡 (3)
은우는 동생을 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가만있어 보자. 내가 아기 때 보던 소리 나는 그림책을 동생에게 주면 좋아할까?’
은우가 아기이던 시절, 창현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은우는 장난감을 별로 가지지 못했다.
몇 개 없던 장난감 중에서도 소리 나는 그림책은 은우가 아끼고 사랑하는 장난감이었다. 지금도 심심하면 가끔 소리 나는 그림책을 꺼내 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은우였다.
‘안 버리고 책장에 두길 정말 잘했다.’
[아가야, 널 사랑해]라는 제목의 그림책에는 [사랑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옆의 사운드 모양을 누르면 [사랑해]라는 말이 나왔다.
‘그 그림책을 볼 때마다 동생이 내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겠지?’
은우는 기뻐할 동생의 모습을 생각하며 기뻤다.
길동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은우가 길동에게 물었다.
“횬아, 아기는 머가 피료해요?”
“아기?”
“은우, 동생이 생긴대요.”
길동은 처음 듣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축하해. 은우야. 이제 형인가? 오빠인가?”
“그건 몰라요. 근데 오빠하고 시퍼요.”
“여동생이 더 좋아? 여동생 좋지. 근데 형도 아기가 뭘 필요로 하는지는 잘 모르는데.”
길동은 스마트폰을 검색했다.
‘백일 아기 선물 이런 걸로 검색해야 하나? 출산 준비물 이런 걸로 검색해야 하나? 이런 건 찾아본 적이 없어서 정말 어렵네. 아기는 뭐가 필요하지? 우유? 기저귀? 그런 건 엄마, 아빠가 준비할 테니 준비할 필요가 없을 텐데.’
길동은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고민 끝에 은우에게 대답해 주었다.
“은우야, 아기는 사랑이 필요해.”
“사랑이요?”
“응. 아기에겐 사랑이 가장 필요하대.”
“네네네네네.”
은우는 곰곰이 앉아서 동생에게 줄 선물을 생각했다.
‘나의 사랑. 음, 내가 아기 때 쓰던 그림책도 주고 내가 좋아하는 공룡 변신 로봇 옷도 주고 걸을 때마다 빛이 나는 반짝이 신발도 줘야지. 자라면 같이 놀이터에도 가야지.’
은우는 동생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에 대답했다.
“횬아, 사랑이 머예요?”
“맛있는 걸 같이 먹는 거.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거. 그런 게 사랑이야. 형이 돈가스를 포장할 때 은우 것도 사다주는 거 그런 게 사랑이지.”
“와아. 횬아 똑또캐요.”
은우는 동생에 대한 계획에 먹을 것을 추가했다.
‘마카롱도 주고 과자도 줘야지. 고기도 많이 주고 사탕도 주고.’
길동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 동생 생겨서 좋아?”
“네네네네네.”
“은우는 어떤 오빠가 될 거야?”
“아가가 울면 달래주고 아가랑 노라주고 아가에게 뽀뽀해주는 오빠.”
“멋진 오빠네.”
길동은 은우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은우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아가에게 노래 만드러 져야지.”
은우는 동생에게 노래를 선물하기로 했다.
‘동생은 예쁜 것만 보고 예쁜 것만 생각하면 좋겠다.’
은우가 키즈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보송보송 기여운 너.
통통한 뺘미 탐스러어.
너무 기여어.
네 누는 꽃씨 가타.
행보긔 씨아시 자라네.
자근 네 손가라근 꼰닙 가타.
작고 소중해.
나는 조심히 네 소늘 잠네.
조용히 잠든 숨소리가 사랑스러어.
내 이베선 보미 피어나네.
나는 네게 뽀뽀해.
사랑스런 너는 내 동생.
내갸 사랑하는 동생.]
길동은 은우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노래에 담긴 마음이 너무 아름답다. 난 내 동생을 이렇게 예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동생아 미안해.’
은우는 녹음 버튼을 끄면서 신이 나서 말했다.
“아기 만나면 들려져야지.”
“아기는 은우가 오빠라서 좋겠다. 이렇게 멋진 노래도 선물로 받고. 슈퍼스타 은우가 오빠라니 너무 신나겠는걸.”
“헤헤헤헤. 머찐 오빠가 댈 거예요.”
***
은우는 소피아가 준 초대장을 들고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 앞에 서 있었다.
길동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 덕분에 뮤지컬을 다 보네.”
“소피아 눈나 정말 잘 대떠요. 꾸믈 이룬다는 건 머찐 이리자냐요.”
“그치. 꿈을 이룬다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지.”
“이따가 눈나에게 꽃 줄까요?”
“좋은 생각인데.”
길동과 은우는 근처 꽃집으로 가 꽃다발을 샀다.
“예쁜 꼬츠로 주떼요. 오늘 꾸믈 이러꺼드뇨.”
꽃을 포장하던 아주머니가 은우를 보고 신기한지 말을 붙였다.
“몇 살이야? 말 참 이쁘게 한다. 아이고, 귀여워라.”
“다섯 짤이에요.”
“아, 다섯 살이구나. 꽃 받을 사람은 좋겠네. 이렇게 이쁜 아가가 꽃도 다 사다주고.”
“헤헤헤헤헤. 눈나가 조아하까요?”
“그럼. 특별히 내가 장미 세 송이를 더 넣어줄게.”
“걈사함니댜.”
은우는 배꼽 인사를 하고 품 안 가득 꽃다발을 안았다.
“헤헤헤헤. 아피 안 보여요.”
“은우야, 네가 꽃다발을 안은 거니? 꽃다발이 널 안은 거니? 형이 들어줄까?”
“갠차나요. 은우갸 가져다줄 거예요. 소피아 눈나 추카해 줄 거예요.”
“정말 괜찮아?”
“네네네네네.”
출입구에서 길동이 직원에게 초대권을 보여주자 직원이 은우와 길동을 맨 앞자리로 인도했다.
“와, 잘 보이게따.”
“제일 좋은 자리네. 비싼 자리 같은데. 소피아가 은우를 특별하게 생각하나 보다.”
“헤헤헤헤. 눈나가 지금 긴장하고 이뜰까요?”
막이 오르고 초록색 마녀 분장을 한 소피아가 나왔다.
은우가 소피아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소피아 눈나, 초록 마녀네. 헤헤헤헤. 잘 어울린댜.”
소피아는 은우의 응원을 받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나는 엘파바.
초록 마녀.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다네.
조금 두렵지만 여기선 재밌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야.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내 꿈을 이룰 수 있겠지?
선생님은 누구일까?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설레는 만큼 긴장되는 내 마음]
은우는 소피아의 노래를 듣자마자 엄지손가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눈나 체고.”
장면이 바뀌고 엘파바가 기숙사 방을 배정받는 장면이 나왔다.
예쁜 금발의 소녀인 글린다가 함께 대사를 주고받았다.
[엘파바] : 네가 나와 함께 방을 쓰게 될 사람?
[글린다] : 저 초록색 피부는 뭐야?
[엘파바] : 다른 룸메이트는 없을까?
[글린다] : 평범한 룸메이트를 만나고 싶어.
엘파바가 부르는 노래.
[룸메이트 망했어.
첫 느낌이 불편해.
너는 진상 진상
구제불능의 밥맛 밥맛]
글린다가 부르는 노래.
[나를 좀 구해줘.
난 예쁜 룸메이트랑 살고 싶어.
쟨 너무 사차원처럼 보이잖아.
마녀 모자 너무 이상해.]
은우가 공연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진샹. 진샹. 밤맛. 밤맛. 모쟈 이땅해.”
길동이 옆에서 은우를 말렸다.
“은우야, 소피아 누나 응원하는 것도 좋은데 조용히 해야 해.”
은우가 입술 앞에 작은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대답했다.
“네에. 쉬이.”
길동은 은우를 보며 생각했다.
‘아기들은 꼭 안 좋은 말부터 배우고 따라 한다니까. 진상, 밥맛. 이런 건 좋은 말이 아닌데 듣자마자 바로 따라 하고. 나중에 생각 없이 저런 말을 친구한테 하면 안 될 텐데.
우리 은우는 똑똑하니까 잘 알아서 할 수 있겠지?’
어느덧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관객들은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떴다.
은우는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너는 밤먓 밤먓.
너는 진샹 진샹.
너는 초록 마녀
모쟈는 이땅해.”
길동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화장실 안 갈 거야? 공연 시작하면 못 갈 텐데.”
“쉬이 안 마려어어. 횬아, 근데 소피아 눈나 보러 가도 대요?”
“소피아 눈나 바쁠 텐데.”
“아라떠요. 저 화장실 가고 시퍼요.”
“그래, 알았어.”
길동이 은우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가려고 하자 은우가 길동에게 말했다.
“혼자 다녀올 뚜 이떠요. 은우 이제 오빠거든요. 여동생도 생기고. 이제 아가 아니에요.”
“은우야, 사람이 너무 많은데. 복잡한데 잘 찾아올 수 있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은우가 할 뚜 이떠요.”
은우의 강한 주장에 결국 길동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은우는 조심조심 복도로 빠져나와서 대기실을 찾기 시작했다.
“헤헤헤헤. 여기쯤 있을 텐데.”
한국에서도 뮤지컬 무대에 올랐던 은우는 대기실 입구를 잘도 찾아내었다.
은우가 대기실의 문을 열고 외쳤다.
“소피아 눈나.”
“은우야?”
초록 마녀로 분장한 소피아가 은우를 보며 놀랐다.
“여긴 어떻게 찾아왔어?”
“누나 보고 시퍼서요.”
은우가 소피아에게 안겼다.
글린다 역을 맡은 르네가 은우를 보고 소리쳤다.
“맙소사. 은우잖아. 슈퍼스타를 대기실에서 만나게 되다니.”
르네의 말을 듣고 대기실의 배우들이 은우에게로 몰려들었다.
“정말 은우네.”
“은우야, 사인 좀.”
“은우야, 내 딸이 너의 팬이야. 있다 같이 사진 좀 찍을 수 있을까?”
“소피아, 은우가 오늘 공연 보러 오는 거였으면 말 좀 해 주지. 그럼 내가 은우 선물이라도 챙겨왔을 텐데.”
그때 문이 열리며 스텝이 소리쳤다.
“공연 다시 시작합니다.”
은우가 소피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눈나, 눈나 체고! 파이팅!”
소피아가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
다른 배우들도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
배우들이 무대로 올라가고 은우도 대기실을 빠져나와 관객석으로 돌아갔다.
이미 공연이 시작되었는지 관객석의 불이 꺼져 있었다.
은우는 스텝의 손을 잡고 길동의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길동이 은우를 보며 놀라서 물었다.
“은우야, 화장실 찾기 어려웠어? 공연 시작하기 전엔 와야지. 걱정했잖아.”
“헤헤헤헤. 잠시 여행을 해떠요.”
“여행?”
“헤헤헤헤.”
은우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무대 위에서는 소피아의 노래가 계속되었다.
[나는 초록 마녀.
사람들은 내 피부색을 보고 놀리지만
내 피부색이 내 꿈을 가릴 순 없어.
난 항상 꿈을 꾸었지.
누구보다 멋진 가수가 되는 꿈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난 노력할 거야.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혼자라는 외로움
모두 다 뛰어넘어.
한 번만 이룰 수 있다면
내 심장이 터지도록 노래할 수 있는 그 날이]
은우는 소피아의 노래를 들으며 감탄했다.
‘이 곡 정말 좋다. 뮤지컬 곡이라서 그런지 인물의 감정이 잘 살아나는 것 같아.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는 소피아 누나랑 너무 닮은 곡이야.
노래의 이야기가 소피아 누나의 이야기 같아.
게다가 고음도 너무나 시원시원한데.
무대 위에서 누나는 너무 자유로워 보여.
꿈을 이룬 사람이라서 그런가.’
무대가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되었다.
주연을 맡았던 [엘파바]역의 소피아와 [글린다]역의 르네가 함께 인사를 했다.
“브라보.”
관객 속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은우도 작은 목소리를 높여서 소리쳤다.
“소피아 눈나 체고.”
은우가 일어나 무대 위로 꽃다발을 가져갔다.
관객석의 사람들이 은우를 알아보고 술렁였다.
“은우 아냐?”
“저 아기 은우 맞죠?”
“은우가 우리랑 같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니. 사인이라도 받아놓을걸.”
소피아가 은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여러분 이 아기는 은우입니다. 저는 은우로 인해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저는 이곳 브로드웨이에 서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그 꿈을 영영 이루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전 오늘 꿈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해요.”
소피아가 눈물을 흘렸다.
은우가 소피아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눈나 수고해떠요. 추카해요.”
소피아가 은우가 준 꽃다발을 꼬옥 안으며 말했다.
“내 인생에 찾아와줘서 고마워. 은우야. 널 만난 건 최고의 행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