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205화 (205/257)

205화. 코카콜라 광고 (2)

은우는 길동과 함께 코카콜라 본사에서 나왔다.

길동은 얼마 전 [무한한 도전]에서 보았던 덤보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다.

‘별스타에 은우랑 같이 찍은 사진 올려야지. 다들 부러워할 거야. 사진 몇 장 찍고 미술관으로 넘어가면 되겠다.’

시계를 보고 대략적인 이동시간을 측정한 뒤 길동은 은우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을 놀렸다.

“횬아, 인형.”

은우가 갑자기 길을 멈춰 서더니 인형을 늘어놓고 팔고 있는 젊은 여인 앞에서 멈춰 섰다.

브루클린의 가난한 예술가 캐서린은 애니메이션과 무대디자인을 전공한 뒤 인형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도 무대에 올리고 있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결국 캐서린은 한 달 전부터 브루클린 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인형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좌판에는 캐서린이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 캐릭터 루루도 있었다. 루루는 캐서린이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에게서 가져온 캐릭터였다.

은우는 좌판에 서서 여러 가지 인형들을 곰곰이 살펴보더니 루루를 집었다.

“횬아, 이거 사져요.”

길동은 루루를 보면서 생각했다.

‘다른 예쁜 인형도 많은데 굳이 길거리에서 인형을 사다니. 이 고양이 한쪽 귀가 잘려나가 있잖아. 깨끗하지도 않고. 장난감 가게에 가면 더 예쁘고 깨끗한 인형이 있을 텐데. 하지만 은우가 사고 싶어 하니 사줘야겠지.’

길동이 지갑을 꺼내며 물었다.

“얼마예요?”

“20달러.”

길동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캐서린에게 주었다.

“눈나, 이 인형 이르미 머예요?”

“루루, 루루는 길고양이야. 브루클린 거리엔 고양이들이 많거든. 루루는 내가 만난 길고양이 중 가장 멋진 녀석이었어.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열심히 돌봐주었지. 그 세 마리가 어른이 될 때까지 말이야.”

“우와.”

은우는 캐서린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두 눈을 반짝이며 듣는 은우가 너무 귀여워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심지어 루루는 남자 고양이인데다 어른도 아니었어. 6개월 정도 된 청소년 고양이였지. 하지만 루루는 생각했던 거야. 새끼 고양이들을 그냥 두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작은 루루는 새끼 고양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강한 고양이가 되었지. 다른 고양이와 싸우느라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어.”

은우가 인형을 바라보았다. 루루의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있었다. 은우가 감동한 듯 루루를 꼬옥 껴안았다.

“루루.”

은우는 루루에게서 케미기샤를 지키려고 했던 파드와의 모습을 보았다.

‘루루, 넌 정말 특별한 고양이야. 사랑하는 존재를 지킨다는데 사람과 고양이가 무슨 차이가 있겠어. 난 네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루루,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텼구나. 어른도 아닌 고양이가 새끼들을 모두 건강하게 키워내다니. 넌 칭찬받아야 해.’

캐서린은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 은우가 너무나 귀여웠다. 자신이 처음 인형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아이들의 이런 눈망울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은 너투브를 보고 게임을 하고 인형극을 잘 보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는 걸까? 나도 인형 만드는 걸 접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걸까?’

지쳐가고 있던 캐서린에게 은우의 빛나는 눈망울을 새로운 힘을 주었다.

“루루는 어떠케 돼떠요?”

“새끼 고양이들이 독립한 다음에 루루는 억울한 동물들을 도와주는 동물 탐정이 되었어.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강아지 해피가 주인의 마음이 변한 것 같다며 그 이유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했지.”

“우와, 루루 체고. 탐정이라니 머쩌요. 나도 탐정 대고 십따. 루루 칭구들도 이떠요?”

캐서린이 옆에 있던 다른 고양이 인형을 들었다.

“이 고양이가 루루의 첫째 딸 루나야. 루나는 어른이 돼서 경찰이 돼. 그래서 불쌍한 동물들을 도와줘. 이 고양이는 루루의 둘째 딸 루비야. 루비는 간호사가 돼서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주지. 여긴 셋째 루카. 가장 개구쟁이야. 어릴 땐 늘 사고를 쳐서 루루의 맘을 아프게 했는데 고양이 축구 선수가 돼서 가장 큰돈을 벌었어.”

“우와.”

은우는 캐서린이 들고 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 인형을 보고 감동받았다. 경찰관 복장, 간호사 복장, 축구복을 입고 있는 고양이들은 너무나도 멋졌다.

은우가 길동을 바라보며 웃었다.

“횬아, 인형 더 사도 대요?”

“그래.”

길동은 은우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아이스크림 먹을 때랑 똑같은 표정이네. 저건 말릴 수 없다는 뜻이지. 내가 더럽다고 생각했던 루루가 사실은 이야기를 가진 고양이였구나. 브루클린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다고 여행 책자에서 읽었었는데 인형을 파는 분도 분명 스토리가 있을 것만 같아. 어쩌면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길동이 캐서린에게 지폐를 내밀었다. 150달러였다.

“이건 너무 많은데. 왜 묻지도 않고 돈을 주세요?”

“은우가 드리는 거예요. 인형 정말 멋지네요. 나중에 디즈니처럼 잘되실 것 같아요. 은우 표정을 보니까요. 은우가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듣는 걸 보지 못했거든요. 다른 아이들도 은우처럼 인형을 좋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캐서린은 길동의 말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그래, 아직 내 작품을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겠지. 아직 인형을 포기해선 안 돼. 은우처럼 내 이야기와 인형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

캐서린은 쇼핑백에 인형을 담아 주면서 작은 도마뱀 인형을 하나 더 넣어주었다.

“이 인형은 카멜레온 인형이야. 루루의 동물 친구인데 루루가 탐정 일을 할 때 같이 다닌단다. 카멜레온이라서 몸의 색을 자유자재로 바꾸지. 변신의 귀재야. 이름은 프링이.”

“프링이. 너무 기여어어.”

은우는 프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프링이에겐 하나의 비밀이 있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재주. 그런데 입이 무거워서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아. 탐정 일을 하면서도 많은 비밀을 알게 되지만 그 비밀들을 덮어주지. 착하고 좋은 친구야.”

은우는 프링이를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프링아, 너도 나처럼 숨겨야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내 비밀을 알고도 말해주지 않는 착한 친구라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인걸. 난 환생의 비밀과 재능의 비밀을 모두 안고 있어서 내 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보리밖에 없어.’

하지만 보리는 멀리 있었다.

은우는 프링이를 꺼내서 어깨 위에 놓았다.

“이제부터 나랑 가치 다니쟈. 프링아.”

은우는 프링이를 어깨 위에 올린 뒤 걸어가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멀어져 가는 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착하고 예쁜 아기네. 저렇게 귀여운 아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길동은 은우와 함께 맨해튼 다리를 찾았다.

건물 사이로 맨해튼 다리가 보이는 포토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포스터의 배경이기도 한 그곳이었다.

“여기다!”

길동은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세팅했다.

그리고 은우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첫 번째 사진, 길동이 은우를 목말 태우고 은우가 브이를 그리며 밝게 웃는 사진.

두 번째 사진. 길동과 은우가 나란히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사진.

세 번째 사진. 길동과 은우가 팔짝 개구리처럼 하늘로 뛰어오르는 사진.

네 번째 사진. 길동이 은우를 비행기 태워주면 은우가 밝게 까르르 웃는 사진.

길동은 사진을 찍은 뒤 별스타에 업로드를 했다.

은우가 길동의 옆에서 쫑알거렸다.

“횬아, 루루랑 루나, 루비, 루카, 프링이도 올려져요.”

길동은 은우의 별스타에 로그인하여 루루, 루나, 루비, 루카, 프링이의 이야기를 올려두었다. 오늘 만난 캐서린의 사진도 함께.

***

백인수는 갤러리 [실버]에서 은우의 작품들을 정리 중이었다. 전시회를 총괄하는 바넷이 백인수를 도와주었다.

“은우 작품은 정말 훌륭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에요.”

“은우 마음이 깨끗해서 그럴 거예요. 아기들은 신이 주신 보물이죠.”

“저희 아들이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못 그렸는데도 너무 가슴 뭉클해요. 저라고 그려줬는데 저 네모가 과연 사람인가 하고 한참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그림만큼 아름다운 게 없더라구요.”

“그렇죠. 모든 부모들에게 아기는 예술가니까요.”

이번 전시회에 나온 은우의 그림은 총 팔십 점. 그중 아프리카에서 은우가 촬영을 하며 그린 그림이 삼십 점이었다.

“은우는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제가 옆에서 지켜봤는데 아직은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과 다르게 즐겁게 행복해하면서 그리더라구요. 어쩜 은우에겐 영화촬영도 놀이고 그림도 놀이일 거예요. [블랙 레오퍼드 2]를 찍을 때도 영화 속에서 히어로가 된다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저희 아들도 열 살 때까지 매일 로봇만 가지고 놀았죠. 이젠 고등학생이라 다 잊고 살았는데 은우 덕분에 우리 아들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네요. 정말 아기들은 다섯 살 때까지 모든 효도를 다 하는 것 같아요. 그 기억 때문에 이후에 속을 썩여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고등학생 때가 좋죠. 전 이제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다 보니 같이 살던 그때가 그립더라구요. 가끔씩.”

“벌써 따님 나이가 그렇게?”

“네에. 시간이 참 빨라요. 키울 땐 하루하루 정신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면 아득한 게 꿈 같더라구요.”

“젊어 보이셔서 몰랐어요. 동양인들은 정말 젊어 보이더라구요. 특히 한국인들은. 비결을 알고 싶다니까요. 하하.”

“나이가 들고 있죠. 그래서 은우 같은 손주도 생기고 늙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만 나이 든 사람들은 추억을 안고 사는 거 같아요.”

은우가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뷰지.”

“응, 은우야.”

백인수가 은우를 안아주었다.

“안녕하떼요. 떤생님.”

“네가 은우구나. 난 바넷이란다. 총책임자를 맡고 있지. 그림이 전부 훌륭하더구나.”

“걈사함니댜.”

“전시회는 내일부터 시작된단다. 여기 은우 말고 다른 유명한 예술가와 배우, 가수들도 참여했으니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아프리카 아기드를 위해셔요.”

[아프리카 아기들은 위한 자선 전시회]에는 10명의 예술가와 배우, 가수들이 자신의 작품을 무료로 기부하였다. 수익금은 전액 아프리카 아기들에게 기부되는 전시회였다.

가죽 자켓에 카우보이모자를 쓴 에릭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넷. 오랜만이에요.”

“오, 에릭. 전시회장 둘러보려고 온 건가?”

“내일부터 전시 시작이니 정리를 해야죠. 아, 네가 은우구나.”

에릭은 은우를 보자마자 알아보았다.

“[블랙 레오퍼드 2]의 와찰라 연기 인상 깊었어. 나도 며칠 전에 영화를 봤거든. 정말 재밌더라. 이따가 사인 한 장 부탁해도 될까?”

“네네네네네.”

백인수는 컨트리 음악의 거장 에릭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에릭, 전 당신 팬이에요. 당신 음반도 전부 가지고 있는데. 새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요즘은 컨트리 음악이 주류가 아니다 보니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고민 중인데 쉽지 않네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힘들 때마다 당신 음악을 들었어요. 제 아내가 죽고 딸과 저만 남았을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때 제게 힘을 준 게 당신의 음악이었어요. 꼭 음반을 내주세요.”

“고맙습니다.”

에릭은 슬럼프에 빠져 음악 활동을 줄이고 미술에 전념하고 있었다.

미술은 외부의 평가와 관계없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다른 일들은 모두 잊어버릴 수 있어. 아직까지 그림은 아마추어다 보니 날카로운 평가를 빗겨 갈 수 있기도 하고.’

50대 후반의 에릭은 컨트리 음악의 대가로서 전성기를 누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였다. 잔고를 걱정할 필요 없는 통장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평가와 인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곡 작업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3년째 준비 중인 음반은 대중 앞에 내놓을 자신이 없는 그런 음반이었다.

은우가 에릭의 카우보이모자를 보면서 말했다.

“머쩌요. 에릭. 에릭 잘생겨떠요.”

은우는 에릭이 배우라고 생각했다. 큰 키에 멋있게 난 수염. 눈에 띄는 패션이 배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인수의 말을 들으니 에릭은 가수인 것 같았다.

‘멋진 목소리를 가졌을 거야. 할아버지도 저렇게 좋아하시고.’

은우는 에릭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에릭은 은우의 칭찬에 웃었다.

“고마워. 슈퍼스타. 네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 잘생겨진 것 같다. 내일 전시회도 기대되는데.”

“헤헤헤헤헤.”

은우가 웃으며 에릭을 쳐다보았다. 바넷이 일행에게 말했다.

“근처 식당에 가서 저녁이라도 먹고 헤어질까요?”

“좋죠.”

일행은 함께 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거리에서 노래하는 한 명의 청년을 만났다.

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가치 노래할까요?”

에릭은 은우의 말에 놀랐다.

‘버스킹은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인데. 거리에서 함께 노래를 하자고?’

은우가 웃으며 에릭의 손을 흔들었다.

“가치 노래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