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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179화 (179/257)

179화. [블랙 레오파드 2] (8)

채드윅 감독은 은우의 연기를 모니터링 중이었다.

‘감정표현이 정말 실감 난단 말이지.’

변신연기를 할 때의 은우 표정은 성인 연기자는 따라가기 힘든 것이었다.

매일 장난감 변신 로봇을 보면서 상상했던 은우였기에 은우는 변신하는 그 순간이 정말로 즐거웠다.

촬영장에서도 몇 번이나 변신을 외쳐댔다.

‘눈물 연기도 압권이고.’

죽은 차찰라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애절한 눈빛이나 하찰라의 영혼이 불려 나왔을 때 하찰라를 바라보는 표정은 너무도 실감이 났다.

그리고 어제 촬영분인 자하라의 죽음에서는 은우가 너무 많이 울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변 스태프들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촬영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방긋 웃는 은우의 표정이었다.

‘저 아이는 주변에 햇살을 뿌리러 온 것 같아.’

아프리카의 더위는 스태프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특히 할리우드 쪽에서 온 스태프들은 더 힘들어했다. 야외촬영이 많다 보니 에어컨을 쐴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었고 사람들은 태양에 찌들어서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그래도 은우는 촬영장을 돌아다니며 방긋방긋 웃으며 스태프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헤헤헤헤헤. 이거 머거 뱌요. 눈냐.”

은우는 주머니에 마법 사탕이라고 하면서 입에 넣으면 톡톡 터지는 사탕을 들고 다니며 주었다.

그 사탕을 먹을 때마다 스태프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은우는 정말 귀엽다니까.’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은우에 대한 칭찬을 하고는 했다.

은우가 채드윅 감독의 옆에 와서 말했다.

“걈독님, 져도 보고 시퍼요.”

채드윅 감독이 은우를 안아서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잘 나왔어?”

“음, 머시낀 한데. 더 쟐할 뚜 있었는데.”

채드윅 감독은 은우의 말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항상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열정 부자. 은우, 넌 앞으로 배우로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은우는 살인 늑대와의 전투씬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부분에 대해 말했다.

“살인 느때갸 와뜰 때 와찰랴가 더 빨리 공격해뜨면 자햐랴가 안 주거뜰 텐데. 너무 슬퍼요. 자햐랴 주거떠.”

“그래, 하지만 자하라의 복수를 와찰라가 해 줄 거니까 괜찮아. 와찰라가 멋지게 해 줄 수 있지?”

은우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찌게 하게요. 자하랴가 슬퍼하지 안케.”

그 모습이 귀여워 채드윅은 은우의 볼을 잡아당겼다.

“우리 착한 은우.”

은우는 공룡 변신 로봇 가면과 방패를 쓴 채 촬영장을 돌아다녔다.

“냐는 와찰라댜. 옴바쿠는 비켜라.”

그럴 때면 옴바쿠 역을 맡은 조지가 와서 은우의 상대역이 되어 주었다.

조지는 영화 속에서는 악역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은우의 좋은 친구였다.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던 조지는 은우를 데리고 몸으로 놀아주는 일을 잘했다.

조지가 은우의 팔을 잡고 들어 올려 세계 여행을 시켜주었다.

“어디만큼 왔니?”

“셔율.”

“어디만큼 왔니?”

“아프리캬.”

“어디만큼 왔니?”

“햘리우드.”

둘은 이런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은우가 새롭게 밀고 있는 놀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변신 놀이였다.

은우는 촬영감독 룬다와 분장사 루시, 길동과 변신놀이 하는 것을 좋아했다.

“쟈, 여기 뱌뱌요. 룬댜. 루시. 횬아. 오늘은 자동챠 변신 노리를 할 거예요. 각쟈 하고 시픈 자동챠를 고르세요.”

여러 번 놀이를 해 본 길동은 눈치 빠르게 경찰차를 골랐다.

룬다와 루시는 뭐가 뭔지 몰라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은우가 신이 나서 말했다.

“룬댜는 헬리콥터, 루시는 소방차를 하께요. 자, 이제 변신하떼요.”

길동이 눈치 빠르게 입으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시늉을 했다.

“빵빵! 범인 잡으러 가요. 비끼세요.”

룬다와 루시는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은우가 답답하다는 듯 룬다와 루시에게 말했다.

“룬댜는 헬리콥터니까 헬리콥터는 머리 위에서 프로펠러가 돌쟈나요. 요러케.”

은우는 두 팔을 프로펠러처럼 만들더니 팔을 벌리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헬리콥터 변신이에요. 소방차는 불이 나면 오쟈냐요. 위용 위용 위용 이러면서.”

은우가 촬영장에 있던 붉은색 식탁보를 뒤집어쓰고 달리면서 말했다.

“부리 나떠요. 댜들 도망갸요. 위용. 위용. 위용.”

은우의 실감 나는 진지한 연기에 룬다와 루시는 살짝 웃었다.

‘근데 저거 팔 꽤나 아프겠는데.’

길동이 왜 경찰차를 선택했는지 빠르게 이해가 가는 두 사람이었다.

은우가 신이 나서 다시 변신을 외쳤다.

“변신.”

은우가 포클레인으로 변신했다. 룬다와 루시, 길동도 각각 헬리콥터, 소방차, 경찰차로 변신했다.

변신한 차들은 함께 모여 즐겁게 사람들을 구했다.

은우가 외쳤다.

“사니 무너져서 사람드리 가혀떠. 내가 먼저 출동하께 출동. 자, 이제 소방차도 출동해야지.”

“네.”

루시가 입으로 소리를 내며 출동했다.

“위용 위용.”

룬다도 출동을 외쳤다

“사람들을 구하려 헬리콥터가 출동한다.”

“경찰차도 출동합니다.”

마무리는 늘 은우가 했다.

“모든 샤라드를 구해뜸니댜. 지구를 구하는 우리는 자동챠!”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은우를 보면서 하루의 피로를 잊곤 했다.

촬영감독 룬다는 은우의 영상을 [블랙 레오파드](2) 채널에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블랙 레오파드](2)의 개봉 전에도 은우의 해외 팬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 오늘은 은우 영상 안 올라오나요? 타이페이에서 은우 영상 기다리고 있어요.

┗ 은우 너무 귀여워요. 동양 아기는 백인 아기나 흑인 아기와는 또 다른 귀여움이 있는 거 같아요.

┗ 음, 위에 미국분 한국인으로서 동양인 외모 칭찬을 해 주시니 자랑스럽긴 한데요. 모든 동양인 아기가 은우처럼 생긴 건 아니고 은우는 동양인 아기 중에서도 상위 1프로인데요. 안 그런가요?

┗ 맞아요. 모든 동양인 아기가 저렇게 생긴 것은 아님. 피부도 너무 뽀얗고. 동양인 아기들은 보통 쌍꺼풀도 없고 코도 낮고 그런 경우가 많죠.

┗ 은우 촬영 영상도 너무 재밌어서 변신할 때 진짜 열과 성을 다해서 변신하는 듯.

┗ 우리 아들도 다섯 살 때 꿈이 소방차였는데 저 시기엔 다들 차가 되고 싶어 하나 봐요.

┗ 아무래도 저 매니저 경찰차가 제일 편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 같아. 제일 먼저 고르는 거 봐.

┗ 은우 매니저 되면 매일 변신놀이 해야 하나 봐. 극한 직업이다.

┗ 그래도 난 은우 매일 볼 수 있다면 매일 변신놀이 할 수 있는데 은우야 너만 행복하면 난 괜찮아.

┗ 저두요. 은우야, 나랑 변신놀이 매일 하자.

***

은우는 키즈폰에서 백인수의 전화번호를 찾아 길동에게 주었다.

“횬아, 여기도 영상통햐.”

길동이 영상통화를 건 뒤, 방을 나서며 말했다.

“은우야. 형 화장실 다녀올 테니 통화 끝나면 휴대폰 거기다가 둬.”

“네에.”

화면 속에서 백인수가 나타났다.

“은우야, 보고 싶었어.”

백인수는 오랜만에 본 은우의 얼굴이 몰라볼 만큼 까매진 것에 놀랐다.

“우리 은우 많이 탔네. 뽀얗던 얼굴이 까매졌어. 못 알아보겠다.

“헤헤헤헤. 하뷰지 저 여기서 아프리카 댄스 배워떠요.”

은우가 혓바닥을 내밀고 팔을 휘젓는 아프리카 춤을 추었다.

“우가차갸 우가우갸.”

“우리 은우 잘하는구나.”

백인수는 은우의 춤에 박자를 맞추며 흥을 돋우었다.

은우의 춤이 끝나자 백인수가 박수를 쳤다.

“짧은 시간 내에 잘도 배웠구나. 잘한다. 우리 은우. 한국엔 언제 오니?”

“아직 두 달 남았어요. 할아버지.”

“너무 길구나. 은우 보고 싶어서 할아버지 목이 기린 목이 될 거 같아.”

“헤헤헤헤헤헤. 하뷰지가 기린 모기 대요?”

은우가 목을 길게 잡아빼며 기린 흉내를 내었다.

“헤헤헤헤헤. 이러케요?”

“응, 이렇게.”

백인수도 자신도 모르게 목을 길게 빼고 은우를 흉내 내고 있었다.

은우와 백인수는 영상 속의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하뷰지. 재미떠요.”

“헤헤헤헤헤헤헤.”

백인수는 은우와 함께 이렇게 웃은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은우가 출국하고 나니 웃을 일이 적어졌다.

“하뷰지. 저 부타기 이떠요.”

“어떤 부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은우가 부탁이 있다니 백인수는 어떤 부탁이라도 무조건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뷰지, 제 그리미요. 팔 뚜 이뜰까요? 여기 불땅햔 아프리카 아기들에게 학교를 만들어주고 시퍼요.”

어린 손자의 대견한 생각에 백인수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또래의 불쌍한 아기들까지 챙겨주다니 우리 은우는 정말 천사구나. 날개 없는 천사.’

백인수가 은우에게 대답했다.

“팔 수 있지. 당연히. 할아버지가 팔 방법을 생각해 보마.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하뷰지, 근데 제 그리미 얼마냐 비쌀까요?”

“글쎄. 그건 이따가 관장님을 만나 물어봐야 할 것 같구나. 비싸게 받고 싶으냐?”

“학교를 지으려면 도니 마니 피료할 거 가타서요.”

백인수는 학익미술관장 엄태훈이 전에 했던 말이 기억났다.

카를로스의 그림 반응이 나쁘지 않으나 개인전을 하려면 그림의 숫자가 모자란다는 말.

백인수도 은우에게 더 많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은우의 일정이 너무 바빠 그러지 못했다.

“은우야 혹시 그 뒤로 그린 그림이 있니?”

“그리미 더 피료해요?”

“그래, 은우야. 전에 미술관장님이 네 그림이 참 좋은데 작품 수가 적어서 개인전을 못 하고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 그래서 거기서 피곤하지 않으면 말이다. 그림을 더 그리면 전시회를 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네, 하뷰지. 여기 코끼리도 이꼬, 새도 만코, 원숭이도 이떠요.”

오랜만에 만난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은우에게 매력적인 피사체로 다가왔다. 그들을 그림으로 그려 케미기샤와 같은 아이들을 도와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럼, 은우야 할아버지가 관장님 만나보고 다시 전화해 주마.”

“네, 하뷰지. 거마어요. 보고 시퍼요.”

백인수는 은우와 영상통화를 마치고 학익미술관장 엄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저 백인수입니다.”

“네 오랜만이에요. 우리 카를로스는 잘 있나요?”

“카를로스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늘 카를로스가 저에게 그림을 좀 팔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림을 팔겠다고요? 카를로스가?”

엄태훈은 갑자기 달라진 카를로스의 반응에 놀랐다.

카를로스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높았지만, 신비주의 마케팅과 카를로스의 바쁜 스케줄 탓에 후속 전시회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저번에도 전시회를 한 번 잡으려다 펑크가 나고 말았지. 작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만 한다면 더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텐데.’

전화기에서 백인수의 말이 이어졌다.

“카를로스가 그림 가격을 궁금해하던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전시회를 열기까진 알 수 없습니다.”

카를로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다고는 하나 카를로스는 아직까지 신인 작가였다. 국선과 같은 전시회 입상 경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유명한 미술 대학을 졸업한 인재도 아니었다.

미궁 속에 가려진 신인. 그것이 카를로스였기에 섣부른 가격 측정은 위험했다.

다만 백인수가 카를로스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은 카를로스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카를로스의 그림에 나타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천진난만함과 순수함 때문이었다.

엄태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약 카를로스가 적극적으로 그림도 그리고 홍보에도 나서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대는 이야기의 시대죠. 그림도 그림 자체보단 그림에 실린 이야기가 있으면 더 잘 팔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박수근의 담배 은박지 그림을 보면서 박수근의 힘든 삶을 떠올리죠. 그리고 그 힘든 삶을 견딘 박수근의 예술혼도 함께요.

카를로스에게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백인수는 생각했다.

‘은우에겐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 은우의 인생 자체가 한 권의 소설 아닌가? 미혼부의 아기로 태어나 엄마에게 버림받고 힘든 처지에 놓였지만 천운으로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자신과 같이 불우한 처지에 놓인 다른 나라 아기들을 도와주겠다고 노력하고 있으니.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백인수가 대답했다.

“카를로스에게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만, 카를로스가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할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게 좋겠어요. 카를로스의 인생이 달린 문제라서 제가 혼자 결정하기는 어렵네요. 관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카를로스에게 전해 주겠습니다.”

“카를로스가 좋은 결정을 내리길 바라겠습니다. 카를로스는 우리 미술계에서도 기대하는 인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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