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블랙 레오파드 2] (7)
와찰라는 짹짹거리는 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녕, 지야. 네 신세가 마치 나와 같구나. 이 춥고 배고픈 고세서 외로어찌?”
쥐가 와찰라의 앞에서 공중돌기를 3번 했다.
“공중돌기를 하댜니? 넌 평범한 지갸 아니구냐.”
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넌 샤랴미야?”
와찰라는 감옥에 있는 유일한 물건인 베개와 이불을 가져왔다.
베개 안은 옥수수로 채워져 있었으므로 베개의 실을 뜯었다.
이불 위에 옥수수를 뿌려주자 쥐가 옥수수를 물어 날라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 와찰라! 난 알폰소야. 널 구하러 왔어.]
와찰라는 알폰소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와찰라가 하는 말을 누군가가 들어서는 안 됐다.
와찰라도 옥수수를 이용해 글자를 썼다.
[고마워. 알폰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와찰라로 변신해 여기 갇혀 있을 테니. 네가 밖으로 나가 자하라를 구하고 [와따따] 왕국을 구하고 와.]
와찰라는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갇혀 있을 알폰소가 걱정되었다.
[만약 못 돌아오면? 옴바쿠 삼촌이 널 죽일지도 몰라.]
[난 널 믿어. 넌 꼭 돌아올 거야.]
와찰라는 생쥐로 변한 알폰소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내 친구 알폰소야. 네 목숨을 걸고 나를 지켜주려고 하다니. 내가 꼭 널 위해서 [와따따] 왕국을 구해낼게.’
알폰소가 와찰라의 손에서 내려가 다시 글을 썼다.
[시간이 없어. 와찰라.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알았어.]
와찰라는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이 방금 안았던 작은 생쥐의 몸을 떠올렸다.
순식간에 와찰라는 생쥐로 변했다.
와찰라의 눈앞엔 와찰라로 변한 알폰소가 있었다.
와찰라가 생쥐 울음소리를 내었다.
“찍찍찍찍.”
와찰라로 변한 알폰소가 글자를 썼다.
[어서 가. 와찰라. 자하라가 위험할지도 몰라. 옴바쿠는 자하라를 추방하는 데서 결코 멈추지 않을 거야. 죽일지도 몰라.]
[알았어.]
생쥐로 변한 와찰라는 감옥의 작은 틈을 이용해 통로를 뛰었다.
‘빨리 가서 자하라를 구해야 해. 옴바쿠 삼촌이 [와따따] 왕국의 왕위를 가져갔으니 [와따따]의 국민들이 힘들어질 거야. [와파파] 부족의 힘이 더 세지겠지.’
와찰라는 젖먹던 힘을 다해 뛰었다.
감옥으로부터 멀어지자 와찰라는 다시 치타로 변했다.
‘머나먼 국경의 끝까지 달리려면 치타가 빠를 거야.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뛰었더니 너무 숨차다. 자하라는 아직 괜찮을까?’
와찰라는 달리다가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폐기물을 버리기 위해 국경 지역으로 가는 트럭이었다.
와찰라는 트럭의 뒤에 아무도 모르게 뛰어들었다.
‘휴우,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겠어.’
트럭은 빠르게 달렸고 와찰라는 트럭 안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옴바쿠 삼촌이 자하라에게 자객을 붙였다면 그 자객은 보나마나 변신 능력자일 거야. 왕관만 있다면 내 변신 능력은 [와따따] 왕국에서 따를 자가 없지. 하지만 옴바쿠 삼촌이 왕관을 가져갔으니 이제 옴바쿠 삼촌도 나와 비슷한 변신 능력을 가졌을 거야.
결국은 왕국을 찾으려면 왕관을 다시 찾아야만 해.
그리고 그건 [와파파] 부족이 [와따따] 부족에게서 [알루나늄]을 가져가기 전이어야만 해.’
전사들로 키워진 [와파파] 부족이 [알루나늄]의 변신술까지 가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들은 전 지구를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고 할 거야.’
와찰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트럭이 국경에 도착하자 와찰라는 조용히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강아지로 변신하였다.
치타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 때문이었다.
국경 근처엔 버려진 개들이 많았고, 때문에 누군가 와찰라를 발견하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지나갈 확률이 높았다.
와찰라는 킁킁거리며 자하라의 냄새를 찾았다.
냄새는 계곡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와찰라는 바위를 타고 내려가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옴바쿠의 부하 세 명이 자하라를 에워싸고 있었다.
“자하라.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자하라가 예상했다는 듯 레드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와따따] 부족장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겠다.”
자하라의 분신은 레드 드래곤이었다. 변신 능력 2급이 아니면 변신할 수 없는 레드 드래곤. 그만큼 전투에서 드래곤의 위상은 컸다.
자하라가 불을 뿜으며 포효했다.
“커엉.”
옴바쿠의 부하들이 차례로 변신했다.
숨어서 지켜보던 와찰라는 움바쿠의 부하들이 살인 늑대로 변신하는 것을 보았다.
‘변신 능력 3급이군. 살인 늑대. 늑대는 한 마리일 때보다 무리를 이뤘을 때 힘이 막강해지지. 세 명을 함께 보낸 걸 보면 저들은 훈련할 때부터 함께해 온 능력자다.’
평상시라면 자하라의 드래곤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옴파쿠는 비열한 술수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삼촌이 부하들을 그냥 보냈을 리가 없어. 또 무언갈 숨겨서 보냈을 거야.’
와찰라는 바로 뛰어들지 않고 옴바쿠의 술수를 조금 더 파악해 보기로 했다.
‘늑대는 무리를 이뤄서 다니는 동물이다. 셋 중 누가 리더인지 알아내야 해.’
와찰라는 까만 늑대와 갈색 늑대, 흰색 늑대가 중 누가 리더인지 살펴보았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리더를 잃으면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셋이서 늘 함께하는 사이였다면 셋과 동시에 싸워서는 이길 확률이 낮았다.
까만 늑대가 하울링을 했다.
“오오오오옹.”
하울링을 하자 주변의 들개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와찰라는 당황했다.
‘저 녀석. 동물의 언어를 구사하는 건가?’
하찰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와파파 부족은 사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동물을 잘 부린다는 것을.
그들 중 몇몇은 동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하늘의 새와 땅의 동물, 그리고 바닷속의 동물들까지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왜 여기로 자하라를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아.’
국경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데다가 버려진 동물들이 많았다. 들판과 연결돼 있어 들판의 동물들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여기선 변신 능력 3급이, 3급이 아니야.’
이대로라면 자하라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자하라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반면 늑대들은 의기양양해졌다.
늑대들 주변으로 버려진 개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와찰라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잔인한 자들. 왜 자신들의 싸움에 불쌍한 개들을 동원하는 거지? 저 개들은 그냥 동족의 부름에 응한 것뿐인데. 저들은 인간의 싸움이 뭔지 모른다. 다만 늑대로 변한 인간을 동족으로 믿는 것뿐. 저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
와찰라는 전쟁에 있어서 큰 희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옴바쿠는 달랐다. 옴바쿠는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든 관심이 없었다.
그것이 하찰라가 옴바쿠를 후대왕으로 뽑지 않았던 이유였다.
와찰라는 고민했다.
‘자하라를 구하려면 개들을 죽여야만 해. 개들을 살리고 싶은데 우리가 너무 열세야.’
자하라가 결심한 듯 주변에 마법 방어진을 치기 시작했다.
마법 방어진.
공격을 막아주지만, 체력 소모가 심하다.
마법 방어진을 쓰는 동안은 레드 드래곤의 필살기인 브레스를 쓸 수 없다.
‘브레스를 쓰지 않겠다는 건 강한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건데.’
자하라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자하라는 버려진 개들이 불쌍해 공격을 멈추기로 한 것 같았다.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되겠어.’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자하라가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와찰라는 빠르게 설룡으로 변신했다.
와찰라의 분신인 드래곤은 설룡과 흑염룡으로 색을 바꿀 수 있었다. [와따따] 왕국에 하나뿐인 변신 드래곤.
와찰라의 입에서 브레스가 나갔다.
브레스가 닿은 곳곳이 전부 얼음으로 변했다.
“와찰라. 어떻게 여기까지?”
자하라가 놀란 듯 와찰라를 바라보았다.
“걱정하디 먀. 자하라. 우린 여길 빠져나갈 거야.”
살인 늑대들이 얼음에서 풀려났다.
“와찰라, 용케 여기까지 왔군.”
“자하라를 노아 져라.”
“그건 안 되겠어. 옴바쿠 왕께서 자하라를 죽이라고 그러셨거든.”
“그러타면 별 뚜 엄찌.”
와찰라가 날갯짓을 하자 땅 위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얼어붙은 개들도 날아갔다.
“이제 제대로 싸움을 시작해 볼까?”
까만 늑대가 하울링을 했다는 건 살인 늑대들의 우두머리가 까만 늑대라는 뜻이었다.
와찰라의 발톱이 까만 늑대를 겨냥했다.
흰색 늑대가 까만 늑대가 공격당하는 걸 알고 까만 늑대의 앞을 막아섰다.
와찰라의 발톱이 흰색 늑대에게 꽂혔다.
흰색 늑대는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그사이 까만 늑대와 갈색 늑대가 와찰라의 다리를 깨물었다.
와찰라의 다리에서도 피가 흘렀다.
개들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자하라가 마법 방어진을 풀고 와찰라를 구하기 위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레드 드레곤의 브레스에서 나온 강한 화염이 갈색 늑대를 에워쌌다.
갈색 늑대는 와찰라의 다리에서 떨어져 하울링을 했다.
“아우우우우우우.”
그러자 이번엔 하늘에서 새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독수리, 매, 꿩, 비둘기 다양한 새들이 하늘을 까맣게 물들였다.
와찰라가 다시 한 번 얼음 브레스를 내뿜었다.
얼어붙은 새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자하라도 브레스로 화염을 내뿜었다.
까만 늑대가 새들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고 있는 자하라의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하라는 심장을 물린 채 쓰러졌다.
화가 난 와찰라가 까만 늑대를 물었다.
까만 늑대는 와찰라의 입안에서 숨이 끊어졌다.
까만 늑대가 죽자 갈색 늑대가 부상을 입은 하얀 늑대와 함께 도망쳤다.
하늘을 까맣게 덮었던 새들도 사라졌다.
와찰라는 사람으로 변한 자하라의 옆으로 갔다.
“자하랴. 주그면 안 대. 어서 도시로 가서 의샤를 만냐쟈.”
“와찰라. 난 이제 힘들 것 같아. [와따따] 왕국을 부탁해.”
“아니야. 자하랴. 이러지 먀. 앙 대. 자하랴.”
“와찰라. 널 만나서 행복했어. 넌 우리 [와따따] 왕국의 미래야. 전 지구의 미래이기도 하고. 절대 옴바쿠에게 왕위를 빼앗겨선 안 돼. 어서 도시로 가서 백성들을 구해.”
“자하랴.”
와찰라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하라는 와찰라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인 차찰라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와찰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자신의 옆에 있었던 심복과도 같은 부하이자 동료 자하라를 잃었다.
와찰라는 가슴 속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자하라의 마지막 말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어서 가서 백성들을 구해.’
내가 늦으면 백성들이 고통받을 거야.
와찰라는 자하라의 시신을 나무 아래에 두고 주변의 나뭇가지들로 덮어주었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 거야. 자하라. 그땐 너를 위한 무덤을 만들어 줄게.’
와찰라는 떠나기 전에 흑염룡으로 변신하여 얼어붙은 개들과 새들에게 파란색 브레스를 내뿜었다.
개들과 새들은 얼음 마법에서 풀린 듯 다시 살아나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와찰라는 다시 강아지로 변해 도시로 들어가는 폐기물 운반 트럭을 얻어 탔다.
***
같은 시각 옴바쿠는 수하들을 시켜 [와따따]의 [알루나늄]을 운반하고 있었다.
‘이걸 [와파파]로 옮겨놔야 혹시라도 와찰라가 돌아와도 내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어.’
옴바쿠는 부하인 카산, 하산, 움산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자하라는 잘 죽였겠지? 자하라가 없으면 와찰라가 설사 감옥에서 돌아온다고 해도 왕위를 가져갈 수 없을 거야.’
자하라는 차찰라가 사랑한 변신 능력자이자 부하였다. 와찰라가 뛰어난 변신 능력에 비해 전투 경험이 없는 데 반해 자하라는 다양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착한 마음이 문제야. 전투에선 빨리 이기는 게 최고지. 그깟 마음 따위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때 궁궐 안으로 하산과 움산이 들어왔다. 움산은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카산은 어디 가고 너희 둘만 왔느냐?”
“카산은 와찰라에게 공격당해 죽었습니다.”
“와찰라가 어떻게 거길?”
“모르겠습니다. 자하라를 구하러 와서 함께 싸움이 붙어서 카산과 자하라가 죽었습니다.”
“자하라가 죽었단 말이냐?”
“네에.”
옴바쿠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카산이 죽어서 아깝긴 했지만 자하라가 죽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와찰라가 팔 하나를 잃은 셈이니. 내가 이길 수 있어.’
옴바쿠는 하산과 움산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상처를 치료하고 있어라.”
하산과 움산이 물러났다.
옴바쿠가 부하들을 불렀다.
“가서 지하 감옥에 가서 와찰라를 불러와라.”
옴바쿠는 지하 감옥에 있는 와찰라가 누구인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