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블랙 레오파드 2] (6)
“와인, 샴페인?”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통령인 카운다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는 술을 못 마시니 심심하겠구나. 조금 줄까?”
잠비아에서는 종종 어린아이들에게 술을 주기도 했다. 카운다 자신도 어릴 때 술 심부름을 하다가 배가 고파 술을 조금 마시고 술에 취해 해롱댔던 기억이 있었다.
“아니요. 제갸 재민는 거 보여드릴까요?”
은우가 주머니에서 톡톡히 사탕을 꺼내 카운다의 손바닥에 주었다.
“먀법 갸루예요.”
“마법 가루?”
“네에, 머겨 보세요.”
카운다는 은우가 준 사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그란 사탕 주변에 가루가 묻어 있는 것을 빼고는 평범한 사탕이었다.
카운다가 사탕을 입안에 넣었다.
그러자 카운다의 입안에서 톡톡톡 사탕들이 춤을 추었다.
‘이건 뭐지? 진짜 마법 가루인가? 입안에서 전쟁이 난 것 같아.’
카운다는 입안에서 수천 개의 총들이 난사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은우는 카운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헤헤헤헤헤. 재미쬬? 제갸 또 먀법 보여주까요?”
은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촬영 감독 룬다가 사람들을 모았다.
“우리 은우가 마법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모두 기대하세요. 여러분.”
사람들이 식사를 멈추고 은우를 바라보았다.
은우가 의자 위로 올라가 말했다.
“오늘의 먀버븐 [안 보인다] 먀버빕니댜. 이 먀버븐 잘 생기고 머찐 샤람 눈에만 안 보입니댜.”
카운다가 감탄했다.
“신기한 마법이네. 그럼 마법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구별하는 건가요?”
“네, 그러뜸니댜.”
은우의 말에 사람들이 대답했다.
“난 무조건 안 보일 거야. 난 잘생겼거든. 우리 엄마가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했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팀에서 나만큼 잘생긴 사람이 어딨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눈엔 안 보일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은우가 마법을 시작했다.
“자, 이제 마벼블 시쟈하께요.”
은우가 열 손가락을 쫙 펴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긴장한 채로 은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우가 분장사인 루시의 앞에 섰다.
루시가 은우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은우야.”
은우가 루시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열 손가락으로 앉아있는 루시의 겨드랑이를 간질였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루시의 웃음이 터졌다.
그 모습을 본 채드윅이 말했다.
“잊었어? 루시. 이 마법은 잘생기고 멋진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데? 예쁜 사람에게도? 그러니까 예쁜 사람이면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냐?”
루시가 입을 꼭 다문 채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
카운다는 생각했다.
‘대단한 마법인데? 모두를 웃길 수 있겠어. 웃음을 참느라 웃고, 다른 사람의 웃음을 보느라 웃고.’
카운다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폭력으로 누군가를 울릴 순 있지만 웃길 수는 없다.
카운다는 은우의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은우는 다음 타켓을 물색 중이었다.
은우는 채드윅의 앞에 섰다.
채드윅이 은우를 바라보며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은우가 채드윅의 겨드랑이를 간질였다.
그런데 채드윅은 웃지 않았다.
‘대체 뭐지?’
은우는 채드윅의 표정 변화가 없는 것에 놀랐다.
‘이럴 수가?’
충격적인 반응에 은우는 더 열심히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때 채드윅이 빈틈을 노렸다는 듯 은우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에헤헤헤헤, 에헤헤헤헤헤헤.”
은우가 마구 간지럼을 타기 시작했다.
“에헤헤헤헤, 에헤헤헤헤헤.”
은우의 간지럼은 끝이 없었다.
채드윅이 웃으며 말했다.
“잘생긴 사람에게만 안 보이는 마법인데, 은우는 못생겼나 보다.”
은우는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에헤헤헤헤헤, 에헤헤헤헤헤.”
그 모습을 보던 촬영 감독 룬다가 말했다.
“은우는 잘생긴 게 아니라 귀여워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귀요미 은우.”
***
정신없던 회식이 끝나고 룬다는 오늘 회식에서 있었던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카운다 대통령의 방문 사진과 음식 사진들, 은우와 찍은 사진들.
그리고 은우의 꿈에 대한 동영상과 마법 동영상도 올렸다.
룬다의 sns를 타고 은우의 동영상과 사진은 빠르게 퍼졌다.
┗ 저 아기, 은우 아님? 세상에 동양인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라고 한 거임?
┗ 나도 신기함. 난 당장 오늘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넣어놓은 물건을 결제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는데 은우는 저런 대단한 고민을 하다니.
┗ 님들 다섯 살 때 꿈이 뭐였어요? 전 젤리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 종일 젤리 먹는 게 꿈이었는데.
┗ 전 하루 종일 소방차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땐 사람이 커서 사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음.
┗ 전 티비에 나오는 게 꿈이었어요. 평생 못 이룰 줄 알았는데 얼마 전 홍수가 나서 뉴스에 출연해서 그 꿈을 이루었네요.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마법 동영상 너무 귀엽네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마법임.
┗ 저도 저 마법 걸려보고 싶네요. 은우가 태워주는 간지럼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데.
┗ 은우, 웃는 거 너무 귀여워요. 간지럼 태우니 어쩔 줄 모르면서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웃고 있는 거 봐.
┗ 은우, 처음엔 흑인이 아니라서 안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아가도 착하고 연기도 잘하고 귀엽고. 그리고 무엇보다 흑인들을 아끼는 것 같아요. 저 은우 팬 할래요.
┗ 듀크가 죽고 아쉬운 마음에 은우가 주인공이 되는 거 반대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요. 아프리카 가서 자원봉사도 하고 아프리카를 위해 학교도 세우고 싶어 하고. 저런 아기가 잘돼야 함.
┗ 듀크가 은우 와찰라 역으로 점찍은 거 모르셨어요? 다들? 와찰라 역을 꼭 은우에게 주어야 한다고 한 건 듀크가 내린 결정이었대요. 듀크가 은우 연기를 유심히 보고 은우가 흑인이 아닌데도 흑인의 발음이나 행동 같은 걸 잘 담아낸다고 그래서 결정한 거래요.
┗ 듀크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모양임.
┗ 역시 듀크.
┗ 와찰라 역은 걱정 안 해도 될 듯. 듀크의 훌륭한 연기를 이어받아 은우가 아기 와찰라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것임.
┗ [블랙 레오파드 2] 기대됩니다!
┗ 모두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세요.
┗ 꼭 가세요. 두 번 가세요! 세 번 가세요!
***
방으로 돌아온 은우는 길동에게 물었다.
“횬아, 지금 서우른 며 씨예요?”
“잠비아가 서울보다 7시간 빠르니까. 잠깐만.”
길동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 대답했다.
“지금 루사카가 밤 10시 15분이니까 서울은 3시 15분이겠다.”
“어리니집 열 시갸니다. 횬아 어러니지베 전햐해 져요.”
은우는 친구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길동이 어린이집에 영상통화를 걸었다.
수녀님이 전화를 받았다.
“슈녀님, 저 은우예요.”
“은우야, 잘 있었어?”
영상통화 속 은우의 목소리를 듣고 제일 처음 달려 나온 것은 지호였다.
지호가 친구들에게 외쳤다.
“수녀님, 은우예요? 얘두라 은우 전화와떠.”
가장 어린 세 살 정우가 화면 앞으로 왔다.
“횬아, 언제 아? 냐 매일 세고 이떠. 이제 삼십 밤 넘어따고 수녀님이 그래는데. 언제 아?”
정우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울디 먀. 정우야. 횬아가 마디는 거 마니마니 사서 갈게. 기다려.”
“응, 횬아.”
화면 앞으로 노랑이가 다가왔다.
노랑이가 화면에 얼굴을 비비느라 콧구멍 한쪽이 전체 화면을 차지하고 말았다.
“노랑아, 하하하하하. 코꾸멍 뱌.”
은우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서 막 웃었다.
혜린이가 노랑이를 안았다.
“노랑아, 다른 친구들도 은우 보고 싶어 한단 말야. 내 무릎에 앉아서 인사하자.”
현정이가 막대 머리띠를 쓴 채로 은우에게 인사했다.
“은우야, 아프리캬는 어때? 내갸 준 머리띠 해 뱌떠?”
은우가 막대 머리띠를 쓰고 현정이에게 대답했다.
“여기이떠. 현정아. 넌 외계인한테 연락 좀 와떠?”
“내가 화성까지 차자바꼬 내일부터 목성을 보기로 해떠.”
“대단하댜. 현정아.”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가 손을 번쩍 들더니 물었다.
“냐 질문 이떠. 은우야. 변신 재미떠? 뭐랑 머로 변신해떠?”
“생지로도 변하고, 표범으로도 변하고 치타로도 변하고 강아지로도 변하고 드래곤으로도 변해떠.”
“우와.”
시우뿐 아니라 옆에 있던 지호와 준수, 정우도 모두 부럽다는 눈빛으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머찌다. 은우 체고!”
“체고!”
은우는 쑥스러움에 웃었다.
“헤헤, 영화 속에서 분쟝도 하고 씨지도 쓰고 그래떠 그래.”
시우가 다시 질문을 계속했다.
“그래서 와찰라갸 [와따따] 왕구글 구하지?”
“응, 그럼. 거정하디 먀. [와따따] 왕구근 안젼해.”
“휴우, 다행이다.”
옆에 있던 아기들이 모두 마음을 놓았다는 표정으로 안심했다.
연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냐두 질문이떠, 은우야. 너 진짜 흐긴 가탸. 얼구리 너무 마니 타떠.”
눈처럼 하얗던 은우의 피부는 아프리카에 온 뒤로 많이 탔다.
진짜 흑인들 옆에 서 있으면 여전히 하얀 편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은우 모습만을 기억하는 어린이집 친구들의 눈에는 이런 은우의 변화가 낯설게 느껴졌다.
은우는 오랜만에 또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니 반가웠다.
촬영장은 재밌었지만, 또래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장난을 마음껏 칠 수는 없었다.
“그럼 냐 흐긴 하까?”
은우가 냉장고에서 초코아이스크림을 꺼내 얼굴에 칠했다.
“헤헤헤헤헤, 이거 바랴. 나 오늘부터 흐기니야.”
“하하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이집 아이들의 눈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은우는 친구들의 반응이 신이 났다.
은우가 길동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횬아, 김 엄떠요?”
은우는 길동이 가방에 김과 고추장을 싸서 다닌다는 걸 기억했다.
길동이 도시락용 김을 뜯어서 주었다.
은우가 김을 앞니에 붙였다.
은우의 작은 이빨에 김이 가득 찼다.
은우는 초코아이스크림으로 분장한 까만 얼굴에 까만 김을 붙이고 아프리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까매, 까매, 모듀가 까매.
냐는 까만 게 조아.
밤처럼 까매, 어둠처럼 까매.
까만 건 재미떠.
까만 건 즐거여.
까매 까매 모듀가 까매.
까만 건 초콜릿
모듀가 마디떠.”
은우가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배와 혓바닥을 길게 내민 채 양팔을 흔들었다.
“아하하하하, 은우 좀 뱌.”
보고 있던 연아가 가장 먼저 웃음보가 터졌다.
“은우 좀 뱌. 너무 우껴.”
지호도 웃음보가 터졌다.
정우가 은우의 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꺄매, 까매. 모듀가 까매.”
시우도 은우의 춤을 따라 하며 말했다.
“저거 꼭 만화 가탸. 그거 이짜냐. 우가차카 우가 우가.”
지호도 인정했다.
“마자마쟈. 우가차가 우가 우가.”
지호가 은우가 부른 노래의 춤을 따라하면서 가사를 바꿨다.
“까매, 까매, 모듀가 까매.
우가차카 우가우가.”
은우는 지호가 부른 노래가 재밌게 느껴졌다.
“다 함께 우가차카 우가우가.”
아기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아가 부엌에 가서 도시락 김을 찾아왔다.
“얘듀랴. 이거.”
아기들은 모두 이빨에 김을 붙이고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헤헤헤헤헤. 너 뱌보 가타.”
“너듀.”
“헤헤헤헤헤. 재미떠.”
아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계속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