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76화 (76/257)

76화. 음반 준비 (1)

올해의 아카데미 최종 후보작.

남우주연상보다 눈에 띄는 남우조연상 후보들.

남우조연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올해 남우조연상 후보로 호명된 그레고리의 이력을 보자.

그레고리는 7살 때 크리스마스에 만난 도둑 산타로 최고의 아역배우로 인정받았던 배우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김없이 그의 영화가 티브이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된다. 우스갯소리로 크리스마스의 연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그러나 이런 물질적인 행운이 그의 인생에도 행운이 되진 못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9살 때 이혼했고, 그레고리 자신도 마약으로 얼룩진 10대를 보내야 했다.

20대가 된 그레고리는 다시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다. 30세 때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비판한 독립영화 ‘단지 그대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뒤 서서히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가 10년이 지나서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제 마흔이 된 그에게 남우조연상의 영광이 돌아갈지 주목된다.

다른 후보는 한국의 배우 4살 이은우 군이다. 이은우 군은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으로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영화를 찍은 경험이 없다. 그를 캐스팅한 위대한 목소리의 음악감독 에릭의 말에 따르자면 은우 군은 파리넬리의 환생이라고 믿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고.

에릭은 우연히 너투브에서 발견한 하나의 영상을 시작으로 은우 군을 캐스팅하기 위해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그런 에릭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은우 군은 신 내린 듯한 연기와 매혹적인 목소리로 노래했다. 은우 군이 출연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은우 군의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에 누구나 매료될 수밖에 없다.

***

HO 엔터테인먼트는 은우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확정에 축제 분위기였다.

이철이 강라온에게 말했다.

“은우가 가수가 되는 게 맞는 걸까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라니요? 우리가 은우 진로에 피해를 주는 거 아닐까요?”

강라온이 웃으며 말했다.

“은우가 연기를 잘하기는 해. 그치만 노래를 더 잘한다니까. 생각해 봐. 파리넬리 아역이 아니었으면 은우가 어떻게 남우조연상 후보가 됐겠어.”

“그건 그렇죠. 영화 속에서의 노래는 정말. 백 번을 들어도 좋아요. 나는 굴하지 않을 거야. 부딪칠 거야.”

이철이 부르는 노래에 강라온이 배를 잡고 자지러졌다.

“제발 너는 춤만 춰. 노래는 아닌 거 같아. 은우가 그렇게 예쁜 목소리로 부르던 걸. 너무 비교되잖아.”

이철이 심통이 나서 말했다.

“은우 목소리랑 비교해서 그런 거지 저도 나쁜 목소리는 아니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가수가 못 돼서 속상한데.”

강라온이 아차 싶은 듯 말을 돌렸다.

“대신 은우가 네 꿈을 이뤄줄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에겐 은우가 있잖아.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니 전 세계 팬들을 모으는 데는 유리하겠다.”

“탑보이즈처럼 은우도 빌보트 차트 1위를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지. 암, 탑보이즈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못 올라갔었잖아. 은우는 4살에 남우조연상 후보가 됐다고.”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기록일 거예요.”

강라온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요새 외국에서도 은우에 대한 출연 요청이 이어지고 있어서 어떤 프로에 출연시킬지 고민 중이야.”

“외국에서도요?”

“4살에 남우조연상 후보가 된 아기에 대한 관심이겠지. 가까운 중국, 일본에서부터 대만, 홍콩, 유럽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오고 있어. 토크쇼나 예능 프로 1회 출연 요청도 들어오고 있는데, 어떤 것을 출연시켜야 앞으로의 음반 작업에 도움이 될지 고민이야.”

“남우조연상이 대단하긴 하네요. 근데 은우 음반 발표는 언제로 하실 거예요?”

“5월로 생각 중이야.”

“5월이요?”

“아카데미 발표가 4월 25일이더라구. 만약 은우가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타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홍보 효과가 없을 테니까.”

“만약 못 타면요? 미래는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못 타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4월 25일까진 은우를 향해 있을 테니 그 관심의 시간을 최대한 빨리 잡아둬야지. 텀이 길어지지 않도록.”

이철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표님이세요.”

“참, 곧 은우 음반에서 작곡을 맡을 윤기세가 올 거야.”

이철은 윤기세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생각했다.

‘윤기세라니. 슈퍼보이즈, 나나랜드, 파이브미닛의 노래를 작곡한 그 윤기세. 치명적인 후크송으로 유명한 윤기세. 보이그룹, 걸그룹 모두 손을 대기만 하면 히트시켜서 히트곡 제조기로도 유명하지. 작년 저작권 수입만 오십억이라던데.’

이철은 신문에서 보았던 윤기세와 관련된 기사를 떠올렸다.

‘와, 이거 참 나도 잘 나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윤기세가 온다고 하니 씁쓸하구만. 안무가는 작곡가나 작사가에 비해서는 저작권 수입이 미미하니까.

그런데 윤기세를 데려온 거 보면 대표님이 제대로 작정하신 거 같긴 한데.’

그때 문을 열고 윤기세가 들어왔다.

180센티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흰색 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든 눈에 확 띌 만한 차림이었다.

이철은 생각했다.

‘역시 듣던 대로 미남이군. 저 하얀 피부 하며 긴 손가락 하며, 작곡가 아니라 배우를 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강라온이 윤기세에게 인사를 했다.

“기세 왔어?”

윤기세는 대답 없이 자리로 와 앉았다.

이철은 생각했다.

‘와, 저 싸가지. 대체 몇 살이기에 인사도 없이 그냥 와서 앉는 거야. 입을 테이프로 붙여놓은 것도 아니고. 소문대로 정말 재수가 없네.’

윤기세가 강라온에게 말했다.

“은우는요?”

“조금 있으면 이리 올 거야. 차나 한잔하면서 기다릴까?”

윤기세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전 별다방 커피 아니면 안 마시는 거 아시죠? 샷은 하나, 무지방 우유가 들어간 라떼로 부탁드려요.”

이철은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르는 것을 참았다.

‘니가 사다 마셔.’

강라온이 이철에게 물었다.

“철아, 넌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요.”

“샷은?”

“그냥 아무거나 주는 대로 마셔요. 전.”

강라온이 인터폰으로 직원을 불렀다.

“수현 씨, 요 앞 별다방 가서 샷 하나에 무지방 우유 라떼 하나, 아메리카노 둘. 라떼 주문 정확히 해야 해.”

수현은 강라온이 찡긋거리는 눈을 보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이 나가고 나서 은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떼요. 대표님, 선생님, 그리고 누구떼요?”

은우가 배꼽 인사를 하다말고 빤히 고개를 들어 윤기세를 바라보았다.

윤기세가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은우구나. 듣던 대로 귀엽네. 난 윤기세야.”

윤기세가 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우가 윤기세의 손을 잡았다.

“반걈슴니댜.”

윤기세는 은우를 보며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본 대로 귀엽고 천사 같네. 외모도 외모인데 아름다운 저 목소리. 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걸 실제로 듣는다면 가슴이 두근거릴 것 같은데.

지난주에 강라온 대표에게 전화하길 잘했지.’

윤기세는 지난주 우연히 슈퍼보이즈와 통화를 하다가 은우가 음반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 목소리 영화를 보고 은우의 팬이 되었지. 매일 밤 은우가 부른 위대한 목소리 OST를 들으며 잠이 드는걸. 은우의 목소리는 정말로 아름다워.’

윤기세는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내가 네 노래를 작곡해 줄 작곡가란다.”

“우아.”

은우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윤기세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를 보며 윤기세는 생각했다.

‘마치 만화 주인공 같은 눈이잖아. 어쩜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사람이.

은우야. 정말 너 너무 귀엽다.’

윤기세는 지금이라도 당장 폰을 꺼내서 은우의 얼굴을 찍고 싶었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참았다.

문을 열고 수현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강라온이 수현으로부터 커피를 받아 윤기세와 이철의 앞에 놓아주었다.

강라온이 말했다.

“5월에 은우의 미니 앨범을 발표할 거야. 앨범에 들어갈 5곡 정도를 함께 작업할 거고. 타이틀곡은 댄스곡이었으면 해.”

윤기세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은우를 만나고서 악상이 떠올랐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강라온이 말했다.

“은우를 잘 부탁해. 작사는 한두 곡 정도는 정미나 씨에게 부탁하기로 했는데.”

이철은 생각했다.

‘정미나라니. 가슴을 후벼 파는 발라드 가사로 정평이 난 정미나. 결국, 대표님은 타이틀곡은 댄스곡으로 밀고 다른 곡에선 발라드도 시도해 보시겠다는 건가?

이 정도면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때 문을 열고 정미나가 들어왔다.

정미나는 작은 꽃이 수놓아진 갈색 가디건에 베이지색 니트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철은 생각했다.

‘듣던 대로 소녀적인 분위기를 지닌 여자군.’

정미나가 은우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은우야. 티비에서 보던 대로 정말 예쁘다.”

강라온이 정미나를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정미나 씨, 여긴 윤기세 씨와 이철 씨. 알겠지만 윤기세 씨가 작곡을 맡아줄 거고 이철 씨가 안무를 맡아줄 거야. 오늘은 다른 게 아니라 은우의 첫 번째 미니 앨범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데. 어떤 느낌의 음반을 만드는 게 좋을지 서로 얘기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정미나가 말했다.

“순수함요. 은우의 순수함. 그리고 귀여움. 네 살 가수가 정식 미니 앨범을 낸 경우는 우리나라 가요계에 없었을 테니까요.”

이철이 말을 이었다.

“하춘화 씨가 일곱 살에 음반을 낸 게 제가 알기론 국내에서는 최연소였을 거예요. 마이클 잭슨이 다섯 살이었고요.”

강라온이 말했다.

“아, 은우 이제 다섯 살이에요. 곧 있으면 생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생일이 지나면 다섯 살. 그러니까 은우의 앨범은 은우가 다섯 살 때 발표되는 거죠.”

“은우 생일이 언젠데요?”

“2월 18일.”

이철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은우 생일날 기억했다가 축하해 줘야지.’

강라온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미나 씨의 의견에 동의해요? 은우의 순수함과 귀여움을 음반의 컨셉으로 잡자는 거요?”

윤기세가 말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은우가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도 생각해 보면 은우의 순수함과 귀여움 때문이거든요.

사실 전 그 공연 보면서 은우밖에 안 보였는데.”

이철도 동의했다.

“까꿍안무도 비슷한 거 같아요. 그게 안무가 될 거라고는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은우가 하니까 안무가 되고 사람들도 열광하고요.

다섯 살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백수희는 ‘우리 집에 셰프가 왔다’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직 레시피 못 정했는데 하필이면 우리 집에 셰프가 왔다 작가님이네.

요리 제목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 같은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냥 아무거나 막 지어내야 하나?

그때 은우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먹었던 브런치라도 똑같이 만들어야 하나?

근데 내가 그걸 혼자서 할 수 있을까?’

백수희는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백수희 씨. 촬영 준비는 잘 돼 가세요?”

백수희는 마음속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촬영 취소해야 하나? 취소하면 작가가 많이 곤란하겠지? 그러다가 백수희 흑역사 기사 나는 거 아닐까? 흑역사보단 취소가 나은 거 같기도 하고.

그냥 그 브런치를 만들까?’

고민하던 백수희가 대답했다.

“아직 메뉴를 못 정했어요. 빨리 정해서 알려드려야 하죠, 작가님?”

“메뉴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괜찮아요. 백수희 씨 은우랑 친하죠?”

“은우요?”

“네에, 은우가 이번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잖아요. 그래서 회의에서 은우도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은우 소속사인 HO 엔터 쪽에서는 은우 스케줄이 고민되는지 확답을 안 해줘요. 은우랑 백수희 씨랑 매우 친하다던데 혹시 동반 촬영 안 될까 하고요. 안 되면 할 수 없고요.”

작가는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제발 돼라. 제발 돼라. 은우만 나오면 시청률 상승은 문제없을 거야.’

백수희는 생각했다.

‘레시피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던 차에 잘됐네. 은우랑 같이 출연하면 창현 씨에게 레시피를 물어보기도 훨씬 자연스러울 거고.’

백수희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은우한테 물어볼 텐데 아마 될 거예요. 바로 전화 드릴게요.”

백수희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우는 키즈폰의 창에 뜨는 백수희의 이름을 보았다.

“어, 백수희 눈나네.”

은우가 신이 나서 전화를 받았다.

“눈냐.”

“공룡변신 로봇 1호님, 바쁘신가요?”

“아니요. 지금 스키틀즈 머겨요.”

“아, 그 신 거? 진짜 그거 맛있어? 은우야?”

“마디뗘요.”

“은우야. 누나랑 같이 우리 집에 셰프가 왔다. 나갈래? 요리 만드는 프로인데.”

은우는 생각했다.

‘요리 만드는 프로에 백수희 누나랑 같이 나가게 되면 또 아빠랑 같이 요리 연습하자고 할 수 있겠네.’

은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니에 니에 니에 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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