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음반 준비 (2)
KJ 엔터테인먼트의 이 대리가 홍보팀장에게 은우와 관련하여 조사한 자료를 발표했다.
“팀장님, 은우와 관련해서는 연기대상 축하공연 기사가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후 공실업의 공룡변신 로봇 cf를 촬영했고요. 이건 제가 찾아낸 건데요. 은우가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오천만 원이나요. 소아암 환자들에게요.
그리고 얼마 전에 소아암 병동에서 친구들과 함께 위문 공연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게 공식 활동이 아니라서 아직 어떤 신문사에서도 기사로 다룬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걸 가장 먼저 기사화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근데 그걸 왜 소속사에서 기사화하지 않았지? 좋은 기사잖아. 배우에게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데? 충분히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그런 기사를?”
“HO 엔터에 전화해서 확인해 본 결과 개인 활동으로 하길 은우 아버님께서 원했다고 하네요. 은우 소속사에서는 은우가 음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은우의 공연 내용이 유출되는 걸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구요.”
“그럼 자넨 그걸 어떻게 알았나?”
이 대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 친구가 한국대 원무과에 근무하는데 고급 정보가 있다고 하길래 제가 소고기 사 주고 얻은 정보입니다. 소고기값이 이십만 원이나 나왔어요. 팀장님. 이거 꼭 기사화해야 해요.”
“좋은 정보군. 그럼 은우 소속사에 연락해서 우리가 공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기부에 대한 것만 기사화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 아카데미 후보 소식의 분위기를 더 후끈 달아오르게 할 좋은 기사가 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이 대리가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죠, 팀장님? 제 눈이 틀리지 않다니까요.”
***
윤기세는 은우와의 만남 이후 곡을 작곡 중이었다.
‘은우는 뭔가 귀엽고 당찬 이미지. 그러면서도 순수하고.
은우가 어린 만큼 은우 또래의 아기들도 따라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리듬과 멜로디면 좋겠어.
흥도 나고.
그런데 이 부분이 막혀서 잘 안 되네.
벌써 일주일째인데.’
윤기세는 작곡을 하다말고 방 안을 걸어 다녔다.
‘한 번 막히면 한 달 동안도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윤기세는 음악을 틀고 침대에 누웠다.
‘은우는 순수하다. 은우는 순수하고 은우는 귀엽다.’
은우의 매력을 곡에 다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은우의 매력을 어떻게 다 곡에 담겠어? 은우는 너무 귀엽고 매력적인걸. 은우는 너무 완벽해.’
윤기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간째 막혀있군.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아. 샤워라도 해야겠어.’
윤기세는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멜로디. 멜로디. 왜 거기서 막혔을까. 거기서.’
샤워를 마친 윤기세는 태블릿을 켜고 은우의 영상을 찾아서 켰다.
‘이게 나의 최애 영상이지. 은우가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개인기를 하는 장면.’
화면 속에서 은우가 강아지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은우가 소리를 내고 창현이 설명을 더했다.
“끼이이이이이이잉.”
“이건 아침에 배고플 때 내는 소리입니다.”
“머어엉멍 머어어엉멍!(낮은 톤으로 길게)”
“이건 택배가 오거나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 짖는 소리입니다.”
“하오오옹 아오오옹.”
“이건 동족을 부를 때 하울링 하는 소리입니다.”
윤기세는 한밤중에 혼자 텅 빈 집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윤기세는 생각했다.
‘저땐 지금보다 더 어리다. 너무 귀여워. 은우가 너무 빨리 자라서 아쉬울 정도야. 귀여운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데.’
갑자기 윤기세의 머릿속에 며칠 전 처음 만났던 자신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누구떼여.”
윤기세는 무릎을 쳤다.
‘너무 순수해서 귀엽고 때론 엉뚱하고. 내가 보아온 모든 시간 속의 은우. 그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처럼 말이야.’
윤기세는 막혔던 멜로디를 술술 적어나가고 있었다.
***
창현과 은우, 백수희는 함께 은우네 집 부엌에 서 있었다.
백수희가 말했다.
“그래서 은우랑 함께 출현하기로 했는데요. 제가 요리를 잘 못 해서요. 요리 초보도 할 수 있는 쉬운 레시피 하나만 알려주세요. 창현 씨. 네에?”
백수희는 생각했다.
‘속이 다 후련하다. 그렇게 망설이던 말을 했더니. 근데 창현 씨가 나에게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창현은 생각했다.
‘백수희 씨 생각보다 귀엽네. 요리를 어려워하는구나. 요리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은우랑 같이 출연한다니 요리 고르기도 쉽겠어.’
창현이 말했다.
“그럼 아기 음식 만들기로 하면 어떨까요? 아기 음식은 어른 음식에 비해 조리법이 간단해서 요리 초보도 쉽게 할 수 있어요. 간도 세게 하지 않아서 간 맞추는 것도 어렵지 않고요. 은우가 저랑 요리 많이 해 봐서 요리 보조를 잘해요.”
은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꾜먀 요리샤.”
백수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보니까 요리 라방도 했다고 하던데. 그때 팬들 반응도 좋았다고 하던데요.”
“요리 대결 같은 거였는데 은우가 이겼어요. 은우가 열혈팬들이 많아서 미슐랭 레스토랑 요리사가 와도 이기기 힘들 거예요.”
“저도 내일도 사랑해 찍을 때 느꼈어요. 은우 팬덤은 이기기 힘들어요.”
두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은우는 미안해졌다.
“아빠, 눈냐. 따량해요.”
은우가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크게 그렸다.
창현과 백수희는 은우가 너무 예뻐서 은우를 안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손이 맞닿고 말았다.
백수희가 놀라서 은우를 안았던 손을 풀었다.
창현도 천천히 은우를 안으려던 손을 풀었다.
은우는 생각했다.
‘아빠랑 백수희 누나는 서로 좋아하는 게 분명해.’
창현이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볶음밥이랑 계란찜, 된장국 하죠?”
“메뉴를 세 가지나요?”
“셋 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요리예요. 그리고 좀만 꾸미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할 거구요.”
“창현 씨만 믿어요.”
백수희가 창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은우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눈나, 보끔뱝 마디떠요.”
“그래, 눈나가 맛있게 해 줄게.”
***
정미나는 은우의 사진을 보면서 작사를 하는 중이었다.
‘은우는 귀여운 강아지 같은 느낌이니까.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고 너무 좋아.’
- 초콜릿은 달콤해. 달콤해.
너는 너무 귀여워. 귀여워.
너는 너무 사랑스런 천사.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어.
너는 어쩜 나를 이리 빠지게 만들어.
정미나는 작사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걸 은우의 귀여운 목소리로 불러준다면 팬들이 아마 기절할 거야.
윤기세는 어떤 곡을 만들어 오려나.
원래 작곡을 먼저 하고 작사를 하는 경우가 더 많긴 한데.
내가 쓴 가사에 어울리는 귀여운 곡을 만들어 올 수 있을까?
이 가사를 있다가 은우가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정미나는 작사한 노트를 챙겨서 HO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강라온의 사무실에서는 강라온과 은우, 이철이 정미나와 윤기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철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좀 있으면 생일이라면서?”
은우는 골똘히 생각했다.
‘공룡 변신 로봇은 지난번에 공실업에서 많이 받았고, 공실업에서 새로운 장난감을 더 보내준다고 해서 장난감은 이제 더 필요가 없는 거 같은데.
음, 새로 나온 스키틀즈 신맛 한 상자?
뭘 말하는 게 좋을까?’
은우가 말했다.
“엄마요?”
이철이 다시 물었다.
“엄마?”
강라온도 할 말을 잃었다.
이철이 강라온에게 물었다.
“대표님, 엄마는 어디 가면 살 수 있어요?”
은우는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좀 있으면 백수희 누나가 우리 엄마가 될 거라고요. 전 이제 장난감보다 엄마가 필요해요. 항상 날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엄마요.’
그때 문을 열고 정미나가 들어왔다.
정미나는 들고 온 쇼핑백에서 쿠키를 꺼내 은우에게 주었다.
“은우야, 이거 먹어. 누나가 사 왔어.”
“와아, 감샤함니댜.”
강라온이 정미나에게 말했다.
“은우만 주고 우리는?”
“대표님 것도 있죠.”
정미나가 이철과 강라온에게도 쿠키를 주었다.
강라온이 정미나에게 물었다.
“가사는 좀 잘 나왔어?”
“제 맘엔 드는데 대표님 보시기엔 어떨지 모르겠네요.”
정미나가 가사를 꺼내놓았다.
강라온이 가사를 읽었다.
“초콜릿은 달콤해. 달콤해.
너는 너무 귀여워. 귀여워.
너는 너무 사랑스런 천사.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어.
너는 어쩜 나를 이리 빠지게 만들어.
가사 너무 귀엽다. 멜로디도 귀여운 멜로디가 나와야 할 거 같은데.
그런데 윤기세가 이런 멜로디를 작곡했을까?”
윤기세가 라떼를 들고 문을 열며 들어왔다.
이철은 윤기세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도 인사 안 하네. 저 싸가지.’
은우가 윤기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떼여. 작굑가 선생님.”
윤기세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은우도 안녕. 나도 쿠키.”
정미나가 쇼핑백에서 쿠키를 꺼내 윤기세에게 주었다.
강라온이 윤기세에게 물었다.
“곡은 좀 나왔어?”
윤기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일주일 동안 고생했지만, 결과물이 있었죠.”
윤기세가 usb를 꺼내 강라온에게 넘겼다.
강라온이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했다.
윤기세가 말했다.
“대표님, 스피커 좋네요.”
“가끔 이 방에서 이렇게 음악을 틀어보기도 하니까 시설에 투자 좀 했지.”
강라온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강라온은 생각했다.
‘도입부가 톡 쏘는 탄산수처럼 산뜻해.
중간 부분은 5월의 햇살처럼 밝고 따사로워.
듣다 보면 은우가 생각나.’
이철은 생각했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
후렴구가 너무 좋아. 자꾸만 듣고 싶어져.’
정미나는 생각했다.
‘마치 한여름날 바닷가에 서서 파도를 피해 도망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장난치기 좋아하면서도 겁도 많은 아이.
딱 은우인데.’
은우는 곡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 곡 맘에 들어. 나랑 잘 어울려.’
음악이 끝나고 사무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윤기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별로인가요?”
강라온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좋아. 잘 만들었어. 정말.”
이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으로 재수는 없지만, 작곡은 잘하네.’
이철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은우가 말했다.
“작곡갸 선생님, 체고.”
윤기세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정미나가 조용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곡은 정말 잘 들었는데 정말 좋은데. 제가 써온 가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요. 다시 작사해 올까요? 원래 곡을 먼저 듣고 작사를 했어야 하는데 제가 은우를 보고 너무 영감이 떠오르는 바람에 먼저 작사를 했더니.”
강라온이 말했다.
“미나 씨가 작사한 것도 좋으니까 그걸 기세에게 주고 어울리는 곡이 떠오르냐고 생각해 보라고 하지. 그리고 미나 씨가 오늘 기세가 작곡한 곡에 어울리는 걸 작사해보도록 합시다.
그래도 오늘 괜찮은 곡이 나와서 좋군. 조금만 다듬으면 좋을 것 같아.”
그때 은우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갸 그 노래 갸샤를 써 보고 시퍼요.”
모두가 놀라서 은우를 쳐다보았다.
강라온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너 아직 한글도 잘 못 쓰잖아? 안 그래?”
“지난버네 슈퍼 주니어 형드리 래블 잘하려면 갸샤를 써 보랴고 그래서. 생갹냘 때먀다 조금씩 노금 해떠여.”
강라온은 깜짝 놀랐다.
은우가 목에 메고 있던 키즈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