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75화 (75/257)

75화. 남우조연상 후보가 되다 (2)

김길우가 말했다.

“당연하죠. 그런데 은우 후속 기사라도 내보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마 다른 신문사나 영화 채널들도 전부 다 은우 기사로 도배될 것 같은데요.”

김혜란도 동의했다.

“맞아요. 아마 그렇겠죠.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흥행한 영화가 ‘위대한 목소리’와 ‘겨울나라 2’인데 은우는 그 두 영화에 모두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니까요. 게다가 ‘겨울나라 2’가 현재 무섭게 흥행하고 있어서 아마 더 할 거예요.”

이 대리가 말을 이었다.

“두 편의 영화가 다 외국 영화라는 점에서도 특이하긴 해요. 한국 배우가 한국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외국 영화로 이름을 알렸으니.”

홍보팀장도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일단 언어라는 장벽이 있었고, 해외 시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자체가 매력적인 시장도 아니었고, 그렇게 매력적인 재능을 가진 배우도 없었고.”

김길우가 말했다.

“은우가 참 대단하긴 해요. 제가 볼 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세기의 천재 같은데요.”

홍보팀장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 표현 좋네. 그걸로 헤드라인 뽑아. 세기의 천재 이은우. 그리고 말야. 아마 다른 곳에선 지금까지 나간 기사들을 정리해서 은우에 대한 기사를 쓸 테니까 우리는 은우 소속사에 연락해서 따로 은우 인터뷰 잡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은우와 관련해서 근래에 있었던 사소한 일화 같은 거라도 좋으니까 전부 정리해서 써야겠어. 우린 새로운 뉴스를 넣어서 다른 기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어필해야 해.”

***

명석이는 거울 앞에서 야구 모자를 쓰고 엄마에게 묻고 있었다.

“엄먀, 이 모쟈 어때요?”

“잘 어울려. 우리 명석이 멋지네.”

명석이는 거울 앞에서 한참을 비춰보더니 말했다.

“엄먀, 댜른 거.”

엄마가 비니 스타일의 털실 모자를 명석이에게 건넸다.

명석이는 거울 앞에서 한참이나 자기 모습을 비춰보더니 엄마에게 말했다.

“엄먀, 댜른 거.”

명석이 엄마는 생각했다.

‘오늘 은우네에 놀러 가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네.’

명석이 엄마가 서랍에서 새 모자를 꺼내어 명석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거 은우 거까지 2개 샀는데 은우랑 같이 쓸래? 엄마가 지나가다 예뻐서 샀어. 이렇게 귀도 움직인단다.”

명석이 엄마가 모자의 긴 끈 부분을 당기자 귀가 쫑긋 움직였다.

순간 명석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아, 엄먀 신기해요.”

“은우에게 선물이라고 주렴.”

명석이는 신이 나서 토끼 귀 모자를 쓰고 자신의 보물 상자를 챙겼다.

“어셔 갸요.”

명석이는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서도 계속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야, 어듀미 안 무서어.

나는야, 주샤가 안 무서어.

나는야, 슈영이 안 무서어.

나는야, 고양이갸 안 무서어.”

명석이 엄마는 명석이가 가사를 바꿔서 노래를 부르는 게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은우를 만나고 나서 많이 달라졌어. 명석이가.

전엔 겁도 많고 많이 움츠러들었었는데 이젠 용기가 생긴 것 같아.

밥도 잘 먹고 잘 웃고 감정 표현도 참 많아졌어.

은우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은우네 아파트에 도착해서 명석이 엄마가 현관문의 호출 버튼을 눌렀다.

명석이가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먀, 엄먀. 나 좀 올려져요.”

인터폰이 울리자 은우는 받침대를 밟고 올라가 말했다.

“누구떼여.”

현관문 앞에서 명석이가 말했다.

“공룡 변신 로봇 3호임니댜.”

“어셔오세요. 져는 1호임니댜.”

은우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명석이가 현관에서 토끼 모자의 끈을 당기며 인사했다.

토끼 모자의 한쪽 귀가 접혔다.

“은우야. 안녕”

“우와.”

은우는 명석이의 모자가 너무 신기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토끼갸테. 기여어.”

명석이가 가방에서 모자를 하나 더 꺼내면서 말했다.

“션무리야.”

은우가 모자를 받으며 말했다.

“거먀여.”

창현이 거실에서 달려왔다.

“명석아 오느라 수고했어. 명석이 어머님도요. 만능 소스 만들던 게 있어서 조금 늦게 나왔어요.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전 명석이 아빠랑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을 테니 명석이 다 놀고 나면 전화 주세요. 제가 데리러 올게요.”

“제가 가게까지 명석이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고 계세요.”

은우는 창현에게 선물 받은 모자를 자랑했다.

“아빠, 이거 뱌요.”

은우가 말할 때마다 토끼 모자의 한쪽 귀가 쫑긋쫑긋하고 움직였다.

창현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신기한 모자네. 그런데 토끼 귀가 올라갈 때마다 은우가 눈을 같이 찡긋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 왜 저렇게 눈을 함께 움직이는 거지? 가만 보니 명석이도 같이 눈을 찡긋거리고 있네.’

창현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그런데 눈을 왜 같이 찡긋거리는 거야?”

은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암호예요. 명서갸 그러치?”

명석이도 토끼의 귀를 당기면서 눈을 찡그렸다.

“응.”

창현은 생각했다.

‘정말 귀여운 녀석들이야. 토끼 모자 하나에 저렇게 재밌어 하다니.’

보리가 거실로 나와 명석이에게 꼬리를 쳤다.

“멍멍(명석아, 반가워. 내 선물은 잘 받았어? 그 모자 귀엽다.)”

명석이는 보리를 보더니 바닥에 앉아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이야. 네갸 보이구냐. 보거 시펴떠.”

보리도 명석이의 볼을 핥아주었다.

“헤헤, 가안지러.”

명석이가 웃으며 말했다.

명석이의 엄마가 명석이에게 물었다.

“명석아, 은우 아버님 말씀 잘 듣고 잘 놀다 오렴.”

명석이와 은우는 보리와 함께 은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명석이가 가방에서 자신의 보물 상자를 꺼냈다.

“은우야. 우리 가치 딱지치기할래?”

“딱지치기?”

“응, 나 딱지 먀나. 병언에서 심심할 때마다 저버서.”

“난 딱지 엄는데.”

“내갸 빌려주게.”

명석이가 보물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딱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명석이가 그중 가장 큰 딱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이게 대왕 딱지야. 달력을 세 장이냐 너어떠. 아뺘량 가치 저븐 거야.”

“이야.”

은우가 대왕 딱지를 보면서 놀랐다.

‘정말 크다. 저건 힘이 센 어른만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명석이가 말했다.

“대왕 딱지능 무조견 이겨. 그니까 우리 이거 말고 작은 걸료 시합햐자.”

“그래.”

은우와 명석이는 딱지를 쥐고 시합을 시작했다.

명석이가 은우의 딱지 위에 자신의 딱지를 쳤다.

-따악.

은우의 딱지가 뒤집어졌다.

명석이가 외쳤다.

“우아, 내가 이겼다.”

명석이가 은우의 딱지를 가져갔다.

은우가 금방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명석이가 은우에게 말했다.

“이제 니 차례야. 댜른 딱지 하냐 더 골랴.”

은우는 명석이의 상자에서 다른 딱지를 골랐다.

‘이건 더 두꺼워 보이니까 이길 수 있겠지.’

은우가 명석이의 딱지를 쳤다.

하지만 명석이의 딱지는 넘어가지 않았다.

‘이상하다. 명석이도 헤파이스토스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딱지의 신이라도 있는 걸까.’

보리가 말했다.

“멍멍(명석이 딱지치기 솜씨가 장난이 아닌데. 넌 오늘 처음 하는 거잖아. 재능을 불러오지 않으면 못 이길 거 같은데.)”

은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재능을 불러오면 이길 수도 있겠지만, 친구와의 놀이에서까지 재능을 불러오고 싶진 않아. 그러면 놀이가 재미없어질 거야. 차라리 지는 게 낫지.

지금 명석이 표정을 보면 진짜 신이 난 거 같은데.’

명석이가 은우의 딱지를 다시 쳤다.

- 따악.

은우의 딱지가 또 넘어갔다.

“명서갸. 너 진쨔 잘한다. 딱지 천재 가타.”

“병언에서 아빠랑 매일 딱지치기만 해서 그래. 너능 지기먄 해서 미안해.”

“아냐. 재미이떠. 아, 목마르다. 가먄이떠뱌. 내가 과쟈 가져오께.”

은우는 부엌으로 갔다.

창현은 부엌에서 계속해서 레시피를 연구 중이었다.

“아뺘. 과쟈 가져갈게요.”

“응.”

창현은 건성으로 대답한 뒤 계속해서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월계수 잎도 고수도 별로네. 어떤 향신료를 넣어야 맛이 살아날까.’

은우는 쟁반에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서 방으로 갔다.

방에서는 명석이가 보리와 놀고 있었다.

“우아. 마디께따.”

명석이가 과자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은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녀도 스키틀즈 조아해? 새로운 맏 나와떠.”

은우는 새로 나온 스키틀즈 신맛에 꽂혀 있었다.

“그게 머야?”

명석이는 은우가 주는 스키틀즈 신맛을 받아서 먹었다.

“아이셔.”

명석이가 눈을 찌푸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은우가 명석이를 보며 웃었다.

“하하하하하. 명서갸 너 너무 우껴.”

명석이가 스키틀즈를 뱉으며 말했다.

“마엄뗘. 이게 마시뗘?”

은우가 스키틀즈를 씹으며 말했다.

“응. 마시뗘.”

명석이가 쟁반 위의 콜라를 발견했다.

‘우아, 콜라네. 콜라 맛있는데 엄마가 못 마시게 해서 많이 못 마셨는데. 마셔 볼까?’

명석이가 은우에게 물었다.

“나 이거 머겨도 대?”

“응.”

명석이가 콜라를 열어 컵에 따랐다.

콜라에선 기포가 나왔다.

‘아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맛있겠다.’

명석이는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캬아.”

은우도 명석이를 따라서 콜라를 마셨다.

“캬아.”

명석이가 은우를 보며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명석이가 말했다.

“기뷰니 조타.”

은우도 명석이를 따라 했다.

“기뷰니 조타.”

명석이는 생각했다.

‘은우랑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 아빠랑 딱지치기할 때보다 은우랑 하니까 훨씬 재밌었어. 친구란 정말 좋은 거구나. 전엔 집에서 키우는 햄스터 ‘토리’만이 내 친구였는데, 또래 친구가 생기니까 정말 좋아.’

명석이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스키틀즈 줘 봐.”

“마시 엄따며. 안 머거됴 대는데.”

“댜시 머거 볼래.”

명석이가 용기를 내어 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우가 명석이의 손 위에 스키틀즈를 쏟으려다가 스키틀즈가 컵 안으로 떨어졌다.

순간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콜라가 부풀어 올랐다.

보리는 놀라서 소리쳤다.

“멍멍.(이건 뭐지? 왜 갑자기 콜라가 부풀어 오르는 거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마치 화산 폭발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네. 이러다 집이 폭발하는 거 아닐까? 누가 우리 좀 구해줘요.)”

보리는 놀라서 양발로 눈을 가렸다.

은우와 명석이는 소리를 질렀다.

“아, 무서어.”

“아아, 어떠케.”

콜라는 천장과 온 방 안으로 전부 튀고 나서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멈췄다.

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창현이 뛰어왔다.

창현은 문을 열고 할 말을 잃었다.

‘천장과 벽에 콜라가 잔뜩 튀어 있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방에서 실험이라도 한 건가?’

창현은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은우. 이게 무슨 일이야?”

은우는 처음 보는 창현의 모습에 놀랐다.

‘아빠가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러지? 그냥 난 콜라를 마셨을 뿐인데.’

은우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무룩해 있자, 명석이가 말했다.

“아빠.”

은우가 울먹였다.

명석이는 은우가 걱정됐다.

‘은우가 혼나는 건 싫은데.’

명석이가 말했다.

“아저씨, 미아내요. 제가 그래떠요.”

“아니에요. 아빠 제갸 그래떠요.”

“제갸 그래떠요.”

“아니에요. 저예요.”

창현은 서로 자기가 했다는 명석이와 은우를 보며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체 어떤 장난을 치다가 이렇게 된 건 줄은 모르겠지만, 녀석들 서로 정말 많이 아껴주고 있구나. 친구가 혼날까 봐 대신 혼나겠다고 말하는 것 좀 봐.’

창현이가 은우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은우야?”

은우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열심히 손을 움직여가며 말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은우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아니, 그게. 콜라를 마시고 이떠는데. 콜라가 마디떠더. 스키틀즈도 마디떠더. 이러케 대떠요. 미아내요.”

은우는 창현의 목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아빠, 미아내요. 명석이는 안 그래떠요.”

창현은 눈이 녹듯 스르르 화가 풀렸다.

‘청소할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긴 하지만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재밌게 놀라고 해야겠다.’

창현이 웃으며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아빠가 조금 예민해졌나 봐.”

은우가 아빠에게 안기며 말했다.

“갠차나요. 아빠. 미아내요. 이거 치우기 힘들죠? 갸치 하까요?”

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아빠가 할게. 명석이랑 재밌게 놀렴.”

***

뉴욕타임즈 영화 전문 기자인 윌리엄은 아카데미 후보작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려고 하고 있었다.

‘올해는 빅 파이브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에 드라마틱한 작품이 없네. 다들 예상했던 작품이 올라와 있어. 뭔가 드라마틱한 인물이 호명되는 그런 순간이 있어야 기사가 재밌어지는데 말이지.’

윌리엄은 후보작 명단을 꼼꼼히 훑었다.

‘국제영화상도 별다를 게 없고. 가만있어봐. 남우조연상 후보가 그레고리네. 그레고리라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인생 자체가 드라마니까.

7살 때 그 많은 돈과 인기를 거머쥐었지만, 그 뒤론 그것을 관리하지 못해서 인생이 줄곧 내리막길이었으니. 그런 그가 재기에 성공했군. 좋아. 이런 게 독자들이 원하는 기사지. 그런데 다른 후보는 누구지? 이은우? 동양인 배우 같은데? 위대한 목소리라고?’

윌리엄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은우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올해 나이 네 살. 전작은 없고. 단 한 편 찍은 영화로 남우조연상에 올랐네. 게다가 동양인. 이거 이슈 좀 되겠는데.’

윌리엄은 신이 나서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