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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47화 (47/257)
  • 47화. 할리우드로 가는 길 (1)

    유채린 기자는 은우의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바라보며 한창 기대 중이었다.

    ‘이번엔 어떤 대답을 해줄까?’

    은우가 입을 열었다.

    “그거보단 어떤 모뜨블 보여줄 쓔 인능지가 중요해요.

    어떤 연기를 하껀지.”

    유채린은 깜짝 놀랐다.

    ‘천상배우구나. 관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자신이 어떤 부분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귀여움 뒤에 진지함이 숨어있어.’

    채린은 질문지에 적혀 있지 않은 질문 하나를 추가했다.

    “이번이 첫 작품이라 이런 질문이 좀 무거울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어떤 배우로 남고 싶어요? 관객들한테.”

    채린은 생각했다.

    ‘사실 이건 어른 배우들한테도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책도 안 읽고 아무 생각도 없는 배우들은 대답을 못 하지. 물론 인터뷰를 못 한다고 해서 나쁜 배우라고 매도할 순 없지만.

    저런 생각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도 있으니까.’

    채린은 은우의 대답을 고대하고 있었다.

    은우가 대답했다.

    “은우가 아니라 파리넬리로 기억대고 시펴요. ‘내일도 따랑해’의 준호로 기억대고 시펴요. 마는 영화를 만나고 마는 잉물로 기억대고 시펴요.”

    은우의 대답을 들은 채린은 멍했다.

    ‘너무나 프로 배우다운 답변이잖아. 고작 네 살짜리 아기 입에서 대배우에게서나 나올 법한 그런 말이 나오다니.’

    ***

    길동은 인터뷰가 끝난 은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훌륭한 인터뷰였어. 적어 두고 싶을 만큼.

    영화 속 배역으로 기억되고 싶다니.

    진짜 매니저하길 잘했다. 자랑스럽다. 우리 은우.’

    은우가 길동에게 물었다.

    “횬아, 댜음 스케쥬른 머예요?”

    “명동에서 위대한 목소리 팬 사인회가 있어.”

    “아, 그러큐냐?”

    “왜 긴장돼? 은우야.”

    길동은 은우가 첫 팬사인회에 긴장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긴장할만하지. 아직 그렇게 많은 팬들과 만나본 적이 없을 테니.’

    은우가 말했다.

    “횬아, 이짜냐요. 배거파요.”

    길동은 생각했다.

    ‘아기는 봐도 봐도 모르겠어. 성인은 하루에 보통 3끼를 먹는다곤 하지만, 사실 바쁘면 한 끼를 먹어도 별말 안 하는데. 남자친구도 그랬지. 일단 배가 고프다고 하니 식당으로 가야겠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힘들다는데 일을 시킬 수는 없지.’

    길동은 아이돌인 ‘남자친구’에게는 혹독한 매니저였지만, 은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곤 하였다.

    “뭐 먹고 싶어?”

    “쨔쟝면, 거마어요. 횬아.”

    은우가 작은 손으로 길동의 커다란 손을 꼬옥 잡았다.

    ‘이 말랑말랑한 감촉, 횬아가 너를 꼭 지켜줄게. 은우야.’

    길동은 근처의 유명한 중국집으로 차를 몰았다.

    길동이 들어서자마자 주문했다.

    “자장면 두 그릇이랑 탕수육 하나요. 시간이 없어서 최대한 빠르게 부탁합니다.”

    “헤헤헤헤헤.”

    은우가 웃고 있었다.

    “왜 웃어?”

    “씬냐서요. 짜쟝면 머겨서 행보카고. 특히 횬아랑 머겨서 너무 죠아요.”

    길동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그래야 잘 크지. 은우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참지 말고 말해.”

    “니예 니예 니예 니예.”

    드디어 자장면이 나왔다.

    길동은 빠르게 자장면을 비벼서 은우 앞에 놓아주었다.

    은우가 박수를 쳤다.

    “와, 횬아 너무 머쪄요. 너뮤 쟐 비벼요. 마디게땨. 쟐 머께뜸니댜.”

    은우가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길동도 빠르게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길동은 면발을 크게 집어서 젓가락으로 휘휘 돌린 뒤 자장면을 먹었다.

    세 젓가락 만에 자장면 한 그릇이 사라졌다.

    “와, 횬아.”

    은우가 길동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자, 횬아가 인제부터 은우 먹는 거 챙겨줄게.”

    길동은 가방에서 아기용 포크를 꺼내더니 자장면을 돌돌 말아 은우에게 주었다.

    은우가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자, 탕슉도 먹어야지.”

    길동이 은우가 자장면을 먹는 중간중간 탕수육도 먹여주었다.

    은우는 입에 자장이 묻어서 자장 범벅이 됐지만, 기분이 좋았다.

    “횬아, 너무 마디떠요. 행보캐요.”

    길동은 생각했다.

    ‘은우야, 너만 행복하다면 이 횬아는 뭐든지 할 수 있단다. 근데 자장 묻은 모습 너무 귀여운데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구나. 너무 슬프네. 손이 세 개라면 좋겠다.’

    ***

    은우는 길동과 함께 명동 한복판에 서 있었다.

    위대한 목소리 배급사인 KJ 엔터테인먼트의 홍보팀에서는 사원 김혜란과 인턴 김길우가 함께 나와 있었다.

    김혜란이 말했다.

    “제가 여기 분위기 보면서 준비하려고 10시에 도착했는데, 6시부터 줄 서신 분을 만났어요. 있다가 그분 인터뷰 따고, 또 프리허그 할 때 사진도 특별히 크게 찍을 예정이에요.”

    “나라면 전날 10시에 와서 텐트를 쳤을 거예요. 우리 회사 이벤트만 아니었어도 참가하는 건데.”

    김길우가 아쉽다는 듯이 맞장구쳤다.

    은우는 이렇게 많은 팬들을 처음 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숫자로만 들었지 관객들을 직접 눈앞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오백만 관객의 힘이 대단하긴 하구나.

    너투브나 드라마, 영화촬영 때까지만 해도 내 팬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었는데.

    나를 보기 위해 다리가 아픈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셨다니 친절하게 대해드려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팬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어.’

    길동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예상 인원 몇 명으로 잡고 진행한 행사예요? 지금 명동 골목길 하나가 다 가득 찼는데 경호원 3명밖에 안 붙이신 거예요?”

    김혜란이 대답했다.

    “사실 저희도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라서. 팀장님께 연락해서 사설 경호업체를 더 불러올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어요.”

    “그치만 매니저님께서 일당백이실 거 같은데요. 경호원 2명보다 매니저님 한 분이 더 나을 거 같은데.”

    듣고 있던 김길우가 말을 보탰다.

    길동은 생각했다.

    ‘체격이 좋은 건 매니저로서 큰 장점이긴 하지만, 되도록 내가 나설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니저는 첫째도 둘째도 연예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더군다나 은우는 아직 네 살이야.

    순간 방심했다가 깔리거나 다칠 수도 있어.’

    홍보팀의 이 대리가 차에서 내려 인파를 헤치며 걸어오고 있었다.

    김혜란이 이 대리를 알아보고 말을 시켰다.

    “대리님, 주말인데 여긴 웬일이세요? 오늘 쉬시는 날이시잖아요?”

    “와, 사람 많아서 너무 힘들다. 이 짧은 거리를 헤쳐오는 데 30분 걸렸네. 아오 땀 나.”

    이 대리가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방금 팀장님께서 전화 주셨는데, 사설 경호업체에서 인원이 5명 더 배치될 거라고 그러더라고.

    우리 은우가 인기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는 소리를 듣고 왔지.

    경호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은우를 지켜주려고.

    십 분 후면 두 시구나.

    프리허그 이벤트 시작 시간.”

    “네, 준비대떠요.”

    듣고 있던 은우의 예상치 못한 답변에 모두들 놀랐다.

    길동은 생각했다.

    ‘녀석, 어른들은 걱정투성이에 긴장돼서 죽겠는데. 해맑기만 하네.

    하긴, 긴장하면 연예인 못하지.

    천상 연예인이다. 너.’

    은우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대의 카메라가 뿜어대는 셔터에 정신이 없었다.

    ‘대체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네. 처음 드라마 찍을 때보다 더 정신없잖아. 그땐 정해진 동선 안에서만 움직이라고 하셔서 얼마나 어려웠던지. 선을 그어놓은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감인데.

    온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고 있으니 각도가 맞지 않는 카메라에서는 이상하게 잡히고 있을 텐데. 이러다 흑역사 사진 건지게 되는 건 아닐까?’

    길동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은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열띤 취재 경쟁이군.

    메인 신문사의 연예기자는 총출동한 거 같네.

    광고 없이도 이렇게 모여줬으니 내 일이 줄어든 건가.

    이제야 김태현 실장님이 하신 말이 실감 나네.

    은우를 월드 스타로 잘 키워봐야겠다.’

    그때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시작하였다.

    “오늘 프리허그 이벤트는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의 500만 관객 돌파 이벤트로서 KJ 엔터테인먼트와 뷰박스가 함께 후원하고 있습니다.

    은우군, 여기 포토존 앞으로 나와서 팬들과 기자분들에게 인사말을 부탁해도 될까요?”

    은우가 포토존 앞에 섰다.

    포토존에는 ‘위대한 목소리’의 은우 버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 장은 은우가 ‘내 운명은 내가 바꾸는 것’이라는 메인 테마곡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고, 다른 한 장은 비눗방울을 만들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은우는 자신보다 커다란 대형 포스터 앞에 서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길게 말해도 영화의 감동을 해칠 것 같고, 너무 짧게 말하면 진지해 보이지 않을 것 같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래도 이런 상황에 제일 중요한 건 진심이겠지?’

    고민하던 은우가 입을 열었다.

    “눈나, 횬아, 감샤햠니다. 그러케 이뻐하셔서 감샤햠니댜.

    더 열심히 하께요. 시망시키지 아늘께요.

    따랑햠니댜.”

    은우는 귀엽게 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순간 서서 바라보고 있던 팬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

    “악!!!”

    명동 일대가 날아갈 정도로 큰 환호성이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여기 모인 관객의 숫자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환호성이었습니다.

    은우 인기 정말 대단하네요.

    자, 그럼 첫 번째 팬분부터 프리허그 이벤트 시작하겠습니다.

    자, 첫 번째 분 어디서 오신 누구신가요?”

    “네, 저는 은평구에서 온 은우눈나 오미희라고 합니다. 새벽 6시부터 돗자리 펴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아, 새벽 6시부터요. 허리 아프셨겠다. 여기 바닥도 딱딱할 텐데.”

    “은우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으스러져도 괜찮습니다. 참, 제가 이번에 은우에게 소속사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은우 소속사 사장님, 은우 굿즈 좀 제작해 주세요. 제가 통장이 텅장이 될 때까지 사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첫 번째 분이시라 제가 은우군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여쭤보려고 했는데, 은우가 아니라 소속사 사장님께 말을 남기셨네요. 자, 매니저님 어디 계세요? 매니저님?”

    갑자기 호명된 길동은 정신이 멍해서 손을 바짝 들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매니저님 강라온 사장님께 은우 굿즈 전달 부탁드립니다.”

    길동이 알았다는 듯, 오케이 싸인을 보냈다.

    “네, 잘 전달해 드린다고 합니다. 은우에게 하고 싶은 말 없으세요?”

    오미희는 갑자기 울먹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우야, 누나가 공황장애가 심하게 와서 사람도 못 만나고, 집에만 틀어박혀서 지냈었는데, 처음 널 너투브에서 만나고. 그.... 그때 잠 잘 오는 노래 들으면서 불면증도 극복하고 조금씩 사회생활도 하게 됐어. 그리고 니가 나왔던 ‘내일도 사랑해’도 그렇고 이번에 영화 속에서 불렀던 많은 노래들도 누나에게 큰 위로가 됐어. 그래서 태어나 줘서 너무 고맙고...”

    갑자기 감정이 북받친 듯 울기 시작하는 오미희.

    은우가 천천히 걸어가 울고 있는 오미희를 뒤에서 살짝 안아주었다.

    오미희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말캉한 감촉에 놀랐다.

    ‘아, 캐러멜 같이 달달하고 기분 좋은 냄새. 아기 냄새다. 작고 앙증맞은 손이 날 쓰다듬고 있어. 너무 부드럽고 너무 따뜻하다.’

    모두가 숨죽이고 은우와 오미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감동적인 순간을 기록해야만 해.’

    그때 한 사진기자가 셔터를 눌렀다.

    은우와 오미희를 향하고 있던 관중의 시선이 모두 사진기자를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여기 있는 사람들의 감동을 깨트린 것인가.’

    옆에 있던 사진기자가 넌지시 방금 셔터를 누른 사진기자의 손을 잡았다.

    사진기자를 알았다는 듯, 카메라를 잡은 손을 떨구었다.

    관중의 시선이 다시 은우와 오미희를 향했다.

    그때 은우가 작은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운며은 나를 비껴가찌만 나능 굴하지 아나.

    이 기릐 끄테서 다시 기를 차즐거야.

    운며은 정해진 게 아니야.

    나능 거부하꺼야. 부디치꺼야.”

    오미희는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빛을 찾을 수 없었어. 그때 은우가 한 줄기 빛이 되어 내 곁에 찾아왔지. 그때 처음 들었던 은우의 목소리처럼 지금 은우의 목소리에서도 빛이 나는구나.

    은우가 나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다니. 오늘은 내 평생에서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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