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46화 (46/257)

46화. 월드스타를 향하여 (7)

듣고 있던 홍보팀장 강나현이 소리쳤다.

“아니, 필모그래피 조사를 해오라고 했더니, 단체로 팬질하다 온 거야? 객관적으로 브리핑을 해야지. 이렇게 사심 가득한 브리핑을 하면 어떻게 해?”

이 대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전 팀장님이 자료 조사시키시기 전까진 몰랐는데, 자료 조사하다가 입덕했습니다. 정말 너무 귀엽습니다.

이번 영화 ‘위대한 목소리 : 파리넬리’도 보시면 정말 이게 파리넬리의 일대기라서 절대 귀여워야 하는 영화가 아닌데, 너무 귀엽습니다. 왜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극장에 보러 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신입사원 김길우가 이 대리를 변호하듯 말을 이었다.

“팀장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우리 은우가 진짜 대단한 아기라고요. 미혼부의 아기로 태어나서 엄마도 없고, 제가 ‘내일도 사랑해’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 드라마 시청률 일등공신도 은우예요.

은우가 나올 때마다 순간 시청률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아세요? 사람들은 그게 백수희 대표작이라고 하지만, 백수희는 숟가락만 얹은 거라고요.

은우가 아파서 병원에 실려 가는 장면에서 제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리는 줄 알았어요.

은우 호적 생기는 날 팬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세요? 저는 그때 은우가 호적 못 받는 줄 알고 국민청원도 했었어요.

만약 호적 못 받으면 헌법재판소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대한민국 헌법이 왜 대한민국 아기를 보호하지 못하냔 말이에요.

그렇게 응원하고 키운 은우란 말이에요.”

김길우는 감정에 복받쳤는지, 갑자기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홍보팀장 강나현은 당황해서 김길우에게 티슈를 빼 주며 말했다.

“울지 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남들이 보면 내가 때린 줄 알겠다.

난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객관적이어야 하니까. 일을 좀 잘해 보자고 한 거지.”

하지만 김길우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어뜨케.... 객꽌저길 쓔갸 이써요.”

강나현이 김길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은우 팬이 되더니 말투도 은우 닮아가는 거야? 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런 순수한 맘을 몰라보고.”

강나현은 생각했다.

‘고작 네 살짜리 아기가 팬덤이 생각보다 대단하네. ’위대한 목소리 : 파리넬리‘ 홍보는 무조건 은우가 살리겠어.

근데 네 살짜리가 저렇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단 말이야? 호적도 없던 미혼부의 아기에서 해외 영화까지 출연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이거 소설감인데.

친한 기자 몇몇에게 기획기사 좀 넣으라고 해야겠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야.’

***

존은 은우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Ho 엔터테인먼트 앞에 내렸다.

‘건물이 너무 멋진데. 크기도 너무 크고 현대적이잖아.’

지하 5층, 지상 10층. 오백 평 규모에 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듣기로는 한국의 엔터 산업도 상당히 발달해 있다던데 정말 그렇군. 탑보이즈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기도 했고 말이지.’

존이 입구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강라온이 존을 맞이했다.

“나이스 투 미트 유. 위 아 웨이팅 포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존은 강라온의 유창한 발음에 놀랐다.

‘동양인치고는 발음이 매우 좋네. 미국에 살았었나. 그런데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청바지라니. 스티브 잡스 같은 컨셉인가. 괴짜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은우는 어디 있지? 실물을 빨리 보고 싶은데.’

존이 말했다.

“회사가 매우 멋지군요. 은우는 어디에 있나요?”

“은우는 녹음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가시면 바로 은우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어요.”

존과 강라온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녹음실로 향했다.

존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은우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은우를 보게 된다니, 설레는데. 과연 내가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귀여운 아이일까? 실제 성격은 어떨까?

기대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을까?’

작업실의 문이 열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은우가 달려와서 배꼽 인사를 했다.

“하이. 이츠 프레주어 투 미뜨 유.(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존은 귀여운 배꼽 인사와 영어에 넋을 놓았다.

‘맙소사. 이건 이 나라의 인사법인가. 우리는 보통 손을 흔드는데, 손을 배에 귀엽게 포개고 고개를 숙이잖아. 이렇게 예의 바르게 귀여운 느낌은 처음이야.

생각보다 발음도 좋아. 내가 준 노래 가사뿐만 아니라 영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나 봐. 에릭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저 아인 언어 천재인 거야. 전 세계로 발돋움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지. 멀티링구얼이라는 거.’

강라온이 은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면서 말했다.

“현재 저희 회사 차원에서 은우에게 전담 영어 선생님을 붙여놓았습니다. 아마 겨울나라 2의 OST가 세상에 나올 때가 되면 은우의 영어 실력도 더 늘어있을 겁니다.

작년 겨울나라 2의 개봉일이 1월 16일이었으니, 아마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겠죠?

그때는 은우가 영어 인터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존은 강라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OST를 기대하고 온 거긴 하지만, 현재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의 상승세가 무섭다고 들었어요. 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은우도 영화 홍보를 함께할 수도 있겠죠.

오늘 HO 엔터테인먼트에 오고 나니 은우에 대한 대표님의 비전이 겨울나라 2 OST 이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리하시군요. 저는 은우를 세계적인 가수로 키울 생각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 디즈니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구요. 겨울나라 OST를 시작으로요.”

존은 생각했다.

‘세계적인 가수라. 은우라면 못 이룰 꿈도 아니지? 하지만 저 나이의 가수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한 적이 있었던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다섯 살 때 그의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로 활동한 적이 한 번 있긴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동양인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마이클 잭슨에겐 춤이 있었지.’

마이클 잭슨의 팬이기도 했던 존은 마이클 잭슨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잭슨 파이브 때 영상은 지금도 가끔 보지만, 천재란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영상이지.

하지만 난 월드 스타는 천재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대중의 사랑은 능력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건 천운이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니까. 대중만큼 뜨겁고 대중만큼 차가운 게 어디에 있을까.’

존은 기대 어린 시선으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녹음실에 들어간 은우는 노래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주가 흘러나왔다.

“두 유 어너 메이크 어 뜨노우볼? 두 유 어너 메이크 어 윈드.(당신은 눈으로 된 공을 만들 수 있나요? 당신은 바람을 만들 수 있나요?)”

존은 순간 얼어붙었다.

‘맑고 청아한 음색.

영상을 통해 봤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목소리야.

은우는 얼굴도 귀엽고 예쁘지만, 국보급 보이스를 지녔어.

와, 내가 이 자리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군.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런 축복을 주셔서.’

존은 자신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감동 오랜만이야.

어느샌가 음악이 직업이 되다 보니 순위에 집착하고, 판매량에 집착하면서 그렇게 살아왔지. 팔리는 음악을 해야 내 가치를 인정받는 것만 같았어.

내가 작곡한 음악이 더 많은 곳에서 울려 퍼지길 바란다는 이유로 나 자신이 느끼는 감동은 안중에도 없었군.

음악을 듣고 울어본 적이 언제였지?

내가 작곡한 노래가 이렇게 감동적으로 들리다니.

고맙다. 은우야. 내가 작곡한 노래에 날개를 달아줘서.’

강라온은 눈물을 흘리는 존을 보며 생각했다.

‘디즈니의 음악 감독을 울릴 수 있을 정도의 노래라.

은우를 꼭 월드 스타로 키우겠어.

내 이름을 걸고.’

***

데일리 신문 유채린 기자는 은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조용한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홍보팀에서 대략적인 필모그래피는 받아준 상태고. 어제 미리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 영화도 보면서 할 질문도 다 뽑아놓은 상태고.

보통의 아역배우와는 다르게 할리우드에서 쌓아가고 있는 필모그래피라.

소문에 따르면 HO 엔터의 수장 강라온이 캣걸스와 레이니 다음으로 찍어놨다고 하고.

디즈니의 겨울나라 2의 OST도 녹음하기로 돼 있다던데.

대체 얼마나 대단한 아기인 거지?‘

보통의 아역배우들과는 다른 필모그래피에 유채린 기자는 장우를 만나기 전부터 기대감이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은우는 길동의 손을 잡고 커피숍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

유채린 기자는 입구에서 들어오는 한 아이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아이가 분명하다고.

'피부도 동양인치고 너무 하얗고 쌍꺼풀이 정말 크네. 그런데 실물이 정말 넘사벽이다. 저대로만 커 준다면, 지금 얼굴 천재라고 받들어지는 아이돌들 중에서도 탑일 거야.’

은우는 길동에게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은우야. 오늘 은우가 인터뷰를 할 거야. 기자분이 질문을 하시면 생각해 보고 은우 생각을 말하면 돼.”

은우는 생각했다.

‘대체 어떤 걸 물어보려는 걸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 좋아하는 캐릭터? 가장 좋아하는 만화영화?

다시 가보고 싶은 곳?

미리 대답을 생각해봐야 하나.’

유채린 기자가 은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은우 군.

오늘 인터뷰를 할 건데 편안하게 얘기해주면 되고, 끝나고 사진도 몇 장 찍을 거예요. 뭐 먹을 거예요?”

“아슈크림.”

“아, 아슈크림 차차. 진짜 똑같이 말하네. 영상에서 본 거랑.”

은우는 신이 나서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며 아슈크림 차차 춤을 보여주었다.

“아슈크림 챠챠.”

유채린 기자가 같이 박자를 맞춰 주었다. 옆에 있던 사진기자가 놓치지 않고 은우가 춤추는 모습을 찍었다.

“이번 영화 위대한 목소리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은우는 생각했다.

‘힘들었던 점은 전생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는 거요. 그런데 좋았던 점도 사실 그거였어요. 전생을 돌아보는 그런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다들 모르거든요. 살아있을 때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죠.

근데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

은우가 고민하는 듯이 보였는지 유채린 기자가 이어서 말했다.

“음식이 맛이 없었다든지, 날씨가 너무 더웠다든지 그런 거 말해도 괜찮아요.”

은우가 대답했다.

“히믄 안 들어써요. 연기가 재미써서요. 파리네에 대해 땡각해떠요. 왜 노래릉 부르고 시퍼해뜰지.”

유채린 기자는 의외에 대답에 놀랐다.

‘아까 아슈크림 차차 춤을 출 때는 영락없는 아기더니, 이렇게 인터뷰할 때는 금방 저 아기 같은 말투로 프로 같은 대답을 하는구나.

아직 나이가 어려서 쉬운 질문들만 준비해 왔는데, 좀 더 어려운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

유채린 기자가 은우에게 물었다.

“‘내일도 사랑해’는 드라마였고 이번에 찍은 ‘위대한 목소리’는 영화였는데, 본인에겐 어떤 장르가 더 잘 맞다고 생각하나요?”

은우는 생각했다.

‘드라마는 설거지하다가도 보는 게 드라마고, 영화는 극장 안에 와서 준비된 자세로 보니 다르긴 하지.

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영화냐 드라마냐 하는 것보다는 그 작품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일도 사랑해’는 가족들이 시청하기 좋은 일일드라마에다 잔잔하게 가는 힐링 드라마여서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위대한 목소리’는 파리넬리의 일생을 다룬 영화여서 파리넬리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 음악을 하면서 행복해했는지,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 했는지를 연기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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