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89화 (89/300)

# 89

혼란에빠진 일본정부

“일본정부는 각성하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야합하는 건설사 사장들은 물러가라!”

“이번사건에 책임이 있는 사카모토 국토교통성 장관과 코지마 차관의 사퇴를 요구한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과 단체들이 외쳤다.

지금까지 수도인 도쿄에서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시위는 별로 없었다.

일본국민들의 정치참여나 집회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이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는 경제는 세계 3위지만 정치의식은 중위권에도 못미친다는 말까지도 나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일본시민들이 집회에나온 이유도 단순히 정치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부분과는 완전히 틀렸다.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느끼며 살아야 하는 지진문제.

지진다발 국가이고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피해를 겪었던 국가의 일원으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나온 것이다.

일본은 지형적 특성때문에 지진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대자연의 섭리다.

대신에 일본은 과거부터 지진을 예측하고 그 피해를 줄이는데 최대한 노력했다.

그것으로 일본은 지진공학과 내진설계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는 지진공학과 기술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일본국민들과 네티즌들도 지금까지 개발된 내진설계와 지진공학 기술로는 기껏해야 진도 6.0~7.0 수준이 한계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지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예민한 것이 일본국민들이다.

지진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주변인들이 지진때문에 다치고 죽는 걸 목격했던 일본인들.

그들에게 야스오 박사팀이 개발해낸 면진설계의 최신공학과 진도 9.5의 강도까지 버티는 실험성공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드디어 일본이 지진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10대 건설사들과 일본정부는 자신들이 누려왔던 이권을 내려놓기 싫어서 비밀담합을 한 것이다.

거기에는 일본국민의 세금과 함께 엄청난 예산으로 연구비를 타먹었던 일본의 주류학계도 동참했다.

이런 사건에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의 감정은 극에까지 올랐다.

지금까지 특별한 정치참여도 없이 조용했던 일본시민들이 본격적인 행동에나선 이유였다.

“이거야말로 엄청난 특종인데. 며칠 전부터 일본내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여론들이 심상치 않더니 드디어 터졌군.”

“지금까지 조용했던 일본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다니? 일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군.”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지진문제는 최우선 사항이었다는 뜻이지. 그런데 일본정부는 이것을 안일하게 대처했으니 제대로 역풍을 맞은 것이지.”

취재나온 CNN-기자들이 대화하였다.

50만명 이상이 모이는 도쿄 집회에는 전세계의 방송국과 언론사의 취재진들이 경쟁하듯이 보도를 하였다.

카메라맨들이 현장의 분위기와 영상을 실시간으로 찍었고 리포터는 시위에 참가한 도쿄시민과 인터뷰를 하였다.

“실장님. 벌써부터 미국의 CNN을 포함해서 영국의 BBC. 그리고 세계의 유명 방송국과 언론들에서 긴급속보로 나가는 중입니다.”

“인터넷 댓글들도 장난이 아닌데요.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일본의 대규모 집회에 대해 응원하는 분위기입니다.”

박광석팀의 후배두 명이 대답했다.

나와 박광석팀은 도쿄집회가 벌어지는 현장에 나와 있었다. 집회를 주도하는 <전일본 지진안전협회>의 간부들이 연단에올라 큰 소리로 연설을 진행했다. 그들은 이번 집회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하였다.

미리부터 시민단체들과 연계하며 세력을 불렸다. 또한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집회의 시기와 장소를 알렸다.

여기에 대해 일본정부와 10대 건설사들은 무시하거나 과소평가 했다. 집회가 열린다해도 기껏해야 몇천명 정도가 최대일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제까지 일본인들의 시위참여가 소극적이었기에 이번에도 대충 몇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틀렸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선배님. 일본정부도 멍청하군요.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일본에서 지진문제가 가볍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는데. 일본에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란 일본 국민들에게는 지진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완전히 놓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일본정부가 지금까지 일본국민들을 그냥 개, 돼지쯤으로 보면서 자신들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리고 여태까지 일본 국민들도 정부에 대해 순응적으로 살아온 부분도 있었고 말이지. 하지만 일본국민들도 정치나 경제문제등에 대해서는 일본정부와 대립하지 않고 그럭저럭 순응할 수 있지만 지진문제는 완전히 틀리지. 자신들의 생명과 미래가 걸려있는 것이니까.”

“선배님의 말씀을 듣보고니 도쿄에만도 5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거리로나온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두 명의 후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박광석의 분석은 정확했다.

“이 정도의 규모와 기세라면 시작은 좋은 편이군요. 앞으로 일본정부가 얼마까지 버틸거 같습니까?”

“오늘 집회에만도 도쿄에서 50만명 이상입니다. 또한 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내의 도시들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집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집회에 대해서는 전세계로 뉴스가 나가는 상황입니다. 지금 집권중인 자민당이 아무리 10대 건설사들과의 유착이 있다 해도 이 정도 사건에서는 그들도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의 예상으로는 많아 봐야 1주일이고 운이 좋다면 그전에 판가름 날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자금 투입을 개시해야 할 순간이군요.”

“물론입니다. 안그래도 70% 정도는 이미 투입된 상태이고 며칠안에 나머지 자금도 우리가 타겟으로 삼은 <닛케이 225 지수>와 관련된 파생상품 쪽으로 전환시키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승부는 결정된 셈이군요.”

박광석을 향해 대답하며 진행 중인 집회상황을 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계에서 모여든 기자들의 취재열기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행부인 <전일본 지진안전협회>가 집회를 개시한 시간은 도쿄내의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과 맞추었다. 이것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퇴근해서 집으로 가거나 동료들과 술집이나 식당으로 향하던 도쿄의 샐러리맨들. 그러나 오늘은 집회참가를 위해 나온 것이다.

참가한 인원들 중에는 한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양복과 넥타이를맨 인원들도 꽤 보였다.

그리고 일본의 주부들도 상당수 참가했는데, 그녀들은 아이와 함께 유모차까지 끌고나왔다.

이런 모습이 주변에 있는 각국의 취재진들에게 포착되었고 영상들이 전세계로 방송되었다.

“실장님. 이제는 일본 주부들의 유모차부대도 등장했군요.”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나왔던 현상인데, 이제는 일본도 한국의 시위문화를 따라하게 될 거 같습니다.”

“앞으로 일본사회가 어떻게 바뀌어갈지 기대가 됩니다.”

박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진문제라는 이슈를 통해 촉발되었지만 오늘의 도쿄집회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

“일본정부가 제대로 궁지에 몰린 거 같습니다.”

박광석의 그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도쿄에서부터 시작된 대규모 집회.

그것이 일본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일본의 대형 일간지들과 방송에서는 매일 지진안전 시위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일본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유행처럼 번저가는 상징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하나가 <지진에서 안전한 일본> 또는 재팬 세이프티(Japan Safety)라는 마크다.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일본전국을 강타하는 중이다.

그 외에 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도 등장했다. 단번에 일본전국이 지진에 대한 이슈로 뒤덮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국민의 안전을 등한시하고 10대 건설사들과 담합을 한 일본정부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페이스북이나 SNS를 통해 진행 중인 지진안전 시위에 대해 동참하거나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일본내의 유명인들에게 번졌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일본 정부에서는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시위에 참가중인 시민들에게 자중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것이 더 큰 분노를 일으켰다.

특히 각종 커뮤니티와 언론에서는 이번사건에 가담한 국토교통성 장관과 차관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극렬하게 나타났다.

거기에더해 일본총리는 책임을지고 내각총사퇴까지 하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다. 일본 정부로서는 어설픈 대응과 함께 국민감정을 자극하면서 더 큰 수렁으로 빠지는 상황이었다.

“실장님. 굿뉴스입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조금 전 NHK 방송에서 발표한 것인데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의 수뇌부를 포함해서 총리, 그리고 내각의 각료들이 긴급회의에 들어갔다는 연락입니다.”

박광석팀의 후배들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지진안전 집회를 우습게 보다가 심각성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특히 현 집권당인 자민당의 원로들이 모두 참석했다는 건 지금부터 상당히 큰 뉴스가 나올 예정이라는 뜻이다.

“설마 총리를 포함한 내각총사퇴라는 결과가 나올까요?”

“그 정도까지는 힘들겁니다. 일본내에서 선거를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총사퇴를 한다면 집권여당인 자민당도 승산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라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역시 피해를 막기 위해 적당한 수준에서 꼬리자르기가 되겠군요. 현재 일본정부로서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 비밀회의에 일본의 고위급 관료가 두 명 참가했다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그 때 모임에 참석한 사카모토 국토교통부 장관과 코지마 차관은 목이 달아날거 같군요.”

“그것만으로도 10대 건설사들이 받는 충격은 상당할 테니 상황은 우리 쪽에 유리합니다.”

박광석 팀원들이 대답했다.

일본으로 유입시킨 50억 달러.

5조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들은 일본증시의 핵심인 <닛케이-225 지수>를 베이스로한 각종 파생상품에 배팅해놓은 상태다.

50억 달러의 자금들 중에 85% 정도를 그렇게 배치했고 나머지 15% 정도는 10대 건설사들의 주식에 대한 공매도와 기타 선물등에도 배팅했다.

“벌써부터 닛케이 지수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사건에 포함된 10대 건설사들의 주식은 단기간에 폭락하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면 일단 10대 건설사 주식들에 대한 공매도만으로도 짭짤하게 수익이 나오는 상태인데요.”

“하지만 제대로 잭팟이 터질려면 메인으로 투자한 <닛케이-225 지수>가 폭락을 해줘야 하는 것이지요.”

“이미 10대 건설사들의 주식이 내려가면서 <닛케이-225 지수>가 급락하는 상황입니다.”

일본정부와 집권당인 자민당의 수뇌부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는 뉴스만으로도 도쿄증시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관망세를 지켜보던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투매에 나섰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닛케이-225 지수>가 전일대비 3%까지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쪽의 목표수치는 얼마입니까?”

“현재 <닛케이-225 지수>를 베이스로한 다양한 파생상품들에 배팅한 상태인데 주력이 되는 닛케이 지수가 10% 이상 급락한다면 5~6배 정도까지의 수익이 가능합니다.”

“일본정부가 어떤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일본증시가 받는 충격의 크기가 달라지겠군요.”

박광석을 향해 대답하며 모니터를 지켜봤다.

팀원들이 준비한 여러 대의 모니터들에는 현재 진행 중인 일본증시의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NHK-방송의 속보가 나간 뒤에 일본정부의 청사쪽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든 상태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중요회의에 대해서는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언론사들에서는 게스트들이 출연해서 이후의 발표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다.

“정치부 칼럼니스트인 오자와씨는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예측하고 계십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정확한 예측을 하기 힘들지만 일본전국이 지진에 대한 이슈로 들끓는 상황인 건 사실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중에는 내각총사퇴까지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일본정부가 이런 이슈들에 대해 대응해온 과정을 볼 때에 문제가된 국토교통부 장관과 차관을 해임시키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연 그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 앉을까요?”

“글쎄요. 아직 장담하기는 힘듭니다.”

그 때 아나운서의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조금 전 긴급속보가 또 들어왔습니다. 일본정부에서는 이번사건에 문제가 되었던 10대 건설사 사장들에 대한 출두지시를 내렸고 그들이 정부청사를 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NHK-방송의 아나운서가 흥분된 음성으로 발표했다. 잠시 후 화면은 정부청사에 나가있는 취재진과 리포터로 바뀌었다. 그리고 검은색의 고급 차량들이 계속해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실장님. 이건 대박인데요.”

“일본정부가 제대로 각오를 한 거 같군요.”

“그들도 적당한 수준에서 눈가림식으로는 안된다는 걸 깨달은 거 같습니다.”

10대 건설사 사장들이 소환되어 정부청사로 들어가는 광경이 실시간으로 방송되자 일본증시와 금융시장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10대 건설사들의 주가들은 폭락했고 <닛케이-225 지수>도 단번에 5~6%까지 하락했다.

이윽고 무수히 많은 예측과 혼란이 난무하는 가운데 일본정부가 공식발표를 위해 나왔다.

화면에 드러난 일본총리의 침통한 표정이 현재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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