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14)화 (114/306)


#114. 이름을 빼앗긴 자
2022.11.22.


쿠르릉…….

점차 두께를 더해 가는 먹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이름 모를 새가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며 두꺼운 구름 아래를 둥글게 맴돌고 있었다.

비록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처한 이 상황은 단순한 조난이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히든 업적 달성 - ‘원혼의 탐식자’ 10마리 처치!]

[던전 네크로폴리스(Necropolis)가 활성화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순간 은하는 확신했다. 현재 복계산은 던전화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던전화 현상’은 은하도 여태 두세 번밖에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즉 흔한 일은 아니란 소리였다.

던전(Dungeon)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는데, 가장 널리 쓰이는 의미로는 ‘현실도 게이트도 아닌 또 하나의 특수한 공간으로 변모한 장소’를 말했다.

보스를 해치우면 균열을 닫을 수 있는 보통의 게이트와는 달리, 던전은 ‘토벌’이나 ‘공략’이 불가했다. 내부에서 무한에 가깝게 재생하는 몬스터 탓이다.

이미 등장해 버린 던전으로부터 민가를 지킬 방법은 완전 폐쇄 혹은 완전 소탕.

헌터 입장에서 던전이 게이트보다 나은 점은 단 한 가지. 던전화가 완전히 진행되기 전이라면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 빠른 시간 안에 던전 내부 체계나 조건 따위를 파악해야 하는 만큼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저조.

쿠구구구…….

낮게 진동하는 땅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어디선가 아렴풋이 들려오는 정체 모를 웃음소리. 어둑해진 공간에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하는 붉은 전구들.

─공간이 변화하고 있었다.

“…….”

은하는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둡게 물든 그것은 하늘이라기보다는 낮고 검은 천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하늘 저편, 그 끝자락에 어슴푸레한 노을이 걸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시간이 있어.’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주홍색 빛줄기를 바라보며 은하는 확신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왜 지난 20년간은 괜찮았던 거지?’

이곳은 게이트의 잔재였다.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협회 요원들이 주기적으로 몬스터 개체 수를 관리하거나 튜토리얼을 위해 헌터들이 방문했다고 했는데…….

만일 요정형 몬스터가 등장한다는 정보가 있었다면, 장미 길드는 시험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분명 그 사실을 전달하였을 터.

‘그동안 요정형 몬스터가 등장한 적이 없었던 걸까?’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저기 사람들이 보이는군. 다들 하산을 포기하고 모여 있는 모양이야.”

광대저씨가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저 앞을 가리켰다. 비록 산을 완전히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중간 지점에서 다른 헌터들과 합류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도 어서 가세. 발걸음을 서두르는 광대저씨의 뒤를 은하는 조용히 따랐다.

시험에 참여한 헌터는 백여 명. 그러나 그곳에는 서른 남짓의 헌터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거나, 반응 없는 단말기와 휴대전화를 꼭 붙들고 있었다. 장미 길드에서 지원군이 오리라는 아렴풋한 희망을 품은 채. 아예 나무 그늘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은 자도 보였다.

두려움, 불안, 절망, 분노, 한숨…….

그러한 것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어두운 공간에, 또다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던전 동기화 ▶ 11.2%]

[던전 동기화 ▶ 11.9%]

[던전 동기화 ▶ 12.0%]

시스템창 팝업 주기가 짧아질수록 주변 헌터들의 동요는 커져만 갔다.

“아무래도 이 던전, 조건을 달성할 때까지는 탈출할 수 없는 종류인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숲이 이렇게 미로처럼 바뀐 게 설명이 안 되잖아.”

[던전 동기화 ▶ 13.1%]

“건슬링어랑 샤인 J가 주변을 둘러보러 갔으니 뭔가 단서라도 얻어서 돌아오겠지. 우선 기다리자고.”

[던전 동기화 ▶ 14.5%]

“바깥에서도 이 상황에 대해 눈치챘을까?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 이럴 줄 알았으면 남해안 게이트 작전 지원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C급 게이트나 적당히 지원하는 거였는데!”

“이봐, 저길 봐! 나무들이……!”

[던전 동기화 ▶ 16.0%]

스스스스…….

주변 나무가 기이하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불어온 바람에 단순히 나뭇가지가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뭐, 뭐야!”

스산한 공기 속, 누군가가 기겁하여 외쳤다.

그럴 만했다. 거칠거칠한 나무껍질 위로 꾸물꾸물 주름이 지더니, 나무마다 각각 표정이 생겨나고 있던 것.

웃는 표정. 우는 표정, 화난 표정……. 그중에는 세계적인 명화(名畫) 뭉크의 ‘절규’를 닮은,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도 있었다.

검은 숲을 빼곡하게 채운 나무들이 제각각 표정을 자아내고 있는 광경은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어디선가 까르륵하고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누구도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그곳의 전원이 알고 있었다.

──방금 그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던전 동기화 ▶ 20.0%]

[달빛을 대신하여 붉은 등불이 차례로 켜지기 시작합니다. 이곳은 곧 근사한 무대가 될 것입니다.]

‘무대?’

은하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스템창에 적혀 있던 내용대로였다.

공중의 전구들이 머리 위나 나무 등의 주변을 가리지 않고 더 높이 떠올랐다.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이 숲 전체에 마술이 걸린 듯한 광경.

그러나 붉은 빛에 비친 검은 숲은 더할 나위 없이 오싹했다.

“자, 잠깐. 다들 이 소리 안 들려?”

누군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쿵짝쿵짝…….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북소리. 흥겨운 박자 위로 익살스럽게 미끄러지는 나팔 소리까지.

마치 놀이동산 퍼레이드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처럼 신나는 선율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것인지, 누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공연장 같아.’

은하는 눈앞에서 빠르게 변모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불현듯 밀어닥치는 이질감.

시스템창에서 확인한 이 던전의 명칭은 분명 네크로폴리스, 즉 무덤이란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오색찬란하고 화려한 광경은 무덤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쿵! 쿵! 쿵!

귀를 울리는 북 장단은 점차 빨라졌다.

주변에 무성하게 뻗어 있던 수풀이 어느덧 사라지고 검은 연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던전 동기화 ▶ 23.1%]

[관객이 몰려옵니다. 멋진 공연을 준비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십시오.]

──관객?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이윽고 걷혔을 때 은하는 그곳에서 바글바글하게 모인 스켈레톤을 발견했다.

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

순식간에 이곳을 둘러싼 수많은 해골들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턱관절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서, 설마 이 많은 스켈레톤들을 다 쓰러트려야 하는 거야?”

“젠장! 모르겠고, 일단 놈들을 해치우고 생각해!”

한 헌터가 욕설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그가 불끈 손에 힘을 주는 순간, 그것이 거대한 곰의 앞발로 변했다.

얼핏 보아 육체강화계 헌터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저것은 변화계에 가까운 능력이리라.

그는 망설임 없이 스켈레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휘익!

주먹이 볼품없이 공중을 갈랐다.

헛스윙? 그럴 리가. 남자가 멀뚱멀뚱 자신의 주먹과 눈앞의 스켈레톤을 번갈아 응시했다.

스르륵, 그의 주먹이 다시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거…… 실체가 아니야.”

따각─

남자의 말에 반응하듯 스켈레톤의 턱관절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진다.

따각따각따각…….

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

뼈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점차 빨라진다. 혼미해졌던 정신을 겨우 다시 붙잡았을 때, 이곳은 더 이상 숲이 아니었다.

[던전 동기화 ▶ 30.0%]

[무대의 주인을 소개합니다!]

빠바밤─!

위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에 모두가 홀린 듯 고개를 들었다. 먹구름 아래로 공중그네가 떨어져 내렸다.

“헉……!”

누군가 헛숨을 삼켰다.

본 것이다. 그곳에 거꾸로 매달린 저 기괴하리만치 기다란 그림자를.

목을 정확히 90도로 꺾고 다리보다 긴 팔을 양쪽으로 쭉 뻗은 ‘그것’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활짝 웃는 얼굴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Lv.60 ‘????’가 등장합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만이 그를 무대로 이끌 수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무대의 주인이 피날레를 장식하지 않는 이상, 이 무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흰자위와 검은자의 경계가 알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물든 눈알. 붉게 칠한 입술은 반쯤 녹아내려 구강 구조가 훤히 보였다.

우드득. 90도로 꺾고 있던 목을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꺾은 그것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린 광대저씨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왜 이곳에…….”

공중그네에 매달린 ‘그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광대저씨. 은하의 시선이 살짝 그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막이 오릅니다!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세요!]

툭. 투둑투둑…….

무언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비? 아니다. 고무로 만들어진 공이었다. 놈이 공격해 온 것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선명한 색의 그것들을 바라본 한 헌터가 외쳤다.

“피하세요!”

그 외침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헌터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산개했다.

폭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 다른 함정.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저것이 그냥 공은 아니리라고.

그런데.

“…….”

“…….”

적막.

땅에 닿자마자 폭발할 줄로만 알았던 공은 의외로 멀쩡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헌터 중 누구도 바닥의 공을 건드리지 않았다. 모두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상황인 만큼 경솔한 행동만은 피해야 했기에.

모두가 굳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싸늘한 공기를 틈타 앞으로 나선 이가 있었으니.

“여러분,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했습니다.”

푸른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양손으로 거머쥔 여성이 모두의 앞에 섰다.

샤인 J. 건슬링어와 파티를 맺은 B급 헌터로, 방금 전 모두에게 회피 신호를 보냈던 자였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그곳에 모인 헌터들에게 각각 황금빛 반투명한 보호막이 형성됐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비상용 버프. 큰 공격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폭발의 여파 정도는 막아 줄 것이다.

모든 인원에게 보호막이 형성된 것을 확인한 그녀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던전에 보스 격의 존재가 있는 거라면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저것만 해치우면 탈출의 열쇠를 거머쥘 수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샤인 J는 힐끗 뒤를 향해 눈짓했다. 그녀의 파티원이자 최고의 파트너, 건슬링어를 향하여.

그러자 미리 목표를 조준하고 있던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

건슬링어가 총 스코프에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스르륵 들어 올렸다.

‘조준 사격’ 패시브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 일정 거리 안에서 그의 사격은 백발백중일 터. 심지어 샤인 J의 ‘축복’ 버프를 받고 있는 지금은 평소에 비해 위력이나 속도도 증가했을 텐데…….

[던전 동기화 ▶ 36.3%]

어째서 놈은 여전히 저곳에서 히죽대고 있는 거지?

“이봐, 제대로 쏜 거 맞아?”

샤인 J가 못 미더운 눈빛을 보내 왔다. 건슬링어는 짧게 혀를 찬 뒤, 다시 한번 스코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 소용없을 리 없어. 확신을 담아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앙!

…….

툭, 총을 아래로 떨어트린 건슬링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놈은 멀쩡했다.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기보다는 애초에 놈에게 닿기도 전에 총알이 모조리 튕겨 나가는 듯한─.

“그런 걸로는 소용없어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런 거?”

건슬링어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드레스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청명한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아까 팝업된 시스템창을 보지 않았나요? 뜨거운 박수와 환호만이 그를 무대로 이끌 수 있다.”

보스와의 전투 전, 달성해야 할 조건이 있는 겁니다. 여자, 은하는 공중그네에 거꾸로 매달린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 ‘조건’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은하도 알 수 없다.

다만 힌트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숲에서 한순간에 서커스장으로 변해 버린 필드를 유심히 지켜보면 어딘가에는 분명.

등장은 했으나 움직이지도, 공격하지도, 심지어 공격받지도 않는 보스. 나무 대신 기둥이, 달빛 대신 붉은 전구가, 흙 대신 융단이 깔린 기묘한 필드. 실체가 사라지고 ‘관객’이 된 스켈레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들.

이것은 던전 동기율이 100%가 되기까지의 싸움. 즉 현재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력보다도 판단력, 판단력보다도 눈썰미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던 은하가 힐끔 어디론가 시선은 던졌다. 멍하니 공중그네를 올려다보고 있는 광대저씨가 보였다.
얼핏 보면 단순히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아니야.’

만일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면, 방금 전 하늘에서 공이 쏟아졌을 때 피하거나 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대저씨는 그러지 않았다.

“자네…… 자네가 왜…….”

제자리에 선 채, 공중그네에 매달린 ‘그것’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

그러니 은하는 생각했다. 아마도 저것은 동요.

“무언가 알고 계신 거죠?”

은하가 광대저씨에게 물었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듯한 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은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라도 좋으니 짐작 가는 바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지금 상황에서는 작은 정보 하나하나가 중요하니까.”

“아…….”

광대저씨가 어렴풋이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그가 E급 컨셉 헌터인 것을 알고 묻는 겁니까?”

근처에 있던 한 헌터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랭크로는 던전화 현상은커녕 일반적인 중급 난이도 게이트조차 제대로 소탕한 이력이 없을 텐데요.”

이건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였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광대저씨는 입을 열다 말고 도로 다문 것이다.

그러나 은하의 생각은 달랐다.

“전투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닙니다. 정보를 모아 그것을 토대로 움직이는 것이 먼저죠.”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하지만 내 말은, 그런 중요한 정보를 왜 그에게 묻느냔 겁니다.”

“그럼?”

시선을 비스듬하게 올린 은하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르륵, 새까만 머리카락이 흰 뺨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은하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이 상황에 대해 뭐라도 눈치챈 사람이 또 있나요?”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헌터계에는 랭크라는 것이 생겼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만큼 세상이 변한 것이니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인정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건 랭크와는 무관한 문제였다.

“그녀 말이 맞아요.”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샤인 J가 기다란 지팡이로 탁, 땅을 짚었다.

“우선 그의 말을 들어 봅시다.”

이 중에서 가장 랭크가 높은 B급 헌터. 그녀의 말에, 헌터는 불만 섞인 얼굴을 풀지 않으면서도 결국 입을 온전히 다물었다.
은하는 힐끗 광대저씨를 향해 눈짓했다. 말씀하세요. 그런 의미였다.

광대저씨는 그제야 주춤주춤 말문을 열었다.

“……우리 공연은 늘 저글링으로 시작했었네.”

─우리?

광대저씨를 응시하던 은하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만일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도 이 공은…….”

말끝을 흐린 광대저씨는 무릎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던전 동기화 ▶ 43.4%]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그리고 다섯 개까지 주워 든 그가 그것을 공중에 가볍게 던졌다.

휙, 휙, 휙…….

그리고 시작된 저글링 쇼.

“아저씨, 지금 대체 무슨─.”

뜬금없는 그의 행동에 한 헌터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입을 여는 바로 그때였다.

띠링!

[관객들이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

멈춰 있던 스켈레톤들이 다시 턱관절을 움직이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번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개골을 마구잡이로 흔들거나 앙상한 팔을 들어 빙글빙글 휘젓기도 했다.

‘……기뻐하고 있어?’

스켈레톤의 변화를 응시하던 은하가 다시 광대저씨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바로 뒤에서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공중그네가……!”

띠링!

[공연장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 찼습니다!]

[Lv.60 ‘이름을 빼앗긴 자’가 무대로 내려옵니다.]

부우웅, 탓.

공중그네에서 ‘그것’이 내려왔다.

[던전 동기화 ▶ 50.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