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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42화 (242/293)

242화

- 지식의 신과 진실의 일부 (1)

[ 그렇습니다. 마법의 신이여. ]

여느 때와 같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저 기계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엄연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때마다 오색의 구가 반짝거렸다.

정우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육체는 어디로 가고 정신만 남아서 이렇게 기이한 형태로 남은 것인지.

왜 이런 선택을 한 건지, 중간 과정을 알지 못하니 이 기이한 상황엔 확신했던 것조차 흐려질 정도로 모호한 감정이 일었다.

지식의 신이 맞나?

그의 생각을 전달하는, 통신 관련 아티팩트는 아닌가?

여러 번 고민했지만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지식의 신은 제 육체를 버리고 이러한 형태를 취했다.

아니, 어쩌면.

[ 제 본신에 대한 생각이라면, 이것이 저의 본체입니다. ]

지식의 신이 생각을 읽은 듯 대답했다.

“……독심이라도 배운 건가?”

[ 그럴 이유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합당한 대답을 내놓는 것 역시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면 가능한 법이니까요. ]

“대도서관이 네 본체였다? 그럼 내가 보았던 자는?”

[ 지식의 보고엔 온갖 이능조차 다 담겨 있습니다. 마녀 일족만이 저의 권속이 아닙니다. 여러 권속이 있지만 실질적인 권속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들이니… 하늘 아래 가장 커다란 나무의 아량으로 최고의 눈과 귀를 얻었으며, 그 대가를 지불하기로 하여 제 권속이 된 작은 정령들이 저의 가장 큰 눈과 귀입니다. ]

“……정령체.”

역시 지식의 신과 세계수는 훨씬 전부터 협력 관계였다.

[ 맞습니다. ]

정령체는 정령사의 비기 중 하나로 정령의 힘을 받아들여 육체적인 이능을 개화하는 것이었다.

정령은 힘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뉘었다.

정령 자체로는 별다른 등급이 없다지만 구분하기 좋아하는 인간은 정령을 몇 등급으로 나누었으며, 정령사와의 호흡을 중점으로 수준을 분류했다.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정령왕 이렇게.

그중에서도 상급부터는 정령체가 가능했는데, 최상급 이상부터는 정령의 힘이 어지간한 정령사의 힘보다 강하여 오히려 정령의 운영에 몸을 맡기게 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런 정령체를 다룬다면.

[ 제가 활동하기에 적합한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

“…정령의 기운은 안 느껴졌는데?”

[ 그 또한 제 지식 속에 담긴 여러 이능으로 해결하였습니다. ]

“…좋아. 아무튼 이렇게 본 건 처음이군. 내가 찾아온 이유는 알겠지?”

[ 여러 가정이 있습니다만, 육체의 일부에서 느껴지는 부정한 마력을 통해 합당한 결론을 유추하였습니다. ]

지식의 신의 이어지는 말에 정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기에.

전혀 다른 내용이었으며, 자신의 속을 가장 어지럽게 만들던 내용이었기에.

[ 그대는 결국… 패배하였군요. ]

“……!”

* * *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처음엔 우연으로.

다음엔 필연으로.

혹은 어떠한 과정이 트리거가 되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형태로.

여러 이유로 정우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기억의 일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누군가를 죽일 때.

어떠한 사건 속에서.

또한 세계수의 묘목을 얻는 과정에서 기억을 되찾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로드(Load)?”

세이브와 로드.

문득 그 개념이 떠오르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더 이상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정우는 눈앞의 광경에 한참을 가만히 주시했다.

이번 기억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었다.

정령체.

지식의 신의 본체가 다루던 이의 시점이었으니까.

때문에 보는 장면은 자신은 알지 못하는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억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렇게 가까운 데서 날 관찰하고 있었다고?’

눈으로 보는 장면의 대부분엔 자신을 비롯한 친우들이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가까이 오진 않아도 큰 행사나 전투엔 빠지지 않고 참여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하기야 상급 이상의 정령사는 인간 중에서는 씨가 마를 정도로 드문 직업이었으니, 그 대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을.

그것도 옛 육체를 보는 건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연이은 전투에 참여했으며, 때때로 부상을 입어 결장하며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끊임없는 승리의 역사가 주춤한 건, 동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죽음의 땅을 조사하기 위해 나갔을 때였다.

신이 있다면.

특히나 마법의 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던 이의 첫 패배는 수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섣불리 건드리기가 어려워 정복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다니엘 영주가 물러선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끊임없이 어둠의 숲이 등장했다.

물러서고 정복당하는 나날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며, 최후의 최후까지 고민해야 하는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위에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

정령의 존재감이 기이할 정도로 옅어진 어느 날이었다.

“……?”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묘한 감각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귀찮을 정도로 재잘거리던 음성이 가만히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옅어졌다.

스스로 붙여 준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본성에서 소란이 일었다.

“설마!”

기감이 예민한 사람들만이 기이한 이변을 느끼고 밖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때문에 정원 앞엔 극히 드문 수의 인원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이 느낀 감각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극소수의 인원 중에는 또 다른 영웅들이자 최후의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은 감히 따르기조차 버거운 강자들.

그들이 소란의 주범이었다.

“……이거, 뭔가 잘못된 거 맞지?”

“안나! 로이! 제이! 너넨 왜 침착한데? 뭔가 들은 거 있어?”

“그만해!”

“…왜 다니엘이 모든 걸 짊어져야 하는 거야?”

“……그만, 하자.”

다니엘이라는 이름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도시의 영주이자 마지막 남은 왕국의 왕.

청탑의 탑주이며, 마법 체계를 전부 뒤바꾼 불세출의 천재.

‘…어디 간 거지?’

그러고 보면 항상 친구들 틈에 섞여 있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다 짊어진다?

‘……설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건 여러 건물과 그 뒤편으로 한참이나 지나가야 보이는 조그만 성벽이 전부였지만.

두근.

왠지 그 너머에 그가 있을 것만 같았다.

‘패배했었잖아. 공략은 불가능한 게 아니었어? 설마… 혼자 들어간 거라고?’

정령체가 아니기 때문일까.

간만에 멍한 정신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바짝 회전했다.

수많은 가정 중에 가장 적합한 가정을 꺼내었다.

공략.

‘…맙소사!’

그것이 영웅들과 자신의 결론이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했을까?

어둠의 영역이 점점 더 남은 땅을 침범하고, 끝내 이 도시를 집어삼킬 정도까지 되어 버렸기에.

‘그가 나선 걸까?’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나설 이유가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괜스레 심장이 떨렸다.

이 도시에서 다니엘을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작은 질시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뛰어난 군주였고, 영웅이었으니까.

모든 대륙을 집어삼킨 거대한 힘 앞에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종족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다니엘, 바로 그였다.

반대로 말하면 그가 무너진다면 이 세계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죽음?

그게 두렵다면 이 도시 사람이 아니었다.

청탑의 주변으로 몰려든 인원들 중엔 전투가 불가능한 여러 인물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목숨을 내던져야 다니엘이 살 수 있다면 전부 다 웃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이 도시는 다니엘과 오랜 역사를 함께해 왔다.

그 도시가 최후의 도시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다들 마지막 순간에 왕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오로지 이곳만이 그것이 가능했기에.

그렇기에 다니엘의 행보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홀로 어둠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는 것이 알려지면.

‘……소란이 커진다!’

“그만…. 더 이상 소리치는 건 용납하지 않아.”

“용납? …내가 마법사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나?”

스릉!

검까지 꺼낸 기세가 날카로웠다.

그 검끝을 마주하게 된 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용납이란 단어까지 꺼낸 것치고는 무심하다 싶을 정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반응에조차 영향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두 눈에도 보이는 상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애처로움만이 가득했으니까.

“…젠장!”

결국, 사내는 검을 바닥에 푹 소리 나게 꽂았다.

“……우리는 결론을 내렸어.”

“…결론? 다 같이 구하러 가는 건가?”

“아니. 후일을 위한 결론.”

“……!”

사내의 몸이 덜컥거렸다.

그 광경을 보며 숨을 죽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령과 함께하는 순간부터 자신은 유독 여러 사선을 눈에 담는 일이 많았다.

참여하지 않는다.

그저 눈에 담을 뿐이다.

그게 정령과는 관계없는 자신만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관찰.

보고 듣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지금도 존재감을 죽인 채 가만히 상황을 주시한다.

“…다들 모여 주세요.”

여자가 말했다.

청탑주이자 유일한 왕을 제외하곤 가장 뛰어난 마법사란 평을 받는 안나 드 훼인이었다.

어쩌면 왕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정원에 나와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두를 불렀다.

그녀의 음성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비단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으니까.

가까이 다가가서 본 영웅들의 면모는 인세엔 다시없을 장면이었다.

세 명의 소드 마스터와 두 명의 대마법사.

주술의 끝을 본 대주술사에 정령왕의 계약자까지.

그뿐인가.

신기에 달한 궁술의 소유자인 엘프와 세상의 모든 광물의 지배자인 드워프까지.

이름만 들어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인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자주 본 장면이었지만 이들 사이에 함께 있으니 뭔가 모를 감격이 목구멍을 뜨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불길함이, 이곳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속엔 가득했다.

그가 없었기에.

유일한 왕, 다니엘이.

“우리의 왕께선 어둠의 영역의 공략에 나섰습니다.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배를 염두에 둘 정도로 그는 약하지 않습니다. 오 일을 기약하고 떠난 싸움입니다만, 자신감의 표현일 뿐 더 길어질 거란 게 저희의 예상입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예상이 현실이 된 순간, 괜스레 심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과연 그는 이 사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인가.

‘내 힘은 왜 이렇게 약해진 거지?’

그렇게 생각하자 불현듯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왕의 친우이자 정령왕의 계약자이며, 과거 한 종의 수장이었던 엘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차분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당황, 한 거지?’

그녀가 당황하고 있었다.

평온을 가장했지만 두 눈에 담긴 기운은 분명히 당혹과.

‘……경악? 무엇에? 정령의 기척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여러 생각이 바삐 오갔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정령.

그들이 하나같이 제힘을 잃었다면, 이건 간단히 넘어갈 내용이 아니었다.

적어도.

‘세계수! 세계수에 문제가 생긴 거야!’

왕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지탱해주던 한 힘의 존재에 이변이 생긴 게 틀림이 없었다.

“……하여, 우리는 정비를 하며. ‘단절의 결계’를 넘어 신의 고목으로부터 ‘씨앗’을 얻을 생각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은근히 시선을 마주친 두 여성이 슬쩍 아랫입술을 동시에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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