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어둠의 마력 (6)
부정한 힘.
그 힘을 정우는 어둠의 마력이라 정의했다.
악의를 느끼는 것도.
메아리가 인식 자체를 뒤바꿀 정도의 정신적인 능력을 지니게 된 것도.
더불어 너무도 가볍게 상대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도.
정우는 스스로의 변화를 느꼈다.
로드와 싸울 때의 자신이었다면 이토록 가볍게 수르트와 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재차 달려들려고 준비했던 수르트의 신형이 휘청거릴 정도로, 스나이퍼의 공격을 가볍게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안에 담긴 파괴력만큼은 감히 경시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저격에 필요한 온갖 능력만을 욱여넣은 것 같은, 그런 일격이었다.
마력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스킬의 한계를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만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일격이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
소음과 기척, 마력 감지는 물론 역장에.
누구를 노렸던 건지 쉬이 짐작이 갈 정도로 염동력에 대한 반작용까지 가미되어 있는 일격이었다.
물리적으로, 마력적으로 뛰어나더라도 당하는 순간 최소한 치명상을 피할 수 없는 일격.
그것 느낀 건, 다름 아닌 어둠의 마력 덕분이었다.
가만히 서서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어둠의 마력의 흐름을 읽었던 때처럼.
기어이 정복하여 지워 버렸던, 기억나지 않는 순간처럼.
어둠의 마력을 다루기 시작한 정우의 힘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수르트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물론, 뱀파이어라는 존재 때문에 정우의 위치가 드러나게 되면서 습격의 기회를 주게 되었고.
예상치 않은 결말로 하루라는 시간을 꼬박 머물렀기 때문에 결국 습격을 당했지만.
차라리 수르트에게는 뱀파이어와의 전투 이전의 정우가 더 승산이 있었을 터였다.
클로를 양손에 낀 수르트의 움직임은 전에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수르트가 아니라 발키리를 상대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암살에 특화된 여러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잡아먹은 거냐.’
하지만 정우는 그 모든 스킬이 그의 재능이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스킬을 빼앗기 위해 집어삼킨 수많은 생명의 무게가 자신을 압박하는 느낌이 들어 정우의 표정은 점점 더 싸늘해져만 갔다.
까앙!
지팡이로 등 뒤의 기습을 쳐 낸 정우가 자세를 잡는다.
강탈의 능력.
그런 능력은 없었지만 정우 역시 수많은 능력을 보유하게 된 사람이었다.
다름 아닌, 어둠의 영역에서.
창술, 악의 감지, 염동을 비롯한 수많은 능력을 습득한 건 어둠의 마력을 통해서였다.
정우는 시스템의 직업을 변경했다.
오러를 돌리고, 강대한 신체의 힘을 깃들게 만들었다.
마스터.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지팡이를 움켜쥔 손아귀로부터 검은 연기가 은근히 흘러나왔다.
황금빛이 뒤섞인 은색에 가까웠던 오러가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목도하면서도 발작적으로 스킬을 사용하며 움직이는 수르트는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순간 저 지팡이의 끝이 자신의 목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어렵지 않게 생각했던 전투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마왕과의 전투보다도 더한 무력감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수르트는 욕설을 삼켰다.
뱉을 정신도 없었다.
검은 오러가 맺힌 창을 휘두르는 움직임은 결코 자신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비스듬히 솟구치는 창날은 비수와 같았고, 빙글 회전하여 내리치는 창날은 도끼와 같았다.
고작해야 지팡이 끝에 맺힌 오러라고 보기엔….
‘이건… 거짓말이야…!’
마력의 양, 밀집도, 강도에 활용도까지.
모든 것이 자신을 뛰어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무시당하던 순간.
우연찮은 기회에 능력 하나를 얻게 되어 자신의 스킬의 진정한 사용법을 깨닫게 된 때.
불의 마법사라 불리는 천재를 노리고 계획을 짜던 때.
그 힘을 얻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마왕의 눈에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것은 경외였다.
더불어 질시였다.
마왕의 힘은 강탈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고, 무심한 눈동자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발가벗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했고, 차이가 나는 자신의 수준에 절망했다.
또한, 강탈의 가능성조차 없음에도 질시했다.
재능?
타인의 재능을 빼앗는 재능만큼 강렬한 재능이 어디에 있다고!
마왕이 종적을 감춘 이후로 끊임없이 마왕의 수준과 자신을 비교했다.
그러다 본 한정우는 나름의 큰 충격이었다.
구멍이 뚫려 대체 무엇이 완성될까 염려스러울 정도의 재능.
그에게 제물의 인장을 새긴 것은 묘한 기대감 때문이긴 했지만, 타인의 재능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 구멍 난 판에 자신의 재능을 연결시킨다면 무언가가 완성될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자신의 존재감을 버틴 의지력 또한 높이 살 만하나, 재능 감별의 능력으로 본 한정우의 재능이 기묘했기에 관심이 갔던 게 더 사실이었다.
언제든지 키워서 잡아먹을 수 있는 상대.
그에게 있어서 한정우는 그랬다.
이렇게….
쿨럭!
“……끝이다.”
검은 오러가 배 속을 파고들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막대한 통증이 온몸을 파고든다.
고작해야 그 정도였다면 몸을 빼냈을 텐데.
‘…이게… 무엇이기에… 내 힘을, 갉아먹는 거냐….’
배를 관통하자마자 마력이 사라진다.
온몸을 누비던 막대한 마력이 구멍 뚫린 바닥으로 다 내려간 것처럼, 이내 텅 비어 버린다.
마력을 각성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무력감과 탈력감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일반인.
새 시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열성 종자들의 그것이 떠오르게 만드는, 무력함.
그런 자신을 가만히 주시하는 상대의 눈빛은….
“날…….”
전날의 무력감조차 한낱 여흥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그런 눈으로…….”
서늘하게 무심히 가라앉아 있었다.
“보지… 마…….”
퍼엉!
……라.
끝내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한 수르트의 육신이 폭사한다.
정우의 마력을 견디지 못한 채로.
그토록 바라던 새 시대의 초월자가 아닌….
자신이 강탈한 타인의 모든 재능을 고스란히 잃어버린 채로.
갈망의 부정이, 고스란히 그에게 임했다.
[ 마력이 성장합니다. ]
[ 부정한 마력이 오러에 들러붙습니다. ]
[ 오러의 성질이 변화됩니다. ]
[ 부정한 마력의 적용으로 직업이 변화합니다. ]
[ 적합한 직업을 탐색합니다. ]
거기까지 등장했을 때였다.
정우는 이 시스템의 정체를 직감했다.
이를 증명하듯,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지식의 보고에서 ‘죽음의 기사’를 적합한 직업으로 판단합니다. ]
[ 직업 : 죽음의 기사 ]
“…대도서관.”
정우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렸다.
승부는 끝났다.
유서린과 스나이퍼의 전투를 본 정우는 ‘마력의 성장’을 내버려 둔 채 당장의 갈증에 심취했다.
끼릭.
열쇠를 꺼내 돌린다.
메아리의 외침을 뒤로 한 채로.
정우는 게이트를 넘었다.
순백의 공간.
회랑으로.
* * *
걸음이 빨라진다.
텅 빈 공간.
온통 흰색만이 가득한 공간을 거닐 때마다 마법처럼 책장이 나타난다.
빼곡한 책장을 가로지르는 정우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전면만을 주시할 따름이었다.
마녀들의 인사조차 무시한 채로.
정우는 생겨나는 모든 책장을 무시하며 걷고 또 걸었다.
이내 달리듯 회랑을 가로지른다.
수없이 많은 책장이 지나간다.
마녀의 역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의 요람.
타닥, 타닥!
거칠게 내달리던 정우의 걸음이 천천히 느려진다.
책장과 책.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열람하는 마녀를 제외한다면 그저 사방이 막힌 채로 길게 이어진 복도와 같은 그것의 끝에.
언젠가 한 번 궁금하여 걷고 걸었을 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 그저 책만 열람하고 끝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무언가가 나타났다.
순백의 벽에 달린, 순백의 문이.
정우는 여러 교차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문 앞에 섰다.
이곳이 대도서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숨이 가빠진다.
만감이 교차했다.
잃어버린 기억.
예정과는 다른 결말에 도달한 현실에 대한 의문까지.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이 문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지식의 신.
오로지 그만의 터전의 문을.
철컹.
정우가 문고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잠겨 있다는 표식처럼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전이었다면.
어둠의 영역 속에서의 기억을 되찾기 전이었다면.
정우는 아마 여기서 방법을 찾겠노라며 발길을 돌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츠츳!
정우의 손아귀로부터 검은 안개가 뿜어진다.
그것은 문을 갉아 버릴 것처럼 요란하게 문과 부딪치며 스파크와 소음을 만들어 냈다.
반발력에 정우는 손을 떨어댔지만, 앙다문 입술만큼이나 굳은 눈빛은 조금의 타협도 없었다.
‘…으윽!’
반발력은 강력했다.
최근 들어 느낀 모든 통증을 압도할 만큼의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가지 개념이 정우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부정의 검.
검의 신이 남겼던, 자신만의 비기를.
어둠의 마력을 오러에 담아 수르트를 없앤 후, 시스템은 자신의 재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어둠의 마력으로 인한 재능 따위를, 제아무리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감별해 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죽음의 기운을 다루는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를 자신의 두 번째 직업으로 판단했다.
지식의 신조차 어둠의 마력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당연히도 그에 따른 지식을 쌓은 적이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직업을 판단하는 데엔 성공했다.
아예 정체불명의 기운이라 여겼다면.
해당 기운과 비슷한 것조차 찾지 못해 오류를 일으켰을 터.
‘놈은… 내가 어둠의 영역에서 나온 뒤에 날 만난 적이 있어.’
치익, 츠츳, 끄극!
요란한 소음을 무시한 채로 정우는 문의 개방에 전력을 다했다.
‘부정(否定)의 검은… 검의 신이 심득을 얻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야. 창이라도 좋겠다는 이유는 내가 마법사이기 때문에. 아니, 그가 검사이기 때문에 무기라는 제약을 무의식중에 떠올린 탓이야. 중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어둠의 마력이 오러에 깃든 것처럼. 더 중요한 건….’
핏줄까지 도드라졌던 정우의 모습이 안정을 되찾아 간다.
단호하긴 하나 일그러졌던 표정 역시 평온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지식의 보고.
지식의 신의 비밀이자 그의 모든 기록이 담겨 있는, 대도서관의 문이.
끼릭!
정우의 손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열쇠를 돌릴 때의 가동음과 함께.
화악!
이내 눈을 찌를 듯 쏟아지는 밝은 빛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거렸다.
살짝 눈을 찌푸렸던 정우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통증을 지웠다.
문 안의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대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회랑이 더 넓고 방대했을 정도였다.
안쪽 역시 순백의 공간이었다.
어지간히 흰색을 좋아한다 싶을 정도로, 새하얀 공간이었다.
하지만 사방이 새하얀 공간 가운데에 놓인 구체만큼은, 오색으로 빛나며 이질적인 모습으로 정우를 반기고 있었다.
마치 은은한 형태의 미러볼과 같은 모양새로.
‘…….’
정우는 방안으로 발을 디뎠다.
등 뒤로 닫히는 문의 기척을 느끼며, 정우는 구체 앞에 섰다.
지식의 보고.
대도서관.
이계의 존재로만 이 자리에 섰다면 회랑과도 같은 책장을 찾느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테지만.
지구의 기억을 가진 정우는 이러한 물건을 알고 있었다.
바로 컴퓨터였다.
“자신의 모든 기록을 이곳에 남긴 건가, 지식의 신?”
치직.
[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반갑군요, 마법의 신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