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32화 (132/293)

132화

-실종자 (5)

시청의 도면을 건네받는 건 굳이 사사키를 통할 필요가 없었다.

“지역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직위가 있으니까요.”

초롱초롱해진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하시모토는 사사키와 통화할 때보다도 더 정우를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보았다.

빌런을 잡는 플레이어.

성장과 보상에 목이 마른 플레이어는 대게 빌런을 잡아야겠다는 목적의식이 희박했다.

옆 나라 한국이 얼마나 청정 지역이 되었는지.

연이어 올라오는 기사를 보며 부러워했었던 하시모토였다.

빌런 전담팀.

그런 팀이 있다면 보직을 옮길 생각조차 있었을 정도로, 하시모토는 정의로웠고 악에 대한 반감이 확실했다.

-저러다가 골로 가겠네요. 능력이나 키울 것이지.

메아리가 혀를 찼다.

추적술에 직감까지 가진 존재는 흔치 않았다.

제대로 성장만 했다면 이름을 좀 날렸을 재능이, 성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사용되는 게 아쉽기만 했다.

“이곳을 보십시오.”

여러 루트를 보던 하시모토가 모두를 불렀다.

“음?”

이진수가 하시모토가 가리킨 곳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요?”

아무리 도면을 볼 줄 모른다고 해도, 하시모토가 가리킨 곳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막힌 곳인데요?”

그가 가리킨 곳이 외벽의 일부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곳이 수상하오.”

“……?”

하지만 하시모토는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력하게 주장했다.

“교토 시청이 반파되었다가 다시 건설한 건 알고 있소?”

격변의 시대에 파괴된 건물과 문화유산은 많았다.

한국의 용산과 종로.

즉, 청와대와 이전한 집무실까지 모조리 날아간 것처럼 말이다.

교토 시청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일본인 특유의 노력이 가미되었지만, 내부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상은 4층이오. 그리고 지하는 3층이지.”

“그래서요?”

“이건 지하 3층의 도면이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설명하자면, 지하 2층과 3층은 동일한 폭으로 지어지지 않았소. 모두 같은 폭인데, 이곳만 다르지.”

“……다르다고요?”

이진수는 아무리 봐도 똑같은 도면처럼 보였다.

지하 3층부터 1층까지는 그 크기와 형태가 동일했다.

지상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진 블록을 쌓아 올린 것처럼, 도면은 동일했다.

그나마 다른 건 회의장의 유무.

그 또한 서너 개의 칸을 합친 사이즈로, 나눠 놓고 보면 동일하게 지어져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1미터 정도 폭이 사라졌소.”

“지하 3층에서만요?”

하시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길이를 대조해 보면 아주 미세하게 차이를 둔 것을 확인할 수 있소. 그 차이는…….”

“아뇨! 거기까진 됐어요.”

이진수가 손을 휘저었다.

“하시모토 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1미터의 공간이 빈다면 하나뿐이지 않겠소?”

“계단.”

“같은 생각이오.”

도면에도 없는 지하 4층이 존재한다면.

‘기억 속에서 보았던 사다리가 그쪽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걸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죠. 지하 4층도 아니고 5층일지도 몰라요.

“음…….”

“결국 잠입해야겠네?”

이진수의 말대로였다.

시청에 다녀온 흔적은 남았는데 시청엔 빌런이 없었다.

지하수로를 연상시킬 만큼의 지하공간이 빌런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일단은 확인부터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빌런들이 움직인 것과 뱀파이어가 연결이 되어 있었군.’

-그러니까요…….

‘빨리 처리해야겠군.’

정우는 곧장 결정을 내렸다.

“진수야.”

“어.”

“넌 이제 대장에게 합류해라.”

“…뭐?”

이진수가 가뜩이나 작은 눈가를 좁혔다.

“눈뜨고 들어.”

“…농담하지 말고. 왜? 너 혼자서 잠입하게?”

“그게 효율적이니까.”

“……후우.”

이진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탱커인 그는 전투에나 어울릴까, 잠입에 어울리는 능력 자체가 없었다.

“젠장.”

또다시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진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리고 김미연 씨도 데려가.”

“…어? 원래 계획상으로는….”

“인근에서 상황 보고, 협조 지원이었지. 의미 없어.”

정우의 말에 이진수가 고개를 들이밀며 속삭였다.

“하시모토는? 외부인인데… 너 혼자 잠입하면…….”

정보가 유출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괜찮아.”

정우는 피식 웃으며 이진수를 안심시켰다.

몇 번이나 불안한 눈빛을 보내던 이진수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섰다.

납득한 것이다.

“좋아. 그럼 먼저 이동해.”

“……알았다.”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이진수는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미리 계획한 대로 유서린과 합류하여, 세이렌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퇴근하는 직원마냥 인사를 건넨 김미연이 이진수를 뒤따랐다.

하시모토는 주춤, 눈동자만 굴렸다.

“이곳만 건드리지 말고, 다른 쪽에서 정보를 모아 주세요.”

실종자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빌런과 맞닿아 있는 순간부터.

하시모토는 한 발을 크게 걸친 셈이었다.

그렇지만 그 역시 시청에 데려가는 건 무리였다.

E급의 낮은 등급.

등급에 비한 높은 능력은 탐이 나지만,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추적 한정이었다.

“괜찮겠소?”

하시모토의 물음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다른 정보를 모으고 있겠소.”

인사를 한 뒤 나서는 하시모토의 등을 보며, 정우가 지시했다.

‘메아리. 보험은 들어야 하니까.’

-알았어요.

메아리의 ‘현혹’의 능력이 하시모토에게 깃들었다.

멈칫하더니 잠시 뒤를 돌아보는 하시모토의 눈엔 애정이 잔뜩 담겨 있었다.

“꼭 다치지 마시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대의 지시를 따르겠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처럼 고개를 숙인 하시모토의 걸음걸이가 결연했다.

“…너무 강하게 먹힌 거 아니야?”

-열혈이니까요. 그나저나 이것도 세뇌의 일부분인데, 괜찮아요?

“괜찮아. 나중에 해제하면 되겠지.”

-열혈이라니까요…….

메아리가 웅얼거렸다.

“일단 잠시 회복하고… 들어간다.”

눈을 빛내는 정우를, 메아리는 묘한 눈으로 보았다.

걱정 속에 은근한 기대가 담긴 눈으로.

날름.

그녀의 본 종족은, 서큐버스였다.

* * *

“인비저빌리티.”

은신한 정우는 천천히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며 본 건.

‘…CCTV가 생각보다 많다.’

협회가 연상될 정도로 빼곡한 CCTV였다.

단 한 곳의 사각지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복도마다 앞뒤로 달린 CCTV도 부족해서 사무실의 문 앞마다 소형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었다.

확실히 수상했다.

정우는 천천히 움직였다.

한국은 플레이어 대호황 시대였다.

최강자도 있고, 상위 등급의 분포도도 타국에 비해서 월등했다.

피라미드 형태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폭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정삼각형처럼.

하지만 일본은 아래가 넓고 폭이 급격히 좁아지는 형태다.

C급 이하의 플레이어는 상당하지만, 막상 B급부터는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E급과 F급의 던전의 수는 많았지만, 플레이어의 수는 그보다 더 많았다.

때문에 재능이 떨어지는 이들은 살길을 찾아야 했고, 더러는 정부 기관의 경비로 취직했다.

일본만큼 많은 플레이어를 다양한 직군에서 만나는 나라도 흔치 않았다.

그뿐인가.

각성 전의 능력을 살려서 본래의 직장으로 돌아가는 플레이어도 많았다.

이곳 역시 사무직으로 일하는 플레이어가 존재했다.

‘…생각보다 많아.’

문제는 그런 수가 예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1층에서만 발견한 플레이어의 수가 스물에 가까웠다.

‘올라가 볼까?’

내친김에 4층까지 파악한 정우의 표정이 슬쩍 굳었다.

백여 명.

등급이 낮다고 해도 이 정도의 인원이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협회조차 막상 근무하는 플레이어의 수는 적었으니까.

시청사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여겨본 정우는 곧장 지하로 향했다.

지하 1층 역시 사무실이 존재했지만, 일부분은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딱딱 들어맞게 짜인 구조가 4층까지 이어지니, 얼핏 보기엔 같은 공간을 오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료실이 많네.’

지하 1층도 별다를 건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각 자료실 중에서도 2 자료실의 입구에 카메라 한 대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

정우는 그곳을 눈여겨본 뒤 지하 2층으로 향했다.

‘…2층이 주차장이었나?’

-아니요. 지하 2층까지는 사무실일 텐데요.

막상 이동한 장소는 사무실이 아닌 지하 주차장이었다.

딱히 차도 많이 세워져 있지 않은, 반쯤 텅 빈 주차장.

‘음…….’

정우는 마지막인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지하 주차장이 있었다.

‘일본 시청에 이렇게 넓은 지하 주차장이 필요한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정우조차 일본이라는 나라가 차량 운행과 주차가 쉽지 않은 곳임을 알고 있었다.

마정석을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이 증가하긴 했지만, 값도 비쌌기 때문에 아직까진 내연 기관차가 많기도 했으니까.

인구가 급감했다고 해서 정책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도 생활 밀접과 관련된 정책은 백 년 동안 그대로 사용되는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차 문화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였다.

실제로 지하 2층과 3층의 주차장은 한 층이 통째로 없어진다고 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주차된 차의 수가 적었다.

그런 정우의 눈에 들어온 건.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검은색 승합차.

열 대가 넘는 동일 브랜드의 승합차가 일렬로 주차가 되어 있었다.

-저기가 거긴데요?

‘…그렇군.’

하시모토가 말한 이상 구간 앞을 승합차가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바리케이드처럼.

‘……하시모토를 만난 장소에 있던 차와 동일하군.’

-그러네요. 저 승합차와 동일한 차량이 그곳에 있었어요.

메아리도 동의했다.

‘네가 먼저 기억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저도 아직 불완전하거든요. 힘의 회복 속도도 더디고요.

‘언제부터?’

-그때, 도살자를 잡는 데 힘을 좀 많이 썼을 때부터요.

‘……!’

생각보다 시간이 흐른 상황임에도 메아리의 회복 속도는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었다.

정우는 그 사실이 거슬렸다.

‘왜 말하지 않았지?’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서큐버스의 특성 때문이겠지.’

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서큐버스의 회복은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다.

어떤 면에서는 ‘뱀파이어’의 흡혈처럼, 부정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동일한 생각이에요.

‘결국 다시 한번 퀸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소리인데….’

-저쪽에서라면 동일한 장소를 방문해 보면 될 일이지만….

‘여기에선 기다리는 게 전부겠지.’

동일한 장소의 던전이 생성될 때까지 말이다.

-괜찮아요. 그래도 상황이 달라서 그런지 회복은 되고 있으니까요.

예전이었다면 오히려 악화되었을 것이다.

정우는 메아리의 머리를 쓱쓱 만지고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을 찾아보지.’

-히히.

메아리의 웃음을 끝으로 둘은 같은 장소를 바라보았다.

승합차의 뒤편.

턱.

메아리는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손으로 짚었다.

-…마정석 가루로 벽을 뒤덮었어요.

여기뿐만이 아니었다.

확인한 바로는 시청의 모든 벽과 문. 그리고 창문까지 마정석 가루가 포함되어 있었다.

‘은신이나 근거리 공간이동을 방지하기 위함이겠지.’

정우도 보통 스킬을 사용했다면 당황한 채로 들켰을 터였다.

‘확실히 차이가 있어.’

하시모토가 말한 부분의 차이가 보였다.

‘문제는.’

-입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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