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실종자 (4)
“지하수로? 지도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사사키의 대답을 들은 정우가 전화를 끊었다.
“지하수로에 뭐가 있어?”
“어.”
“…으음.”
“하시모토 씨.”
“말씀하시오.”
“추적술 외에도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뭔지 말해 줘요.”
사사키와 대화를 나누는 정우를 본 순간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만큼 사사키가 가지고 있는 인지도와 이미지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경찰로 살면서 수많은 범죄와 비리를 목격한 그조차도 믿을 정도로.
단번에 변한 하시모토의 태도에 정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직감이오.”
“직감?”
하시모토는 각성 전의 자신을 설명했다.
그리고 각성한 뒤부터 직감이 보다 강해졌다고 말했다.
“추적술에 직감이라….”
-꿀조합이네요.
“워, 그거 제대로 성장만 했으면 던전에서 엄청 잘 먹혔을 텐데 왜 경찰을 하는 거죠?”
이진수가 물었다.
하시모토는 결연한 표정으로 이진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원래부터 경찰이었소. 각성도 원해서 한 게 아니라, 작전 중에 G급 던전에 생성되어서 부득이하게 각성하게 된 거요.”
“아아….”
‘그러고 보니 한국만큼 G급 던전을 제대로 관리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했지.’
징후 던전과 미징후 던전.
두 곳을 모두 훌륭하게 관리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었다.
좁은 영토의 이점을 톡톡히 보는 셈이랄까.
물론, 옹기종기 모여서 살기 때문에 격변의 시대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으음.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이진수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하시모토와도 곧잘 대화를 나눴다.
어차피 곧 이동해야 하는 이진수와는 달리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경찰이라는 직업도 훌륭하고.
“좋아. 그럼 단서부터 찾지.”
“단서를 찾자고?”
“어. 여기서부터는 하시모토 씨….”
“호칭이 불편하면 그냥 반장이라 부르시오. 직함이니까.”
“반장이 추적을 담당할 거야.”
“뭘 어떻게 하려고?”
띠링.
때마침 전해진 자료를 본 정우가 홀로그램을 띄웠다.
“전투 때문에 조금 파괴된 부분이 있겠지만, 최대한 현장을 보존했어요. 살펴보시고, 안내해 줘요.”
정우가 눈가를 좁히며 말했다.
“다음 꼬리로….”
* * *
“교토?”
정우로서는 알지 못하는 여러 단서를 조합한 하시모토가 한 지점을 짚었다.
“이 비닐은 교토에서만 파는 거요.”
반쯤 타버린 비닐에서 위치를 추적하는 그의 솜씨가 놀라웠다.
나름대로 던전에 들어가긴 했는지, E급까진 성장해 있었지만.
‘재능보단 능력이 떨어지네.’
본래의 능력을 압도하는 재능으로 척척 단서를 찾아 나갔다.
-여기서 끊길 뻔했는데 천운이네요.
메아리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번엔 단서가 끊겨 있었다.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스스로의 이상함을 느꼈고, 몇 번이나 검토하며 당장에 떠오른 사안을 모조리 적어 두었으니까.
레베카도 이지스와 훈련을 하고 나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터였다.
더군다나 의심만 하고 넘겼던 뱀파이어의 존재를 제대로 확인했다.
최소한 백작 위라는 상대의 수준까지 짐작할 수 있었던 상황.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차라리 말이 나았다.’
변해 버린 사자부활에 대한 불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더 정확하고 상세하긴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부분을 콕 짚어서 물어볼 수가 없어.’
[ 망자의 기억 ]
죽은 자의 가장 강렬한 기억을 엿본다.
‘가장 강렬한’이라는 단어가 주는 폐해처럼, 질의 문답으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붉은 실로 이루어진 고치를 바치는 장면.
당시의 기억을 엿본 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막상 그 위치를 알지 못하게 된 상황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도 아니고 일본에서.
수로로 보이는 지하의 공동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사자부활을 믿고 있던 정우로서는 날벼락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하시모토를 만났다.
실종 사건을 뒤쫓는, 추적의 달인을.
“어. 그쪽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으면 수소문해서 정보 좀 얻어 봐.”
더군다나 경찰.
그것도 반장이라는 위치는 엄청난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근데 진짜로 괜찮은 거요?”
“무슨 말이죠?”
“…내 촉만 믿고 움직이는 거.”
“단서를 추적하는 거잖아요. 나쁠 건 없죠.”
“으음… 믿어 주니 고맙긴 한데.”
하시모토가 볼을 긁적였다.
“무슨 작전 중인가 보오.”
대기해 있는 차량에 타자마자 정우는 교토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하시모토는 그대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정우는 정우대로 생각에 잠겼다.
따로 앉은 이진수와 김미연은 나름 달콤한 분위기로 몰래 툭툭 건드리고 있었고.
괜히 심술이 났다.
“작전 중이지. 비밀 연애. 아니, 비밀 첩보 작전.”
화들짝 놀라는 두 사람을 힐끗 본 정우가 짓궂게 웃었다.
“이번 사건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조사해 주었으면 좋았을 뻔했소.”
하시모토는 열혈 형사였다.
마치 일본 만화의 왕도 형사물에 나오는 형사처럼, 올곧고 바르며 추진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주인공처럼 숨겨진 능력도 있었고.
그는 플레이어 조사 기관의 작태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좀 해주시죠.”
정우의 말에 하시모토는 망설이면서도 차분히 설명했다.
이따금 사사키가 차라리 협회의 운영을 꿰차면 좋겠다는 말까지 은근히 흘려대며.
“그쪽, 담당자도 알 수 있나요?”
“당연하죠. 그런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럼 조사 기관의 담당자도 알아봐 줘요.”
하시모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걸었다.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건은 대부분 비리와 관련이 있었다.
정우는 담당자가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새로운 꼬리를 잡을지도 모르겠군.’
뱀파이어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
그것을 보았음에도 움직이기보다는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당연히 조사 당사자를 의심해 봐야죠.
‘하시모토가 저 정도까지 이야기할 정도면… 사사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훨씬 크겠어.’
그쪽은 사사키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정우는 붉은 고치를 떠올렸다.
-그거 개조였죠?
메아리가 알은체를 해왔다.
‘그래.’
-사역에 개조라…. 어느 진조가 움직인 건지 모르겠네요.
‘후우. 귀찮게 됐어.’
뱀파이어는 크게 진조와 일반으로 나뉜다.
로드로부터 피를 받아 각성한 이들을 진조로 부르며 힘의 고하에 따라 ‘작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런 진조에게 물려 탄생한 이들이 일반적인 뱀파이어였다.
따지자면 3세대 뱀파이어인 셈이었다.
진조는 일반 뱀파이어와는 달리 여러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역이었다.
리치의 라이프배슬처럼, 진조는 자신을 다른 그릇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물론, 본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 잠이 드는 거지만, 사역을 할 땐 죽임을 당해서 본체로 정신이 되돌아가니 목숨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
하지만 진조마다 적합률이 높은 객체는 전부 다 달랐고.
사역까지 가능한 객체를 찾는 건, 매우 어려웠다.
정황상.
‘사다코의 적합률이 매우 높았겠군.’
개조를 당한 이는 사다코였다.
개조란 육체가 정신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해, 강제적으로 그릇을 강화시키는 것을 말했다.
안정화와는 다른, 인위적인 성장.
사역은 모든 진조가 가능한 일이었지만.
백작 이하의 진조는 무리를 해야 했다.
만약 가정대로 철원에 뱀파이어가 숨어들었다면.
‘무리를 하는 건 무리야.’
말 그대로 사역까지 해야 할 정도의 무리를 감내하는 건 불가능했다.
즉, 백작 위.
그 이상의 뱀파이어가 지구로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군다나… 외부로 영향을 끼치려면 던전 브레이크까지 발생했다는 소리겠지.’
몬스터가 던전 브레이크의 영역 내에서만 활동하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게 과연 뱀파이어 정도의 존재들에게도 통용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몇 번이나 공략에 실패한 세이렌의 영토나.
드레이크의 둥지 따위도 미해결 지역으로 남아 버렸지만.
뱀파이어는 드레이크보다도 상위의 존재였으며,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닌 몬스터였으니까.
세트나크의 목걸이.
회랑에서 본 그것의 활용법을 고스란히 적용하여 물리친, 듀라한이 예상보다 허약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게 다 눈속임이었다면?
당시의 마정석은.
‘그 정도까지 불러낼 힘이 없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한 군대를 불러내고, C급의 던전 브레이크를 A급에 이르기까지 성장시킬 만한 힘이 없었다.
자신이 컨트롤 타워의 모조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처럼.
그 또한 세크나트의 열화품. 혹은 모조품이었으니까.
마정석이 불러낸 건 그저 일반적인 언데드와 스파토이 정도였고.
‘막상 듀라한은 다른 놈이 불러냈다면?’
대략적인 힘의 균형이 맞아떨어졌다.
‘인식 방해…!’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철원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인식을 방해하는 것.
파직!
순간.
‘……?’
어떤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공략이 끝나고 정리를 하는 사이,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왔으며.
말을 건넸고.
짧게 인사를 나눴다.
또렷하지 않은 인상.
하지만 그와는 달리 선명한, 환한 미소.
“……놈이다.”
“…네?”
정우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인식 방해를 펼친 놈이 떠올랐다.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무엇 하나 떠오르진 않지만 묘한 확신이 들었다.
하시모토가 다시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대며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얻은 사이.
정우는 교토에 도착했다.
* * *
“그거 저쪽 마트로 가보세요.”
하시모토의 추적술은 상당히 뛰어났다.
반쯤 녹아 버린 비닐 한 장에서부터 시작된 추적.
식료품 마트에서 철물점까지.
여러 번 이동한 하시모토는 특유의 능력인 직감까지 사용하여 한 군데를 짚었다.
“여길 들른 것 같군요.”
“여기는?”
“교토 시청이오.”
일행은 곧장 교토 시청으로 이동했다.
“오, 여기가 교토 시청!”
여행자처럼 옷도 갈아입고 커다란 배낭도 메고, 카메라도 들며 시끌벅적하게 움직였다.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설명하겠습니다.”
하시모토는 가이드가 되었다.
웃긴 건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꽤나 능수능란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는 점이다.
덕분에 김미연과 이진수는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로 즐거워했다.
짧은 휴식.
-주인님만 빼고 다 분위기가 좋네요.
“…….”
빌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이가 정우밖에 없었으니, 다른 이들이 관심도 가지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은근히 입맛이 쓴 건 사실이었다.
정우는 교묘하게 자신을 가려 주는 셋 사이에서 빌런 레이더를 작동시켰다.
“……!”
위치를 기억한 뒤 곧장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태연하게 행동하여 관광 지도에 표시했다.
즐거운 분위기로 시청을 벗어난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조금 떨어진 장소의 한적한 식당으로 들어선 그들은 사사키가 미리 알려 준 대로 식당 뒤편의 안가로 들어섰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지만, 대화를 나누기엔 적합했다.
“봤냐?”
“어.”
“여기가 맞아?”
“……음.”
정우는 대답 대신에 지도를 펼쳤다.
관광 지도의 다섯 군데가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이곳이 빌런이 있는 장소다.”
정우의 말에 둘은 눈가를 좁혔고, 하시모토는 덜컥 굳었다.
경찰이긴 하지만 플레이어이기도 한 그는 빌런을 찾는 한국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나름 관심도 있었고.
“……헌터?”
“아, 너 이거 하시모토 씨에게 말해도 되냐?”
이진수가 걱정하며 물었다.
“상관없어.”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서, 설마 헌터 맞아요? 어… 미국에 있다고 하던데….”
혼란스러워하는 하시모토를 두고 정우는 말을 이었다.
“반장의 말대로라면, 놈은 저길 다녀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