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30화 (130/293)

130화

-실종자 (3)

어둠에 닿으면 모든 것이 변한다.

작은 뱀은 오거조차 죽일 수 있을 맹독을 품게 되고.

조금 커다란 뱀은 오거조차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진다.

아이를 납치하는 거대한 새 인간의 이야기와.

돌연 육신이 젊어진 노파가 미친 살인귀가 되어 날뛴 이야기까지.

수많은 생명을 잡아 한 솥에 끓인 뒤에 마신 미치광이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작은 토끼가 사자가 되고, 사자는 몬스터가 되는 곳.

게이트의 어둠은 분명히 그러했다.

정우는 기억의 편린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게이트를 토벌하기 위해 결단을 하면서 해당 사항을 떠올렸었기 때문인지, 따로 기억을 되찾았다는 소리는 없었다.

그 모든 건, 괴담으로 치부되었다.

“당시의 우리는 활동을 거의 멈춘 상태였소. 정보 또한 모으기가 쉽지 않았소.”

“…왜지?”

“어둠의 영역이라 불린 그곳을, 탐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오.”

“…….”

이지스가 천천히 걸었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정우 역시 그의 곁에서 천천히 걸었다.

순백의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처참하고도 어두운 서책의 내용을 읽으며.

“괴담을 모조리 막는 건 어려웠을 거요.”

“…누가?”

“누구겠소?”

이지스의 시선이 정우에게 닿았다.

“나…….”

“왕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게 아쉽구려. 그리고 우습게도… 무슨 영향인지 우리 쪽도 마찬가지요.”

마녀는 일족의 죽음에 분노해서 대륙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보인 뒤에 잠적했다.

회랑의 수많은 서적을 읽은 결과, 이곳에 정착한 마녀는 이지스의 바로 윗대.

아직 어린 나이였던 이지스로서는 수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그런 시기였다.

잠적한 뒤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결계를 치고 주변과 단절되었다.

주기적으로 교류하는 상단과.

때때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대륙을 횡단해야 하는 ‘기록자’를 제외하고서는.

“때문에 아라크네에게 사로잡히기 전의 기록만 있소.”

정우는 미간을 모으며 고민했다.

이지스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겠군.’

하지만 안개가 낀 것처럼, 딱 그 지점만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것 아시오?”

“……?”

“<신이 된 사나이> 본인이 기록하긴 했으나, ‘언제’ 기록했는지 그 시점을 모르겠소.”

“그게 무슨 소리지?”

“아라크네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영향인지, 우리 역시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이야기요.”

“……!”

정우의 눈이 커졌다.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하지?”

“왜 우리가 끊임없이 책을 읽는지… 궁금하신 적이 없소?”

그러고 보면 마녀는 항상 회랑에서 책을 읽었다.

짧은 대화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책에 대한 토론일 뿐.

회랑 안에서의 마녀는 학자처럼 굴어댔다.

“……끊긴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기억과 기록을 대조하기 위해서?”

“정확하오.”

이지스가 미소를 지었다.

“…골치가 아프군.”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했소. 왕은 왕께서 지닌 문제가 컸고, 우리에게 따로 시간을 할애할 정도의 여유가 없었소. 물론, 우리의 기억을 우리가 되짚는 것이기에 왕께서 해줄 것도 없었지만 말이오.”

정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군.”

“괜찮소.”

그로부터 정우와 이지스는 여러 대화를 나눴다.

짧게는 기억부터, 길게는 방법까지.

나름대로 얻을 게 많은 대화 가운데에서 정우는 이지스에게 말했다.

“이 회랑의 서책, 나도 이용할 수 있나?”

“‘기록’ 말이오?”

“그래.”

정우의 말에 이지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왕은 회랑의 주인이 되었소.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잘 아시리라 믿소.”

“그렇군.”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빈 책이 필요한데.”

“생각하시오. 책의 유무도 기록도, 모든 건 생각을 통해 진행될 것이오.”

“그것참 반가운 소리군.”

반색하며 생각을 집중했다.

정우의 앞에 하나의 책이 떠올랐고, 허공에서 필사되었다.

기억의 흐름.

그것을 의식의 흐름에 맞춰 쭉 적어 나갔다.

정우의 집필을 본 이지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 어둠 안의 괴담 >을 읽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책을 읽은 이지스의 눈가가 떨렸다.

절로 두려움을 품게 만드는 괴담이 한가득이었다.

의아한 건.

“…그럼에도 다른 서적에는 괴담이 적혀 있지 않소.”

기록자에 따라 내용은 다를 수 있었지만, 아예 빠지기는 어려웠다.

이 정도로 강렬한 괴담은 어떻게든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어진다든가.

진짜로 발견될 괴물의 토벌 작전이 시행된다든가.

목격담이 일파만파 퍼져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세상에 대해서 적은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군.”

< 신이 된 사나이 >를 집필한 이지스 역시 해당 소문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게이트.

그리고 어둠의 영역.

그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것처럼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하군.”

그제야 이지스도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초월적인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한 것 같은 흔적이 엿보였으니까.

“알아봐야겠군.”

괴담만이 덩그러니 한 책에 담겨 있을 뿐, 어디에도 괴담의 흔적은 없었다.

이지스는 그 사실에 주목했다.

집중하여 집필하는 정우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이지스는.

종장에 들어선 책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왕의 기억이라. 굉장히 흥미가 생기는 책이 아니오?”

무려 자신이 모델로 사용한, 다니엘의 기억이었다.

마법의 왕.

천재 중의 천재인 다니엘의 기억.

절로 군침이 도는 내용에 이지스가 망설일 무렵.

탁.

완성된 책의 표지가 닫혔다.

정우는 눈을 떴다.

“…이제 끝난 건가?”

그 말에 이지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있겠소? 초고가 완성이 되었으면 검토를 해야 하고, 퇴고를 하고 검수를 한 뒤에, 탈고까지 끝나야 마무리가 되는 것 아니겠소?”

“……편집자냐?”

갑자기 편집자의 면모를 보이는 이지스의 모습에 정우는 눈을 흘겼다.

“혹시 아시오? 기억을 바로잡을 기회가 될지.”

이지스의 말에 정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기억을.

* * *

정우가 접속을 해지했을 땐.

이진수가 남은 빌런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대편에서 레베카가 달려드는 때였고.

김미연이 입맛을 다시며 폭탄을 투척할 타이밍을 보고 있을 때였다.

별달리 흐르지 않은 시간 동안.

정우는 회랑에서 수많은 것들을 얻고.

‘정리했다.’

-…어? 정리요?

회랑에 접속한 이유는 간단했다.

회랑 안에서 다니엘이란 이름을 보았을 때,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야 했던 기억은 재생되지 못했다.

정우가 본 그 어떤 능력보다도 더 ‘전지전능’에 가까운 시스템조차 회랑엔 닿지 못했다.

지구를 아우르는 시스템의 일부에 기생하고 있는 ‘인식 방해’가.

‘회랑에서 통할 리는 없지.’

회랑은 서고다.

수많은 책이 존재했고, 그중의 일부는 현재에도 움직이는 이들이 작성했다.

이지스가 작성한 < 신이 된 사나이 >처럼 말이다.

그렇다는 건.

‘새로운 기록도 추가가 가능하다는 소리다.’

그 사실을 확인한 후, 자신의 기억을 기록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집필 과정이 복잡했지만 끝내 완성했다.

-기억을 비교해 볼 생각이군요!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인장과 인식 방해를 해제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비교해 보면 될 일이지. 다행히도 내겐 기록과 관련된 존재들이 둘이나 있으니까.’

-저, 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사서보다야 제가 더….

메아리가 팔을 파닥거리면서 항변했다.

정우는 피식 웃으며 걸었다.

하시모토가 주춤 정우를 뒤따랐다.

전투가 끝났다.

익숙하게 폭탄을 던지려는 김미연을 만류한 정우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런은?”

“…모아 뒀어. 한 명은 제압이 어려워서 죽였어.”

이진수가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어쩔 수 없지.”

죽은 이가 강할 가능성이 컸지만 빌런 하나를 더 잡는 것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수상함을 확인했으며, 그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하였다.

정우는 제압당한 빌런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단번에 목을 찔러 죽였다.

하시모토가 움찔하며 마른침을 삼키고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김미연 씨.”

“네.”

“폭탄 안 쓸 거니까 넣어 두시고, 하시모토 씨에게 설명 좀 부탁드려요.”

“…어디까지요?”

“단편적인 것만.”

“알겠어요.”

김미연이 하시모토를 데리고 이동했다.

“괜찮아? 둘만 놔둬도?”

“누굴 걱정하는 거냐? 하시모토? 김미연?”

“…….”

“레베카.”

“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네. 아쉽지만 시간이 끝난 것 같습니다.”

“돌아가 있어. 다음에 부를 때까지 이지스가 말하는 걸 꼭 완성해서 오길 바라.”

“알겠습니다!”

무언가 따로 지시한 게 있다는 소리에 레베카가 의지를 불태웠다.

스으-.

연결되는 통로를 넘어 사라진 레베카를 본 이진수가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다.

“…이건, 몇 번을 봐도 놀라워.”

형태만 다르지 누가 봐도 게이트 그 자체였으니까.

“김미연이 설명할 동안 정보를 뽑자.”

“그럼 이놈으로.”

이진수가 한 명을 가리켰다.

가장 강해서 레베카와 합공을 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사자부활.”

부활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시체는 그저 눈을 뜰 뿐이었다.

죽어 버린 눈동자는 허공을 주시하고 있을 따름.

“여기에 온 목적을 말해.”

원래라면 인형 같은 모습으로 그저 입만 달싹거렸어야 옳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 스킬 ‘사자부활’이 ‘망자의 기억’으로 변환됩니다. ]

“……?”

뜬금없는 메시지.

심지어 사자부활이라는 본래의 스킬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스킬이 생성되었다.

망자의 기억.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이름의 스킬이.

해당 시체의 기억을 불러왔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을 걷어차듯 지하수로를 걸은 ‘나’의 목에 서늘한 단검이 다가왔다.

“치워.”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지?”

“나중에 네 목을 그어 줄 테니까, 지금은 비켜. 물건을 가져왔다.”

“…호오.”

어깨를 으쓱한 사내가 뒤로 물러났다.

“꼭 한번 붙자고.”

“기회가 되면.”

히죽 웃은 사내가 턱짓했다.

수로 옆으로 난 작은 구멍으로 허리를 숙인 후 걸었다.

등에 짊어진 배낭에 신경을 쓰면서.

통로를 나오자 은은한 빛이 감도는 공동이 나왔다.

수십 쌍의 눈이 날아와 꽂힌다.

개의치 않고 걸어 도달한 곳은 유일하게 의자가 있는 장소.

누군가가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후, 배낭을 진상했다.

“지시대로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받아든 사내가 배낭을 열었을 때 드러난 것은.

두근.

붉은색 알.

아니, 고치였다.

“……사역(使役).”

기억을 읽자마자 정우가 눈을 부릅떴다.

“사역?”

“젠장. 뱀파이어를 찾았어야 했어.”

“무슨 말이야? 왜 이번엔 이놈이 아무 말도 안 하냐?”

“읽었어.”

“…뭐?”

“기억을 읽었다고.”

“…엑? 사이코메트리 막 그런 거야?”

“비슷해.”

이로써 확인된 게 있었다.

“인식 방해를 건 놈이 뱀파이어와 함께 있어.”

-제 생각도 동일해요.

“인식 방해? 뭔 소리야?”

“방향을 바꿔야겠어.”

“정우야?”

“따라와.”

“……하아. 알았다. 궁금한 건 내 몫이지.”

이진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뒤따랐다.

때마침 설명이 끝났는지 하시모토의 표정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하시모토.”

“……네.”

경계심은 옅어졌다.

특유의 직감도 상대를 믿어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같이할 건가? 실종자를 찾는 움직임에?”

“……!”

하시모토가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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