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Electricity wall.
케르아!
특유의 고함을 내지르는 이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개미도 떼를 이루니 꽤 장관이네.”
김기태가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백이 넘는 수가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음에도, 일행의 얼굴엔 긴장이 전혀 감돌지 않았다.
하나같이 C급의 플레이어.
사막 고블린 따위는 잡담하면서 학살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이진수의 자신감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던 이들의 눈빛이 일순간 바뀐 건.
후우-웅!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사막 고블린 무리를 관통했을 때였다.
“……강화?”
제일 먼저 알아차린 이는 힐러였다.
놈들의 기세가 변한다.
“버프다! 젠장. 하필이면 마법사다!”
이진수가 상황을 외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뾰족한 이를 드러내며, 매부리코를 벌렁거리던 놈들의 날 선 눈동자가 뜨겁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땅을 내딛는 허벅지의 근육이 뜨겁게 팽창하고, 각자의 무기를 든 팔이 한순간에 두꺼워진다.
“…oh! my gosh!”
“하필…, 광폭화다.”
강화보다도 골치가 아픈 스킬.
광폭화.
“보스가 온 거 아니야?”
경험이 많은 이들조차 그런 의문을 품을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상식을 벗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온갖 위험이 가득한 던전에선 평대가 기본이었으니까.
“보스가 자리를 이탈하는 걸 봤어?”
“못 봤지만….”
“말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아!”
김기태가 버럭 외쳤다.
그런 그의 손에 들린 활이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에로우 어택.”
강철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선두에 선 몬스터의 목을 꿰뚫었다.
“서브! 지원을…!”
“오케이!”
지시를 내린 이진수의 음성이 전황을 가득 채웠다.
방패에 체중을 실으며, 벌써 지근거리로 다가온 사막 고블린을 향해 단호히 중얼거렸다.
“도발.”
그의 조용한 뇌까림의 효과는 대단했다.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 놈들의 고개가 일제히 이진수에게로 향했다.
“…이거야, 원.”
하지만 이진수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혀를 찼다.
“서브. 도발.”
서브 탱커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만큼 도발에 걸린 수는 많지 않았다.
서브 탱커까지 합류하고서야.
“와라!”
선두의 놈들이 전부 도발에 걸려들었다.
쿠웅!
묵직한 굉음과 함께 두 진형이 부딪쳤다.
케르-!
의미 불명의 고함과 함께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플레이어가 되었음에도 변화 없던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이진수의 육체는 움찔거릴 뿐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도발을 포함한 여러 스킬을 사용한 이진수가 조금씩 움직이며 몬스터들의 경로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피융!
이진수는 자신의 방패를 피해 고개를 들이밀던 놈이 뒤로 밀려나는 모습에 히죽 웃었다.
“윌리엄 텔!”
“…이 팀장 또 그러네.”
김기태의 손이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발사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이게 속사라는 건가?’
뒤편에서 이들의 전투를 보는 정우는 나직이 감탄했다.
원딜러가 한 명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몬스터의 수는 착실히 줄어가고 있었다.
이진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거 어쩌면 마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C급의 플레이어조차 침음을 흘릴 정도로, 사막 고블린들의 공격은 묵직했다.
‘이거… 정우는 괜찮은 건가? 이 자식. 매번 이랬다는 거잖아.’
정우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정우는 지금까지 운이 좋았다.
그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 바로 던전이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지면 동료도 버리는, 부정(不正)의 장소.
그런 곳에서 별일 없이 성장해 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버프 갑니다!”
준비가 끝났는지 힐러의 마력이 모두에게 뻗어 나갔다.
불끈!
그런 효과음이 어울릴 정도로, 두 탱커의 어깨가 반 뼘이나 상승한다.
“오!”
감탄사와 함께 후려친 방패에, 조악한 형태의 무기를 휘두르던 놈들이 비틀거렸다.
“몇 분?”
“20분.”
“충분하네!”
이진수가 활짝 웃었다.
표독스러운 눈빛이 서늘함을 머금고 방패 너머의 기척을 빠짐없이 읽어댔다.
몸의 각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공격이 무산되었다.
“정우야!”
뒤를 힐끗 본 이진수가 정우를 향해 말했다.
“지금 가라.”
“제 생각에도 지금이 맞을 것 같네요.”
김기태가 이진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괜찮겠어요?”
“이 팀장, 노련해요. 적어도 이상한 판단은 안 하니까 걱정 마요.”
김기태의 말에 이진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단단하네요.”
힐러도 덧붙였다.
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 수준이라며 이진수를 칭찬했다.
정우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럼.”
하지만 사담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법.
눈가를 좁히며 일행을 둘러본 정우가 결정을 내렸다.
“장치를 발동하죠.”
* * *
아라크네의 미궁.
마력의 실로 나무 따위를 엮어 벽으로 삼은 그곳의 지형은, 정우와 제임스 밀러가 공통으로 아는 장소였다.
모든 던전은 빠른 공략이 생명이었다.
게임의 던전이 그러하듯.
공략된 던전의 자료는 쌓여 하나의 데이터가 되었고, 공략집으로 변화했다.
초창기.
터져 나오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당시가 지나가고, 던전이란 곳을 탐색하게 되었을 땐 모든 게 생소했다.
마치 이제야 적성을 찾은 것처럼 선두에 서서 공략에 나선 여러 천재들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보다 많은 생명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들이 앞을 다투며 던전을 클리어했고, 그들의 자료는 매우 귀중한 공략집이 되었다.
세팅된 게임처럼, 몬스터에 따라 배경이 동일했고 수준이 비슷했다.
경험이 쌓이고.
공략 횟수가 쌓일수록 공략집은 탄탄해졌다.
정우 역시 그 덕을 본 셈.
나침반 따위가 통하지 않는 던전 내 사막에서 방향을 특정하는 건, 장소가 동일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조금씩 몬스터를 처리하고 움직여야 하는 기존의 패턴은 무시당했다.
모든 몬스터는 자신을 천하 진미처럼 여기며, 그간의 패턴을 무시한 채 달려들었다.
정우는 그 배경을 이용하고 싶었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상황을 이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이것이다.
제임스 밀러는 장치에 이렇게 새겨놓았다.
Electricity wall.
정우는 이를 번개 장벽이라고 불렀다.
장치가 발동되자 전기가 연결되는 것처럼 발광이 시작되었다.
각 위치에 놓인 장치로부터 치직, 전기가 번쩍였다.
파직!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뚝 잘린 허공에서부터 번개가 아래로 내리꽂혔다.
하나의 번개는 다발이 되었고, 다발의 번개는 벽이 되었다.
“작동 완료.”
장치의 운용법을 미리 교육받고 온 힐러가 말했다.
입구가 사라지고, 출구만이 남은 상황.
모두는 하나의 항아리에 갇힌 모습이 되었다.
정우는 출구를 보았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의 바로 뒤편.
번개가 유일하게 빗겨 나가는 장소를 본 정우가 달리기 시작했다.
케이-엑!
광폭화에 걸린 와중에도 정우의 이탈을 알았는지, 사막 고블린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뚝뚝.
침까지 흘리며 벌건 눈으로 정우를 노리는 모습은, 오싹할 정도였다.
이진수는 이를 갈았다.
“너흰 여기서 우리와 놀면 되는 거야!”
으라아, 소리를 지르며 방패를 미는 이진수의 움직임에 서브 탱커가 반응해 뒤를 받쳤다.
“무리하지 마.”
“당연하지!”
이진수는 번개의 장벽을 보았다.
인위적으로 형성된 장벽.
몇몇 몬스터가 방향을 바꿔 정우를 노리고 장벽에 달려들었지만, 매캐한 연기와 함께 지져져 나뒹굴 뿐이었다.
장치는 훌륭했다.
이진수는 이런 장치를 나이트 길드에서 구매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게 얼마라고?”
“비싸.”
서브 탱커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비효율의 극치.
하지만 지금의 목적만 놓고 보면 효율의 극치인 번개 장벽.
“개당 200만 불.”
“……20억?”
“그게 스무 개니까.”
“400억?”
이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중해!”
서브 탱커의 고함에 이진수가 다급히 다리에 힘을 주었다.
주륵, 밀리던 몸이 고정된다.
“D급에서 버는 돈이 얼마더라.”
“사막은 특히나 마정석이 별로 없어서 10억 정도밖에 안 되지.”
김기태가 설명했다.
“……비효율적이네?”
“엄청. 말을 들어보면 마정석 효율이 떨어져서 C급부터는 못 막을 확률이 높데.”
힐러의 말에 이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400억이라.
“대체 미국에 가서 무슨 짓을 했기에 백의 연금술사가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거지?”
정우의 특별함이야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수백 억의 지원이라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는 건가?’
일전에 길드원에게 들었던 몬스터의 이상 현상조차, 생각한 것보다 심각했다.
백의 연금술사 제임스 밀러라면,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판도를 바꿔 봐라.
자신이 한 말이긴 했지만 각성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름 굵직한 사건이 뒤따르자 걱정이 앞섰다.
만약 수르트 건에 대해서 알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 이진수였다.
“나도 궁금하네.”
김기태 역시 다른 의미로 정우가 궁금했다.
협회장의 지시.
제임스 밀러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떨어지지 않는 거물이 바로 유지석 협회장이었으니까.
“이번 공략을 끝마치면 술 한잔해야겠네.”
“저도 끼워 주시죠.”
“동료가 아니라 협회 소속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이참에 말 놔도 좋고요. 나이도 비슷하니까.”
“에이. 형님이 한참 형님으로 아는데 염치가 없으시네.”
“……이 팀장은 참 한결같네요.”
“아악? 나 귀 스쳤다? 스쳤다고? 여기 피 나잖아.”
“일부러지. 윌리엄 텔이라면서!”
“에이! 그냥 말 놔. 형이 동생한테 반말 듣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나.”
“맞먹자는 소린 아닌데?”
둘이 투덕댔다.
괜한 소외감에 서브 탱커와 힐러가 자신들의 나이도 밝혀야 하나 고민할 무렵.
“……음?”
가장 민감한 김기태의 고개가 돌아갔다.
“…벌써?”
마력의 흐름이 바뀌었다.
“몇 분 지났지?”
“8분.”
“…빨라. 벌써 보스와 부딪쳤다고?”
“에? 정우가?”
이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스와의 거리는 적어도 10분을 달려야만 도착할 정도였다.
그것도 C급 플레이어 기준으로 10분이었다.
F급인 한정우가 아무리 마력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벌써 보스에게 도착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뀌는 공기.
어느새 풀려 가는 광폭화까지.
모든 건 정우가 보스의 앞에 도달해 전투를 시작했음을 알리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놈들 맛이 가고 있네?”
이진수가 사막 고블린 하나를 주먹으로 후려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가 보스와 전투를 시작했다.
몇 번의 만류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내용.
“삼국지 장수도 아니고 일기토라니. 던전 공략만 끝나봐라.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잔소리를 퍼부어줄 테니까.”
이진수가 걱정을 누르고 투덜댔다.
모두의 시선이 사구 너머로 향했다.
그의 승리.
관여할 수 없는 그것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 * *
‘공기가 바뀌었다.’
정우 역시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김기태보다도 빠르고, 더욱 예민하게.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정우는 아직 전투를 시작하지 못했다.
멀리 보이는 사막 궁전을 앞에 두고.
드드드드!
요란하게 들썩이는 모래의 움직임에 발이 묶였다.
사르륵, 흐르는 모래는 유사 같았지만 형태는 엄연히 달랐다.
‘발밑에… 무언가가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었다.
몬스터.
그 어디에도 나타난 기록이 없는 새로운 놈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