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사막 고블린 족장
유사의 흐름은 비정상적이었다.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앞에서 뒤로.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존재감에 정우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뭐지?’
아무리 고민해도 사막 고블린 족장이 있는 던전에는 사막 밑을 이동하는 몬스터가 없었다.
하지만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보통 사막의 밑을 횡단하는 건.
‘샌드 웜(Sand worm).’
너무도 잘 알려진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놈이 여기에 나타나기엔 던전의 등급이 맞지 않았다.
‘샌드 웜은 B급일 텐데?’
던전의 등급은 던전 안의 몬스터의 마력 총합으로 나뉜다.
즉, D급 던전인 사막 고블린 던전은 엄연히 가장 강력한 몬스터가 D급을 넘기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B급의 몬스터가 있다면?
당연히 던전은 B급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할 터였다.
‘시간이 없어!’
발밑의 몬스터가 샌드 웜인지, 아니면 다른 몬스터인지 알 길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구는 모습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던 순간.
“……?”
정우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샌드 웜이 등장하기 이전에 느꼈던 마력의 변화.
그것은.
‘사막 고블린들에게 강화 마법이 걸릴 때와 비슷해.’
놈들을 이끌고 목적지로 끌고 들어갔을 때의 변화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버프?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많은 몬스터에게 버프를 걸고도 마력의 여유가 넘친다면.
‘그건 D급 몬스터가 아니지.’
아무리 보스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 거리를 건너뛰어서 마법을 건 것만으로도 무리를 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버프가 풀린 거다.’
마력의 고갈.
혹은 마법의 해제.
‘허세!’
판단을 내린 정우가 모래를 밀며 달려 나갔다.
파앙!
정우의 움직임에 반응한 모래가 하늘 높게 치솟았다.
사방으로 비산했다가 떨어지는 모래가 꽤나 위력적이었다.
삼단창을 머리 위로 들어 휘두르던 정우의 눈에 희끗한 무언가가 잡혔다.
‘모래 사이에 번쩍이는 건… 마력이다.’
크아-!
귓가를 저릿하게 만드는 포효가 자신을 가로질러 갔다.
힐끗.
뒤를 돌아본 정우의 발이 모래에 미끄러졌다.
‘허세…가 아니야?’
거대한 동체.
동체만 한 구멍이 자신을 노리듯 쩍 벌어져 있으며.
수백에 달할 정도로 날카로운 이빨이 빙 둘러 위협적으로 번들거렸다.
뚜욱.
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떨어지는 체액은 보는 것만으로도 역할 지경.
샌드 웜.
모습을 드러낸 놈의 존재감에 정우는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정우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발동시킨 신발에 마력을 한층 더 부여한다.
가뜩이나 뻐근해지고 있던 심장 어름의 통증이 심해졌다.
‘효율이 안 좋아.’
아이템은 유용한 만큼 효율이 떨어졌다.
‘나만 이렇겠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이템이 비싼 값에 거래될 이유가 없었다.
바닥을 보이는 마력.
그게 또 발목을 잡았다.
‘이걸 준비한 게 다행이군.’
사막의 열기와는 다른 열풍이 뒤에서 불어왔다.
역한 냄새와 더불어 느껴지는 죽음의 향기.
‘이게 B급 몬스터의 존재감…. 당연히 수르트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강하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그저 놈의 기척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보다 다급히 달릴 뿐.
목표는 사막 궁전.
나름대로 보수의 흔적까지 보이는 궁전은 샌드 웜의 존재에도 비교적 파괴된 부분이 적었다.
놈은 이곳에 오지 못한다.
정우의 판단은 주효했다.
반쯤 무너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성벽을 넘자마자, 샌드 웜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졌다.
‘돌이다.’
바닥의 재질이 다르다.
모래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막 고블린을 몰아둔 돌무덤처럼, 단단한 지면이 밟혔다.
정우는 주변의 기척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그러던 정우의 눈이 커졌다.
압도적인 위용은 사라지고, 사막의 신기루처럼 거대한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력적 존재감이 흩어지는 상황.
“…….”
처음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허세.
아니, 환각이나 저주를 통한 출현.
“흑마법사.”
정우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정우를 막지 못했다는 걸 느꼈는지, 궁전 안쪽에서부터 흉흉한 적의가 뿜어져 나왔다.
‘이거… 미리 준비했던 것보다도 강력한데?’
상당히 떨어져 있는 거리의 수하들에게 버프를 걸고, 실제에 준하는 환각까지 사용했음에도 마력이 남아있었다.
‘고블린들의 버프는 사라졌고, 우리 쪽 버프는 남아 있으니까 충분히 버틸 테지만… 반동도 생각해야 해.’
빠르게 공략한다.
결정을 내린 정우가 몰락한 도시 같은 분위기의 대로를 가로질렀다.
“……!”
이윽고, 궁전에서부터 검은 점 하나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방향을 바꿔 피한 그것이 바닥을 짓누르며 소멸했다.
‘이게 다크 애로우인가?’
달리는 모습 그대로 자신의 공격을 피한 인간을 노려본 족장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그가 네 적이다!’
앙상한 손이, 작은 창문 너머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인간을 가리켰다.
쿠우-웅!
* * *
김훈은 30대의 나름 건실한 청년이었다.
인생은 후회라지만 그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것 하나는 그의 손을 벗어난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애당초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의 시간 후 졸업을 하고 이제야 조금 세상을 즐겨볼까 하던 찰나.
세계가 뒤바뀌었다.
격변의 시대.
던전 브레이크의 연속.
지구 전체가 열병을 앓는 것처럼 요동쳤고, 고름 같은 피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의 주적이 한순간에 같은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로 향하던 그 순간을, 김훈은 잊지 못했다.
“…차라리 2년만 빨리 터지든가. 아니면 한 5년쯤 뒤에 터지든가.”
“또 그 소리냐?”
동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나 억울한데. 군대 갔다가 왔더니 세상이 바뀌고, 군대가 사라졌어.”
“정확히는 그토록 바라던 모병제로 바뀐 거잖아.”
“아무튼! 징병 안 하게 된 건 억울한 거지.”
“미친놈. 난 내 동생이라도 안 간 게 다행이더라.”
김훈은 담배를 쭉 빨아들였다.
“왜 갑자기? 최근엔 뜸했잖아. 네 투정.”
“투정은 X발. 아니, 저 안쪽에 놈들 보니까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서 그래.”
“…야. 너 그러다가 한 번에 훅 가.”
“괜찮아. 스킬 썼잖아.”
“스킬이 만능인 줄 아냐? D급 쩌리 주제에?”
“X발. 지는….”
김훈이 눈을 흘겼다.
1세대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서 생긴 G급 던전만 해도 한 트럭이었다.
그럼에도 김훈은 안타깝게도 10명 안에 들지 못했다.
막상 당시에 각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고작인 정도의 처참한 재능이었지만.
그는 아무튼 자신이 아직도 D급 플레이어라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각성은 천운이다.
각성하는 것도, 살아남는 것도.
모두가 다 ‘랜덤’에 가까웠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무조건 끌려가야 했던 군대만 빼고.
“하물며 공부조차 내 의지대로 하든 안 하든 할 수 있는데, 군대는… 개새끼들.”
“그쪽이 병신인 건 나도 겪어봐서 잘 아는데… 지금은 별 힘도 없잖아.”
플레이어가 생긴 이후.
군대는 더 이상 인간을 막을 힘을 지니지 못했다.
전 세계 플레이어의 수는 5억.
적지 않은 수가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었고, 또 강해지고 있었다.
“저놈들 봐서 그런가 괜히 또 억울해.”
입구를 지키는 통일된 복장이 눈에 박혔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적이었던 북한.
층간소음 심한 이웃처럼 으르렁대며 언제든 달려갈 준비를 하던, 날 선 사이.
그들 역시 격변의 시대를 겪었고.
“말이 되냐. 우리나라도 상당한 플레이어 강국이잖아. 근데… 북한이 우리보다 위에 있어.”
“쩝. 어쩔 수 없는 거지. 거긴 ‘리’가 있잖아.”
뇌신, 마왕, 대마법사 등 전 세계에서도 코드명 자체가 브랜드로 통하는 인물 중 하나.
리.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그에 대한 정보는 크게 알려진 게 없었다.
특유의 폐쇄성은 각성 이후로도 여전해서 여러 정보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주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던 그 국가가 이제는 탈바꿈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처럼, 북한은 망했다.
삼대가 끝난 시점에서.
새로운 왕정 체제.
코드명 ‘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체제로 개편되었다.
모든 건 능력주의였고, 실리주의였다.
개편된 체제 안에서 수많은 북한 플레이어들이 ‘용병’으로 세계로 퍼졌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은 나라의 근간이 되었고, 북한은 지금 유례없는 성장기를 맞고 있었다.
한강의 기적?
이젠 두만강의 기적이 되어 버렸다.
“야, 군 생활만 10년이야. 이미 육체적으로 준비된 전력이 플레이어가 되었으니, 그 악바리 정신을 어떻게 따라가냐?”
동료의 말에 김훈은 코웃음을 쳤다.
북한군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탈북자들을 통해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피죽도 못 먹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영양실조에 시달린다는 말이 많았던 북한.
때문에 각성이 진행되고 가장 먼저 행해진 일이 바로, 지도부 학살이었다.
왕정 체제의 몰락.
그리고 나타난 새로운 왕.
상명하복에 익숙했던 그들은 뭇 여러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존에 목말랐고, 악착같이 던전을 공략하고 마정석을 팔아넘겨 발전의 기틀을 만들었다.
씨가 마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박적으로 던전을 공략한 그들은, 가파르게 성장한 이들을 필두로 중국과 러시아에 플레이어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용병 국가.
초창기의 혼란을 독식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멸망을 예상했던 전문가들의 추측을 깨고 기어이 플레이어 강대국으로 성장해 버린 나라.
“군대 갔다 와서 그런지 저 복장만 보면 화가 치밀어.”
“아서라. 쟤들 한 명이 우리 둘을 바르고도 남을걸?”
벌써 몇 시간이나 부동 자세로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질릴 지경이었다.
“궁금하네.”
“뭐가?”
“안에….”
“음? 그게 왜 궁금해?”
“그냥. 뭔데 이렇게 철통 보안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우리 같은 외부 경비는 그런 거에 관심 가지면 안 돼. 한 방에 훅 간다.”
동료가 자신의 목을 쓰윽 그었다.
“새끼가, 불안하게….”
김훈이 핀잔을 건넸지만,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자고로 분에 넘치는 관심은 죽음을 앞당기는 법이었으니까.
김훈은 담배를 쭉 빨며 커다란 건물을 힐끗 보았다.
“괜히 저 군복 보니까 기분이 나빠서 그랬는데…. 그래. 쓰읍. 저 안쪽 일 알아서 뭐 하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호기심이란 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시야가 뿌예진다.
“……응?”
김훈은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담배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야, 이것 좀 봐.”
“…….”
그리고 들리지 않는 동료의 음성까지.
소설의 뻔한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 김훈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
그곳의 외부 경계를 서면서 잡담하는 이들.
X발, 그게 나야?
그렇게 생각한 김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이 새끼 봐라. 눈치가 좀 빠른 거 같은데?”
흥미로워하는 새하얀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으아아!
김훈은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저었지만.
“……!”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보자. 네가 좋겠다.”
새하얀 얼굴이 자신의 얼굴을 핥으며 즐겁게 웃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 말과 함께 네 명의 얼굴이 불쑥 생겨났다.
“쓸 만하군.”
김훈은 새하얀 얼굴을 칭찬하는 묵직한 음성을 듣고는 기절했다.
“무조건, ‘데려간다’.”
“알겠습니다.”
도살자가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