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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3화 (3/293)

3화

-값진 승리

* * *

“야, 이게 얼마짜린 줄 아냐?”

플레이어가 된 뒤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이진수가 거들먹거리며 나타났다.

“자랑질이냐?”

“자랑 좀 하면 안 되냐?”

“어. 안 돼.”

“…말을 말자. 잘 들어봐. 정우야. 승민아.”

“다단계?”

“아니라고! 집중 안 해? 그냥 간다?”

“정우야. 그냥 좀 들어주자. 이놈 삐치겠다.”

“음. 말해봐.”

“…내가 이런 놈들을 친구라고 이 비싼 걸 사 왔다니….”

이진수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손에 쥔 작은 상자 두 개를 내미는 이진수의 표정은 밝았다.

“꺼내 봐.”

“…기분이 더럽다?”

“왜?”

“막 여자친구한테 선물 주는 남자 새끼 같은 표정이잖아. 야, 난 일 없다.”

“나는 일 있고?”

“음. 정우가 좀 잘생기긴 했으니까 남자도 꼬일 듯?”

“내가 일이 없다니까?”

“이 미친놈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안 열어? 그럼 뺏는다?”

이진수가 파닥거리며 상자를 빼앗는 시늉을 했다.

둘은 웃으며 상자를 개봉했다.

“…이게 뭐야?”

“X발. 더 더러워. 프로포즈냐?”

“……아, 미치겠네. 이승민. 안 닥치냐?”

반지.

밋밋하기 짝이 없는 반지가 하나씩 상자에 들어 있었다.

“아이템이야. 이 또라이야!”

“아이템?”

그 말에 이진수를 놀리던 이승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 능력인데?”

“오오. 이진수! 출세했어!”

이진수는 곰탱이 같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으로 자신을 놀리는 이승민을 무시했다.

“너희 목숨 한 번은 구해줄 물건.”

“…뭐?”

“반탄 스킬이 내장된 실드야. 당하기만 하는 건 억울하잖아. 적어도 눈앞의 적 하나는 없앨 순 있어야지.”

“그럼 공격 스킬이 내장된 아이템을 줘.”

“미친놈아. 너희는 플레이어 만나면 그거 사용하기도 전에 죽어. 아니, 정정. 너만 죽어. 이승민.”

“이 미친놈이 무슨 악담이야?”

“이건 사용할 수 있고?”

“하! 정우야. 너 너무 본론만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간만에 만났는데 너무 진지하다.”

“아이템이잖아. 네가 오히려 가벼운 거야. 이승민.”

들러붙는 이승민을 밀어낸 정우가 물었다.

“어. 이건 사용 가능해. 적어도 죽을 위기라는 걸 감지할 수 있는 ‘반응형’ 아이템이거든.”

“반응형?”

“어. 착용자가 이건 진짜로 죽겠다 싶은 순간에 자동적으로 반응해. 만약에 잠을 자거나 기절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외부의 압력에 반응해서 자동으로 발동될 거야.”

“……이거 비싸겠네.”

“비싸. 무지막지하게 비싸. 일회용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더라.”

이진수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허? 눈깔 보소? 걱정 마라. 그거 사준다고 엉아 어깨에 힘 안 빠져. 나 이번에 나이트 길드에 들어갔잖아. 계약금 두둑이 받았어.”

“이진수…….”

“특히 한정우. 너. 이 미친놈. 아저씨 구하는 것도 좋지만 네 몸 좀 사려. 솔직히 너 때문에 산 거야. 훈련하다가 죽을까 봐. 저 곰탱이는 덤이고….”

“이 자식이! 내 감동 물어내라.”

“감동은 있었고?”

“어. 약간?”

“아주 고맙네.”

투덕거림 뒤에 이진수는 아이템에 대해 설명했다.

* * *

‘반사 스킬이 내장된 실드.’

적의 공격을 ‘되돌려’주는 1회의 방어 스킬.

산사태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성능을 자랑한다던 그것이 발동되었다.

푸욱!

“아, 아아아아아아악!”

자신의 공격에 당한 오한우가 비명을 질렀다.

더불어 달려든 정우의 단검이 오한우의 어깨를 찔렀다.

다리와 어깨.

두 치명상에 허우적대던 오한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스킬.

그것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정우를 후려쳤으나.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충분히 목숨을 구해줄 수 있다던 이진수의 말마따나.

깡.

발동된 실드가 오한우의 공격을 튕겨냈다.

“시, X발! 어째서… 아이템을……!”

정우에게서 발동된 아이템의 정체를 아는 것인지 오한우의 표정이 굳었다.

정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는 범죄자.

그것도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는 살인마였다.

힘을 가진 살인마는 위험했다.

자신을 잡은 이진수에게 복수를 감행할 정도의 독한 기질이라면.

‘…차라리.’

결정을 내린 정우의 단검이 다시금 아래로 내리꽂혔다.

정우의 죽어가는 표정을 보기 위해 다리를 노린 게 오한우의 패착이 되었다.

쓰러진 몸.

다시금 덮쳐지는 정우의 공격.

푸욱!

살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감각에 정우는 힘을 주었다.

파앗!

그리고 힘을 다해 사라지는 실드를 보고는 다급히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서걱!

오한우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배를 베인 정우가 복부를 감싸며 비틀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오한우의 상태를 본 정우는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끄륵.

폐를 찔렀다.

아니, 심장일지도 몰랐다.

정확하게 파고든 단검이 오한우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

오한우가 정우에게 가한 일격은 그저 발악에 가까웠다.

통증에 못 이겨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얻어맞은 불운의 일격이었다.

어질어질.

정우는 시야가 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주춤 다가가, 오한우의 가슴에 꽂힌 단검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콰직!

손잡이까지 파고든 단검과 함께 오한우가 보이던 간헐적인 움직임이 뚝 멎어갔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엉덩이를 밀며 뒤로 물러났다.

막대한 통증이 복부로부터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 본 상처는 심각했다.

생각보다 깊은 모양이었다.

내장 조각이 삐져나온 것을 보면.

후욱, 후우우.

정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진수.

이름을 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살았다.

그게 억울하면서도 고마웠다.

기묘한 감정과 함께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개새끼. 나, 꼭 살려라.”

-뭐? 갑자기 뭐라는……. 야, 정우야. 한정우? 너 어디야. 어디야!

소리치는 친구의 모습을 그린 정우가 핸드폰을 떨구며 손을 늘어트렸다.

털썩.

그리고 힘없이 쓰러졌다.

-한정우!

친구의 고함이 들리지 않았다.

먹먹해진 귓가는 아무 소리도 잡아내지 못했다.

삐-.

이명만 가득할 뿐.

어두워진 시야와 함께 정우는 기절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자신이 죽인 오한우에게서 떠오른 붉은빛 작은 덩어리가 자신에게 들어온 것을.

정우는 느끼지 못했다.

* * *

끔뻑.

멍한 시선에 초점이 잡혀 갔다.

정우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린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

의외로 고개는 잘만 돌아갔다.

‘…병실. 병원이야. 살았네….’

그리고서야 뒤늦게 자신이 살았음을 자각했다.

하얀 커튼이 쳐진 병실.

그리고 보이는 여러 침대들.

정우는 그 와중에도 다인실 병실이라는 걸 확인하는 자신의 태도에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의 밝기에 눈이 부셨다.

‘…오한우.’

정우는 오한우를 떠올렸다.

과연 플레이어라는 칭호가 어울릴 정도로 오한우는 강했다.

여러 격투기를 연마한 정우도 오한우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자신의 길드 신입과 싸워도 이길 거라고 칭찬하던 이진수의 말은 틀렸다.

‘플레이어…….’

새삼 플레이어의 벽이 얼마나 높고 높은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이 지속적으로 들어가 때론 죽기까지 하는 장소인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간접적으로 체감이 되었다.

‘…아버지.’

그 던전 안에서 무려 5년이나 버티고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정우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던전이었으면 죽었다.’

기절이라니.

중상이라니.

던전 안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기절은 죽음을 뜻했고, 중상 역시 죽음을 뜻했다.

정우는 오한우를 통해 플레이어란 언제든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위험했지만 귀한 깨달음이었다.

‘빌런을 잡았다고… 우쭐해 할 것도 없어. 애초에 진수가 준 아이템이 아니었으면 이길 수조차 없었어. 정우야. 강해져야 해!’

일반인이 빌런을 죽인 건 당장 해외토픽으로 이슈가 되어도 모자라지 않을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병실은 조용했다.

정우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을 떠올리며 강해지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드르륵.

“어? 선생님. 환자분 깨셨는데요?”

“그래요? 어디 봅시다. 환자분?”

“저… 정우야. 괜찮니?”

간호사, 의사. 그리고 어머니.

“괜찮아요.”

정우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정우. 꼭 잘 좀 치료해주십시오.”

“치료라고 할 거야 있나요. 뭐 그래도 설명은 해드려야겠네요.”

의사가 정우를 보았다.

“쇼크 증세가 좀 있었는데, 이제 보니 다 안정이 되었습니다. 참 튼튼한 몸을 지니셨군요. 어머님께 감사해야 하겠는걸요?”

의사가 농담을 건넸다.

정우는 그 말에 자신의 몸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다는 것을 자각했다.

마치 당시의 상황이 꿈인 것처럼, 어느 부위에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나이트 길드에서 온 분이 치료하셨습니다. 때문에 제가 할 일이 없더군요. 하하.”

“진수가 힐러를 불러왔다. 덕분에 살았어.”

어머니의 첨언에 정우는 안도했다.

‘시기적절하게 진수가 도착한 모양이네. …다행이야.’

뒤늦게 긴장이 풀렸다.

정우는 눈을 끔뻑였다.

“어머니.”

“그래. 엄마 여기에 있어.”

“저 괜찮아요. 걱정 많으셨죠?”

정우가 가볍게 상체를 일으켰다.

몸 상태가 확실히 괜찮았다.

백 퍼센트의 컨디션이라고 보기엔 어려웠지만, 매일이 고난에 가까운 훈련이었던 그에게 이 정도는 일상 수준이었다.

“아니다. 아니야. 엄마는 괜찮았어.”

어머니가 애써 걱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누가 보더라도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태도.

정우는 그 마음이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저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에요?”

정우의 물음에 아들 걱정에 정신이 없었던 어머니가 머뭇거렸다.

“7월 3일이요.”

대신 간호사가 답했다.

“……네?”

간호사의 대답에 정우가 화들짝 놀랐다.

7월 3일.

던전 입장권을 사용하는 날이었으니까.

“…시, 시간은요?”

정우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아버지의 목숨값으로 받은 던전 입장권이다.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던… 귀중한 것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버린다고?

정우는 빌런을 만났을 때보다도 더 심장이 내려앉았다.

“오전 10시 21분이에요.”

간호사의 말에 정우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황하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어머니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정우는 정신이 없었다.

아니, 한 가지에만 정신이 쏠렸다.

“여기 무슨 병원이에요?”

“…G 대학 병원이요.”

고함치듯 묻는 정우에게 대답한 간호사가 움찔거렸다.

정우의 태도에 무언가 모를 절박함이 있었으니까.

“어머니. 죄송해요. 저… 먼저 가볼게요.”

“저, 정우야! 몸은? 검사는 받아야지.”

“괜찮아요. 아직… 시간이 있어요. 다행히 가깝기도 하고. 죄송해요. 뒤처리 좀 부탁드려요!”

주변을 뒤져 핸드폰만 챙긴 정우가 병실을 뛰쳐나갔다.

어머니의 죄송하다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지만… 정우는 어머니에게 마음속으로 사죄하며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11시 30분. 아직… 시간이 있어.’

다행히 G 병원에서 논현동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니 막히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병원을 뛰쳐나가던 정우가 순간적으로 멈춰 서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야, 타.”

익숙한 음성.

“와, 진짜… 이승민!”

“졸려 뒈지겠다.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렸으니까, 얼른 타.”

이승민이 헬멧을 건넸다.

정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헬멧을 받아 쓰고는 바이크 뒷자리에 앉았다.

“당긴다.”

“당겨!”

이승민이 정우의 대답을 듣고는 스로틀을 당겼다.

부아아앙!

병원 부지를 벗어나 일반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이승민이 고함쳤다.

“더 늦게 일어났으면, 가서 두들겨 때려서라도 깨우려고 했어!”

“진작 깨우지 그랬냐!”

“이모가 포기해도 좋으니까 무사히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달란다!”

“…….”

어머니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 정우가 말을 잇지 못했다.

던전 입장권.

남편의 목숨값으로 얻은 그것을, 아들의 목숨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

‘……꼭!’

정우는 다짐했다.

죽지 않고, 능력을 얻어.

‘아버지를 구할게요!’

잃어버린 남편을 되찾아드리기로.

“합법적으로 팰 기회를 잃었네. 아, 아쉽다!”

이승민이 일부러 농담을 건넸다.

던전 입장권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놈이었기에 만약을 대비해 새벽부터 기다렸을 것이다.

정우는 이승민의 헬멧을 툭툭 두드렸다.

“고맙다.”

“뒈지지나 마.”

“그래. 썩을 놈아.”

“푸흐….”

끼이익!

“고맙다. 승민아. 나중에 밥 살게.”

“이진수 콧대나 콱 눌러주라. 플레이어 되더니 사마귀 콧대가 왜 이렇게 높아졌냐?”

“진수가? 풋. 알았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친구의 노력에 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11시 10분.

덕분에 여유를 되찾은 정우가 헬멧을 건네며 이승민과 주먹을 부딪쳤다.

“간다.”

“가서 다 찢어 버려!”

“내가 너냐. 곰탱아.”

“발라 버리든가.”

“풉. 알았어. 진짜 고맙다.”

이승민이 손을 휘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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