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습격
결정은 느렸지만 행동은 빨랐다.
정우는 협회를 나섰다.
“제일 빠른 일정은 7월 3일인가.”
일주일이란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예의 밝던 웃음을 잃어버렸던 어머니도, 정우의 결정엔 반색하며 간만에 환한 웃음을 보이셨다.
정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5년. 확실히 길긴 길었어.’
아버지를 대신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틴 세월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졸지에 남편을 잃었고, 약해진 몸으로 가족을 위해 일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자신은 돈을 벌며 언제고 던전에 들어갔을 때를 대비하여 단련하는 것에 온 정신을 쏟았다.
동생 정희는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많은 나이에도 단 한 번도 응석을 부린 적이 없었다.
“…미안하네.”
애써 억누르고 있던 미안함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스레 어깨가 묵직해졌다.
“드디어 한 발을 내디딘 거야.”
정우는 가능하면 플레이어가 되기 전에 모든 걸 해결하고 싶었다.
G급 던전은 특별했다.
모든 던전이 플레이어만 입장할 수 있다면, G급 던전은 오로지 일반인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로 각성시켜주는 던전.
때문에 G급 던전은 튜토리얼이라고 불렀다.
협회가 모든 던전을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안정적으로 변한 지표가 있었다.
사망률.
“하지만 0%는 아니야.”
정우는 그 사실을 직시했다.
모든 던전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까지.
“…뛰자.”
이제는 습관. 아니, 생활이 되어 버린 훈련을 재개했다.
달리고 또 달리며, 여전히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만약에’라는 가정을 날려 버렸다.
‘진수 말마따나 이젠 협회에서 해결해줄 영역이야.’
본인 때문에 망가진 가정보다는 아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가정을 보는 걸 아버지도 좋아할 거란 걸, 이젠 정우도 인정했다.
비빌 언덕이 없는 가정.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노력뿐이었다.
비빌 언덕을… 스스로가 만든다는 노력.
“아버지…. 정희가 벌써 이렇게나 커서 제 앞가림을 하고 있어요. 저도 앞가림을 하려면… 아버지를 구할 수밖에 없네요.”
정우는 각오를 불태웠다.
던전 입장 이틀 전, 정우는 이진수를 다시 만났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들을 게 산더미였다.
바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최대한 시간을 쪼개 상세히 설명해주는 이진수의 모습에, 정우는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잘해 봐라.”
이진수의 격려를 받고 돌아선 정우는 많은 생각을 했다.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온 아메리카노가 싸늘하게 식어갈 동안, 정우는 G급 던전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능력을 얻게 될지….”
G급 던전을 클리어하면 플레이어로 각성한다.
하지만 그중에 얻는 능력은 천차만별이었다.
“부디 원하는 능력을 얻어야 할 텐데….”
어두워진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보며, 정우는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보다 더 간절한 느낌이었다.
당시엔 막연한 구함을 갈구했다면.
“이번에 각성하는 능력으로 내가… 아버지를 구해야 할 테니까.”
절벽에 몰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정우는 고개를 털었다.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정우는 몇 번이고 반복해 다짐했다.
* * *
정우는 걸음을 멈췄다.
너무도 익숙한 길.
그곳이 새삼스럽게도.
‘……이상해. 왜 내가 아는 길이 아닌 것 같지?’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특별할 게 없는 길.
정우는 그 길이 매우 수상쩍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길이었지만, 마치 뱀이 아가리를 벌린 것 같은 불안감이 골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를 잃고.
집 바로 뒤편에 생겨난 던전 때문에 집도 잃고.
약간의 이사지원금과 보상금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집은 한정적이었다.
때문에 정우와 어머니는 좁고 어두운 골목을 몇 분이나 지나야 도착하는 작은 집의 반지하를 얻었다.
한정희를 위해서라도 더 좋은 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골목은.
‘…범죄가 벌어지기 쉬워서 집을 구할 때 엄청 고민했었지.’
범죄가 일어나기도 쉬운 장소였다.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흉기를 든 범죄자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오싹한….
정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인 건, 우연이었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이루어진 우연.
파앙!
갑자기 느껴지는 섬뜩한 예기가 자신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라?”
그리고 들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음성.
“이걸, 피했다고?”
어두운 골목.
그사이에 내려앉는 한 인형.
양손에 든 단검이 어둠 속에서도 섬뜩할 정도의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었다.
정우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팟!
어둠을 뚫고 무언가가 쏘아진다.
정우는 다급히 상체를 숙였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파공성에 반응하여 뒤로 몸을 데굴 굴렸다.
“…허! 이건, 내가 미친 건가?”
상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양손에 든 단검은 여전했다.
‘…뭐야. 뭘 던진 거야?’
“어떻게 피했어?”
상대는 흥미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누구야.”
“내가 먼저 물었잖아?”
정우는 대답하지 않고 슬그머니 뒷주머니의 핸드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흐. 이진수에게 연락하려고?”
그런 정우의 행동을 알고 있다는 듯, 경고를 담아 말했다.
‘…젠장.’
정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한 살기에 욕설을 내뱉었다.
‘빌런이다!’
플레이어를 상대로 대담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는 같은 플레이어뿐이다.
그리고 일반인을 상대로 무기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이는, 타락한 플레이어.
빌런뿐이었다.
힘의 논리로 세상을 개편하고자 하는, 이상 집단.
빙그르르, 놈의 손안에서 도는 단검에 정우는 시선을 고정했다.
이진수와 단검.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오한, 우?”
일전에 이진수가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흘렸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분명 반죽음으로 만들어 감옥에 처넣었다고 했었다.
“날 알아? 하! 감히 날 안줏거리로 삼았다는 거지?”
보이는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정우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이가 없다는 듯 몸까지 돌렸다.
그 틈을 노려 도망치려고 했으나, 정우는 움직이지 못했다.
수많은 격투 기술 습득으로 단련된 본능이 오히려 자세를 취하라고 경종을 울려댔다.
‘자존심이 상한 건가? …차라리 계속 얕잡아봤으면 좋겠군….’
그 와중에도 정우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갔다.
상대는 빌런이다.
테러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미친놈들.
‘진수에게 사로잡혔던 암살 계열이었나.’
“카페에서 본 건가?”
“그래. 운명이지!”
“운명은 무슨. 진수에게는 안 되니까 엄한 일반인을 노리는 거겠지.”
“……!”
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네깟 놈이…!”
상대는 자신을 충분히 얕보고 있었다.
정우는 그걸 확신했다.
하기야 플레이어가 일반인을 상대로 경계심을 품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놈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전투 능력이라면.
‘미쳤다. 정우야. 너 진짜로 각성 안 한 거 맞냐? 이 움직임은… 막 각성한 플레이어를 뛰어넘어. 너, 이 새끼! 격투에 천재였구나?’
이진수조차 감탄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가 정우라는 걸.
정우는 주춤 물러섰다.
“강간살인마. 진수에게 붙잡혀서 감옥에 갔다고 하던데…….”
정우가 툭하니 던지는 음성으로 물었다.
“탈옥?”
“……이, 미친 새끼가!”
‘무시 받고 있을 때… 데미지를 입혀야 해.’
어깨를 노리고 들어오는 단검에 반응해, 팔을 붙잡아 비틀었다.
그러며 벌어지는 손아귀에서 떨어지는 단검을 빼앗았다.
순간적인 방심에 팔이 꺾인 놈이 으르렁대며 마력을 사용했다.
마력을 사용한 이상 정우는 몸을 부딪칠 수가 없었다.
정우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너… 뭐야?”
은은한 경계심.
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손에 쥔 상대의 단검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상대의 무기를 빼앗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다.
하지만 마력이라는 건, 일반인의 세계에선 총이나 다름이 없었다.
총을 든 사람과 싸우는 것.
그보다 더한 격차가 있었다.
‘…아무리 방심해도 빌런은 빌런이다 이건가?’
관절을 비틀어 버리려고 했다.
아무리 플레이어라도 관절이 빠지면 움직임엔 제약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단검을 빼앗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넌 뭐냐고?”
그럼에도 방심은 여전했다.
같은 플레이어였다면 묻지 않았을 질문이었으니까.
정우는 그 틈을 다시 노려야만 했다.
“좋아. 한번 어울려 보지.”
한껏 날카로워진 인상으로 오한우가 말했다.
방심해서 단검을 빼앗긴 건 우스운 일이지만 질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꽤 하는 모양인데… 좋아. 네 자신감부터 부숴주지.’
카페에서 둘을 본 건 우연이었다.
당장 달려들어 썰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꽤나 고생했다.
잡혀서 받은 치욕.
무너진 자신감.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사이 더 성장한 이진수는 오한우의 손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노린 게 친구였다.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는 일반인.
일반인치고는 움직임이 매우 뛰어났지만.
‘그래 봤자 일반인이야. 마력만 조금 사용해도 죽어 버릴 버러지! 저 잘생긴 얼굴을 짓뭉개고 사지를 잘라 버린 다음에 버려놓으면… 그 새끼의 자존심도 박살이 나겠지?’
흐흐흐.
오한우는 웃었다.
정우는 오한우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저열한 악의에 인상을 구겼다.
천천히 다가온다.
어울려 보자는 말에 부합하게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먼저 움직인 쪽은 오한우였다.
차분히 방어하며 놈의 공격을 피한 정우가 반격을 가했다.
오한우는 정우의 공격에 반응하며 흥겹게 웃었다.
“더욱 발악해 봐라!”
암살 계열답게 오한우의 움직임은 예리했다.
언뜻 은밀하면서도 급소를 노리는 치명적인 일격들이 가득했다.
그런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반격까지 가하는 정우의 실력이 정말 말이 되지 않는 거였다.
아무리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와 일반인은 스탯의 수치가 달랐다.
“한 단계 더!”
말이 끝나자마자 오한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빠르다!’
경악을 금치 못할 속도.
“…오? 이것도 반응해?”
피부가 벗겨지고 상처가 늘었다.
그럼에도 정우는 치명상만큼은 착실히 피하고 방어하고 있었다.
반격은 사라졌지만.
저항은 여전했다.
오한우는 점점 속도를 높였다.
나름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고, 재미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재미는 언제고 반감이 되는 법이다.
“헉, 허억…!”
숨을 몰아쉬는 정우의 전신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한우는 그런 정우를 보며 차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더 버틸 순 없어? 저런. 흥이 꺼지네.”
인위적인 축 처진 어깨.
오한우는 철저히 정우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지 못했다.
땀에 절어 코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번들거리는, 투지를 잃지 않은 눈빛을.
‘기회는… 한 번이야.’
이진수에게 들은 오한우의 버릇이 여전하다면.
놈은 분명히.
“봐. 이게 마력이라는 거야. 너 같은 버러지는 손에 쥘 수도 없는, 초월적인 힘!”
마력을 사용할 것이었다.
상대를 죽이는 순간.
그 순간의 우월함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
정우에게 빼앗긴 단검 대신 빈손이었던 오른손에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단검이 생겨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지는 섬뜩한 마력.
“질렸어. 이젠… 죽어라.”
그것이 가볍게 휘둘러져 왔다.
전혀 가볍지 않은 무게로.
‘지금!’
그 순간, 정우의 몸에서 번쩍 빛이 일었다.
“뭐, …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오한우를 향해, 정우가 달려들었다.
여러 상처를 입는 와중에도 놓지 않고 있던 놈의 단검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