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화 (1/293)

1화

[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경매에서 ‘A급 마정석’이 강탈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당 경호를 맡았던 브레스 길드의 길드마스터 윌리엄은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 사퇴 의사를 밝히며……, 한편 이번 테러로 입은 피해가 천문학적인……. ]

높은 빌딩의 전광판에서 보이는 뉴스에 발길을 멈췄던 정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친놈들.”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등에 짊어진 묵직한 짐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려졌다.

으득.

허리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자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마지막이지?”

“네.”

“수고했다. 진짜.”

“오늘은 양이 좀 많네요.”

“그러게. 사람을 한 명 더 뽑았는데도 그러네. 그래도 정우 네 덕분에 빨리 끝났다.”

“그럼 돈이나 더 쳐주세요.”

“하하. 내가 그 말을 할 줄 알고 조금 더 넣었다. 아,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다. 너만 조금 더 챙겨 넣었으니까.”

“각자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인 거죠?”

“아니야. 이번엔 진짜로 너만 더 넣었어. 얼마 안 되지만.”

“잘 쓸게요.”

“그래. 내일은 오전 7시에 나오면 된다.”

“알겠습니다.”

정우는 인사를 하고 작업장에서 나왔다.

오후 5시.

“…늦었네.”

빨리한다고 노력했음에도 평소보다 1시간 반이나 늦어 버렸다.

정우는 받은 봉투 속을 보았다.

“진짜네?”

연장근무에 따른 시급과 더불어 5만 원이 한 장 더 들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불과 5만 원이지만 작업반장으로서의 최대한의 성의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끼이익.

버스 특유의 큼큼한 냄새를 맡으며 익숙한 풍경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 정우가 문득 아까의 전광판 내용을 떠올렸다.

불쾌했다.

“……미친놈들.”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은 정우의 시선이 청명한 하늘로 향했다.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 빌런들도 나오는데… 왜 아직도 그곳에 계시나요.”

세상은 변했다.

던전이 생겨나고 몬스터가 등장하고, 놈들의 대적자인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흔해 빠진 설정이나 소설처럼, 던전 안에서 발견된 여러 물질은 지구 자체에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마정석을 비롯한 여러 던전 부산물.

그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이점은, 과거 골드 러시에 비해 한 점 뒤처짐이 없었다.

하지만 무작위로 등장하며 인간을 각성시키던 G급 던전을 국가. 아니, 플레이어 협회에서 관리하게 되면서 플레이어로의 골드 러시는 막을 내리고야 말았다.

다만 플레이어가 되겠다며 무작정 돌아다니던 이들보다는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을 벌인 이들이 승리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잠시 정차했던 버스가 출발했다.

정우의 눈에 한 간판이 보였다.

수백 평의 커다란 5층 빌딩.

[ 현대 플레이어 양성 학원 ]

뛰어난 선택으로 인해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 이들 중 하나.

“…….”

저들과 같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저런 교육을 받고서도 무사히 G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와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이들의 면모가 부러울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무려 5년째 G급 던전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저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던전 입장권을 손에 넣었다지만, 정우는 아버지의 부재가 더 무거울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정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을 얻었다고 무자비하게 사용하는, 빌런이라는 작자들이.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플레이어 양성 학원은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자체적인 테스트에서 상위권에 들면, ‘던전 입장권’을 손에 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보니 수많은 이들이 몰리고 또 몰렸다.

하지만 입장권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정우로서는 학원의 최대 이점은 의미가 없었다.

“여어!”

손을 드는 친구의 모습을 본 정우가 걸음을 재촉했다.

“웬일이야. 오늘은 체육관에서 안 보고?”

“야, 시큼털털한 냄새를 맡는 거는 이제 그만 하고 싶다야. 이번에 던전에서 얼마나 굴렀는지 아냐?”

이진수가 미리 시켜두었던 커피를 가리켰다.

“그리고 체육관은 내가 좋아하냐? 네가 좋아하지.”

정우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피식 웃었다.

“오늘은… 공방?”

“어.”

“참. 대단하다. 공방에, 건설에, 운동까지. 너같이 독한 놈은 처음 본다.”

“매번 그 소리냐?”

“볼 때마다 놀라우니까 그러지. 너 같은 마인드로 던전 돌면 금세 부자가 됐을걸?”

그 전에 죽었거나, 이진수의 중얼거림을 들은 정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재수 없는 소리를 하기는.”

“근데 넌 안 죽을 거 같아.”

“그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야?”

“음. 그냥?”

“됐고. 얼른 교육 시작하자.”

“재촉하기는. 알았다.”

이진수가 설명을 시작했다.

정우는 사마귀를 닮은 오랜 친구의 말을 경청했다.

학원의 교육이 필요가 없는 이유.

‘이놈의 말이 더 교육적이니까.’

실질적인 내용이 가득한 친구의 말은 하나도 거를 게 없는 귀한 정보였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놀의 돌진을 막아냈더니, 아랑이 눈에 하트가….”

“헛소리 말고 제대로 설명이나 해….”

가끔 헛소리를 지껄이긴 했지만 정우는 이진수의 설명에 만족했다.

“아, 그리고 조만간 몬스터 도감이 공개될 거야.”

“몬스터 도감?”

“응. 플레이어들에게만 공개되던 건데, 어느 정도 일반인에게도 공개하기로 한 것 같아.”

“오.”

“그때가 되면 내 설명이 얼마나 상세하고 뛰어났는지 알게 되겠지. 받들어 모셔라.”

“…….”

정우의 눈초리에 이진수가 킥,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설명 끝. 거의 다 끝났다.”

“고맙다.”

“뭘. …사실 네 고집만 아니었으면 같이 플레이어 생활을 하고 있었을 건데.”

“…….”

“며칠 안 남은 건 알지?”

“……어.”

“너 그렇게 몸 혹사하면서 5년 동안 번 돈, 냉정하게 말해서 나라면 한 달 반이면 벌어.”

“……알아.”

“근데도 고집부릴 거냐?”

“…….”

이진수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내가 왜 모르겠냐? 이모랑 정희도 널 지지하고 있고. 아니, 오히려 훈련에 매진했으면 하고 생각하잖아.”

5년 전, 집에 미징후 G급 던전이 생겨나고 정우의 아버지는 해당 던전에 강제 입장이 되었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던전 입장권을 받았다.

옆집에 살던 이진수는 입장권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되었고, 정우는 입장권 사용을 보류했다.

“정우야. 나도 엄청 알아봤는데… 방법이 없더라.”

“…그래도.”

“어차피 며칠 안 남았어. 선택해야지. 이대로 노가다나 뛰면서 이모랑 정희랑 힘들게 만들 거냐?”

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정우도 머릿속으로는 던전 입장권을 사용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플레이어가 됐는데 G급 던전에 개입할 방법이 발견된다면…….”

“그럼 협회에서 사람을 보내서라도 구해 올 거야.”

이진수가 일그러진 친구의 얼굴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어.”

친구의 고통을 왜 모를까.

자고 일어났더니 집에는 덩그러니 G급 던전의 게이트가 생성이 되어 있고, 전날 인사를 나누고 잠들었던 아버지는 사라져 있었다.

G급 던전은 활성화가 되어 어느 인간도 추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협회에서 조사를 해본 결과 해당 던전에 입장된 사람은 정우의 아버지가 유일했다.

10명의 인원을 꽉꽉 채워야 활성화가 되는 기존의 법칙을 무너트린 특이 케이스에 온갖 학자나 플레이어가 정우네 가족을 힘들게 했다.

졸지에 가장을 잃어버린 가정은 던전법에 따라 집을 두고 이사를 가야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정우는 이 사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존경받는 유수의 학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순간, 그는 스스로가 아버지를 구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오직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않은 인간만을 받아들이는 G급, 각성 던전에 진입하기 위해 플레이어 대신 부산물 공방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아저씨가 좋아하겠냐? 아들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매번 같은 말이네.”

“그만큼 걱정이 된다는 소리지. 승민이도 네 걱정을 얼마나 하는 줄 아냐?”

“풋.”

“웃을 일이 아니야.”

이진수가 핀잔을 건넸다.

“알아. 나도.”

“아는 놈이 이러고 있냐?”

정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던전 입장권을 사용하는 게 이득이라는 건 어린아이도 안다.

살아서 플레이어로 활동만 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대기업 입사보다 훨씬 나은 벌이가 가능해지니까.

이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간만에 몸이나 좀 움직이자.”

그러고는 대뜸 이동하기 시작한 이진수를 따라 정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껴.”

체육관에 도착한 이진수가 글러브를 던졌다.

익숙하다는 듯 구경꾼이 링을 둘렀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정우가 글러브만 끼고는 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부웅!

“간다.”

이진수의 잽이 날아왔다.

“이미 날리고 예고하기는. 뒷북이 너무 심하잖아.”

가볍게 잽을 피한 정우가 자세를 잡으며 통통, 바닥을 튕겼다.

파앗!

달려드는 이진수를 피한 정우의 손이 빠르게 친구의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나지막하게 감탄하는 친구와는 달리 정우는 질린 표정이었다.

“생긴 것답지 않은 무지막지한 몸뚱이네.”

“아쉬우면 플레이어가 되든가!”

히죽 웃은 이진수의 몸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정우도 상체를 비틀며 열심히 다리를 놀렸다.

파앙, 파앙, 파팟!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먹이 오갔다.

감탄으로 웅성거리는 구경꾼의 소란을 뒤로 한 채, 정우와 이진수는 스파링을 끝마쳤다.

“…후우, 후욱!”

숨을 몰아쉬는 정우와는 달리 이진수의 표정은 차분했다.

상체를 숙이며 숨을 몰아쉬던 정우는 이진수의 손을 잡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땀 한 방울 안 흘리네. 열 받게.”

“플레이어잖아.”

“그래도….”

“야, 그렇게 따지면 열 받는 건 나야. 아무리 마력을 억제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훨씬 더 많이 얻어맞았거든?”

“넌 아프진 않잖아.”

“아프지 왜 안 아프냐? 특히나 네 주먹은 더 아파.”

이진수가 턱을 만졌다.

“…희한하게.”

“어?”

“그냥. 희한하게 진짜로 네 주먹은 좀 더 아프거든.”

“훈련의 성과인가 보지.”

“…그런가?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워낙 독종이니까.”

“죽을래?”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건 잘 가지고 있냐?”

“뭐? 아, 반지?”

“그래.”

“음…. 잘 가지고 있어.”

“차. 항상 차고 다녀. 일부러 밋밋한 디자인으로 골랐으니까.”

“…찬다. 차!”

정우는 주머니를 뒤져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

“언제 어디서 빌런이 나올지 모르니까. 잘 착용하고 있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알았다.”

“이번에 라스베가스에서 테러가 벌어진 거 방송 탔지?”

“어.”

“그것 때문에 비상이야. 요즘에 빌런 협회의 움직임이 조금 수상하거든.”

“…그렇군.”

“내가 잡은 놈만 해도 벌써 열이 넘어.”

“그렇게 많았냐?”

“그러니까. 미친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이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늦었다. 집에 가야 할 거 아니야.”

“어. 가야지.”

“이모랑 정희한테 안부 좀 전해주고.”

“알았다.”

“아, 참.”

몸을 돌려 걷던 이진수가 몸을 돌리며 손을 들었다.

화르륵!

“여전히 느껴지냐?”

“…어.”

“네 주먹이 더 아픈 이유가 그거 때문이 아닐까?”

“…마력?”

“그래. 마력.”

“말이 안 되잖아. 나는 플레이어도 아닌데.”

“몬스터는 말이 되고? 던전은? 플레이어는? 정우야. 플레이어의 지식엔 한계가 있어.”

어쩌면 넌 G급 던전을 겪지 않은 채 각성한 유일한 플레이어일지도 모르지, 이진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스스로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헛소리네.”

“…헛소리야.”

“킥. 간다. 이모 생각해서라도 입장권 얼른 써. 아끼다가 똥 된다.”

정우는 이진수의 등을 보았다.

플레이어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친구.

입장권의 기한이 며칠 남지 않아서일까.

그 등을 보던 정우는 문득 던전에 갇혀 있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아버지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을까?’

결코 아니었다.

마른세수를 한 정우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결정을 했다.

“…사용, 하자. 던전 입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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